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활인심방 : 퇴계선생의 마음으로 하는 몸공부
퇴계 이황 / 예문서원 / 2006.3.25
퇴계선생의 마음으로 하는 몸공부를 전해주는 ‘활인심방’을 소개하는 책. ‘활인심방’은 퇴계 선생이 스스로 건강을 돌보기 위하여 중국 도가의 양생지식이 집약된 ‘구선활인심법’이라는 책을 필사해 둔 것을 해설한 것이다. 도가와 의가 양생의 거의 모든 분야에 걸친 필수적인 지식이 짧은 글 속에 깊이 있게 담겨 있다.
이 책은 한문 원문에 대한 번역과 단어 풀이를 먼저 하고, 원문을 싣고 난 다음에 필요한 주제를 찾아 본문을 해설하였다. 특히 수양 분야에 관해 무게를 실어 기공과 내단을 간략하게 해설하고 도인법들에 대해서는 실제 활용할 수 있도록 실천적 요령을 설명하였다.

○ 목차
안내하는 글
제1편 해제
1. 퇴계의 생애와 사상
2. 퇴계화 『활인심』
3. 『활인심』
제2편 『활인심』의 내용
『활인심』 서문
『활인심』 상
1. 중화탕(中和湯)
2. 화기환(和氣丸)
3. 양생의 대표적 방법들
4. 마음 다스리기
5. 도인기공법
5-1. 좌식팔단금
5-2. 6글자 소리내기(六字氣訣)
5-3. 장부 도인기공
5-4. 마무리 보건공
6. 정신을 보존하고 기르기
7. 보충하고 기르는 음식들
색인
○ 저자소개 : 퇴계 이황(退溪 李滉 , 1501-1570)

퇴계 이황은 도산 서당에서 성리학의 심성론을 크게 발전시킨 한국철학의 대표적인 학자이다. 그의 자는 경호이며, 호는 지산 ·퇴계이다. 연산군 7년 11월 25일 경상북도 안동 도산에서 진사 이식의 여섯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퇴계의 아버지는 서당을 지어 교육을 해 보려던 뜻을 펴지 못한 채, 퇴계가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퇴계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났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34세에 대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로 벼슬을 시작하여 끊임없이 학문을 연마하며 순탄한 관료 생활을 보내던 그는 종 3품인 성균관 대사성에 이른 43세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갈 뜻을 품게 된다.
이후 세 차례나 귀향과 소환을 반복하면서 고향에서 연구, 강의, 저술에 전념한 퇴계는 50세 이후에는 고향의 한적한 시냇가에 한서암과 계상서당 및 도산서당을 세우고, 그의 학덕을 사모하여 모여드는 문인들을 가르치며 성리학의 연구와 저술에 집중하였다. 권력에서 멀어진 후에도 조정에서는 계속하여 높은 관직을 제수하였으나, 거듭 사직 상소를 올려 받지 않았으며 마지못해 잠시 나갔다가도 곧 사퇴하여 귀향하기를 반복하며 학자의 길을 걸었다. 연구에 몰두하던 그의 나이 70세, 1570년 12월 8일 운명을 달리하게 되었다. 고봉 기대승과의 4단 7정에 관한 논쟁을 통하여 학문적 논쟁의 모범을 보여주고, 성리학의 심성론을 크게 발전시켰다. 저서로는 『계몽전의』, 『송계원명이학통론』, 『퇴계집』 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유학자인 이황이 도교의 대표적인 양생서인 ‘활인심방’을 필사했다는 것은 불교와 도교를 멀리하고자 하던 그 당시 선비사회의 환경이나 노자와 장자, 석가를 학문적으로 비판하던 퇴계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다. 이황이 ‘활인심방’을 필사한 이유는 어떤 것이었을까?
.저자의 신분은 그가 쓴 책에 대한 판단에 영향을 끼친다
책에 대한 평가는 언제나 다각도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시각에 저자를 통해 책을 바라보는 것은 당연하게 자리잡혀 있다. 따라서 아마도 ‘활인심방’의 저자가 명나라 태조의 왕자였다는 것은 ‘활인심방’이 좀 더 둥근 평가를 받을 수 있게 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주권은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16(17)째 아들로 영왕에 봉해졌다. 초기에는 정치에 관여했지만 후에 도교 도사의 길을 걸었다. 호는 구선(臞僊), 함허자(涵虛子) 등 여러 가지며, 시호는 영헌왕(寧獻王)이다. 시문, 경사에 관하여 많은 책을 읽었고 의약, 기공과 단학(丹學)에 관한 비본(秘本) 모으기를 좋아하였으며 저술 또한 많다. 주권의 신분은 풍요로운 삶 속에서 풍부한 자료를 접하게 해주었다. ‘활인심방’을 이황이 필사했을 뿐만 아니라 16세기부터 순흥․경주․나주․진주 지역에서 판본으로 간행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역시 책의 내용과 함께 저자의 신분이 작용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건강이 좋지 않던 퇴계선생의 몸공부
조선사회에서 학문을 하는 선비는 사회를 지도하는 지식인으로서 의식주와 의료 모든 분야에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벼슬살이에서 주어지는 직책에 충실하고, 사회에서는 백성을 교화하며, 가정에서는 부모를 봉양하고 가족을 거느려야 했다. 물론 스스로의 생계와 건강도 돌보아야 하는 환경 속에 서 있었다. 특히 퇴계는 20세부터 지나친 공부로 이미 건강을 해치기 시작하였고 그 뒤로도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의 공부에 파고들고자 하였으므로 건강은 점점 나빠졌을 것이다. 독서를 많이 하고 생각을 많이 하면 소화기능이 현저하게 약해지고 병이 생기는 것은 모든 독서인이 한번쯤 겪어 본 일이다. 한편 ‘활인심방’은 마음이 모든 병의 근원이라는 원리 아래 마음을 다스려 기를 다스리고 기름으로써 건강을 지키고 생명력을 기르려는 마음 위주의 양생법을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이황이 55세에 친구인 송기수(宋麒壽)에게 보낸 편지에 의하면, 이황은 서울에서 살 때 “잠을 자기 위하여 누우면 무릎 아랫부분에 해당하는 구들에 습기가 있어서 결국 온 몸이 붓고 아랫배에 물주머니 같은 것이 출렁거리는 증세로 고생한다”고 했다. 이어서 그 증세를 평소에 익힌 도인기공법의 이치(導宣之理)에 힘입어서 그럭저럭 크게 발병하지 못하도록 견뎌냈다고도 했다. 도인기공법의 이치를 터득해서 자신에게 생긴 고질병을 다스릴 수 있으려면 상당한 기간 동안 실제로 그것을 연마해야 한다. 이황은 적어도 40대 후반 내지 50대 초반부터 50대 후반까지 ‘활인심방’의 도인기공법을 스스로 건강을 위해 활용했던 것은 아닐까?
.’활인심방’이 담고 있는 마음으로부터의 몸공부
‘활인심방’에서의 몸공부는 항상 마음 다스리기에서 시작한다. 양생법으로서의 마음 다스리기는 유학에서 몸을 주재하는 마음을 수양하는 공부인 성의(誠意)․정심(正心) 공부와 맥을 같이한다. 몸을 주재하는 마음을 다스리고, 나아가 몸을 닦음으로써 가정과 나라를 다스린다는 이념을 실현하는 것이다. 특히 마음을 수양하기 위해서는 마음 자체를 주재하는 공부가 주가 되어야 한다는 퇴계의 이른바 경敬 공부 중심의 심성학과도 서로 보완할 수 있다. 양생은 기를 기르는 데 중점을 두고 경 공부는 기를 다스리는 데 중점을 두지만, 결국 기를 바르고 순수하게 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젊은 시기에 ‘활인심방’을 만난 퇴계가 그 상권 부분을 베껴 놓은 이유가 아닐까?
. ‘퇴계원전총서’에서의 ‘활인심방’
‘활인심방’은 ‘퇴계원전총서’에서 이황이 한시도 게을리하지 않은 마음 공부의 묘방이라 할 수 있는 ‘고경중마방’에 이어 두 번째로 자리를 차지한 책이다. 이 책을 굳이 ‘편저’라고 한 것은 이황이 주권의 ‘활인심방’을 있는 그대로 베낀 것이 아니라 필사하는 과정에서 의문나는 글자를 바꾸거나 의문나는 부분에 자신의 의견을 적기도 하고, 필요한 부분에서는 우리나라 말인 한글로도 아울러 표기했기 때문이다. 주권의 ‘활인심방’이 상‧하권으로 되어 있음에도 상권만을 필사한 것 또한 그냥 그렇게 흘러보낼 것만은 아니다. 이번에 출간된 ‘활인심방’은 여러 가지 면에서 풍부한 자료를 담으려 노력했다. 원문은 이황이 필사한 것을 따르되 주권의 ‘활인심방’과 다른 점을 각주로 표기했으며, 번역문에서는 각주를 이용해 단어나 구절 등에 대해 역해를 하였다. 또한 번역문-원문에 이어서 본문 안에서 그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 역해자의 노력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퇴계원전총서를 채워가는 작업은 이황이라는 한 사람이 지니고 있는 의미만큼 다양하다. ‘성학십도’, ‘사단칠정논쟁’, ‘리학통록’ 등 선별하는 것만으로도 가치를 보이는 자료가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