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힌두교와 불교
막스 베버 / 한국신학연구소 / 1991.6.30
본서의 핵심적인 내용은 힌두교의 기본 정신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힌두교에서는 교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힌두교에서는 의견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사실 동일한 종교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종교적 “관용”치고 힌두교보다 더 폭넒은 수준으로 허용될 수 관용은 없는것처럼 힌두교에서의 자유는 넓다. 힌두교 사상에서 제기하는 주요문제는 “어떻게 해야 이 영혼들이 업의 인과율에 얽혀들어가는 세 속의 수레바퀴에 휘말리는 상태를 벗어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다. 왜냐하면 업과 윤회의 교리가 완벽한 발전을 본 이해부터 탈출하는 일이야말로 생각할 수 있는 모든“구원”의 유일한 기능이라는 교리적 사실뿐이기 때문이다.

– 인상적인 부분
본서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카스트 제도의 해체를 통한 역사적 발전 조건의 장이다.베버는 간접적으로 동양의 발전 저해 요인을 카스트 제도로 인한 장애라고 보고 있다. 이 장애요인 이야말로 모든 영역에 있어서 출생권의 핵심인 족벌 카리스마를 높여주고 보존시키는 데까지 끌고갔다. 그리고 카스트 체제와 카르마의 교리는 각 개인들을 명약관화한 의무의 순환체 속에다 밀어넣는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훌륭하게 돌아가고 형이상학적으로 만족스러운 세계상을 제시해 준다. 이러한 사유에 열중하면서 의식을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그런 식으로 영원히 반복되는 것으로 규정되는 인생이 완전히 무의미 하고 견디기 힘든 것으로 보였기에 현실에 대한 집착을 갖지않는다고 베버는 보면서 저해요인을 설명하고 있다.
– 종합적 평가
본서를 접하게 되면서 놀라운 것은 동양사상을 서양학자의 저작물을 통하여 배우게 된다는 점이다. 지금은 서양도 동양의 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연구한다고 하지만 우리가 서양사상을 배우는데 있어 어려운 것은 문화의 차이로 오는 사고의 틀이 다른점이다. 같은 맥락으로 볼 때 서양인이 동양 정신을 배우려고 한다면 우리가 배우는 것보다 더 어렵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동양정신을 서양의 합리성으로 번역한 것을 다시이해하기에는 더욱 어려워 젔다라는 느낌을 본서를 통하여 가지게 되었다.
본서는 동양정신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힌두교와 불교를 저자의 종교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합리성으로 진술하고 있다. 힌두교의 무제한의 자유에서 오는 정신을 합리성이라는 틀에 넣는다는 것이 아마도 본서를 기록함에 있어 가장 어려운 점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힌두교의 교리는 없다라고 말하면서 힌두교에서 믿어지고 있는 정신 철학을 말하고 있다. 베버는 힌두교 철학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영원이라는 존재자의 구조 및 세계와 신적 존재자와의 관계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여러 것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 힌두교의 특징이라고 하는데 그 중심 사상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고 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을 뿐 아니라 그 자체에서 모순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지금까지 많은 종교 철학자들이 힌두교의 사상이나 정신을 정의 내리지 못하고 다만 그 제도적 특성과 카스트 제도라는 장에서만 다루고 있다. 그런데 베버의 이러한 시도는 힌두교의 정신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반면 자유를 합리성이라는 틀에 속박함으로 왜곡된 이해라는 위험을 가질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문제로 베버는 사상이나 정신의 장 보다는 카스트 제도와 여기에서 발생하는 사회여러 현상을 원인의 면으로 말하고 있다. 그는 종교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현 인도사회의 현상을 종교에서 오는 사고의 틀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도인의 세계를 공부하는 이 극단적 사고방식에 결정적 원인이 된 것은 구원을 동경함에 있어서 철두철미하게 그리고 다른 선택의 여지라고는 조금도 암기지않는 인도 종교철학의 세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도인들이 삶에 대한 집착을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한다. 다만 그들의 관심사는 죽음의 수레바퀴에서의 벗어남, 즉 그 원에 대한 것이다.
그러면서 본서의 저자는 힌두교에서 유래되고 있는 정통종교(자이나교, 불교)의 구원관을 말하고 있다. 인도에서 지식인 계층으로 유래한 모든 구원의 기법은 일상생활과의 절연, 실제로는 그것을 훨씬 초월하여 낙원이나 신의 세계까지도 포함한 삶과 전체와의 결연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라고 말을 하면서 불교의 사상을 정립하고자 하였다. 저자는 불교에 관하여 말하기를 고대불교는 어느면에서 귀족출신으로서 힌두교를 신봉하던 지식인의 구원론들 가운데서 일체의 타협도 없이 가장 일관된 논리를 갖춘 지식인 구원종교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불교가 인도에서 귀족 불교로 계속적인 공인을 받지 못한 요인을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내적인 면에서 불교는 그 실천적 태도를 정립함에 있어서 구원을 현실적으로 끝까지 구도행을 수행하면서 승려가 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것으로 한정시켜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외적인 면에서 불교는 승려 외의의 사람들, 즉 평신도들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거의 아무런 배려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본토에서 벗어난 불교는 동남아시아에서의 소승불교, 동북아시아에서의 대승불교로 포교 활동을하여 현재의 불교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다른 구원종교로 인한 브라만의 종교가 인도에서 약화되기는 하였어도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다시 인도에서 이 정통파 종교가 복귀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지식인들의 구원론 비정통성을 근절시키려고 하는 노력 그리고 카스트적 의식 숭배주의를획일적으로 고장시키는 측면과 과거에 나온 율법서들을 완전한 형태로 성한시켜서 이에 따라 의식을 완전히 획일화시키려고 한점, 그리고 위 복귀 과정에서 특히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고대 인도의 고전적인 힌두교 종파들이 행한 선교활동 등을 복귀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되어 귀족적인 힌두교 카스트의 정치적 힘을 파괴시켜준 이슬람교 이민족 지배체제 아래서 비로소 힌두교 지배 세력인 구루 세력의 신장이 아무런 한계 없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카스트적 결속과 대중애 대한 구루의 지배를 제외한 어떻나 정신적 요인들이 힌두교의 경제적, 사회적 전통주의의 근거가 되었다면서 현재 인도에서 힌두교의 영향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본서에서 자이나교나, 불교 등의 합리적 이론을 띠는 구원에 관심을 두고 있는 계층이 적다고 말한다. 그리고 대중은 구원에 대하여 아는바가 전혀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저자가 의도하고자 하는 것이 나타나고 본다. 왜냐하면 사회적 세계는 지식과 교육을 독점한 계층과(브라만)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한 평민 대중의 계층으로 분열되었다. 사실적이고 내적인 실재 세계의 질서는 그들의 관심사에서 볼 때 아주 황폐하게 나타났기 때문에 지체높은 자들의 눈에는 숨겨져 있다. 그러나 평민에게는 그들의 일상생활을 합리적으로 조직해 주는 어떠한 윤리적, 계시 전달적 예언도 일체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서양, 중동 아시아의 경우 이러한 계시 전달적 예언의 등장은 그 예언과 관련하여 광범위한 결과를 야기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모든 자연의 조건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도인들이 밟았던 것과 똑같은 질곡이 그 지역의 발전을 퇴색시키는 원인으로 저자는 말하고 있다. 즉 구원사에 관심없게 된 평민들은 그들의 수레바퀴에 벗어나려고 하는 구원의 관심이 적게되어 역사적으로 예언의 길을 열어 두었던 것을 접하지 못하거나 안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이것은 예언을 통한 결과 – 현실에 대한 충실도가 떨어지게 되는원인이 되고 이것은 결국 사회의 낙후를 만들었다는 결론이다.
○ 막스 베버의 서구우월주의
대부분의 서구학자들은 서구를 본질적으로 우월한 존재로 간주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서구가 1800년대부터 지금까지 세계를 지배해왔기 때문에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살아오면서 서구가 우월하다는 관점이 무의식화될 정도로 서구학자들의 몸에 배어 있다. 문제는 서구가 일시적으로 우월하여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한 것인데도 서구가 어떤 본질적인 우월성을 지녔기 때문에 서구가 세계를 지배했고 그러한 관점을 과거에 투사하여 과거에도 서구가 계속 우월했던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서구의 발전이 중세 말기에서 근대초기에 이르기까지 서양보다 월등하게 발전한 동양을 모방하고 배우면서 빠르게 발전한 사실을 거짓으로 생각하며, 서구가 혼자힘으로 창조성을 발휘하여 스스로 발전해온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동양이 서양보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열등하게 된 것을 원래부터 동양이 원래부터 열등한 것이 지속되어온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서구 사람들, 역사, 문화, 사회, 제도 등에서 우수성을 찾고 대신 동양 사람들, 역사, 문화, 사회, 제도 등에서 열등성을 찾는 방향으로 노력했다. 대부분의 서구학자들에게는 이러한 성향에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서구우월적인 프레임이 자동으로 작동하여 이들이 세계를 논할 때 자동적으로 서구에는 유리한 것에 또는 동양에는 불리한 것에 또는 어떤 현실이든 그러한 방향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호는 세계 사회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막스 베버를 다루겠다. 이번의 글은 주로 불로트의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한다”의 내용과 필자가 이전에 썼던 “서구 근대 자의식과 쌀문명”이라는 글을 주로 참조하였다.
– 막스 베버의 중국 왜곡
동서양을 이러한 왜곡된 관점에서 보려는 성향이 사회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독일학자 막스 베버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막스 베버는 1864년에 독일에서 태어나 1920년에 죽었다. 잡지의 편집을 맡으면서 잡지에도 계속 글을 썼는데 그 결과 엄청난 양의 글을 썼다. 그는 그 당시 유럽이 세계발전의 최정점에 있고 그것이 인류가 성취할 수 있는 정점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면 서구의 성취를 인류최고의 것으로 보았고 이러한 성취가 왜 가능했지를 유럽인의 가치나 제도의 우수성(합리성, 효율성, 이성, 관료제, 합리적 이윤창출 등)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그가 이러한 접근을 하면서 서구중심주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비서구에 대해서 매우 비우호적으로 접근하였다.
동서양의 비교와 관련하여 베버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합리성이었다. 그는 인간의 지성과 윤리가 계속 발전해온 것은 합리성 때문으로 생각하였다. 이러한 합리성의 발전은 서구에서는 잘 나타나고 있지만 비서구는 제대로 나타나지 못하거나 제대로 발전하지 못해 항시 유럽에 뒤쳐져 있었다고 주장한다. 즉, 서구에서는 합리성, 과학, 관료제 합리화, 사기업이 나타나 합리적인 자본주의로 발전했으나 비서구는 아직도 내세나 미신(또는 주술)이나 신분주의라는 전근대적 가치에 빠져 근대화를 이룩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주도 종교가 근대적 정신의 발현을 촉진시키는지 또는 방해하는지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베버(Weber 1968)는 중국의 종교로 유교와 도교를 들고 이들이 서구 개신교와 어떻게 다른가를 다루면서 이를 중국의 정체(또는 자본주의가 미출현)와 연계시키고 있다. 베버에 따르면 유교는 미신과 신비주의를 용인하였고, 조상숭배를 통한 혈연주의를 부추겨 개인적 이익추구를 불가능하게 했으며, 변화나 기술적 발전을 저해하였으며, 또한 토지매매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유교는 또한 세상에의 순응만 가르쳤고 부를 추구하는 것은 나쁘다고 가르쳤으며 그래서 관료직에의 진출을 최고의 이상으로 생각하였고 이에 따라 상업발전이 어려웠다는 것이다.
중국도 16세기 금속과 화폐경제가 발전하여 경제가 성장하고 인구가 급증했지만 전통주의를 해체하지는 못했다고 보면서 베버는 이를 중국에서 자율적 도시가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혈연조직에 얽매어 있고 이를 넘어서는 자율적 정치결사체와 법률제도가 없고 중앙집권화된 체제와 거대한 관료에 얽매어 있어 자본주의로 발전할 수 있는 자율적인 도시가 생기지 못했다고 본다. 도시의 관료와 농촌의 혈연조직이 시장의 발전을 막았기 때문에 중국은 정체되고 근대자본제는 발전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관료제가 지나치게 발달하여 상업이 억압되어 토지나 상업보다 세금과 공물에 의존하는 공직이 더 중요한 수입원이 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반대로 유럽은 안정적 제국이 없어서 시장경쟁이 사기업의 합리화를 강제하고 정치경쟁이 국가경제와 정책을 합리화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베버는 유교에 의한 관료제화와 혈연주의가 국가의 권력독점으로 나타나면서 행정, 재정, 경제정책의 합리적 관리를 불가능하게 하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베버는 청교도나 유교를 비교하면서 서로 자율이나 절제를 추구하는 점에서는 같지만 유교는 교양적 신분을 통해 세상에 순응하는 것을 강조하고 교육, 자아완성, 예절, 효를 강조하는 것과 달리 청교도에서는 자율과 절제가 신을 위한 것이며 따라서 신에게 봉사하고 세상을 정복하는 경향을 만들어 신을 위한 이익추구가 나타났다고 보고 있다. 유교는 이러한 이익추구의 열정이 결여되어 중국에서는 자본주의가 발전하지 못하고 신에 봉사하기 위해 이익을 추구하는 청교도 때문에 서구에서는 자본주의의 발전을 나타났다고 보고 있다.
– 막스 베버의 인도 왜곡
베버는 인도의 자본주의 미발전을 인도의 종교인 힌두교와 불교와 연결시킨다. 힌두교는 달마(dharma – 法, 개인의 행위를 지배하는 종교적 계율과 도덕률)를 매개로 카스트로 나누어 사람들을 신분에 따라 나눈다. 힌두교는 달마에 연계된 카스트의 의례적 의무를 신성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카스트에 따른 업karma을 실행하면 다음 세계에서 더 나은 존재로 태어날 수 있다고 믿어, 현세의 변화는 추구하지 않고 다음 세계에서 신분이 올라가는 것만을 추구하게 하여 카스트 의무와 의례에 충실하게 만들어 현세에 대한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보수주의적 상황이 나타난다.
불교는 이에 비해 구원을 순전히 개인적 행위의 결과로 생각하여 전생이 아니라 현재의 올바른 삶을 통해 누구나 해탈을 추구하도록 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세적 해탈추구는 현세적 이익추구가 아니라 지적 해탈로서 해탈을 통해 이세상보다 저세상에서의 열반에 관심을 가지게 한다. 이에 따라 인도에서 불교는 지식인 종교가 되었으며 대중은 다양한 주술과 의례를 제공하는 힌두교를 선호하였다. 따라서 인도는 힌두교가 주도적인 사회가 되었다. 보수적인 카스트체제는 자기 신분에 주어진 의무와 의례에 치중하게 하고 기술발전이나 직업이동을 불가능하게 하며 경제적 성취를 추구해야할 아무런 자극도 주지 못했다. 결국 도시에서 자유롭게 경제적 성취를 추구하는 집단의 발달을 불가능하게 했다. 대신 이세상과 자아에 대한 신비주의에 빠지게 되었다.
결국 베버는 인도인은 힌두교에 의존하여 영원한 윤회에 기초한 변하지 않는 세계질서, 속세의 무시, 다음 세계에 대한 관심집중, 신비주의 등이 득세하게 되었고 지식인들이 현자가 되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대중은 미신에 빠져 있어 결국 경제적 발전이 불가능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베버는 따라서 정체된 인도를 발전시키기 위해 서구의 개입(제국주의)가 필요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부족 간의 야만적 투쟁에 의한 혼란이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비해 서구는 종교혁명(이어지는 개인의 독립, 합리성, 도시 자율계급의 발전)을 통해 modern한 대부분의 것, 즉 근대대학, 근대과학, 근대의회, 근대국가, 근대경제, 근대가치, 근대자본주의, 근대사회로 발전하였다는 것이다. 결국 근대적인 것은 서구에만 있고 중국이나 인도는 자체적으로 이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 막스 베버와 자유
마르크스를 포함하여 서구의 많은 학자들은 자유로웠기 때문에 발전했고 동양은 전제주의 때문에 발전할 수 없다는 황당한 주장을 계속 하고 있다. 서양도 중세와 절대왕정 시대에 그렇게 자유롭지 못했다. 뉴톤도 연금술 실험을 많이 하였지만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18세기 말인데도 기독교에 의한 탄압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서구에서도 계속 인권이 신장되면서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자유가 크게 신장되었고 지금처럼 자유롭게 지낼 수 있는 것은 2차대전 이후에나 가능해졌다. 그런데 마치 고대그리스에서부터 자신들이 자유로웠고, 중세에는 도시들이 자유로웠고 그래서 자유로웠던 것처럼 설명한다. 이에 비해 동양은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자유가 없었던 것으로 설명한다. 산업사회 이전에도 물론 완전한 자유는 아니었지만 동양에서 다양한 자유로운 활동과 사고가 가능했던 것은 서양과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중세유럽보다 중세 동양이 훨씬 자유로웠다는 것이 더 타당해보인다.
동양의 전제나 독재를 강조하는 데 대형관개라는 사실이 동원되었다. 대형관개시설을 통해 국가적 동원체제가 이뤄지면서 독재적인 왕권이 작동하게 되어 자유가 없었고 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국가가 강제적으로 사람들을 동원하여 대규모 수리 및 관개시설을 해야하고 따라서 국가가 사람들을 강제적으로 동원하고 통제하는 전제주의(독재, 비민주)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유럽은 각각 소규모 영주로 분열되고 비가 충분히 와서 각각의 마을에서 관개를 스스로 해서 외부개입을 필요치 않아 자유가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동양은 이와 반대되는 상황이어 자유가 없었다는 주장이다. 자유가 없기 때문에 창조적이지도 못하고 그래서 새로운 사회로 계속 발전할 수 있는 길이 막혀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대의 그리스와 중동문명을 이러한 식으로 대비시켜 설명하고 있다. 그가 쓴 말을 직접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관개체계가 필요했던 점이 근동지역이 [그리스와는] 그토록 다르게 발전하게 만든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이 필요 때문에 운하를 건설하고, 호수화 하천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일에 도시들이 밀접하게 연결되었던 것인데, 이 과정들 하나하나가 결국 전일적인 관료제가 생겨나도록 강제했던 것이다. 이런 식의 발전에는 불가역적인 성격이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개인의 예속도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리스는 자작농과 자율적 군대가 생겨 세속적 합리화가 일찍부터 자유롭게 발전했다는 것이다. 서구의 다양한 영화가 페르시아를 전제적 왕권군대로 그리스를 자유민의 열정적 군대로 묘사하는 것도 이러한 사고방식에서 기인하고 있다. 이는 사실과 아주 다른 왜곡된 묘사이다. 왜 왜곡된 설명인지는 이글의 앞의 시리즈에 나와 있어서 여기에서는 생략하겠다.
– 막스 베버의 동서양비교
더 나아가 동양의 것이 정체된 이유 중의 하나로 막스 베버는 인종적인 차이도 들고 있다. 물론 동양정체의 여러 원인 중의 하나로 인종을 다루었지만 그는 미주대륙 원주민들과 흑인이 근본적으로 열등하다고 믿었다. 동아시아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표현으로 가득하다. 예를 들어 중국에 대해 논할 때(Religion of China), 단조로움을 잘 견디며, 예상치 않은 지적 자극에는 느리게 반응하며, 알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아무나 선뜻 믿어버리고, 진정으로 우러나 동정하거나 따뜻하게 대하는 일이 없고, 철저히 순응적이고, 비교할 수 없이 부정직하고, 서로 불신한다고 쓰고 있다. 청교도의 신뢰나 정직함과 크게 대조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러한 차이가 “유전형질 차이에 있다고 추측하는 것이 당연하리라고 본다”라고 했다. 하지만 아직 생물학적 연구가 확실하게 진전되어 있지 않아 사회적, 역사적 연구에 집중해야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베버의 중국과 인도에 대한 논의는 19세기와 20세기 유럽 지식인들의 의식이 얼마나 서구에 편향되어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 당시 유럽제국주의에 대하여 가장 비판적이었던 마르크스도 많은 면에서 유럽지식인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유럽이 비서구를 식민지하거나 지배하여 충격을 주어야 비서구가 근대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베버는 마르크스와 달리 독일의 제국체제를 적극 옹호한 학자였다. 당시 서구의 우월성이 잘 발현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방향으로 계속 진전하면 된다고 생각하여 기존 체제를 적극적으로 옹호하였다. 그러나 비서구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서구에 대한 관점과 생각에 마르크스와 베버가 커다란 차이를 보이나 서구가 우월하고 비서구가가 열등하다는 점에서는 둘이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마르크스는 서구가 비서구의 기존틀을 철저히 깨면서(비서구는 스스로 그렇게 할 능력이 없다고 보았다) 혁명과 생산양식의 변화를 통해 다음 단계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였지만 베버는 가치와 제도의 변화를 통해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베버는 동서양 차이의 핵심을 종교(결국 가치관)으로 보고 중국과 인도의 정체원인은 힌두교와 유교에서 서구의 발전의 원인은 개신교에서 찾아냈다. 이러한 종교적 차이 때문에 비서구가 근대로 나가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논리의 핵심에는 서구에 있는 것(국가 간 분열, 권력경쟁, 전쟁, 시장경쟁, 자유도시, 길드, 청교도, 자유스러운 개인, 예언자)은 대체로 기독교에서 나온 것이며 결국 자본주의의 발전에 도움이 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서구에는 없고 동양에만 있는 것(거대제국, 거대 관료제, 전제주의, 혈연주의, 협동, 순응, 신비주의, 속세의 무시)은 대체로 동양의 종교와 관련되어 있으며 이들은 발전에 대한 장애물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베버는 중국과 인도의 경제가 어떻게 조직되고 움직이는가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하지도 않고 전통적 가치에 매몰된 변화가 없는 경제라고 단정하였다. 상인계급이나 장인계급이 교역과 생산을 어떻게 발전시켜 왔는지, 또는 생산체제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또는 영국이나 서구가 이를 어떻게 파괴해왔는지에 대한 고찰도 없이, 몇 가지의 중국이나 인도의 종교적 가치관이 동양의 발전을 차단하였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미 비서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자신이 관심을 가진 분야(주로 가치관)에서 서구와 다른 것을 찾아내고 서구의 것은 발전의 원인이고 동양의 것은 정체의 원인이라는 견강부회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어쨌든 베버의 이러한 가치관에 대한 논의는 이후 근대화(modernization)에 대한 논의로 발전하였다. 파슨스는 성취동기, 보편성, 구체성, 중립성을 근대적 문화유형으로 보면서 이는 기독교적 개인주의, 금욕주의 발전, 그리스의 정치적 가치, 중세도시의 구조, 개신교 종파의 출현, 성서의 합리적 이해와 개인을 강조한 개신교의 특성에 기반한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근대화 과정의 최고수준을 미국으로 간주하면서 미국의 종파적 다원주의, 개신교윤리의 세속화, 실체의 탈주술화, 경제의 합리적 지향 등을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근대화는 전근대인 비서구가 서구의 근대적 가치를 내면화하는 것이 파슨스에 이르러서는 미국의 근대적 가치를 내면화하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관점에서 일부학자는(한국학자를 포함하여) 동양이 발전하지 못한 것은 서양적 가치관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고 동양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서양적 가치관을 내면화해야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_ 이정덕(전북대교수)

○ 저자소개 : 막스 베버 (Maximilian Weber, Maximilian Carl Emil Weber)
독일의 사회사상가 막스 베버(1864~1920)는 칼 맑스, 에밀 뒤르켐 등과 함께 현대 사회학을 창시한 사상가 중의 하나로 꼽힌다. 역사, 경제, 정치, 법제도, 종교, 철학, 예술 등 거의 모든 인문-사회과학적 현상들을 자신의 인식지평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이 현상들의 사회학적 분석에 필요한 이론들과 개념장치를 구축해, 현대 사회학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주요 저작으로는 흔히 사회학적 개념구성의 ‘건축학’이라고 불리는 『경제와 사회』, 세계 대종교들을 다루는 『종교사회학 논문집』, 그리고 방법론적 구상을 담은 『과학론 논문집』등이 있다.
○ 불교로 읽는 古典 – 막스 베버의 ‘힌두교와 불교’
“불교적 구원, 개인에 국한” 삐뚤어진 편견의 시작
.서구의 편견 ‘오리엔탈리즘’ 어떻게 시작됐나
.‘근대 자본주의 기원’주제 동양 종교들 비교 연구
.부재적 잣대의‘허수아비 불교론’… 부정 문화론 귀결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는 현대 사회과학의 토대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되는 ‘지적 거대 산맥’이다. 그는 근대사회론, 사회과학방법론, 법사회학, 지배사회학, 경제사회학, 종교사회학, 심지어 음악사회학 등 인간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탁월한 저술을 남겼고 그 모든 것이 이른바 그 분야의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혹은 그렇기 때문에 한정된 지면에서 베버의 고전을 모두 소개하고 해석을 가하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해서, 여기에서는 베버의 종교사회학의 업적들 중에서도 특히 베버의 불교연구에 해당하는 〈힌두교와 불교〉의 불교 부분을 소개하고 약간의 평가를 덧붙이고자 한다. 그러나 그 의의가 가벼운 것은 결코 아니다. 이것만으로도 베버의 〈힌두교와 불교〉뿐만 아니라 베버의 동양사회론, 나아가 베버의 종교사회학 일반 및 문명사에 대한 맛보기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 베버가 왜 그리고 어떤 방법론에 의해 〈힌두교와 불교〉란 저술을 썼는지를 알아보는 것으로 시작하자. 두말할 나위도 없이 베버 사회학의 출발점이자 귀착점은 근대 서구의 합리화 과정의 산물인 근대 자본주의의 기원이라는 구체적인 역사적 문제를 해명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베버는 이를 해명하기 위해 단지 근대사회만을 고찰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는 고대사회와 중세 사회에 대해서도 폭넓은 관심을 가졌으며, 지리적으로는 전세계의 모든 문명권에로 관심의 폭을 확대해 나가면서 철저한 비교연구를 수행하였다.
〈힌두교와 불교〉는 그 보편사적 기획의 일부이며, 그리한 점에서 일종의 ‘허수아비’다.
베버는 〈힌두교와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와 도교〉에서, ‘왜 동양사회는 서구사회가 보여준 그런 방식으로 합리적인 생활양식의 창출의 발전 방향을 취하지 못했는가?’ 라고 묻고, 마르크스와 달리 그 해답을 동양의 종교와 연관시켜면서 풀어나갔다. 그 불교부분의 핵심 내용을 그 저작의 내재적 관점에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힌두교와 불교〉에서 베버는 약 1/3의 분량을 할애하여 불교 전반을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베버는 고대불교로부터 논의를 시작하는데, 그는 고대불교를 두 가지 차별성, 즉 정통파인 힌두교와의 차별성과 대승불교와의 차별성 속에서 논의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고대불교란 표현이 대승불교와의 차별성을 전제한 표현이며, “고대 불교는 아트만이나 ‘개체성’의 문제에 대해서도 거부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는 진술은 정통파인 힌두교와의 차별성을 전제한 표현이다. 그러나 베버는 구원론의 차원에서 보면 고대불교의 구원론은 대승불교의 구원론뿐만 아니라 힌두교의 그것과도 공통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
“이러한 구원의 상태(certitudo salutis) 즉, 구원받은 자가 현세에서 누려야할 평안의 향유야말로 인도의 종교가 추구하는 심리적 상태이다. 마치 지반무크티(jivanmukti-현세해탈)처럼, 인도의 성자들은 지금 여기에서조차(even here and now) ‘세상을 초탈한 삶의 축복’(the bliss of the world-detached life)을 향유하고자 할 것이다. 고대불교 특유의 최후의 목표달성도 바로 이것 그리고 바로 이 목표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야말로 고대불교를 평가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한마디로 ‘행복의 신정론’란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구원론이 절대신에 의한 구원 추구(현세거부)와는 달리 불교 특유의 ‘현세거부의 윤리’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구원을 방해하는 모든 환상의 근본원인은 소멸되지 않은 불멸의 단위로서의 영혼에 대한 믿음이다. 바로 이러한 불교적 입장 때문에, 이승뿐만 아니라 저승의 삶에 대한 믿음과 관련된 바램, 희망 그리고 모든 혹은 그 어떤 좋아하는 것 등에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일 뿐이다. 이러한 모든 것은 허망하기 짝이 없는 무에 집착하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에서 추구된 것은 영원한 삶을 지향하는 구원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되는 죽음의 평안함을 지향하는 구원이었다”.
베버에 따르면 이러한 불교의 구원론은 개신교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불교는 통상적인 구원 개념을 부정하였다. 의도성의 윤리에 기초한 죄의 개념은 그것이 힌두교에 부적절했던 것처럼 불교에서도 적절한 것이 결코 아니다. 죄가 구원을 가로막는 전부는 아니었다. 궁극적으로 구원을 방해하는 힘은 죄에 있지 않았다. ‘악’이 아니라 무상한 삶 그 자체가 구원의 장애물이었다”.
이러한 구원론으로 말미암아 불교에서 구원의 수단은 지혜일 수밖에 없다고 베버는 지적한다. “불교에서도 구원은 지혜를 통해서 확보된다. 이것이 세속이나 천국의 일 혹은 사물(things)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란 의미가 아님은 물론이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초기 불교는 바로 이 영역에 대한 지식욕에 대한 극도의 억제를 요구하고 있었다. 오히려 구원을 가져다주는 ‘지혜’는 고(苦)의 본질(nature), 기원(origin), 조건들(conditions), 그리고 그 파괴의 수단들(means of destroying suffering)이란 네 가지 위대한 진리(四聖諦)를 실천함으로써 비로소 얻게 되는 깨달음이다.(Max Weber, 1958:209)”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명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붓다는 아트만(atman)을 지적 구성물(intellectualistic constructions)로 보지 않고 주체의 자원론적 구성물(a voluntaristic construction)로 간주하였다. 거기에는 ‘에고(ego)’도 없고 ‘세계(world)’도 없으며, 오직 모든 종류의 감각들, 의지적 노력들, 그리고 표상들- 이들이 함께 모여 ‘실재(reality)’를 구성한다 – 등의 흐름만이 존재할 뿐이다. 경험되어지는 개개의 구성요소들도 ‘하나의 통일체’속으로 결합되어 질뿐이다. ‘개인성(individuality)’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개인성을 지탱하는 의지나 욕망은 무지와 동일시된다. 그러나 깨달음은 신의 은총의 선물이 아니라 끊임없는 명상의 댓가일 뿐이다”.
베버는 이러한 불교적 구원론이야말로 ‘이웃의 복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개인적 구원’으로 특징지워지며 그러한 점에서 거의 아무런 사회적 가치를 지니지 않는 것으로 평가한다. “사회적 책임의 감정은 불교적 구원의 교리와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또한 독특한 유형의 불교적 이타주의인 자비조차도 단지 삶의 수레바퀴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생존투쟁을 허망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감성이 통과하는(스쳐지나가는) 단계들 중의 하나일 뿐이고, 점진적인 지적 깨달음의 조짐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적극적인 형제애(active brother-liness)의 표현은 아니다. 합리적 행위의 세계와 아라한의 이상을 연결할 다리가 없다. 또한 거기에는 적극적인 의미의 ‘사회적’ 행위로 이어질 통로도 없다. 구원은 절대적으로 자력적인 개인의 개인적 수행이다. 아무도, 특히나 그 어떤 사회적 공동체도 그를 도와줄 수가 없다. 모든 신비주의의 반사회적 특성이 바로 여기에서 그 절정에 도달한다.”
게다가 베버는 이러한 구원론조차도 계층적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구원의 전망을 세속으로부터 초탈한 사람(출가자;승려)에게 국한시켰던 것은 인도의 전통과 일치한다. 그러나 불교의 경우 그 이유는 불교의 구원 교리의 독특한 본질에서 유래한 것이다. 영원히 윤회하는 개인성의 끝없는 투쟁으로부터 벗어나 구원을 얻어서 영원한 적정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불완전한 세계와 생존투쟁에 연결시키는 모든 ‘갈애’를 포기하는 길밖에 없었다. 따라서 매우 자연스럽게도 그러한 구원상태는 ‘머무를 곳 없는(無住)’의 신분집단, 즉 교리에 따르면 만행하는 제자들(후에 비구라 불렸던 사람들)에게만 허용되었다. 교리에 따르면 재가자집단은 은총의 상태를 열망하는 불제자들에게 보시를 지속할 목적으로만 존재하였다.”
베버에 따르면, 바로 이러한 계층적 한계성 때문에 평신도들은 주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고대불교가 평신도들의 종교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대승불교로 전형을 이룬 후에도 지속되었다. 그 증거로 베버는 ‘대승불교의 설립자’이라고 간주한 용수(Nagarjuna)와 ‘대승불교의 마지막 보살’이라고 칭한 세친(Vasubandhu)의 사례를 들고 있다. 베버는 용수가 수행과 지혜로 공(空)을 깨달은 자에게 주술적 힘이 있음을 인정하였다는 점을 들어, 그리고 그 후 400년 뒤 세친도 삼매의 경지에 도달하면 기적을 발휘할 수 있음을 인정하였다는 점을 들어, 대승불교조차도 주술성을 극복하지 못하였다고 주장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아시아적 종교성이 낳은 사회적 결과다. 베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한 지혜가 신비적인 특성을 떨쳐버리지 못한다는 사실은 두 가지 중요한 결과는 낳는다. 첫째, 신비적 초영지를 갖는 능력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는 허용되지 않은 카리스마이기 때문에, 구원귀족주의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다. 둘째, 비사회적이고 비정치적인 특성을 수반할 수 있다.”
그 결과, “이렇듯 초세속화된 구원론은 세속적인 실천 활동과 분리되어 버렸고, 그 빈 공간에 들어 선 지극히 반-합리적인 보편적 마술의 세계(most highly anti-rational world of universal magic)가 일상의 경제생활에 영향을 미쳤다. 그 세계로부터는 그 어떤 합리적인 세속내적 생활방식을 도출할 방법이 없었다. 문맹 대중들뿐만 아니라 교양 있는 아시아인들조차도 그러한 (마술적) 수단들을 활용하여 일상생활을 지배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마술의 정원으로부터는 그 어떤 합리적인 실천윤리나 생활방법도 도출될 수 없었다.”
아직까지도 불교에 대한 사회학적 저술이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베버의 〈힌두교와 불교〉는 불교에 대한 기념비적인 사회학적 저술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명백한 점은, 베버의 비교연구의 잣대, 곧 〈힌두교와 불교〉를 비판하는 잣대가 절대신(神)에 의한 구원을 전제하는 신교윤리 특유의 종교성에서 유래되었다는 점에서 ‘동양사회의 부재적 잣대’였고, 그 잣대로 해석된 베버의 동양사회론은 부정적인 결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서구적 의미의 합리화가 보편자로 설정되는 순간 동양사회가 취한 발전방향은 자동적으로 특수자로 전락하게 되고, 인간 자신의 내부에 비인격적인 초월자인 불성(佛性)이나 천성(天性)을 전제하고 그것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동양의 종교성은 서구적 의미의 합리성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 즉 신비주의적인 것으로 해석된다.
베버가 서구의 근대적 합리성을 저지한 결정적 요인으로 지목한 ‘주술의 정원’은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게다가 베버는 매우 특이한 조건들의 결합(highly particular historical constellations)에 의해 탄생한 서구 사회의 예외적인 발전 경로와 그 역사적 의의를 해명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불가피하게도 그의 비서구연구는 의식적으로 서구문화와 대비되는 요소들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힌두교와 불교〉야말로 부재적 잣대(신교윤리의 종교성이란 잣대)로 재구성된 ‘허수아비’ 불교론인 동시에 동양사회의 자본주의 불임(不姙)을 입증하는 동양사회론이라 할 수 있다. 그 결과, 그의 동양사회론은 결여된 것을 탐색하는 부정적 문화관으로 귀결되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_ 유승무 (중앙승가대 교수)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