한편의 영화
퀼스 (Quills)
감독_필립 카우프먼 / 주연_제프리 러쉬, 케이트 윈슬렛, 호아킨 피닉스 / 2000년
퀼스(Quills)는 영국에서 제작된 필립 카우프만 감독의 2000년 드라마, 멜로/로맨스 영화이다. 제프리 러쉬 등이 주연으로 출연하였고 줄리아 채스먼 등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 내용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황제로 군림하던 18세기 프랑스. 대혁명 말기의 공포정치 시대에 수천명의 시민들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본 ‘사드는’ 그 때문이었을까? 젊은 시절부터 가학적이고 문란한 섹스행위와 성 도착적인 소설 집필로 감옥을 드나들며 전 프랑스에 악명을 떨친다. 말년에 샤렝턴이라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 ‘사드’. 그곳 원장인 ‘쿨미어’ 신부는 사랑으로 환자를 치료하려는 이상주의자였다. 그러나 ‘사드’가 병원의 처녀 ‘마들렌’을 통해 자신이 쓴 음란소설을 밖으로 빼내 몰래 출판하면서 샤렝턴 정신병원은 ‘나폴레옹’ 정부의 요주의 대상이 된다. ‘나폴레옹’은 ‘로이 꼴라’ 라는 정신과 의사를 샤렝턴의 고문의사로 파견 사드를 치료, 감시하게 한다. 위선적 도덕주의자였던 ‘로이 꼴라’는 연금된 ‘사드’의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인 집필 행위를 철저히 금지한다. 그럴수록 ‘사드’의 광기는 더욱 더 노골화 되어간다. 결국 모든 집필도구를 압수당한 ‘사드’. 그는 침대 시트와 자기 몸에 온갖 외설적인 말들을 써 갈기며 ‘로이 꼴라’에게 저항한다. 그 와중에 ‘마들렌’이 ‘사드’의 소설 집필을 도와왔음이 밝혀져 공개 태형에 처해진다. ‘마들렌’을 몰래 사랑하고 있던 ‘쿨미어’ 신부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먼 곳으로 떠나보낼 결심을 한다. 그날 밤 ‘쿨미어’ 신부의 방을 찾아온 ‘마들렌’은 ‘쿨미어’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자기를 보내지 말아달라고 ‘마들렌’은 애원하지만 사제인 ‘쿨미어’는 눈물을 머금고 이를 거절한다. 샤렝턴을 떠나기 며칠 전, ‘마들렌’은 ‘사드’에게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다. 모든 집필 도구를 압수당한 ‘사드’는 동료 정신병자들의 도움을 받아, 가학과 음란의 극치인 자신의 최후의 소설을 입에서 입으로 ‘마들렌’ 에게 전달한다. 이를 종이에 옮겨 적는 ‘마들렌’. 그러나 소설의 내용을 전달하는 도중 그 충격적 내용에 자극을 받은 한 정신병자가 병원에 불을 지른다. 아비규환 속에서 ‘마들렌’은 성도착 환자인 ‘부숑’에게 살해되고 만다. 사랑하는 ‘마들렌’을 잃은 ‘쿨미어’는 사제의 본분을 잊고 증오심에 불타 ‘사드’의 혀를 빼는 참형을 가한다. 죽어가는 ‘사드’ 앞에서 ‘쿨미어’는 마지막으로 회개하고 구원 받을 것을 종용하지만 ‘사드’는 십자가를 씹어 삼키며 끝까지 신에게 저항하고 눈을 감는다. 이에 충격을 받은 ‘쿨미어’는 정신 이상을 일으켜 샤렝턴의 병동에 수용된다. 자신이 본 모든 것을 글로 옮겨 쓰게 펜을 달라며 절규하는 ‘쿨미어’ 순결한 이상주의자였던 그의 모습은 이미 죽은 ‘사드’를 닮아있었다.
– 그를 만나는 순간, 모든 상상은 쾌락이 된다!
나폴레옹 황제가 통치하던 시대의 프랑스. 가학적이고 문란한 성생활 때문에 정신병원에 수감된 사드 후작(제프리 러시)은 그 안에서도 자신의 욕망을 소설로 써 내려 간다. 그는 젊은 세탁부 마들렌(케이트 윈슬렛)을 통해 원고를 몰래 출판하기까지 한다.
이상주의에 불타는 병원 원장 쿨미어 신부(와킨 피닉스)는 그런 사실을 모르는 채 사드를 교화하려 하지만 나폴레옹은 잔인한 치료로 악명 높은 의사 꼴라(마이클 케인)를 병원에 파견한다.
꼴라는 점잖은 외모 뒤에 위선과 죄악을 감추고 있는 인물이었는데…
– 영화평론가 심영섭의 영화 질주 ‘퀼스’
새디즘의 대명사로 유명한 사드 후작은 18세기 프랑스 혁명이 잉태한 최고의 스캔들 메이커였다.‘저스틴’‘줄리엣’‘소돔에서의 1백20일’등 그의 작품은 극도의 가학적·폭력적인 성묘사로 출판 직후 금서로 묶였다.
영화 ‘퀼스’는 ‘피의 후작’에서 ‘시대의 반역아’로 월드 스타가 된 사드를 현대적 관점에서 재조명한다.영화에서 사드는 아내를 때리는 치졸한 이기주의자로 나오다가 끝내 십자가를 목구멍에 삼키고 죽어가는 순교자로 승화한다.
‘퀼스’는 깃털 펜촉을 지칭하는 말.제목이 암시하듯 필립 카우프만 감독은 시대와 불화하는 인간을 통해,어떤 압력에서도 ‘쓴다’는 신념을 실행하는 인간의 의지에 대해 얘기하려 든다.
그러나 ‘퀼스’는 다른 많은 전기영화처럼 광기와 악마성에 시달리는 천재라는 상투적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드는 펜촉이 없자 닭 뼈에 포도주를 묻혀 쓰고,그것마저 금지되자 자신의 피로 입던 옷에 문신 같은 글을 새겨 넣는다.여기에 ‘아마데우스’나 ‘양들의 침묵’처럼 고문실을 연상케 하는 정신병원의 엽기적 분위기가 빠질 리 없다.
실제로 1800년 당시 프랑스는 혁명의 광기가 칼을 휘두르는 시대였다.바스티유와 픽푸스 감옥에선 하루에도 수천명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고,사드는 감방 창문을 통해 이런 모습을 지켜봤다.
당연히 사드는 혁명이 기치로 내건 이성주의 ·박애주의에 의문을 품는다.
사드의 가학성은 주체할 수 없는 열정,혹은 악마적인 광기에서 비롯했던 것이 아니라 극도의 차가운 지성과 모반의 힘에서 나왔던 것이다.
그는 절대적 고독이 가득한 감옥에서 ‘자연은 우리를 홀로 태어나게 한다.어떤 사람과 다른 사람 사이에는 결코 아무런 관계도 있을 수 없다’고 믿게 된다.
텅 빈 존재의 심연과 마주하자 프랑스 혁명에 현혹된 군중보다 완전한 개인,완전한 욕망의 극단을 꿈꾸었던 것.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금기를 위반하는 성이란 다른 사람을 고려하지 않는 절대적인 파워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때문에 사드의 글은 선정적인 에로티시즘보다 완벽하게 금기를 위반한 성이 반복되는 잔인한 후렴구에 가깝다.
‘퀼스’에서 사드를 교화하려던 쿨미어 신부는 마음으로만 사모하던 세탁부 마들렌의 죽음 앞에서 신을 버리고 사드의 모습과 닮아간다.카우프만 감독은 인간은 양면성이라든가,사회에 저항하는 예술의 힘 같은 고정관념을 사드의 전기에 슬쩍 밀어넣으려 했다.
그래도 결국 사드는 끝내 자신의 꿈을 이룬 것은 아닐까? 사드가 궁극적으로 원했던 것이 ‘극단적 상상의 순간에 덮쳐오는 끔찍한 진실’이라면,영화라는 매체는 사드의 이상을 가장 잘 구현하는,타인의 존재를 모두 몰아낸 악몽의 팬터지가 아닐까 싶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