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믿음과 지식
G. W. F. 헤겔 / 아카넷 / 2014.6.26
헤겔은 이 책에 ‘칸트와 야코비와 피히테 철학으로 그 형식이 완성된 주관성의 반성 철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이 부제가 시사하고 있듯이, 여기서 청년 헤겔은 하나의 완성된 철학 체계의 구성이 아니라, 주로 동시대의 철학들에 대한 비판을 목표로 삼고 있다. 말하자면, 정돈된 형태로 자기의 사상을 펼쳐 보이기 보다는 그 당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철학들의 한계와 난점을 드러내고 검토함으로써, 이 글은 헤겔 자신의 고유한 사변철학을 준비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헤겔은 어떤 철학적 견해들의 등장을 우연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의미론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총체적인 그물망 속에서 필연적으로 출현할 수밖에 없는 사태들로 파악한다. 이런 점에서, 헤겔 자신의 철학함도 이전 철학들이 지닌 자기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이론적 시도로 이해될 수 있으며, 따라서 헤겔 철학의 진의는 자아의 능력과 범위와 구조를 탐구하는 반성철학들의 불완전한 사태 파악에 대한 비판과 그에 대한 대안의 차원에서 평가될 수 있다.
헤겔은 이 책을 통해 신성함이나 은총은 낯설고 초월적인 무한자로부터 나온다는 전통적인 종교관을 반박한다. 지식과 격리되거나 지식을 배척하는 파악 불가능한 초월적 믿음이 아니라, 인간의 지식과 조화를 이루는 믿음을 부활시킬 수 있고 또 부활시켜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이 책을 관통하는 주관성의 형이상학에 대한 헤겔의 비판은 인간의 주관이 사태를 구성하고 처리할 수 있다는 근대의 계몽적인 ‘이성’을 극복하려는 시도로도 이해될 수 있다.
결국 이 책에서 헤겔은 신비로운 정신주의의 옹호가 아니라, 주관성의 형이상학에 대한 철저한 비판적 분석을 통해 협소한 ‘이성’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이성에 의한 이성의 자기비판을 모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목차
역자 서문
1. 서론
2. 본론
칸트 철학
야코비 철학
피히테 철학
3. 결론
역자 해제
찾아보기
○ 저자소개 :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 ~ 1831)
독일의 철학자이자 독일 이상주의 (理想主義, Idealismus) 철학의 이론을 완성한 거장. 1770년 독일 남부 슈투트가르트에서 궁정관리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튀빙겐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1793년에 스위스로 가서 당시 베른의 영향력 있는 정치가인 폰 슈타이거 (von Steiger) 집안의 가정교사로 일하며 이 가문이 소장한 방대한 양의 서적을 읽는 기회를 가졌다. 여기서 얻은 폭넓고 심오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활용하여 훗날 그는 자신의 철학체계를 세울 수 있었다.

1801년 독일 동부 예나 (Jena) 대학교의 강사직에 임명된 후 불후의 명저 ‘정신현상학’ (Phänomenologie des Geiste, 1807년)을 썼고, 이어서 두 번째 저서인 ‘논리학’ (Wissenschaft der Logik, 1812년)을 출간하였다. 1816년에 하이델베르크대학교 교수로, 1818년에는 당대의 유명한 철학자 피히테의 뒤를 이어 베를린대학교 교수로 임명되었고, 세 번째 명저인 ‘법철학 강요’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1821년)를 출간하였다. 대학 강사 시절인 1802년에 당시 독일문화의 중심지였던 드레스덴을 비롯해, 1822년 브뤼셀, 1824년 빈, 1827년 파리와 프라하, 칼스바트로 여행하면서 수많은 전시, 공연, 오페라 등을 관람하였고, 특유의 독창적이고 진지한 예술 감각을 익혔다. 이를 바탕으로 하이델베르크대학교와 베를린대학교에서 ‘미학 또는 예술철학’ (Ästhetik oder Philosophie der Kunst) 강의를 하였으며, 이 내용을 제자인 하인리히 구스타프 호토 (Heinrich Gustav Hotho)가 정리하여 그의 사후 출간한 것이 바로 ‘미학강의’ (Vorlesungen über die Ästhetik) 이다.
일찍이 스피노자와 칸트, 루소 그리고 괴테의 영향을 받았으며, 열아홉 살에 직접 겪은 프랑스 혁명은 그가 이성과 자유에 바탕을 둔 철학을 과제로 삼는 데 하나의 단초가 되었다. 또한 루소의 사상,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예술 나아가 칸트, 피히테 등 당대의 주요 철학들을 깊이 탐구하면서 근대의 온갖 분열된 상황에 맞서 삶의 근원적인 총체성을 되살리려는 이상을 세웠다.
근대철학과 문화, 사회 안에서 주체와 지식의 대상인 객체, 정신과 자연, 자아와 타자, 권위와 자유, 지식과 신념,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의 긴장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 현상을 헤겔은 ‘절대정신’을 중심으로 하는 자신의 철학체계 안에서 합리적으로 규명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당대 최고의 철학자로 인정받던 헤겔은 1831년 병으로 사망했지만, 1820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헤겔학파’를 통해 독일은 물론 세계적으로 그의 철학이 널리 전파되면서 후세에 큰 영향을 끼쳤다.
– 역자 : 황설중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사변철학과 회의주의에 관한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역서로 『믿음과 지식』, 『객과주의와 상대주의를 넘어서』, 『변증법과 회의주의』등이 있고, 논문으로 「퓌론주의와 근세의 신앙주의」, 「흄의 회의주의와 퓌론주의」, 「인간의 삶에서 회의주의의 역할은 무엇인가」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 철학자 헤겔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하는 책
‘칸트와 야코비와 피히테 철학으로 그 형식이 완성된 주관성의 반성철학’이라는 부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당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철학적 경향들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고유한 사변철학을 모색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계몽주의의 대두로 인한 종교와 철학 간의 갈등, 계몽주의와 정통 교리주의의 갈등, 계몽주의와 낭만주의의 대립 등 18-19세기 독일의 문화적, 사상적 대립기에서 나온 이 책은 시간적 간격을 넘어 지금까지도 유효한 ‘이성과 종교’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헤겔은 ‘이성’이 ‘신앙과 종교’에 대해 승리를 거두었다고 확신하는 당대의 계몽적인 문화의 한계를 지적한다. 그에 따르자면 이러한 이성이 거둔 승리는 참된 이성의 이념을 실현하지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성은 신앙을 적대시함으로써 무한한 초감성적인 세계로 진입하지 못하고, 유한한 감성계만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됨으로써 유한과 무한의 통일이라는 이성 이념을 실현해야 할 이성은 실제로는 유한과 무한을 절대적으로 고립 (대립) 시키는 지성으로 전락해 버렸다고 진단한다. 헤겔이 볼 때, 칸트와 야코비와 피히테 철학에서 극명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이러한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 간의 절대적 대립이다. 헤겔은 칸트와 야코비와 피히테 철학이 현세로부터의 비약을 동경하는 개신교와, 현세의 유용성과 절대성만을 내세우는 계몽주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박쥐와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고 본다. 이와 같이 주관과 객관, 믿음과 지식 등의 개념적 대립을 고수하는 반성철학들의 자기 한계와 이로 인한 이성 이념의 실현불가능성에 대한 분석이야말로 이 책을 관통하는 주요한 요점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 헤겔 특유의 사변철학에 대한 방향 예고
이 책에서 헤겔은 칸트, 야코비, 피히테 철학을 비판하는 데 책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 만큼 주관성의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적 분석 과정 자체가 자신의 사변철학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판의 요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헤겔은 칸트 철학을 분석하면서 참된 철학의 이념으로서의 절대적 동일성이란 인식이나 지식을 넘어선 피안이 아니라 대립이 절대적으로 지양되어 있는 통일에서 찾아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헤겔은 칸트 철학이 미해결로 남겨 놓은 이 문제가 바로 자신의 사변철학의 과제임을 시사하고 있으며, 이 책에서 칸트의 비판적 계승자로서 자신의 면모를 확실하게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이 책에서 야코비의 철학은 가장 길게 다루어지고 있는 동시에 가장 혹독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주관적인 계시를 학문의 시발점으로 삼는 야코비 철학은 최소한 직접적인 주관적 욕망이나 경향과, 정당화된 학문적 주장들을 구별할 수 있는 어떤 가능성도 자체 내에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비판받는다.
세 번째, 헤겔은 피히테 철학을 반성철학 내에서 이론적으로 전진한 사유의 형태로 간주하기는 하지만, 그가 주관성의 철학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오히려 객관성과 대립해 있는 절대적 자아의 형식성만을 고수함으로써 ‘절대적 주관성의 철학’에 머무르게 되었다고 비판한다.
– 신앙과 이성에 대한 새로운 관계 모색
헤겔은 이 책을 통해 크게 두 가지를 보여준다.
우선 헤겔은 지식과 격리되거나 지식을 배척하는 파악 불가능한 초월적 믿음이 아니라, 인간의 지식과 조화를 이루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이러한 헤겔의 종교관은, 신성함이나 은총은 낯설고 초월적인 무한자로부터 나온다는 전통적인 종교관에 반하는 것으로 주목할 만한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이 책을 관통하는 주관성의 형이상학에 대한 헤겔의 비판은 근대의 계몽적인 ‘이성’을 극복하려는 시도로도 이해될 수 있다. 헤겔은 인간이 세계의 주인임을 내세우는 근대적인 ‘이성’의 표상은 그 계몽을 규정하는 범주들 자체의 역동적인 운동에 의해 자기붕괴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헤겔은 신비로운 정신주의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성의 형이상학에 대한 철저한 비판적 분석을 통해 협소한 ‘이성’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일종의 자기반성적 ‘이성’의 유형을 모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신앙과 지식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는 헤겔 철학의 진면목을 확인해 볼 수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