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 36
(평생 초보엄마인 하람맘의 일상 속 에피소드)
만두
어느 날 냉장고를 열어보니 여기저기 먹다 남은 쪼가리 김치들이 너무 많았다. 깍두기도 조금, 열무김치도 조금, 양배추를 한통 사다 두고 아깝다고 담근 양배추 김치까지 안 그래도 작은 냉장고가 답답해 보여 오랜만에 만두를 하기로 결심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설날에나 만들던, 그것도 재료 준비는 엄마가 다 해주시고 앉아서 빚기만 하던 만두를 오히려 호주에 와서 자주 만들어 먹는다. 한국마트에 가면 여러 종류의 만두들을 팔기는 하지만 그래도 집에서 바로 만들어 뜨끈뜨끈하게 먹는 만두만 할까. 어쨌든 이렇게 음식을 할 때 나에게는 항상 꼭 지키는 몇 가지 기본 수칙이 있다.
첫째로 [힘들 때 까지 하지 않는 다] 이다. 가끔 요리를 하면서 하다가 질려 본인은 막상 먹지도 못하고 남들에게만 좋은 일을 시키시는 분이 있다. 물론 다른 사람의 기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정신은 정말 존경하지만 나는 함께 앉아 먹으며 즐기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맛있게 먹지 못한다면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인가.
둘째로 (있는 재료를 최대한 활용 한다)이다. 요리에는 꼭 들어가야 하는 필수재료가 있겠지만 더불어 집에 남아 있는 식재료를 최대한 사용할 수 있다면 썩어서 낭비되는 식비를 절약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만두를 만들 때는 가장 중요한 두부와 고기만 있으면 나머지는 냉장고를 뒤져 나오는 대로 사용 한다. 배추김치가 없을 때는 열무김치나 깍두기를 다져 사용하기도 하고 양이 적으면 무장아찌나 무말랭이를 넣을 때도 있다. 그래서 이제까지 내가 만두에 넣었던 재료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돼지고기, 소고기, 두부, 김치, 간장 고추지, 무장아찌, 무말랭이, 새우 살, 당면, 양파, 대파, 마늘, 부추, 건 표고버섯, 호박 등 이다. 손이 커서 한번 먹을 양 만큼만 한다고 준비해도 만두속 만 김치 통으로 하나 나오는 건 기본 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 만드는 건 아니고 힘들지 않을 만큼만 만두를 빚고 나머지는 그냥 냉동실에 잘 얼려둔다. 그러다 다시 먹고 싶어지면 해동해서 만드는데 물론 얼렸다 쓰는 것은 물기도 많이 생기고 맛은 좀 덜하겠지만 그다지 큰 차이는 없다. 그렇게 하고도 남았다면 김치찌개에도 한 숟가락 넣고 볶음밥에도 넣고 달걀을 풀어 전도 만들고 한다. 아낌없이 여기저기에 사용하는 것이다. 요리에도 지켜야 할 룰. 즉 법도가 있겠지만 적어도 다른 요리가 아닌 만두에서 만큼은 자유롭고 싶은 게 나다.
문득 행복의 기준이 뭘까 궁금해 졌다. 그래서 정의 해 보았다. 일단 가족들이 모두 건강하고 돈도 잘 벌어다 주면서 성실하고 자상한 남편 혹은 무지하게 이쁘면서 마음도 착하고 요리도 잘하는 성격 좋은 아내, 거기에 자녀들은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순종까지 잘하는 모범생 일 때. 이 정도 일까. 좋은 집에 멋진 차, 든든한 직장까지 더 필요할까. 하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정말 행복할까. 보기만 해도 근사하고 부러운 누군가의 집에 도둑이 들어 큰 사고가 났다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문을 열어 놔도 안심하고 사는 누군가의 허름한 집이 나을 때도 있을 것 이다. 자녀가 겉으로는 착실하고 얌전해 아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데 마음의 병이 심하게 들었다면 차라리 늘 사고뭉치에 지지리도 말을 안 듣지만 소리라도 시원하게 질러 대는 그 녀석이 더 낫지 않겠는 가. 결국 행복이란 본인의 의지에 달린 문제 이지 상황이 만드는 것은 아닌 것 이다. 내가 호주에 살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모든 주어진 상황을 그냥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 이었다. 내가 힘들여 얻어진 것도 있고 그냥 주어진 것도 있고 노력했지만 원하지 않는 상황도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현재의 일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배울 것은 남겨두고 실수는 기억하여 두 번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 했다. 무엇보다 좋은 일, 나쁜 일, 슬픈 일, 기쁜 일 이런 모든 일들이 내 삶을 윤택하게 해 준 것은 확실하다. 마치 여러 가지 재료가 한꺼번에 섞여 둥글 납작 만두가 되듯이 말이다. 그런 사람은 다음번에 튀겨도, 쪄도, 구워도 그 어떤 상황이 와도 항상 행복하고 맛있는 만두 맛을 낸다. 냉동실에 뭐가 그리도 많은지 정리해 보니 아깝다고 넣어둔 고기 덩어리며 생선 등인데 너무 오래 냉동해서 인지 수분이 다 빠져 건어물 같이 변해 버렸다. 말끔하게 치우고 새로 만든 만두를 가득 채워 넣는다. 만두가 있는 것만으로도 갑자기 천군만마를 얻은 것 마냥 든든해졌다. 만두만 있어도 이리 행복한 걸 나는 잠깐 잊었나 보다. 요즘 마음이 복잡하고 힘든 분들이 있다면 맛도 좋으면서 정신 건강에도 이로운 만두 만들기를 강력 추천한다. 쌀쌀한 날씨에 마음까지 얼어붙는 요즘 가족들과 또는 주변의 친구들과 옹기종기 둘러 앉아 만두들 빚으면 먹어서 행복하고 찌는 열기에 몸까지 따스해 지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박은정 사모(시드니동산교회, 양화영 전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