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콜롬바(St, Columba)의 생애와 영성(7)
성 콜롬바 영성의 특징(4) – 생태적 영성
콜롬바 영성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4세기에서 21세기까지 시대적인 인물이나, 펠라기우스를 통해서 ‘창조의 선함에 귀 기울였고, 에리우게나를 통해서 ‘창조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카마이클이 수집한 기도를 통해서 ‘만유안에서 하나님께 드린 음성’들을 접할 수 있었으며, 조지 맥도날드를 통해서 콜롬바 영성의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고, 조지멕래오드의 아이오나 공동체를 통해서 콜롬바 영성의 실제로 행함을 살펴보았다.
콜롬바 영성의 근간이 되는 초기 켈트 그리스도인들의 첫 번째 특성은 물리적 환경에 대한 그들의 사랑과 경외이다. 다른 원시인들과 같이 그들의 이교도 선조들 또한 지구를 모든 풍요의 어머니로 생각한다. 그들 영적지도자인 드루이드교 성직자(Druid)와 여자 성직자(Druidess, 기독교로 개종하기 전의 갈리아)는 브리튼 지방에 있던 켈트족의 성직자를 절대적으로 신봉한다.
친환경 영성 혹은 생태적 영성의 특성은 알려지지 않은 곳을 여행하는 것이다. 그들의 삶이 바다와 파도의 리듬에 대한 자유스러움과 밀접해있다. 많은 이들이 여행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켈트 수도원들은 분리된 장소를 가지고 있었는데, 켈트의 성인들은 콜롬반과 니니안이 행했던 것처럼 안식과 명상을 위해 동굴을 택했다. 다른 특징은 시간에 대한 그들의 이해와 관련이 있는데, 시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라고 보는 인식으로서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사이의 뚜렷한 구별이 없었기 때문에 예를 들면, 브리킷드와 패트릭이 절친한 친구였다는 것인데(브리킷드는 패트릭이 죽을 때 6살임)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거룩한 성인들은 연대기적인 역사의 흐름속에서는 서로 다른 시간에 살았을지라도 본성적으로 생태적인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 이다.
필립뉴엘의 ‘켈트영성 이야기’에서 역사적 개요를 보여준 것은 켈트영성과 요한 전통의 신비주의적 발전이 휘트비 총회에서 거부당함으로 인하여 어떻게 교회가 수세기 동안에 약화 되었는가하는 것이다. 교회가 모든 생명가운데 본질적 선이 남아 있다고 확신하는 펠라기우스와, 악이 우리의 선함을 파괴 하였다고 주장하는 아우구스티누스 모두를 끌어안았더라면 교회의 생태적영성은 더 풍부해졌을 것이다.
심지어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라도 현존하는 빛을 깨달은 켈트선교는 복음의 유일성에 대해 명확히 주장하는 로마선교에 보완적인 것이었다. 이 두 가지 방법은 상호 배타적이 아니었다. 필립 뉴엘은 “켈트영성을 몰아내면서 교회는 더욱 빈약해졌다. 그래서 수세기 동안 성직자들에 의해 켈트영성은 영국 주변부의 켈트인들 사이에 남아 있었다. 만약 켈트영성을 거절하는 대신에 배웠더라면, 생태문제를 포함하여 교회와 세계가 현대 세계의 도전들을 직면하는데 더 잘 준비 되었을 것이다.”
에드워드 셀너에 의하면, 우리의 창조성, 삶을 위한 열정은 하나님의 생명의 표현들이 될 수 있다는 확신에 의해 영성의 정신은 더 확대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이러한 믿음들이 더욱 온 마음으로 세상을 가리킬 수 있다면, 하나님의 심장박동 소리가 삶 전체에서, 고유한 우리 삶의 중심에서 들려 질수 있음을 우리는 더욱 풍부하게 재발견하게 될 것이다. 최근에는 환경신학이 등장 하였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여 함께 살지 않으면 지구에 위기가 온다. 켈트신학은 처음부터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사는 삶을 가르쳤다. 켈트교회의 친환경적인 기도문의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평화의 기도)
산을 타고 흐르는 시냇물의 고요한 평화가 당신에게
키 큰 전나무의 강인한 평화가 당신에게
따뜻한 태양의 사랑넘치는 평화가 당신에게
주 예수님의 구원하시는 평화가 당신에게
임하소서. 아멘
(은자의 기도)
오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예적부터 계신 영원하신 임금님,
내집으로 삼을 만한 광야의 숨겨진 초막을 바라나이다.
그 옆에는 작고 푸른빛의 실개천이 흐르고,
성령의 은총으로 죄씻음을 얻으려 맑은 연못이 있는 그런 곳을 허락 하소서.
온갖 울음소리를 내는 새들을 먹이며, 새들이 둥지를 틀고 몸을 숨기도록 사면이 나무로 빽빽한 숲을 주소서.
양지바른 남향, 그땅을 걸쳐 시냇믈이 흐르고 각양 식물들이 자라기 적합한 기름진 땅을 주소서. 아멘
(성삼위께)
성삼위께서 제위에
성삼위께서 제 아래에서
여기 바로 위에
성삼위께서 이 땅에
성삼위께서 공기중에
성삼위께서 하늘에
성삼위께서 파도치는 바다에
성삼위께서 항상 함께 계십니다. 아멘
켈트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세계관을 따르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이 세상에 살아 계시고 그리스도가 여전히 그분의 교회에 성육신해 계시며, 각각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는데 적극적으로 제자직을 수행하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다는 믿음 에 진정으로 헌신하는 생활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켈트기독교는 우리마음을 열어서 주일과 한주의 다른 요일들을, 이세상과 다음 세상을,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을, 개인과 공동체를 분리할 수 없다는 관점을 갖게 한다. 고대 켈트족은 내세가 항상 우리에게 가까이 있으며, “희미한 시간들”, “희미한 장소들”에서 분명해 진다고 믿었다. 밤샘과 장례식은 그와 같은 희미한 시간들과 장소들이고, 죽음을 슬퍼만 할 것이 아니라, 삶을 축하하기도 하는 시간들 이다.
받아 들여졌더라면 교회는 오늘날 종종 특정화되어 나타나는 많은 위험성들을 확실히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들의 교회는 우리가 아주 쉽게 일상적 삶 안과 밖으로 걸어가며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는 곳이 온 창조임을 상기 하게 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교회의 상징과 예전이 더욱 분명하게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로서 켈트영성은 주로 보고, 느끼고, 이해하는 방식이기에 오늘 우리자신의 삶에 적응 시킬 수가 있다. 고대 켈트족에게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일부 의식은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켈트 전통에 대한 연구는 6세기 아일랜드 수도사인 성, 시아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기도로 끝낸다. 하지만 이 기도는 실제로는 1, 2세기 뒤에 지어진 듯하다. 첫 번째 행은 라틴어로 되어있고, 나머지는 아일랜드어로 되어 있는데, Oliver Davis가 번역해서 그의 명문집(anthology)에 실었다.
노정언 장로
한남·촬스슈터트대학 신학석사논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