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 칼럼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이하여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호국은 ‘나라를 지킨다’, 보훈은 ‘공훈에 보답 한다’는 뜻이다. 6월은 나라의 존립과 유지를 위해 공헌하거나 희생한 국가 유공자들을 예우하여 국민의 애국정신을 함양하는 달이다. 6월 6일 현충일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전몰용사들의 충렬을 기리는 날이고, 6월 25일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날이다.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잊혀진 전쟁(The Forgotten War)
미국에서는 한국전쟁을 2차 대전의 대승과 월남전의 대패 사이에 있었던 ‘잊혀진 전쟁'(The Forgotten War)라고 한다. 3년간의 치열한 전투 속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도 아무런 결론 없이 1953년 7월 27일 휴전을 했다. 휴전이란 잠시 전쟁을 쉬는 상태이다. 지금도 한국은 총성 없는 전쟁 중이다.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이 아닌 ‘잊어서는 안 될 전쟁’이다. 유엔군사령부가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전 세계에서 한국전쟁 관련 자료를 모으고 있다. 사진과 그림, 이야기들을 모아 한국전을 ‘잊혀진 전쟁’에서 ‘기억되는 전쟁’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한국전쟁 70주년 (70th Anniversary of Korean War)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동시에 남북이 갈라진 이후, 남한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북한은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세웠다. 나라는 세웠지만 두 나라 정상은 “통일”을꿈꾸고 있었다. 드디어 김일성은 스탈린의 재가를 얻고, 1950년 6월 25일 주일 새벽 4시에 삼팔선을 넘어 무력침공을 감행했다. 전쟁이 발발하고 3일 만에 서울은 함락되고, 낙동강 지역까지 파죽지세로 밀려내려 갔다. 유엔군은 낙동강을 마지노선으로 삼고, 전열을 정비한 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시작으로 대대적인 반격을 개시하여,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10월 10일 평양에 이어 압록강 부근까지 이르렀으나, 10월 말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1951년 1.4 후퇴로 서울을 빼앗긴다. 같은 해 3월, 서울을 재 수복하지만, 전쟁은 3.8선을 중심으로 일진일퇴하는 “고지전”으로 바뀌었다. “휴전” 이야기가 오갔지만 특별한 진전은 없었다. 1953년 3월 5일 스탈린이 죽자 급물살을 타고, 드디어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休戰協定)이 이루어진다.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협정에 동의하지 않았다. 휴전협정서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사인은 없다. 우리는 “통일”을 원했지, “휴전”을 원치 않았다. 아직도 한반도는 “휴전(休戰) 중”이다.
호주군 (Australian Army)
‘한국전쟁은’ 호주가 ‘정규군’으로 참전한 첫 번째 전쟁이다. 호주는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4일 후인 1950년 6월 29일, 두 번째로 한국전 참전을 결정하고, 신속하게 해군 함정과 공군, 육군 병력을 파병한 나라이다. 파병규모는 경항공모함 HMAS, 시드니함을 비롯하여 해군 함정 13척, 육군 3개 대대, 공군 1개 전투비행대대 등 전쟁기간 동안 17,000여명이 참전하여 가평, 마령산, 사리원 전투 수많은 전장에서 용맹을 떨쳤다. 참전기간 동안 1,216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그 중 340명이 전사했다.
가평전투 (Kapyeong Battle)
호주 3대대와 관련된 유명한 ‘가평전투’가 있다. 1951년 4월 23-24일 일전일퇴의 긴박한 상황 속에서 가평에서 미군, 캐나다군, 호주군, 한국군은 연합하여 중공군의 남침을 지연시켰다. 가평전투는 전열을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던 아주 중요한 전투였다. 전쟁이 끝나고 트루먼 대통령은 3대대에 부대 표창을 한다. 3대대는 보병이지만 공수마크와 에메랄드빛의 훈장을 자랑스럽게 달고 있다. 얼마 전 3대대는 시드니에서 타운즈빌로 옮겼다. 3대대는 4월 24일을 ‘가평전투기념의 날’로 지킨다. 2010년 4월 24일 부대장의 초청을 받아 3대대를 방문했다. 부대 입구의 큰길 이름은 ‘가평로’이다. 가평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가평에서 가져온 3.8선(Parallel)이 새겨진 큰 화강암을 만난다. 그날 화강암을 중심으로 사면에 세워진 태극기, 성조기, 호주기, 캐나다기가 힘차게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사열장교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국가가 21개국이라 했다. 나는 16개국으로 배웠다. 사열 후 질문을 하니, 16개국은 전투부대를 파병했고, 5개국은 의료를 지원했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린 중령 (Lt. Colonel Charlie Green)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하고 북진을 시작했다. ‘박천전투’에서 호주 3대대의 대대장인 그린중령은 적이 쏜 포탄의 유탄에 맞아 1950년 11월 1일 운명했다. 그린 중령의 묘비는 부산 유엔군 묘지에 있다. 1951년 미국에서 은성훈장을 수여 받았고, 2019년 7월 27일, 대한민국 정부는 ‘6.25전쟁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에서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했다. 미망인 그린 여사는 ‘그대 이름은 아직도 찰리’(The Name’s Still Charlie) 그린 중령의 남은 이야기를 자서전 형식으로 발간하고, 계속해서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 호주정부는 그녀의 공로를 인정하여 ‘OAM’(Medal of Order of Australia) 훈장을 수여했다. 그녀의 손에는 언제나 책이 떠나지 않았다. 2019년 11월 27일, 그녀는 멜번 병원에서 평화롭게 하늘나라로 떠났다.(1923. 9.21-2019 11.27)
시드니 보훈행사 (Sydney Veterans Event)
매년 이때가 되면 시드니 총영사관 주체로 6.25 참전용사를 위한 보훈행사를 연다.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행사가 열리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영원히 감사합니다'(Korea is forever grateful)란 주제로 열린다. 행사의 시작은 참전 용사들이 잠들어 있는 부산의 ‘유엔군 기념 공원’을 향한 묵념으로 시작하여, ‘잊지 맙시다'(Lest we forget)란 말로 막을 내린다. 매년 참석하는 인원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휠체어를 타고 참석하는 분들도 있고, 자녀들이 대신 참석하는 경우도 있다.
역사를 통해서 배우지 못한 민족은 역사의 어리석은 전철을 다시 밟는다고 했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인류의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를 통하여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데 있다”라고 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한지 70년이 되었다.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배웠으며, 통일을 위해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새로운 시대를 향하여 (에스라 1:1-4)
코로나 사태를 직면하면서 두 가지 사건이 떠올랐다. 첫째는 예루살렘에 안주하던 그리스도인이 박해로 인하여 흩어져 복음을 전파한 사건과 둘째는 바벨론의 침략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자, 흩어진 유대인에 의해 회당이 시작된 사건이다.
1. 성전시대 (A era of Temple)
이스라엘 민족은 성전 중심의 신앙 공동체였다. 성전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뜻하는 법궤가 있다. 성전은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이었다. 이스라엘 남자들은 어느 곳에 살든지 매년 유월절과 맥추절 그리고 초막절의 3대 절기 때는 반드시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지켜야 한다. 예수께서 십자가 달리실 때는 유월절이었고, 사도행전 2장 성령이 강림할 때는 맥추절(오순절)이었다. 히브리어를 못하는 타지에서 온 유대인을 위한 방언의 역사가 있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성막(Tabernacle)을 지었다. 성막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이동식 성소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 드리는 곳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 주는 곳이라고 해서 ‘회막’이라도 했다.(출27:21) 성막 시대가 지나고 이스라엘에는 두 번의 성전이 세워진다. 제 1성전인 솔로몬 성전은 이후 바벨론에 의해 파괴되고, 제 2성전은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와 건설된 스룹바벨 성전이다. 제 2성전은 솔로몬 성전에 비하여 규모가 훨씬 작았다. 헤롯은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성전을 증축하였으나, AD 70년에 ‘서쪽 벽’(Western Wall)만 남고 모두 파괴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통곡의 벽’이 ‘서쪽 벽’이다. 현재 성전 자리에는 이슬람교 모스크인 ‘바위 돔’(Dome of Rock)이 있다. 유대교 근본주의자들은 옛 성전 자리에 세워진 ‘바위 돔’을 허물고 ‘제3성전’을 지어야 메시아가 도래한다고 믿고 있다.
2. 회당시대 (A era of Synagogue)
회당은 성전이 아니다. 회당(Synagogue)이란 ‘함께 모이다’라는 뜻으로 전통적으로 기도하는 집, 집회하는 집, 학습하는 집 등의 3가지 기능이 있다. 유대인의 회당제도는 바벨론 포로기간 중에 생겼다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바벨론에 의해 성전은 파괴되었고, 유대민족은 각처로 흩어져서 예루살렘에서 제사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유대인들은 성전을 대신해 회당에서 모여 율법을 강론하고 시편을 낭독했다. 유대인 성인 남자 10명이 되면 회당을 지을 수 있었다. 창세기 18장 아브라함의 의인 10명이란 마을을 대표하는 최소한의 단위를 의미한다. 사도 바울도 회당을 중심으로 전도를 했다. 이 무렵에 유대교의 틀을 갖추게 되었고, 포로 후에는 성전과 함께 회당제도가 각 동내마다 보편화 되었다.
종교 간의 갈등이 심각할 때 유대교, 개신교, 이슬람교의 지도자들이 시드니에서 모였다. ‘종교 간의 대화’란 주제로 본다이에 있는 임마누엘 회당에서 열렸다. 나는 모임 전에 예배에 참석했다. 일반적으로 기독교 신자는 정적인 예배를 드리는데, 유대인은 동적인 예배를 드렸다. 예배실 정면에는 토라가 있다. 랍비는 회중을 향하기 전에 먼저 토라를 향하여 기도를 한다. 예배 인도자가 먼저 예배자가 되지 않고는 올바른 예배가 될 수 없음을 상기시켰다. 예배 중 랍비는 찬양하며 두루마리 토라를 들고 회중 안으로 가니 회중은 토라를 만지며 찬양하며 예배를 드렸다.
성지순례 때는 ‘예루살렘 회당’ 갔었고, 호주 사관학생들과 함께 시드니의 회당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예루살렘 회당에서는 찬양대가 회중을 향하지 않고 토라를 향하여 찬양을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찬양은 사람 앞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임을 일깨워주었다. 보통 예배실 옆에는 도서실이 있다. 유대인의 도서실은 시끄럽다. 혼자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두 세 사람이 소리를 내어 논쟁하며 공부한다. 유대인의 교육헌장은 신명기 6:4-9절의 ‘쉐마'(Shema)이다. 쉐마는 ‘들으라’는 뜻으로 교육의 목적인 하나님 사랑, 교육의 내용인 성경 그리고 교육의 방법인 강론에 대한 기록이다. ‘강론’이란 히브리어로 ‘하브루타’이다. ‘하브루타’는 토론식 교육을 말한다.
3. 성전과 회당의 공존시대 (A era of Temple and Synagogue)
고레스 칙령으로 70년간의 바벨론 유수는 끝내고 유대인들은 3차에 걸쳐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 1차 지도자인 스룹바벨은 무너진 성전을 건축하고, 2차 지도자인 에스라는 무너진 사람들의 마음을 수축하고, 3차 지도자인 느헤미아는 무너진 성벽이 재건하였다. 이스라엘이 제2성전을 건축한 이후에도 회당의 전통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성전이 제사 중심이라면 회당은 말씀 중심이다. 제사와 말씀이 조화롭게 공존하면서 신앙생활을 하였다.
우리는 코로나 사태로 예배당 없는 예배를 3개월간 드렸다. 3월 말에 흩어졌다가 오늘 예배당으로 돌아왔다. 함께 모여 예배 드림에 감사하지만,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코로나 사태 이전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내일을 향해 가야한다. 안주하던 예루살렘 교회의 박해가 복음을 세계로 전파하는 기회가 되고, 바벨론의 성전의 파괴가 회당을 세워지는 계기가 되었던 것처럼. 이번 사태로 우리는 다시 한 번 옷깃을 여미고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신앙의 본질은 끝까지 지키고, 비 본질은 과감하게 버리며, 세상의 변화는 열린 마음으로 유연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세상이 급변하고 격동하는데, 교회는 낡은 전통만 고수하고 있으면 되겠는가?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에 집착하고 있으면 되겠는가? 위기(Crisis)란 ‘위험과 기회’의 약자이다. 코로나 사태의 위기가 우리 모두에게 위험이 아닌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요압의 보리밭 사건
삼하 11장, 다윗에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후 나단의 지적으로 회개하고 용서는 받지만, 그의 삶은 가시밭을 걷는 것과 같았다. 밧세바의 첫 아들은 죽고, 큰 아들 암논이 이복누이 다말을 취하자(삼하12장), 기회를 기다리던 다말의 친 오빠인 압살롬은 2년의 침묵을 깨고 암논을 죽이고 도망간다(삼하 13장). 다윗이 압살롬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요압은 드고아의 여인을 통해 다윗을 설득하여 압살롬을 돌아오게 한다. 하지만 다윗은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 분개한 압살롬은 요압의 보리밭에 불을 지른다. 요압은 추궁하러 압살롬에게 가지만, 압살롬은 화를 내며 아버지를 만나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압살롬은 2년 만에 요압의 중재 하에 다윗과 대면을 하게 된다.(14장) 그 후 압살롬은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도적질하여 반역의 씨를 뿌린다. 4년 후 압살롬은 헤브론에서 다윗에게 반기를 들고 예루살렘으로 진격한다.(15장) 잠시 예루살렘을 정복하지만, 전열을 정비한 다윗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재탈환하자, 압살롬은 도주하는 중 상수리나무에 걸려 요압에 의하여 최후를 맞는다.(삼하18)
2020년 6월 15일 북한은 남한 돈으로 건축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일방적으로 폭파했다.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외교부에 소속되어 있지 않고 남북이 공동으로 상주하는 공관이었으며, 남측 관리 구역과 전체적 건물 유지관리는 통일부 산하에 소속되어 있었다. 연락사무소 대표부는 미수교국이 양국 간의 외교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설치되는 사무소이다. 남북공동 사무소의 폭파 소식을 접하면서, 요압의 보리밭 사건이 오버랩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혹시 압살롬이 요압의 보리밭을 불사른 이유와 북한이 남북공동사무소를 폭파한 이유는 같지 않을까. 그렇다면 압살롬은 누구이고, 요압은 누구이며, 다윗은 누구인가?
사진 = 김환기 사관
김환기 사관 (구세군라이드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