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역사이론
마르크스, 토인비, 카, 슐레징거 / 유영박 해제 / 푸른사상 / 2001.12.31
– 마르크스, 토인비, 카, 슐레징거의 역사이해 종합서
맑스, 토인비, 카, 슐레징거의 글을 원문으로 접할 수 있는 책이다. 그에 대한 해석과 설명을 통해 원문강독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다.
○ 목차

K. 마르크스·Die deutsche Ideologie…9
해제…11
포이에르 바하-유물론적 관찰과 관념론적 관찰의 대립…16
원문…115
A. J. 토인비·A Study of History…193
해제…195
여러 문명의 비교 연구…200
원문…245
E. H. 카·What is History…327
해제…329
역사가와 사실…332
원문…373
A. Jr. 슐레징거·The Atlantic Monthly…403
해제…405
최근의 사실을 기록하는 문제에 관하여…407
원문…429
○ 저자소개 : 카를 마르크스 (Karl Heinrich Marx), 아널드 J. 토인비,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t Ted Carr)
– 저자 : 카를 마르크스 (Karl Heinrich Marx)
카를 마르크스 (Karl Heinrich Marx)는 1818년 5월 5일 독일 트리어에서 태어났다. 김나지움을 마치고 1835년에 본대학에 진학해 법학을 전공했다. 아버지의 압박으로 베를린대학으로 전학해 철학을 공부했다. 이곳에서 헤겔 철학을 연구하며 청년헤겔파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진보적 성향이 덜한 예나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1842년 ‘라인신문’에서 일하기 시작해 편집장이 되었다. 마르크스는 사설을 통해 프로이센 정부와 언론의 검열을 매섭게 비난했다. 그 결과 신문은 이내 폐간됐다. 1843년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정치경제학과 프랑스혁명의 역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때 ‘경제학·철학 초고’ ‘헤겔의 법철학 비판’ 등의 원고를 썼다.
파리에서 프로이센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쓰다가 프랑스에서 추방되어 벨기에 브뤼셀로 이주했다. 이 무렵 ‘철학의 빈곤’ ‘자유무역에 대하여’의 원고를 썼다. 1847년 파리에 거주하는 독일 출신 노동자를 중심으로 생겨난 조직 ‘정의 동맹’의 요청을 받고 강령에 해당되는 글을 작성했다. 바로 ‘공산주의 선언’이다. 프랑스를 시작으로 유럽 전역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파리로 잠시 피신했다가 쾰른으로 돌아갔다. ‘신라인신문’으로 이름을 바꾸고 신문을 재발행하기 시작했다. ‘임금노동과 자본’은 노동자를 일깨우기 위한 글로, 이 신문에 다섯 편으로 나뉘어 실렸다. 정부 탄압을 받던 ‘신라인신문’은 이내 기소당해 마르크스는 추방 명령을 받고 영국 런던으로 망명했다. 이곳에서 어려운 생계를 꾸리며 경제학을 연구했다.
1851년 유럽 특파원으로서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의 사정을 분석하는 기사와 사설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이후 몇 년간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정치경제학 비판’ 등을 집필했다. 49세 되던 해 ‘정치경제학 비평’이라는 부제를 달고 ‘자본론’이 출간됐다. 프랑스 파리에서 최초의 사회주의 자치정부인 파리 코뮌이 수립됐으나, 정부군 진압과 학살로 무너졌다. 마르크스는 파리 코뮌의 기록과 의의를 적은 ‘프랑스 내전’을 썼다. 국제노동자연맹을 이끌며 아나키스트파와 내분을 겪기도 하고, 독일사회주의 노동자당의 강령을 비판하는 등 사회적 활동을 이어 갔다. 1883년 3월, 엥겔스가 잠시 자리를 비운 새 조용히 사망했다.
마르크스의 생애는 그의 사상이기도 하다. 그의 생애만큼 이론과 실천의 변증법적 통일을 증명해 주는 사례도 없을 것이다. 그는 평생 자신이 처해 있는 시대적 상황을 치밀하게 연구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시대적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한 실천에 문자 그대로 혼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에게 이론은 실천을 위한 도구였고 실천은 이론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장(場)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처음부터 과학적 인식이 완벽한 형태로 갖추어져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가 살았던 역사적 상황과 함께 그의 실천 방식이 끊임없이 변화했듯이 그의 사상 또한 부단한 변화를 겪으면서 발전 과정을 거쳤다. 마르크스의 사상적 발전 과정 자체가 마르크스 유물론의 산증인인 셈이다.

* 카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년 5월 5일-1883년 3월 14일)는 독일의 철학자, 경제학자, 역사학자, 사회학자, 정치이론가, 언론인, 공산주의 혁명가다.
트리어 출신으로대학에서 법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1843년 예니 폰 베스트팔렌과 결혼했다. 정치성 다분한 저술활동으로 인해 마르크스는 무국적자 신세로 수십년 간 영국 런던에서 처자식과 함께 망명생활을 했다. 런던에서 마르크스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합작, 대영박물관 열람실에서 연구하며 주요 저작을 남겼다. 그의 대표작은 1848년 출간된 소책자 ‘공산당 선언’과 3권짜리 ‘자본론’이다. 마르크스의 정치사상과 철학사상은 그 이후의 사상사, 경제사, 정치사에 거대한 영향을 남겼으며, 마르크스주의라는 일대 학파를 이루어 그 이름은 보통명사, 형용사화되었다.
마르크스의 사회경제정치이론을 집합적으로 마르크스주의라 한다.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인간 사회가 계급투쟁을 통해 진보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계급투쟁은 지배계급인 부르주아와 피지배계급인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투쟁으로써 나타난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를 가르는 기준은 생산수단을 통제하는지 여부다. 생산수단은 부르주아에 의해 통제되며, 프롤레타리아는 부르주아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임노동자로 부려먹힌다. 소위 사적유물론이라는 비판이론에 의해 마르크스는 과거의 사회경제체제들이 그러했듯 자본주의 체제 역시 내재된 결함에 의해 내부적 긴장이 발생할 것이며 그 긴장에 의해 자멸하고 사회주의 체제라는 새로운 체제로 대체될 것이라 예측했다. 자본주의 체제는 이런 불안정성과 위기취약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계급적대가 발생하고, 노동자들이 계급의식을 가지게 된다. 의식화된 노동자들은 정치권력을 쟁취하고, 마침내 계급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체로 구성된 공산주의 사회를 이룩할 것이라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의 골자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예측이 현실화되기를 앉아 기다리지 않고, 노동계급이 혁명적 행동으로써 자본주의를 거꾸러뜨리는 사회경제적 해방을 추구해야 한다고 선동하는 저술·출판작업에 평생 매진했다.
마르크스를 긍정하는 입장에서나 부정하는 입장에서나 모두 마르크스가 인류사상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 중 하나임을 전제한다. 그의 경제학 저술은 오늘날의 노동 및 노동과 자본의 관계에 대한 이해 대부분의 기초를 놓았다. 셀 수 없이 많은 학자, 노동조합, 예술가, 정당이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았고, 마르크스의 사상을 각자 재독해, 변형, 변용했다. 일반적으로 마르크스는 근대 사회학의 뼈대를 세운 인물 중 하나로 여겨진다.
– 저자 : 아널드 J. 토인비

토인비의 백부는 경제학자 아널드 토인비(Arnold Toynbee)이다. 그와 구별하기 위해 이름에 미들네임 ‘J’가 들어갔다. 윈체스터 칼리지를 거쳐 1911년옥스퍼드 대학교의 베일리얼 칼리지(Balliol College)를 졸업하였다. 아테네의 고고학원의 연구생으로 그리스에 갔다 온 후, 모교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그리스, 로마의 고대사 연구와 수업을 맡았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인하여, ‘우리들은 역사 속에 있다.’라는 실감에 눈을 뜬다. 1918년런던 대학교 교수로 임명되었고, 동년 파리 강화 회의 대표 단원으로 활약했다. 문명의 흥망성쇠를 분석한 ‘역사의 연구’ 12권을 저술했다. 특히 이 책에서 많은 문화유형을 고구(考究)하여 세계사를 포괄적으로 다룬 독자적인 문명사관(文明史觀)을 제시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 책에서 유명한 ‘도전과 응전’의 논리가 집약된 저술로 토인비는 책 서두에서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서구 문명의 몰락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한 상황에서 과거 그리스, 오스만 제국 등 역사의 전례를 연구하다 문명의 생성, 발전, 쇠퇴의 원리를 깨닫게 됐다며 그 결실로 ‘도전과 응전’이란 개념을 창안하게 됐다고 고백하였다. 문명의 성장과 쇠퇴, 고등 문명과 미개 문명, 부모 문명과 자식 문명, 세계 국가, 문명의 시공간적 접촉, 서구 문명의 전망, 역사의 자유 등 토인비만의 지성적 통찰을 통하여 문명 비평가로도 활약하였다.
1929년에는 태평양문제 조사위원으로 일본에 방문했다.
이후 왕립 국제 문제 연구소 이사, 외무성 조사부 이사등을 역임하며 ‘그리스 역사사상’, ‘평화회의 후의 세계’ 등을 집필하였다. 더구나 서유럽 중심의 역사관이 아닌, 이슬람교, 불교에 더하여 특수한 존재로써 일본에까지 주목하여 각 문명국의 발전을 그린 ‘역사의 연구'(원작 1934년~1961년)을 27년동안 저술하였던 것으로 지금까지 세계인에게 기억되고 있는 이유이다.
– 저자 : E. H. 카
에드워드 핼릿 “테드” 카(영어: Edward Hallett Ted Carr, CBE, 1892년 6월 28일~1982년 11월 3일)는 영국의 정치학자·역사가이다.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였으며 1916년부터 20년간 외교관으로 활약하였다. 1936년 웨일스 대학교 교수로서 국제 정치학을 강의하다가 1947년에 물러났다. 1941년부터 1946년까지는 ‘타임스’지 부편집인을 지냈다. 그 후 국제 연합의 세계 인권 선언의 기초 위원회 위원장으로 활약하였다. 저서로 ’20년의 위기’, ‘역사란 무엇인가’, ‘평화의 조건’, ‘러시아 혁명사’ 등이 있다. 또, 에드워드 카는 혁명적인 역사 진보의 개념을 확립하였다. 그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 간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묘사한 바 있다. 이 말은 과거와 현재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뜻이다. 1920년 CBE훈장을 받았다.
그의 저작 ’20년간의 위기’는 양차대전 사이의 1919~ 39년 사이 전쟁의 원인을 분석한 글이다. 이 책을 통해 그는 가진자들의 기득권을 위한 허상에 불과한 이상주의의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실제로 정치를 더 혼란스럽게 함으로써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고 피력하고 있다. 그는 또한 현실주의의 지나친 비관성과 권력정치 정당화에 대해 비판하는데 그로인해 그는 양비론자 또는 절충론자로 불린다. 그는 이론의 변증법적 통합을 주장했지만 엄연히 현실주의의 기본 전제를 인정하는 입장을 보임으로 현실주의자라 불린다.
– 저자 : A. 슐레징거
Arthur Meier Schlesinger Jr. (Arthur Bancroft Schlesinger; 1917 년 10 월 15 일 ~ 2007 년 2 월 28 일)는 미국의 역사가, 사회적 비평가 및 공공 지식인이었다. 영향력있는 역사가로 그의 연구중 상당수는 20세기 미국 자유주의의 역사를 탐구했다. 특히 그의 연구는 해리 에스 트루먼, 프랭클린 D. 루즈 벨트, 존 F. 케네디, 로버트 F. 케네디와 같은 리더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1952 년과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그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자 인 Adlai Stevenson II의 주요 연설가이자 고문이었다. 슐레징거는 1961년부터 1963년까지 케네디 대통령에게 ‘특별 보좌관’을 역임했다.
– 해제 : 유영박
지은 책으로는 ‘조선왕조시대의 전국 각 지역 특산물’ ‘대학생활을 떻게 할 것인가’ ‘설리고찰’ 등이 있다.
○ 저자들의 역사이해
– 마르크스의 유물사관
유물사관(唯物史觀)은 마르크스·엥겔스가 주장한 유물론적인 역사해석의 체계이다. 사적 유물론(史的唯物論), 역사 유물론이라고도 한다.
역사 유물론과 과학적 공산주의에 따르면 역사는 1)원시적 공산주의, 2)고대 노예제, 3)중세 봉건제, 4)근대 자본주의를 거쳐 궁극적으로 인간 사회가 5)공산주의에 이르게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특이한 점은 다른 사관들은 주로 역사의 해석과정에서 인물, 사건 등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한데 반해 역사 유물론에서는 생산 수단과 생산량이 역사의 해석 과정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본다.
생산 수단을 소유한 자와 소유하지 못한자로 계급이 발생한다고 보며 역사를 끊임없는 투쟁의 역사로 바라보는 갈등론적 관점을 가진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 사회 또는 사유재산제를 생각할 때에도 그것은 인간사회에서 떼어낼 수 없는 제도가 아니라 어느 시기에 역사적으로 성립하고 변화하고 발전되어 온 것으로서 언젠가는 소멸한다고 보았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견해를 인간사회의 역사에 입각해서 고찰한 것이 ‘사적 유물론’이다. 그리고 이 이론은 실증적 연구와 상호관계를 맺으면서, 인류의 사회가 아직 계급 차별이나 빈부 차별이 없었던 원시공동체 시기로부터 빈부의 차, 사유재산제가 조금씩 생긴 고대노예제로 나아가 여기에 비로소 계급사회가 성립한 것, 또한 봉건제 사회가 생기고 이를 이어서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실증적·이론적으로 분명히 규명하려고 하였다. 그뿐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를 계급적인 대립이나 차별이 없는 사회주의 사회로 전환시키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힘이며, 특히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 및 그 전위인 정당의 힘에 의해 새로운 사회가 출현할 것을 예언하였다.
역사해석에 있어서 물질적 생산력을 그 인과적 요인 중 가장 중요시하는 역사관이며, 세계정신(Welt geist)의 자기 전개과정이 역사라고 주장한 헤겔류의 관념사관과 반대된다. 즉 마르크스·엥겔스에 의하면 역사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은 인간의 의식이나 관념이 아니라 물질적 생산양식이란 것이다.
생산력의 발전단계는 그 시대마다 노동도구의 발달 단계로 표현되기 때문에 유물사관에는 생산기술 발달에 중점을 두는 태도가 있다. 그러나 유물사관의 중심은 인간이 생산에 참가할 때는 사회적이 되며 따라서 일정한 생산관계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여기서 생산관계란 것은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단계에 대응하는 사회관계인데, 그 관계는 주로 그 사회의 주된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와 소유하지 못한 자 사이의 계급관계로 표현된다. 이러한 생산관계가 변하면 전 사회구성체로 변화한다는 점에서 생산력과 생산관계는 토대이며 그 위에 법률적·정치적 상부구조가 생긴다는 것이다. 유물사관의 토대결정론은 경제사회(토대)와 국가(이데올로기)의 구분법 성립이 가능한,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사회를 모체로 해서 구성한 이론이다. 따라서 당 관료나 국가권력이 경제를 지배하는 공산사회 같은 곳에는 경제적 토대가 모든 것을 결정하기보다는 그 반대임을 알 수 있다.
마르크스·엥겔스는 생산관계의 변화에 따라 원시 공산제 사회, 고대 노예제 사회, 중세 봉건제 사회, 근대 자본주의 사회, 다시 사회주의사회, 공산주의사회의 차례로 발전한다고 주장하며, 노예제에서 자본제까지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인정되고 따라서 계급대립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인류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규정했다. 이러한 역사관에는 아우구스티누스 이래의 변신론적(辯神論的) 역사 해석의 전통이 세속화되어 계승되어 있고 따라서 계몽사관의 전제가 내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독창적인 부분은 매우 근소하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 유물론은 1950년대에 들어서 공산당 내부의 비판을 피하고 공산당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써 대폭 수정되었고 논리적으로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는 모습을 보여 현재는 거의 이용되지 않는 이론이다.
유물사관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을 비롯해서 계급적 모순을 역사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하는 변증법적 역사해석을 시도해 왔으나 1958년 이후 공산권의 모순 논쟁에서는 모순이 역사발전의 원동력이 아니요, 모순의 지양이나 통일 단결이 그 원동력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중·소 분쟁이나 체제내의 반목·비판의 여지를 주지 않으려는 방향으로 유물사관을 크게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51년 스탈린의 논문 ‘마르크스 주의에서의 언어학’ 이래 언어·문법·수학 등은 토대도 상부구조도 아니며, 따라서 계급적인 것도 아니라고 수정하게 됨으로써 유물사관의 토대·상부구조의 구분법을 스스로 부인하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었다.
– 아놀드의 문명사관 ‘도전과 응전’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인하여, ‘우리들은 역사 속에 있다.’라는 실감에 눈을 뜬다. 1918년런던 대학교 교수로 임명되었고, 동년 파리 강화 회의 대표 단원으로 활약했다. 문명의 흥망성쇠를 분석한 ‘역사의 연구’ 12권을 저술했다. 특히 이 책에서 많은 문화유형을 고구(考究)하여 세계사를 포괄적으로 다룬 독자적인 문명사관(文明史觀)을 제시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 책에서 유명한 ‘도전과 응전’의 논리가 집약된 저술로 토인비는 책 서두에서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서구 문명의 몰락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한 상황에서 과거 그리스, 오스만 제국 등 역사의 전례를 연구하다 문명의 생성, 발전, 쇠퇴의 원리를 깨닫게 됐다며 그 결실로 ‘도전과 응전’이란 개념을 창안하게 됐다고 고백하였다. 문명의 성장과 쇠퇴, 고등 문명과 미개 문명, 부모 문명과 자식 문명, 세계 국가, 문명의 시공간적 접촉, 서구 문명의 전망, 역사의 자유 등 토인비만의 지성적 통찰을 통하여 문명 비평가로도 활약하였다.
– E. H. 카의 ‘역사란 현재와 과거 간의 끊임없는 대화’
카는 혁명적인 역사 진보의 개념을 확립하였다. 그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 간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묘사한 바 있다. 이 말은 과거와 현재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뜻이다.
E. H. 카는 외교관, 언론인으로서 쌓았던 다채로운 실제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과거와 미래’, ‘사실과 해석’, ‘객관과 주관’,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결합이라는 독특한 역사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카는 20세기 사회가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이라는 재난과 혼란 속에서 역사상 유래를 찾기 어려운 변화를 겪은 것에 대하여 새로운 사회를 가져온 요인과 조건들을 파악하고 나아가서 새로운 질서에 대한 방향 감각을 제시하고자 하는 현실적 관심을 갖게 되었다.
카는 20세기적 질서의 ‘새로운 사회’로 향한 변화의 시점을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잡고 있다. 또한 1917년 러시아 혁명을 ’20세기 최대의 사건’으로 파악하고 있다. 카는 1917년 혁명을 정치적 행동에 의하여 조직된 경제적 통제 수단을 통해서 사회 정의를 확립하려던 역사상 최초의 혁명이라고 정의하였다. 카는 혁명 자체보다 혁명으로부터 발생한 정치.사회.경제적 질서의 역사에 관심을 보였다.
카는 고대 그리스 로마가 철학의 시대, 중세가 신학의 시대, 18세기가 과학의 시대였던 것처럼 20세기는 역사학의 시대라고 보고 있다. 20세기 사회의 질서는 프랑스 혁명, 산업혁명, 러시아혁명 등에서 기원하는 만큼 20세기 사회의 문제와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접근’방식이 불가결하며 가장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카가 본 역사학에서는 사실만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의 개인적인 주관도 또한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물론 역사가들이 사실의 측면을 무시해서는 역사학이 성립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는 ‘역사적 사실’이란 생선가게 좌판 위에 얹혀진 생선이 아니라 광활하고 접근할 수조차 없는 대양을 마음껏 헤엄쳐 달리는 물고기와 같다고 표현한다. 역사가가 물고기를 건져 올리는 것은 때론 우연에 의하기도 하지만어디서 고기를 낚느냐, 그리고 어떤 도구를 사용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개의 역사가들이 자기가 원하는 사실들만을 건져 올린다는 것이다.
카의 역사관은 진보의 사관이다. 카는 역사를 ‘부단한 진보과정’으로 보았다. 그가 생각한 진보에는 일정한 시작이나 끝이 없다. 처음과 끝에 구애될 필요가 없는 하나의 과정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직선적인 진보관은 거부한다. 역사는 더 나은 방향을 향해 한 방향으로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정체되고 역행될 수도 있으며 중단될 수도 있다. 이러한 카의 진보관은 18, 19세기 진보주의 사상가들이 믿었던 ‘인간의 완성’이나 ‘지상의 낙원’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역사학은 궁극적으로 과거를 밝힘으로써 현재를 이해하고 그 현재를 출발점으로 해서 미래를 조망하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또한 카는 역사를 상대적인 것으로 보았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 즉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 역시 사회적 존재로서 역사를 인식할 수밖에 없으므로 역사가의 모든 관점은 사회적으로 제약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역사의 객관성은 역사가의 올바른 방향 감각에 의해 확보될 수 있다. 객관적 역사가라는 의미는 그가 사실을 올바르게 수집한다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사실을 선택하거나 올바른 의미기준을 적용한다는 뜻이다.
카의 역사관의 핵심은 역사란 역사가의 해석에, 해석은 역사가 자신이 생존하고 있는 사회와 시대를 반영하는 역사가의 가치에 의존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압축된다. 따라서 카에 의하면 역사가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역사가가 가지고 있는 가치의 진실(가치의 객관성)에 관한 것이다.
– A. 슐레징거 ‘현대역사학은 미래의 역사학자들을 위한 자료확보’ 강조
1967년 3월 표제(表題)의 논문으로 발표했던 “On the Writing of Contemporary History”에는 사적 인물(史的人物)의 개인생활과 역사적 진실, 그리고 언론자유, 특히 역사적 진실을 위한 공개시기(公開時期)의 한계성(限界性)에 관하여 크게 주목해야 할 내용들이 많이 언급되어 있다. 슐레징거는 현대역사학은 미래의 역사학자들을 위한 자료확보를 위해서 엄연한 필연성을 확보하는 일이라고 강조하였다.
○ 출판사 서평
이미 우리가 친숙히 알고 있는 세계의 역사가들의 명저 가운데 역사이론의 기초가 될 만한 글들을 역자가 선별해 번역·해제했다. 역자가 선별한 작품들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마르크스(Karl Marx)와 엥겔스(Friedrich Engels)에 의해서 간행된 이 Die deutsche Ideologie는 1924년에 유물론적 역사관(唯物論的歷史觀), 즉 사적 유물론(史的唯物論)의 원상(原像)을 기술한 세계의 고전적인 명저(名著)이다. 이 중 [포이에르 바하-유물론적 관찰과 관념론적 관찰의 대립]을 통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처음 ‘포이에르 바하(Feuer bachs)’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한다.
헤겔(Hegel) 철학의 정신과 그리스도교에 있어서의 신(神)과 같은 추상물(抽象物)을 주체(主體)로 믿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리하여 포이에르 바하의 비역사성(非歷史性)과 비사회성(非社會性)에 대하여 비판하면서 사회의 역사가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명료하게 밝히고자 하였다.
잉글랜드가 낳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역사학자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의 주저(主著)인 A Study of History는 일반 독자들이 손쉽게 접근하기 어렵고 그 내용이 또한 난해한 부분이 많아서 사실상 머뭇거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역자는 이 A Study of History의 원전(原典) 제1권의 ‘introduction’ 가운데 “The Comparative Study of Civilization” 부분을 이 역서(譯書)에 수록했다. A Study of History를 통해 토인비는 인류역사를 전체(全體)로서 놓고 바라보려고 하는 다시 말하면 전세계적 시각(全世界的視覺)으로 보려고 시도하였다.
카(Edward Hallett Carr)의 What is History는 앵글랜드 BBC방송을 통해서 전세계에 널리 알려진 유명한 역사강연이었다. 그는 What is History의 제1장 “The History and Facts”을 통해 ‘역사학자는 자기 해석에 맞추어 사실(事實, facts)을 형성하고 자기의 사실에 맞춰 해석을 형성하는 끊임없는 과정에 종사하고 있다. 이 두 가지 가운데 어느 한쪽만을 우위(優位)에 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케네디 대통령 재임시에 특보(特補)의 중책을 맞은 하버드대학의 역사학 교수로 있던 슐레징거(Arthur Schlesinger Jr.)가 Atlantic지에 1967년 3월 표제(表題)의 논문으로 발표했던 “On the Writing of Contemporary History”을 번역했다. 이 글에는 사적 인물(史的人物)의 개인생활과 역사적 진실, 그리고 언론자유, 특히 역사적 진실을 위한 공개시기(公開時期)의 한계성(限界性)에 관하여 크게 주목해야 할 내용들이 많이 언급되어 있다. 슐레징거는 현대역사학은 미래의 역사학자들을 위한 자료확보를 위해서 엄연한 필연성을 확보하는 일이라고 강조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