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 39
(평생 초보엄마인 하람맘의 일상 속 에피소드)
여행2
나에게는 아침 식사에 대한 이상한 로망이 있다. 처음 신혼여행을(쓰고 나니 신혼여행은 처음인 게 당연하지 않은가) 갔을 때, 숙소에서 먹었던 아침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디나 그렇겠지만 잠이 덜 깬 부스스한 모습으로 내려가도 신경 쓰이지 않는 호텔조식. 외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던 그 시절. 나는 다른 나라 사람들과 같은 장소에서 아침을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왠지 설레고 로맨틱하다고 느끼는 철부지였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황금빛 머리칼에 푸른 눈을 가진 사람들이 한가롭게 신문을 보며 커피와 크루와상으로 간단한 아침을 즐길 때 나는 한국에선 익숙하지 않은 서양식 메뉴에 우아하게 먹기로 한 초심을 그만 잃어버리고 말았다. 삶은 달걀부터 우유와 야채를 섞어 부드럽게 만든 오믈렛, 5가지 이상의 소세지와 베이컨, 구운 감자와 옥수수 다양한 샐러드류, 생전 처음 보는 열대 과일들과 쥬스 그리고 절대 아침에 빠지지 않은 고소한 빵과 쨈, 버터. 다 먹지도 못하면서 수북하게 접시에 담아오면 살짝 주변의 시선이 의식되어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바삭하게 구운 베이컨을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그런 나의 부끄러움은 용기로 변화되어 몇 접시 더 비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는 것 이다. 이 경험이 나의 아침에 대한 환상, 즉 로망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 캔버라 여행 때 내가 묵은 숙소의 아침은 정말 너무나 실망스러워 좌절감마저 들게 했다. 오로지 흰 우유에 씨리얼, 오렌지 반쪽 이라니 달걀도 소세지도 빵도 없는 허무한 메뉴구성. 원래 그런 건데 나의 기대가 너무 컸는지 어쨌든 우리는 황급히 아침을 취소하고 숙소를 빠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런 우리 마음처럼 차가운 공기에 비가 섞인 캔버라의 아침은 스산하기 까지 했다.
허기진 배를 달래줄 식당을 찾아 또다시 배회했지만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는 바람에 가까운 카페로 그냥 들어갔다. 풍성하고 따뜻한 아침식사에 대한 꿈이 무산되어 이미 나는 지쳐버린 상태였다. 아무 의욕이 없어 대충보고 메뉴를 시켰더니 역시나 시럽에 한참 절인듯 한 토스트가 한쪽 나왔다. 입에 넣으니 그 단 맛에 소름이 확 돋는다. 결국 쓴 커피를 한잔 마시고 나서야 우리 가족의 아침은 마감되었다.
배고픔과 추위에 당장이라도 집으로 가고픈 생각이 간절했으나 우리는 그래도 캔버라의 전쟁 박물관(Australian War Memorial)은 꼭 들려야 하는데 동의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호주자체에서 운영하는 것이기에 입장료는 내지 않고 들어갈 수 있다. 전쟁 박물관은 호주의 다른 곳에도 있지만 그래도 캔버라가 역시 최대 규모이다. 전쟁 박물관이다 보니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둡고 무거운데 그래서 인지 들어가자마자 하람이는 나가자고 떼를 쓴다. 그래도 간신히 달래고는 서둘러 돌아보는 중에 한국 전쟁관이(Korean War) 눈에 띄었다. 호주에서 한국전쟁에 대한 자료를 보니 왠지 뭉클하면서 가슴이 아파왔다. 일반적으로 전쟁이란 인종, 민족, 국가, 정치단체 등과 같은 각종 집단 사이에 발생하는 무력 투쟁을 말한다. 그로인해 지금도 원치 않는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 속에 노출된 수많은 사람들. 이유도 모르고 죽어가는 아이들 제발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해 주시고 돌봐 주시길 기도하며 전쟁 박물관을 나왔다.
그렇게 짧고도 긴 1박 2일의 캔버라 여행을 마치며 느낀 점이 참 많다. 누군가 우리에게 한번 여행을 가기 시작하면 자꾸 생각나고 그래서 또 가게 된다고 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내내 우리는 역시 집이 제일 편하고 집 밥이 제일 맛있으며 돌아다니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니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한동안은 집을 벗어나지 않기로 결심 했다. 하람이도 집에 돌아오자마자 하는 말이 ”엄마! 미역국에 밥 말아 주세요!“ 이다. 그래서 나는 짐도 내리기 전에 미역국을 끓이고 꽁치 캔을 따서 김치를 잔뜩 쏟아 붓고는 대충 섞어 볶았다. 그렇게 밥을 먹고 나서야 우리는 만족감에 배를 톡톡 두드렸다.
그래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 삶이 여행이지 않은가. 하루하루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낙심도 하고 그러다 좋은 경치를 보는 것 마냥 맑은 날도 오는 것 이고 도전했지만 실패하기도 하면서. 남들은 여행으로라도 한 번 쯤 오고 싶어 하는 호주에 나는 이렇게 살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여행이 뭐가 있으랴. 이것만으로도 족하다.
박은정 사모(시드니동산교회, 양화영 전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