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 칼럼
기독교 영성의 3단계

영성(Spirituality)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혼의 성품이 인성이고, 영의 성품이 영성이다. 우리는 예수 믿기 전에는 영성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인성으로 산다.
창세기는 4사건과 4사람의 이야기이다. 1-11장까지 창조, 타락, 홍수, 바벨탑. 12-50장까지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본문 12장은 하나님께서 하란에 살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으로 시작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다. 갈 장소를 알려준 것도 아니고 일단 떠나라는 것이다. 자신이 익숙한 것, 편안한 것, 친숙한 것에서 떠나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떠나라는 것이다. 하란을 떠나면 네가 복이 되어 복을 나누어 주는 자가 될 것이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현실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말씀에 순종하여 떠날 것인가? 떠남은 ‘비움’이고, 복은 ‘채움’이고, 복을 나눔은 ‘섬김’이다. 기독교 영성은 비움에서 채움으로, 채움에서 섬김으로 완성된다.
비움:
비움은 자기부인이다. 기독교의 영성은 비움에서 시작한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했다.(마16:24) 말씀의 배경은 이렇다. 예수 그리스께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다“라는 베드로의 고백을 듣고, 비로소 자신이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 후에 3일 만에 부활할 것이라는 말씀 하셨다. 이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주여 그리하지 마시옵소서 이일을 결코 주께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자, 예수님은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명하며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며 책망하셨다. 그 후에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사람의 뜻을 우선하는 베드로를 책망하신 것이다. 비움이란 ’자기부인‘이다. 육의 생각을 부인하고 영의 생각을 가져야 하고, 겉 사람을 벗고 속사람으로 입어야 하고, 옛사람을 떠나 새사람이 되어야 한다.
채움:
불교의 영성이 비움이라면 기독교는 영성은 채움이다. 내 것을 비우고 하나님의 것으로 채우는 것이다. 수요성경공부시간에 신약성경을 책별로 보고 있다. 각성경의 개요와 특징에 대하여 살펴보고, 내용은 집에서 읽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복음서에는 중복되는 내용이 많이 있지만 강조하는 점이 조금씩 다르다.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다. 무려 신약 성경의 1/4이나 되는 분량이다. 누가복음의 여러 특징 가운데 하나는 ‘성령’에 대하여 다른 어떤 복음서보다 많이 기록하였다. 마태복음 7장과 누가복음 11장에 유사한 말씀이 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11),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11:1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에 대하여 가르쳐 주시면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마태복음에는 ‘좋은 것’을 주시겠다고 했고, 누가복음은 ‘성령’을 주시겠다고 했다. 세상에는 좋은 것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 가장 좋은 것은 ‘성령’이다. 성령으로 채움이 ‘성령충만’이다. 성도는 오직 ‘거룩한 영’(Holy Spirit)이 충만할 때만이 거룩해 질 수 있다.
섬김:
비움과 채움의 완성은 섬김이다. 요한복음 13장은 최후의 만찬 중에 이루어졌던 세족식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식사 중에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기 시작했다. 주인이나 손님이 집에 오면 종들이 발을 씻기는 것인데, 예수님은 식사 중에 갑자기 일어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 예수님께서 갑자기 제자들의 발을 씻겼는가는 누가복음 22장 24절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식사 중 제자들 사이에서 ‘누가 큰 자인가’ 다툼이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다 씻기시고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13:13-15) 하나님은 각자에게 사명과 은사를 주셨다. 은사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은혜이다. 로마서 12장, 고전 12장, 엡 4장은 은사장이다. 은사를 주신 목적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4:12) 위함이다. 기독교 영성은 ‘자기 비움’에서 시작하여, ‘성령으로 채움’ 받아, ‘성도를 섬김’으로 완성된다.
참고
우리는 누가복음 10장의 선한 사마리아 비유를 잘 알고 있으나, 예수님께서 비유를 말씀하신 배경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어떡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질문했다. 예수님은 율법에는 뭐라고 쓰여 있는가? 돼 질문을 하셨다. 율법사는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답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면 된다고 하자, 멀쑥해진 율법사는 자기를 올게 보이려고 다시 질문을 한다. “내 이웃이 누구이니이까” 이때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오는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맞아 죽어가고 있었다. 제사장도 레위인도 피하여 지나갔으나 사마리아인이 그를 불쌍히 여겨 그를 치료하여 주고, 주막에까지 데리고 가서 주인에게 치료를 부탁하고 비용이 더 들면 나중에 돌아와서 주겠다고 했다. 예수님은 “이 셋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는가?” 질문을 하자, 율법사가 “자비를 베푼 자이다”라고 하자, 예수님은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하셨다.
새 언약을 맺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31:31-32)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책이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5:39).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영이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요15:26)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어진다. 구약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 신약은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책이다. 구약은 율법 중심으로 기록했고, 신약은 예수께서 율법을 성취하심을 기록했다. 율법은 거울과 같아서 우리의 죄를 지적하여 주지만,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구약의 율법은 613가지이다. 긍정과 부정으로 분리하면 ‘하라 248개’, ‘하지 말라 365개’이다. 하지 말라는 것을 하면 ‘적극적인 죄'(Commission), 하라는 것을 하지 않으면 ‘소극적인 죄'(Omission)이다. 소극적인 죄가 적극적인 죄는 똑같은 죄이다. 마태복음 25장에 마땅히 해야할 것을 하지 않아서 염소로 분리된 죄가 소극적인 죄이다. 또 알고 지은 죄와 모르고 지은 죄가 있다. 우리는 모르고 했으니까 괜찮을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모르고 지은 죄가 더 심각하다. 자신이 죄인임을 알면 회개할 기회가 있지만, 모르는 사람은 회개할 기회조차 없기 때문이다.
죄란 히브리 말로 ‘하타’로 ‘길에서 벗어나다’란 의미이고, 헬라어는 ‘하마르티아’로 ‘과녁에서 벗어나다’란 뜻이다. 인간은 죄를 져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 율법 613개 율법 중 한가지라도 어기면 율법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결코 인간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 받을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옛 언약인 율법이 아닌, 새 언약인 복음을 통하여 구속의 역사를 펼치셨다.
언약이란? (Testament, Covenant)
언약은 히브리어로 ‘카라트’이다. 단어의 의미는 희생 제물을 둘로 ‘자르다’란 뜻이다. 우리말로 ‘언약을 맺는다’지만 원래 의미는 ‘언약을 자른다’이다. 둘로 쪼개진 동물 사이로 지나감으로 어기는 자는 동물과 같이 죽임을 당할 것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구약과 신약의 언약은 ‘피’로 세워진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기 때문이다.(히9:22) 피란 죽음과 생명 그리고 정결을 의미하고 있다. 누군가의 대속적 죽음은 다른 이의 생명을 뜻한다.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제물의 머리에 안수를 하면 제물과 제물을 드리는 자가 동일시 된다. 제물이 피흘리며 죽을 때 제물을 드린 사람의 죄가 사해지는 것이다.
언약의 조건은 계약자와 피계약자의 쌍방이 있어야 하고, 진술 내용이 있어야 하고, 쌍방의 규정 또한 중요하다. 이런 쌍방의 동의 하에 작성된 계약은 법적으로 보장받고, 계약을 불성실하게 이해할 때는 처벌 조항도 제시된다. 하나님은 언약을 지켰지만, 백성들은 언약을 지키지 못했다. 구약에서는 백성이 언약을 어기면, 제사를 통해서 다시 언약을 맺고,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를 유지했다. 이것이 구약의 역사이다.
옛 언약 (구약, Old Testament)
옛 언약인 구약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돌판으로 받았다. 그리고 그것을 가르쳐서 지키도록 한 것이 옛 언약, 즉 율법이다. 십계명은 하나님이 돌판에 직접 새겨 주셨고, 그 외의 율법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모세가 완성했다. 이 율법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도덕적, 종교적인 의무가 기록되어 있다. 율법을 지키면 축복을 받지만, 그렇지 못하면 저주를 받게 된다. 율법 아래서 타락한 본성을 가진 이스라엘인은 율법을 지키는데 철저하게 실패하였고, 그들은 여전히 저주 아래 놓여 있었다. 레위기는 전반부는 어떻게 거룩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가에 대한 5가지 제사법에 대하여 설명하고, 후반부는 어떻게 하나님과 교제할 것인가에 대한 7가지 절기법에 대하여 설명했다.
율법이 없이는 행동과 생각에 어떤 잘못이 있는지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 하였느니라”(로마서 5:13) 율법은 우리가 얼마나 타락한 자임을 알게 하여, 구원 받아야 할 존재임을 깨닫게 한다.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초등학교 교사로 묘사하고 있다.(갈3:24-28) 히브리서 기자는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히8:7)라고 했다.
새 언약 (신약, New Testament)
새 언약인 신약은 돌판이 아닌 마음판에 새겼다. 하나님은 예레미아 선지자는 통해서 그의 백성과 새 언약을 맺으실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렘 31:31-34). 하나님은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언약을 맺었다.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직접 오셨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왜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셨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이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직접 제물이 되시고, 제사장이 되어서, 제단인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였다. 누구든지 이 십자가의 사건을 믿는 자에게 언약이 영원히 유효하게 되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53:5)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 2:24).
노르웨이에 가면 특별한 이름을 가진 교회가 있다. 그 교회 이름에는 사연이 있다. 교회를 짓던 도중 높은 곳에서 일을 하던 인부가 땅으로 떨어졌는데, 마침 그 밑에 있는 양위에 떨어져 양이 죽고 인부는 다치지 않았다. 이를 기념해서 ‘양의 교회’라고 이름을 지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유월절의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돌아가셨던 것이다. 우리의 삶이 세상의 유혹이나 죄로 물들어 있을지 몰라도, 담대히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은 이 언약에 얼룩진 예수님의 피 때문이다. ‘죄의 값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
예수께서는 옛 언약을 폐기하시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시기 위해서 오셨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고 가르치셨다.(마 5:17). 새 언약 아래에서는 성령께서 새 언약에 참여한 자의 마음에 들어와 함께 하심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삶을 살도록 돕고 이끌 뿐만 아니라 능력과 믿음을 갖게 하신다.
묵상
하나님은 인간과 제사로 언약을 맺었다.
언약은 맺는 것이 아니라 자른다는 의미다.
제사를 드릴 때 동물을 자르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구약의 언약은 제사장이 제물을 제단에 드림으로 이루어진다.
신약은 예수그리스도가 친히 제사장과 제물이 되시어
제단인 십자가에서 구속의 언약을 맺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언약을 맺은 자이다.
하나님은 언약공동체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겠다고 약속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준 기도문이 두 군데서 나온다. 마태복음 6장과 누가복음 11장이다. 누가복음 11장에 제자 중 한 사람이 “요한이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같이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요청하자, 예수님은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셨다. 1절부터 4절의 주기도문이 기도의 내용과 순서라면, 5절부터 13절은 기도자의 태도에 대해 말씀하셨다. “한밤중에 친구가 와서 떡 3덩이를 달라고 할 때 잠자리에 들어 귀찮지만 강청할 때 주는 것 같이 “구하라, 찾고, 두드리라, 그러면 구하는 자가 얻을 것이고, 찾는 자가 찾을 것이고, 두드리는 자에게 문이 열릴 것이다. 아비가 자식이 생선을 달라면 뱀을 줄자가 어디 있겠느냐, 알을 달라면 전갈을 줄자가 어디 있겠느냐, 너희가 악하면서 자식에게 좋은 것으로 주는데 하늘에 계시 하나님께서 왜 성령을 너희에게 주시지 않겠느냐?”하셨다.
다니엘서는 성문서이자 예언서이다
역사란 객관적 사건과 주관적 사관의 만남이다. 성경의 역사서는 이스라엘의 역사 (歷史) 속에서 역사 (役事) 하는 하나님의 역사 (歷史)를 기록한 책이다. 신명기 사관은 선지자적 입장에서 과거의 잘못을 지적했고 역대기 사관은 제사장적 입장에서 미래의 희망을 제시하였다. 역사서가 지나간 사건을 기록한 것이라면, 예언서는 다가올 사건을 기록한 책이다. 특별히 에스겔서와 다니엘서가 구약의 묵시록인 까닭은 환상과 상징 등을 통하여 종말까지 예언했기 때문이다
다니엘(Daniel)은 심판을 뜻하는 ‘단'(Dan)과 하나님을 뜻하는 ‘엘'(El)의 합성어이다. 미국과 유럽 통계에서 언제나 10위안에 들 만큼 서구인들이 좋아하는 이름이다. 다니엘서는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6장은 역사적 인물 다니엘에 관한 기록이며, 7~12장은 그의 환상에 관한 증언과 해설이다. 상징적인 비유와 환상적인 문체로 박해세력의 종말을 전하고 있다. 육신 부활과 사후세계 암시도 구약에선 처음으로 등장한다. 1장과 8-12장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고, 2장부터 7장까지는 아람어로 기록되었다. 히브리 성경에는 다니엘서는 성문서에 속해있고, 기독교 성경에는 예언서에 속해있다. 1장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유다 왕 여호야김이 위에 있은 지 3년에(BC 605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것을 에워쌌더니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 그의 손에 붙이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의 묘에 이르러 그 신의 보고에 두었더라”(1:1-2) 이후에도 느브갓네살은 2차례 더 침입했다. 2차 침입은 여호야긴 왕 때 BC 597년, 3차는 시드기야 왕 때인 BC 586년이다. 3차 침입 때 남 유다는 멸망한다. 바벨론은 반란을 도모할 수 있는 왕족과 귀족 등 사회 지도층과 자녀들을 포로로 데리고 갔다. 다니엘은 1차 침입 때 잡혀와서, 고레스 왕 원년(BC 537)까지 70년간 활동했다.(1:21)
뜻을 정한 다니엘 (단 1:8)
바벨론 제국의 정책은 포로를 교육시켰고, 이름을 바꾸고, 바벨론 음식을 먹게 했다. 다니엘의 이름도 ‘벨드사살’이라고 바꾸었다. 바벨론의 신인 벨의 그의 생명을 보호할 것이란 뜻이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도 조선의 민족정신을 말살시키려고 ‘창씨개명’을 단행했다. 35년간의 통치 기간을 보면 1919년 삼일 운동을 기점으로 ‘무단통치기’에서 ‘문화통치기’로 바뀌었고, 1931년 만주 사변으로 만주를 정복하면서 ‘민족말살통치기’를 시작했다. 1940년 실시된 창씨개명은 일본과 조선은 하나라는 ‘내선일체’의 명목으로 실시된 것이다. 바벨론 왕궁에서는 왕궁의 음식을 먹어야만 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고’ 왕의 진미를 거절하고 자기를 지켜 더럽히지 않고자 한다. 이는 레위기의 음식법과 기타 우상숭배를 거절하고 신앙 정조를 지키려는 결단이었다. 다니엘은 환관장에게 10일간만 유보해 달라고 부탁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1:8-9) 약속한 10일이 지나고 다니엘의 얼굴이 왕의 진미를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아름답고 윤택하였다. 그 후로 다니엘은 왕의 음식대신 채식만을 먹게 되었다.
채식주의자들은 자기식대로 이해해서 채식주의가 성서적인 가르침이라고 가르친다. 물론 이말은 그런 뜻은 아니다. 채식주의자를 영어로 ‘Vegetarian’이라고 한다. 호주에 온 한국인 관광객이 호주음식을 먹기 위해서 호주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했다. 웨이트레스가 물었다. “Are you Vegetarian?” 한국인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No, I am Korean”
다니엘과 3친구 (단 3:18)
느브갓네살 왕은 금신상을 세우고 모두가 그곳에 절하라는 칙령을 내렸다. 고가 60큐빗, 광이 6큐빗이다. 1 큐빗은 약 45센치이다. 그러니 약 높이가 27M, 넓이기 2.7M이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 앞에 절하지 않았다. 왕은 대노하며 만약 금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지겠다고 경고했다. 이때 3친구는 왕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3:16-18) 에스더가 왕 앞에 나갈 때 “내가 죽으면 죽으리라”(에스더 4:16)한 일사각오의 고백이다.
북한에도 만수대에 김일성 동상과 김정일 동상의 높이가 23M나 된다. 평양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곳에서 참배를 해야한다고 한다. 2020년 성시화 대회 주 강사로 임현수 목사가 온다. 임목사는 토론토 큰빛 교회를 섬기며, 1995년부터 2015년까지 20년간 북한을 도와주었다. 김정일이 집권할 때는 ‘무사증’까지 내어주면서 북한 구호활동을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김정은이 승계하고, 2015년 1월 상의할 일이 있으니 북한으로 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갔다가 체포되어, 국가 전복혐의로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북한을 비판하는 유튜브의 설교가 문제가 된 것이다. 그들이 신으로 여기는 김일성과 김정일을 숭배하는 것은 우상숭배라고 했다. 캐나다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극적으로 억류 31개월 만인 2017년 8월에 석방되었다. 이런 말이 있다. 공산주의를 책으로 배우면 공산주의자가 되고, 몸으로 배우면 자유민주주의자가 된다.
기도하는 다니엘 (단 6:10)
바벨론을 멸망시킨 다리우스 대왕은 다니엘을 높여서 제국의 제2인자로 세우고자 했으나, 다른 신하들이 크게 시기했다. 욕심이 많은 사람과 시기심이 많은 사람이 있다. 욕심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지 관계 없이 자기만 잘되면 되는 것이지만, 시기는 타인의 불행이 곧 자기의 행복이라는 착각이다. 시기심이 많은 사람이 욕심 많은 사람보다 질이 더 좋지 않다. 시기심이 많은 두 사람이 있었다. 한동안 그들이 친하게 지내는 것을 기득하게 여긴 천사가 그들에게 소원을 들어 주겠다고 했다. 조건은 먼저 말한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고, 말하지 않은 사람은 두배를 주겠다고 했다. 서로 말하지 않고 미루었다. 드디어 시기심이 더 많은 사람이 입을 열었다. “내 눈 하나를 실명시켜 주세요” 인간 죄성에는 뿌리 깊은 시기심이 있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자기보다 잘되는 사람에게 박수치는 것은 쉽지가 않다.
신하들은 왕에게 청하여 앞으로 30일간 어느 신에게도 기도하지 못하게 하고, 오직 왕에게만 구하도록 명하고 법령을 어기면 사자굴에 던질 것이라는 법령을 반포하였다. 이법은 하루 세 번 기도하는 다니엘을 겨냥한 것이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6:10)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전에 행하던 대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전에 행하던 대로’라는 말은 그의 기도 생활이 평소의 습관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를 시기하는 자들의 올무에 걸려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졌다. 다니엘을 총애하는 왕은 안절부절못하며 하룻밤을 지새웠다. 새벽 일찍 왕이 사자굴에 가서 다니엘을 부를 때, 다니엘은 놀랍게도 살아 있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던 것이다. 다리우스 대왕은 너무 기뻐하며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끌어 올리고 대신 모함하였던 신하들을 사자굴 속에 처넣었다. 사자는 그들의 몸이 굴에 떨어지기도 전에 뼈 채로 삼켜버렸다. 악인은 자기가 만든 올무에 걸려 죽게 된다. 마치 모르드게를 죽이려던 하만처럼.
상황은 다르지만 다니엘과 세 친구는 하나님 중심으로 뜻을 정하고 행동했다. 뜻을 정하여 음식을 먹지 않고, 뜻을 정하여 신상에게 절을 하지 않고, 뜻을 정하여 하나님께 기도했다. 자기 중심으로 뜻을 정하는 사람은 이기주의자이고, 상황을 중심으로 뜻을 정하는 사람은 기회주의자이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뜻을 정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다.
뜻을 정한 다니엘 (Daniel)
역사란 객관적 사건과 주관적 사관의 만남이다. 성경의 역사서는 이스라엘의 역사 (歷史) 속에서 역사 (役事) 하는 하나님의 역사 (歷史)를 기록한 책이다. 역사서가 지나간 사건을 기록한 것이라면, 예언서는 다가올 사건을 기록한 책이다. 다니엘서가 구약의 묵시록인 까닭은 환상과 상징 등을 통하여 종말까지 예언했기 때문이다. 다니엘서는 히브리 성경에는 성문서에 속해있고, 기독교 성경에는 예언서에 속해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1차 침입 때 잡혀와서, 고레스 왕 원년까지 70년간 활동했다.
뜻을 정한 다니엘 (단1:8)
바벨론은 다니엘의 이름을 ‘벨드사살’로 바꾸고, 왕궁의 음식을 먹게 하였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도 조선의 민족정신을 말살시키려고 ‘창씨개명’을 단행했다. 35년간의 통치 기간을 보면 1919년 삼일운동을 기점으로 ‘무단통치기’에서 ‘문화통치기’로 바뀌었고, 1931년 만주를 정복하면서 ‘민족말살통치기’가 시작되었다. 1940년 실시된 일본과 조선은 하나라는 ‘내선일체’의 명목으로 이름을 바꾸었던 것이다. 다니엘은 바벨론 왕궁에서는 왕궁의 음식을 먹어야만 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를 거절하고, 자기를 지켜 더럽히지 않고자 환관장에게 10일간만 유보해 달라고 부탁했다. 약속한 10일이 지나고 채식을 먹은 다니엘의 얼굴이 왕의 진미를 먹은 다른 소년들보다 더 아름답고 윤택하였다. 그 후 다니엘은 왕의 음식대신 채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채식주의자는 영어로 ‘Vegetarian’이다. 호주에 관광 온 한국인이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했다. 웨이트리스가 물었다. “Are you Vegetarian?” 그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No, I am Korean”
다니엘과 3친구 (단 3:18)
느브갓네살 왕은 금신상을 세우고 모두가 그곳에 절하라는 칙령을 내렸다. 고가 60큐빗, 광이 6큐빗이다. 1 큐빗은 약 45센치이다. 높이가 27M, 넓이기 2.7M이다.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 앞에 절하지 않았다. 왕은 대노하며 만약 금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지겠다고 경고했다. 이때 3친구는 왕에게 대답했다.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3:16-18) 북한의 만수대에 김일성 동상과 김정일 동상의 높이가 23M나 된다. 평양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곳에서 가서 참배를 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말이 있다. 공산주의를 책으로 배우면 공산주의자가 되고, 몸으로 배우면 자유민주주의자가 된다.
기도하는 다니엘 (단 6:10)
바벨론을 멸망시킨 다리우스 대왕은 다니엘을 제국의 제2인자로 세우고자 했으나, 다른 신하들이 크게 시기했다. 신하들은 왕에게 앞으로 30일간 어느 신에게도 기도하지 못하게 하고, 오직 왕에게만 구하도록 명하고, 만약 어길시 사자굴에 던진다는 법령을 반포하도록 청하였다. 이법은 하루 세 번 하나님께 기도하는 다니엘을 겨냥한 것이었다. 다니엘은 그들의 올무에 걸려 사자굴에 던져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다. 새벽에 다리우스 대왕은 다니엘이 살아 있음을 알고 너무 기뻐하며 사자굴에서 끌어 올리고, 대신 모함하였던 신하들을 사자굴 속에 처넣었다. 사자는 그들의 몸이 굴에 떨어지기도 전에 뼈 채로 삼켜버렸다. 악인은 자기가 만든 올무에 걸려 죽게 된다. 마치 모르드게를 죽이려던 하만처럼. 다니엘과 세 친구는 뜻을 정하여 음식을 먹지 않고, 신상에게 절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자기중심으로 뜻을 정하는 사람은 이기주의자이고, 상황을 중심으로 뜻을 정하는 사람은 기회주의자이며,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뜻을 정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다.





사진 = 김환기 사관
김환기 사관 (구세군라이드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