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동물 철학
장 바티스트 드 라마르크 / 지만지 출판 / 2009.1.15
생물학사에서 라마르크가 남긴 가장 큰 족적은 무엇보다도 단편적 연구들로 이루어졌던 이전의 생명 연구를 독립된 분과 학문으로서 체계화하고 여기에 ‘생물학’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이 책도 단지 생물종의 진화를 설명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훨씬 광범위하게 독립된 과학으로서의 생물학의 기반을 정초하고, 이의 연장으로 심리학적 토대를 정립하는 데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물론 그의 이론은 형이상학적 용어의 해석이 애매하고, 결국 오해의 소지가 많다는 맹점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편견을 제외하고 이 책을 읽는다면, 일생을 바쳐 생명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하고 이를 실증적으로 규명하고자 노력했던 19세기 초 한 사상가의 고뇌를 느끼기에 충분할 것이다.
– 용불용설과 획득형질 유전설의 제창자
기린의 목으로 상징되는 용불용설과 획득형질 유전설의 제창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라마르크는 또한 무척추동물 분류학자, 고생물학의 창시자, 생물학 (biologie)의 초안자, 현대적 의미의 화석 (fossile) 용어의 고안자, 진화론 (transformisme)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생물학사에서 그가 남긴 가장 큰 족적은 무엇보다도 생리학이나 해부학 등의 단편적 연구들로 이루어졌던 이전의 생명 연구를 독립된 분과 학문으로서 체계화하고 여기에 ‘생물학’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 라마라크주의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되면서부터 사람들은 진화론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생태학의 발달과 더불어 프랑스 진화론자들에게 환경 요인이 커다란 관심으로 부각되면서 라마르크의 재발견이 이루어진다. 19세기 후반에 접어들 무렵 일부 프랑스 생물학자들은 라마르크의 이론과 다윈 이론을 접목시켜 진화를 설명하고자 시도했다. 이들에게 있어 라마르크의 이론과 다윈의 이론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연속적 진화론이라는 측면에서 양립 가능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실제로 다윈은 라마르크의 획득형질 유전설을 부인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자연선택 이론을 바탕으로 연속적 진화를 설명했다. 이렇게 진화론의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자연의 연속성 개념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바이스만, 멘델, 더프리스와 같은 신다윈주의자들에 의해 주장된 자연의 비연속성 개념과 충돌을 빚게 된다. 신다윈주의자들은 생명체 진화의 전제가 되는 변이를 성의 혼합에 따르는 우연적이고 불연속적인 변이로 설명했다. 따라서 19세기 후반 생명체의 변이에 대한 설명은 점진적 변이와 돌발적 변이라는 확연히 구분되는 두 이론으로 나뉘어 수용되었다. 점진적 변이를 수용한 사람들은 라마르크의 획득형질 유전설을 지지하여 신라마르크주의를 형성했고, 돌발적 변이를 수용한 사람들은 획득형질의 비유전설을 역설하여 신다윈주의를 형성했으며, 이들 사이의 상반된 두 입장은 팽팽한 대립 구도에 놓이게 되었다.

– 라마르크주의에 대한 오해
라마르크의 이론이 지금까지 진화의 메커니즘에 관련된 이론에 한정되어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생물학의 창시자로서 라마르크의 위상이 묻혀온 데는 권력과 이데올로기로 점철되었던 생물학 역사상의 복잡한 사연들이 얽혀 있다. 동시대 퀴비에와의 대립을 비롯하여, 다윈주의의 등장과 더불어 19세기 중반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진화 메커니즘 논쟁은 라마르크의 이론을 왜곡하거나 부분적으로만 수용하는 경향을 유도했고, 라마르크주의는 신라마르크주의에 영입되면서 이데올로기 논쟁에 휘말려 과학의 영역으로부터 밀려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원인 이외에도 라마르크의 위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중요한 이유로 라마르크 자신의 글에 나타나는 몇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라마르크가 생명현상을 설명하는 데 사용했던 물리화학 이론 자체의 문제라든가 피쇼가 지적하는 구성상의 치명적인 결함에 보태어, 난해한 문체가 지리하게 반복되어 읽는 이들로 하여금 많은 인내심을 요구한다든지, 형이상학적 용어의 해석이 애매하고, 결국 오해의 소지가 많다는 맹점을 지니고 있다. 갖가지 난점은 각기 여러 방식으로 라마르크 사상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장애가 되어왔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서 라마르크 자신의 의도를 편견 없이 이해하고자 ‘동물 철학’을 읽는다면, 라마르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지금까지의 수많은 오해와 편견들을 어렵지 않게 떨쳐낼 수 있을 것이며, 일생을 바쳐 생명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하고 이를 실증적으로 규명하고자 노력했던 19세기 초 한 사상가의 고뇌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머리말
서론
제1부 동물들의 특성, 유연관계, 조직화, 배치, 분류, 그리고 종에 대한 자연사적 고찰
제2부 생명의 물리적 요인, 생명 존재에 요구되는 조건, 생명운동을 자극하는 힘, 생명을 지닌 신체에 부여된 기능, 그리고 신체 내에 생명이 존재함으로써 생기는 결과에 대한 고찰
제3부 여러 동물들에서 관찰되는 활동을 만들어내는 힘, 그리고 지적 활동을 일으키는 감각의 물리적 원인에 대한 고찰
옮긴이에 대해

○ 저자소개 : 장 바티스트 드 라마르크 (Jean-Baptiste de Lamarck)
라마르크는 1744년 8월 1일 프랑스 피카르디 지방의 바장탱 르 프티에서 태어나 1829년 12월 18일 파리에서 생을 마쳤다. 몽파르나스 (Montparnasse) 묘지에 잠정적 승인을 얻어 안치되었으나 1830년 혁명 당시 그의 묘소는 사라지고 말았다.
세 번 결혼하고 세 번 이혼했으며, 여덟 명의 자식이 있었으나 다섯 명만이 그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라마르크는 모계 혈통으로 922∼923년 프랑스 임시 국왕이었던 로베르 1세의 자손이었으며, 소귀족 계급 출신이었지만 가난했다. 열한 명의 남매 중 막내였던 그는 가족들에 의해 신부가 될 것을 권유받았으며, 아미앵의 제수이트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수도 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았던 그는 아버지가 사망하자 맏형의 뒤를 따라 직업군인이 되고자 했고, 17세에 군인이 되어 빠르게 승진하지만 건강의 악화로 군대 생활을 접었다.
식물학과 음악에 많은 관심을 지녔던 그는 파리의 은행에서 일하면서 의학 공부를 하기도 했으나 의사가 되지는 않았다. 장 자크 루소 (Jean-Jacques Rousseau)를 만나 함께 식물을 채집하게 되며, 다른 과학에도 관심을 지니면서 특히 식물학에 집중하여 쥐시외 (Bernard Jussieu)와 함께 연구했다. 이 무렵 그는 기상학에도 큰 흥미를 느꼈으며, 1776년 과학 아카데미에 ‘대기의 주요 현상에 대하여’ (Sur les principaux phénimènes de l’atmosphère)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의 삶 초반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후반부는 과학 저술 덕택에 비교적 알려져 있다. 라마르크는 만년에 차츰 시력을 잃게 되어 결국 두 딸과 보낸 마지막 몇 년간은 완전히 맹인이 되었다. 일부 동료 가운데 특히 고정설 (fixsme)의 지지자였던 퀴비에에 맞서야 했으며, 정치권력에도 그리 밝지 못했다. 혁명 사상을 지지했던 그의 정치적 시각은 제정기나 왕정복고 당시의 분위기에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1778년 ‘프랑스 식물’ (Flores françaises)을 출간했는데, 이는 1795년 재출간되었으며, 1805년과 1815년 드캉돌 (A. P. de Candolle)에 의해 수정, 보완되었다. 1779년 그는 과학 아카데미의 식물학 강의 조교로 임명되었다. 뷔퐁 (Buffon)은 라마르크에게 자기의 아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도록 권유하고 라마르크에게 ‘왕실 정원 (Jardin et du Cabinet du Roi) 감독관’의 칭호를 부여했다. 그의 직무는 네덜란드, 독일, 헝가리 등의 여러 식물원들을 방문하고, 파리의 식물원을 감독하는 일이었다 (1781∼1782).
하지만 그는 뷔퐁의 아들과 사이가 나빠져 돌아왔고, 10여 년 동안 식물학 논문, 특히 ‘체계적인 백과사전의 식물학 사전’ (Dictionnaire de Botanique de l’Encyclopédie méthodique) 집필에 몰두했다. 라마르크가 집필한 부분은 철자 P까지인 앞부분 세 권이다. 1789년 그는 ‘왕실 식물원 책임자’ (Garde des Herbiers du Cabinet du Roi)로 임명되었다.
그는 결혼해서 많은 자녀를 두었고, 그가 택했던 직업들은 대개 명예직으로 보수가 매우 낮아서 일생 동안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라마르크의 삶에 약간의 변화가 나타났다. 그는 혁명 사상에 동조적이었고 일생 동안 그 입장을 충실히 지켰다.
1790년에는 자연사 박물관에서 곤충과 유충의 자연사 담당 교수가 되었다. 그는 이 박물관 설립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교수직도 겸했으며, 도서관 건립을 책임지고 교수회의 의장과 재무관 등 많은 일을 담당했다. 1792년 그는 몇몇 대학에서 ‘자연사 신문’ (Journal d’Histoire naturelle)을 창간했고, 이를 위해 여러 편의 식물학 논문을 썼다. 하지만 이 신문은 몇 년 안 되어 폐간되었다. 1793년 이후 교수직에서 물러난 그는 42세에 식물학 연구를 접고 새로운 연구를 시작한다. 1794년에서 1798년 사이에는 세 권의 책을 출간했고, 몇 편의 글에서는 특히 라부아지에의 이론에 반대되는 물리화학적 논의들을 개진했다. 이 책들은 부분적으로 뒤늦게야 출간되었는데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1800년에서 1810년 사이에는 ‘기상학 연보 11’ (11 Annuaires Météorologiques)를 출간했는데, 이 연보는 그에게 금전적으로 도움이 된 유일한 책이었다. 라마르크는 1794년 봄, 무척추동물의 동물학 강좌를 열었다. ‘국립 자연사 박물관 직원 문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라마르크, 50세, 두 차례 결혼, 여섯 자녀, 곤충, 유충, 미생물 전공의 동물학 교수.” 그는 남은 생애 동안 무척추동물학을 포함한 동물학에 전념했다.
1798년과 1799년 사이 ‘갑각 유충에서 쌍각 조개까지 조개의 새로운 분류 시론’ (Vers testacés à coquilles bivalves et Prodrome d’une nouvelle classification des coquilles)을 집필했다. 1801년 ‘무척추동물의 체계’ (Système des animaux sans vertèbres)에 이어 ‘공화력 8년의 동물학 강의 서설’ (Discours d’ouverture des Cours de Zoologie de l’An VIII)에서는 자신의 진화 개념을 처음으로 피력했다. 1802년 ‘공화력 10년의 서설’ (Discours d’ouverture de l’An X)에 이어 ‘생명체의 조직화에 대한 연구’ (Recherches sur l’organisation des corps vivants), 뒤이어 ‘공화력 11년 서설’ (Discours d’ouverture de l’An XI), ‘1806 서설’ (Discours de 1806)을 출간했다. 1802년에는 ‘지하수리학’ (Hydrogéologie)을 출간했는데, 이 책은 1833년 라이엘이 ‘지질학의 원리’ (Principes de Géologie)에서 전개한 이론과 일부 유사한 이론을 담고 있다. 다윈과 달리 라이엘은 라마르크에 대한 자신의 빚을 인지하고 있었다. 1803년 라마르크는 ‘식물의 자연사’ (l’Histoire naturelle des végétaux)를 저술하면서 잠정적으로 식물학으로 관심을 되돌렸다. 15권 중 앞의 두 권이 라마르크의 저술이다. 1802년에서 1806년까지 ‘파리 근교의 화석에 대한 논고’ (Mémoires sur les fossiles des environs de Paris)를 저술했다.
‘동물 철학’ (Philosophie Zoologique)은 1809년에 출간되었고, 이후 1815년부터 ‘무척추동물의 자연사’ (l’Histoire naturelle des animaux sans vertèbres)를 7편으로 나누어 1822년까지 저술했다. 1817년 ‘자연사의 새 사전’ (Nouveau Dictionnaire d’Histoire naturelle) 편찬에 참여해 여러 편의 글을 썼으며, 1820년 ‘인간에 대한 실증적 지식의 분석 체계’ (Système analytique des connaissances positives de l’homme)를 출간했다.
– 역자 : 이정희
이정희는 인하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 철학과에서 ‘펠릭스 르당텍의 기계론과 진화론’이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외의 논문으로 ‘다윈주의 개념의 다양성’, ‘의학과 진화론의 상관성’, ’19세기 조직화 개념의 재조명’, ‘근대적 생명 인식에 나타난 기계의 메타포’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프랑수아 자코브의 ‘파리, 생쥐, 그리고 인간’ (궁리, 1999), 미셸 모랑주의 ‘분자생물학: 실험과 사유의 역사’ (공역, 몸과마음, 2002), 루이 알라노와 알렉스 클라망스의 ‘이기적인 성’ (웅진, 2006), 하워드 L. 케이의 ‘현대생물학의 사회적 의미: 사회다윈주의에서 사회생물학까지’ (공역, 뿌리와이파리, 2008)가 있다. 현재 연세대학교 미디어아트연구소 HK연구원으로 ‘기계와 인간의 인문학’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 책 속으로
L’influence des circonstances est effectivement, en tout temps et partout, agissante sur les corps qui jouissent de la vie, mais ce qui rend pour nous cette influence difficile a? apercevoir, c’est que ses efforts ne deviennent sensibles ou reconnaissables qu’a? la suite de beaucoup de temps.
생명체에 작용하는 환경의 영향은 언제 어디서나 명백하다. 하지만 우리가 그 영향을 깨닫기 매우 어려운 것은 바로 이 결과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감지되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 출판사 서평
생명체에 작용하는 환경의 영향은 언제 어디서나 명백하다. 하지만 우리가 그 영향을 깨닫기 매우 어려운 것은 바로 이 결과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감지되기 때문이다.
– 한국내 초역이다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과는 또 다른 의미의 진화론인 개체의 필요에 의해 생물이 진화한다는 획득형질 이론을 담고 있다. 또한 독립된 과학으로서 생물학의 기반을 정초하고, 이의 연장으로 심리학적 토대를 정립하는 데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물론 그의 이론은 용어의 해석이 애매하고, 결국 오해의 소지가 많다는 맹점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편견을 제외한다고 이 책을 읽는다면, 일생을 바쳐 생명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하고, 이를 실증적으로 규명하고자 노력했던 19세기 초 한 사상가의 고뇌를 느끼기에 충분할 것이다.
– 용불용설과 획득형질 유전설의 제창자
기린의 목으로 상징되는 용불용설과 획득형질 유전설의 제창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라마르크는 또한 무척추동물 분류학자, 고생물학의 창시자, 생물학 (biologie)의 초안자, 현대적 의미의 화석 (fossile) 용어의 고안자, 진화론 (transformisme)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생물학사에서 그가 남긴 가장 큰 족적은 무엇보다도 생리학이나 해부학 등의 단편적 연구들로 이루어졌던 이전의 생명 연구를 독립된 분과 학문으로서 체계화하고 여기에 ‘생물학’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 기린의 목이 길어진 까닭은?
먼저 기린의 목을 예로 들어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을 설명해 보자. 높은 나무에 있는 먹이를 먹기에는 목이 긴 기린이 유리하다. 따라서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는 목이 긴 기린이 살아남게 되고, 그렇지 못한 기린은 저절로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즉 환경에 의해 생물종의 진화가 결정된다는 이론이다. 이번에는 라마르크의 획득형질 이론을 보자. 기린이 높은 나무에 있는 먹이를 먹기 위해서는 자연히 목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즉 높은 나무에 있는 먹이를 먹을 수 있도록, 다시 말하면 후천적인 요인에 의해 생물종이 진화했다는 이론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두 진화론은 어느 이론의 옳고 그름을 떠나 여전히 진화론 연구에 있어 중요한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 라마라크주의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되면서부터 사람들은 진화론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생태학의 발달과 더불어 프랑스 진화론자들에게 환경 요인이 커다란 관심으로 부각되면서 라마르크의 재발견이 이루어진다. 19세기 후반에 접어들 무렵 일부 프랑스 생물학자들은 라마르크의 이론과 다윈 이론을 접목시켜 진화를 설명하고자 시도했다. 이들에게 있어 라마르크의 이론과 다윈의 이론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연속적 진화론이라는 측면에서 양립 가능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실제로 다윈은 라마르크의 획득형질 유전설을 부인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자연선택 이론을 바탕으로 연속적 진화를 설명했다. 이렇게 진화론의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자연의 연속성 개념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바이스만, 멘델, 더프리스와 같은 신다윈주의자들에 의해 주장된 자연의 비연속성 개념과 충돌을 빚게 된다. 신다윈주의자들은 생명체 진화의 전제가 되는 변이를 성의 혼합에 따르는 우연적이고 불연속적인 변이로 설명했다. 따라서 19세기 후반 생명체의 변이에 대한 설명은 점진적 변이와 돌발적 변이라는 확연히 구분되는 두 이론으로 나뉘어 수용되었다. 점진적 변이를 수용한 사람들은 라마르크의 획득형질 유전설을 지지하여 신라마르크주의를 형성했고, 돌발적 변이를 수용한 사람들은 획득형질의 비유전설을 역설하여 신다윈주의를 형성했으며, 이들 사이의 상반된 두 입장은 팽팽한 대립 구도에 놓이게 되었다.
– 라마르크주의에 대한 오해
라마르크의 이론이 지금까지 진화의 메커니즘에 관련된 이론에 한정되어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생물학의 창시자로서 라마르크의 위상이 묻혀온 데는 권력과 이데올로기로 점철되었던 생물학 역사상의 복잡한 사연들이 얽혀 있다. 동시대 퀴비에와의 대립을 비롯하여, 다윈주의의 등장과 더불어 19세기 중반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진화 메커니즘 논쟁은 라마르크의 이론을 왜곡하거나 부분적으로만 수용하는 경향을 유도했고, 라마르크주의는 신라마르크주의에 영입되면서 이데올로기 논쟁에 휘말려 과학의 영역으로부터 밀려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원인 이외에도 라마르크의 위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중요한 이유로 라마르크 자신의 글에 나타나는 몇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라마르크가 생명현상을 설명하는 데 사용했던 물리화학 이론 자체의 문제라든가 피쇼가 지적하는 구성상의 치명적인 결함에 보태어, 난해한 문체가 지리하게 반복되어 읽는 이들로 하여금 많은 인내심을 요구한다든지, 형이상학적 용어의 해석이 애매하고, 결국 오해의 소지가 많다는 맹점을 지니고 있다. 갖가지 난점은 각기 여러 방식으로 라마르크 사상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장애가 되어왔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서 라마르크 자신의 의도를 편견 없이 이해하고자 ‘동물 철학’을 읽는다면, 라마르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지금까지의 수많은 오해와 편견들을 어렵지 않게 떨쳐낼 수 있을 것이며, 일생을 바쳐 생명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하고 이를 실증적으로 규명하고자 노력했던 19세기 초 한 사상가의 고뇌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동물 철학‘ 개요
‘동물철학’ (Philosophie Zoologique ou exposition des considérations relatives à l’histoire naturelle des animaux)은 라마르크가 1809년에 출판한 책이다. 라마르크의 진화론은 먼저 ‘생물체제의 연구’ (1802)에서 소묘되고 또한 ‘동물철학’에서 완성된 모습을 나타낸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부는 동물의 계통 및 진화에 대하여, 제2부는 생명론 및 생리학에 대하여, 제3부는 심리학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가장 유명하며 후세에 끼친 영향이 큰 것은 제1부이다. 라마르크의 진화론은 당초에 묵살되었으나 19세기 후반이 되어서 ‘종의 기원’의 출현과 함께 진화론이 공인되자 진화론의 한 원류 (源流)로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라마르크 진화론의 기본은 생물이 원래 점차로 복잡해져 가는 내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점에 있다. 그 근거로서는 동물을 계통적으로 배열하면 체제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연속적으로 옮겨가는 계열이 얻어지는 사실을 들고 있다. 이어서, 같은 정도로 복잡한 동물 사이에서도 환경이나 습성의 영향을 받아 차이가 생긴다고 라마르크는 지적한다. 예를 들면 보다 단순한 체제를 가진 파충류 (爬蟲類)에서 포유류 (哺乳類)로 진화해 가는데 포유류에서도 습성의 차이에 기인하여 사지 (四肢)가 지느러미 모양으로 변화한 해표 (海豹)나 날개 모양으로 변화한 박쥐가 나타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