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성령 : 교회는 왜 성령을 잃어버렸는가
스탠리 하우어워스, 윌리엄 윌리몬 / 복있는사람 / 2016.11.25
– 최고의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 최고의 설교자 윌리엄 윌리몬이 우리가 잃어버린 성령의 본질을 말하다!
“ ‘오소서, 성령이시여’라는 고백은 교회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도이며, 삶과 죽음 한가운데서 우리가 붙잡는 유일한 희망이다!”
성령을 아는 것은 곧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이 책은 그동안 교회가 소홀히 여겨 온 성령의 본질을 논한다. 두 저자는 성경 본문을 구체적으로 해설하고, 교회사의 전통적 교리들을 하나로 아우르며 성령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더불어 다양한 신학자들의 견해를 폭넓게 다루며 성령이 어떤 분이신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 목차
서문
1. 삼위일체: 성령에 대한 바른 사고
2. 오순절: 교회의 탄생
3. 거룩함: 성령 안의 삶
4. 마지막 일: 종말론적 백성의 삶
니케아 신조
사도신경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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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 스탠리 하우어워스, 윌리엄 윌리몬
– 스탠리 하우어워스 (Stanley Hauerwas)

스탠리 하우어워스 (Stanley Hauerwas, 1940년 7월 24일 ~ )는 존경받는 신학자이자 윤리학자다. 1940년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나 사우스웨스턴 대학교를 졸업하고 예일 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이후 오거스태나 대학교, 노터데임 대학교를 거쳐 2013년 은퇴할 때까지 듀크 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가르쳤다. 2001년 인문학 분야에서 최고의 영예로 여겨지는 기포드 강좌 강연자로 선정되었으며, 같은 해 「타임」지에서 “미국 최고의 신학자”로 선정되었다. 현재는 듀크 대학교 신학부 및 법학부의 길버트 로우 명예 교수로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연구해 온 신학의 흐름, 삶의 깊은 상처들마저 있는 그대로 담긴 회고록 『한나의 아이』(IVP)는 「퍼블리셔스 위클리」가 선정한 2010년 종교 분야 최고의 책, 「허핑턴포스트」가 선정한 2010년 최고의 종교 서적 열 권 가운데 한 권으로 꼽혔다. 국내에 소개된 다른 저서로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장 바니에 공저) 『덕과 성품』(이상 IVP),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윌리엄 윌리몬 공저) 『십계명』 『주여,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이상 복있는사람), 『십자가 위의 예수』(새물결플러스), 『교회됨』(북코리아), 『신학자의 기도』(비아), 『마태복음』(SFC출판부) 등이 있다.
– 윌리엄 윌리몬
듀크 대학교 실천신학 교수인 윌리몬은 미국 연합 감리교 감독을 오랫동안 역임했다. 미국 최고의 설교자 중 한 사람이며 현장성과 학문성을 두루 갖춘 탁월한 성경주석가로 평가받고 있다. 저서로는 『21세기형 목회자』(한국기독교연구소), 하우어워스와 공저한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복 있는 사람) 등이 있다.
– 역자 : 김기철
감리교신학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여수석교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 『예언자적 상상력』 『예수가 바라본 하나님 나라』 『주님 주신 아름다운 세상』 『신학이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유대인 스케치』 『오늘부터, 다시, 기도』(복 있는 사람)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성령은 개인 수준의 경험을 훨씬 능가한다. 우리가 의식하든 못 하든 성령은 하나님이 삼위일체로서 어떤 분이며 또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를 보여준다. 성령은 분명 공동체적이고 관계적이며 형체로 구현되는 특성을 지닌다. 그리고 바로 그런 특성으로 인해 우리에게 교회가 존재하게 된다. 우리가 성령에 관해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 예수의 삶, 죽음, 부활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또 거기에 비추어 평가되어야 한다. — 「서문」 중에서
성경을 삼위일체의 눈으로 읽는다는 말의 예시를 든다면, 창조 때에 물 위로 “바람”이 불었다는 말씀을 읽으면서, 그 “바람”을 우리가 그 이름을 알기 전부터 일했던 성령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바로 그 성령이 마리아의 태를 채운 물 위에도 임하였다. 창조하시는 성령은 이런 방식으로 계속해서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무엇인가를 이루어 내며, 전혀 길이 없어 보이는 곳에 길을 낸다. —「1. 삼위일체: 성령에 대한 바른 사고」 중에서
교회가 거룩하다고 고백하는 것은 우리의 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긍정하는 것이다. 힘 있는 성령은 교회가 소명을 빈번히 저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고백할 수 있는 새 공동체를 일으켜 세우시며, 그 공동체를 통해 서로 고립되어 있는 우리의 현실을 품어 치유하신다. —「2. 오순절: 교회의 탄생」 중에서
윤리학?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덕목과 결단과 행위에 관해 성찰하는 일?연구는 선과 옮음의 문제들을 하나님은 어떤 분이며, 그분의 뜻은 무엇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다루는 신학적 신념과 분리시키는 일이 없도록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거룩함과 관련해서 염두에 두어야 할 사실은 성령의 사역에 관해 어떤 식으로 논의가 이루어지든 최소한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또 어떤 일을 행하시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기독교 윤리는 어떻게 성령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차이를 이루어 내는지 보여주는 것을 과제로 삼는다. —「3. 거룩함: 성령 안의 삶」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세례의 물을 통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으로 인도하셨던 것처럼, 죽음의 물을 통해서도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 성령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마지막 시간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4. 마지막 일: 종말론적 백성의 삶」 중에서
○ 출판사 서평
.은사주의와 개인 체험 위주의 관점에서 벗어나 제자도와 교회의 삶을 강조하는 성령론
.교회사의 전통적 교리들을 하나로 아우르고, 성경 본문을 구체적으로 해석하며, 다양한 신학자들의 견해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개관서
.“최고의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와 “최고의 설교자” 윌리엄 윌리몬의 신간
최고의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 최고의 설교자 윌리엄 윌리몬이 우리가 잃어버린 성령의 본질을 말하다!
– ‘오소서, 성령이시여’라는 고백은 교회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도이며, 삶과 죽음 한가운데서 우리가 붙잡는 유일한 희망이다!
성령을 아는 것은 곧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이 책은 그동안 교회가 소홀히 여겨 온 성령의 본질을 논한다. 두 저자는 성경 본문을 구체적으로 해설하고, 교회사의 전통적 교리들을 하나로 아우르며 성령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더불어 다양한 신학자들의 견해를 폭넓게 다루며 성령이 어떤 분이신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성령의 능력은 그리스도인을 제자로 살게 한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방언, 신유와 같은 은사를 받을 수도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성령이 충만한 그리스도인 모두는 우리의 발을 닦아 주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랑하고 섬기며, 교회로 모이기를 갈망하고, 예수가 세상의 주이심을 고백한다. 그래서 개인주의와 능력주의가 아우성치는 세상에 저항하며, 하나님 나라의 삶을 담대하게 살아간다.
성령의 역사는 교회를 새롭게 할 유일한 힘이다.
교회는 천지창조 때 성령이 물 위를 덮었던 것처럼 성령에 의해 태어난다. 교회는 세상의 명민한 지혜와 성장 기술로 사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성령의 선물에 온전히 의지해서 산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성령은 그야말로 생사를 좌우하는 문제가 된다.
성령을 힘입지 않고서는 마땅히 해야 할 기도를 할 수 없고, 그리스도의 평화를 누리지도 못하며, 살아 움직이는 그리스도의 몸이 될 수도 없다. “오소서, 성령이시여”라는 말은 교회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도이며, 삶과 죽음 한가운데서 우리가 붙잡는 유일한 희망이다.
○ 추천평
기독교 윤리학의 대가인 스탠리 하우어워스가 그의 동료와 함께 성령에 대한 책을 썼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과거 미국의 대표적인 기독교 윤리학자 라인홀드 니버는 그의 가르침에 성령론이 현저히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동안 신학계에서 윤리와 성령은 긴밀하게 연합되기보다는 미묘하게 대립된 주제로 다루어져 왔다. 그래서 더욱 이 시대의 대표적인 기독교 윤리학자가 성령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하우어워스는 폭력과 불의와 거짓이 난무한 세상에서 사랑과 인내와 용기라는 하나님 나라의 급진적인 윤리를 살아 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하나님의 숨인 성령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죽어 가는 교회가 다시 살아나, 황폐한 이 땅에 생명을 불어 넣는 사명을 회복하는 길도 “오소서, 성령이시여!”라고 기도하는 것이라는 강한 도전을 던진다. – 박영돈 (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교수)
최고의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와 최고의 설교자 윌리엄 윌리몬은 또 하나의 강력한 메시지를 ‘죽어 가고 있거나 이유 없이 부산’한 이 시대의 교회에 던지고 있다. 이 책은 미국 교회를 위해 쓰였지만 한국 교회에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삼위일체론의 시각에서 성령을 설명한 부분이 그렇다. 한국 교회의 성령론이 지나치게 경험론적이고 은사 중심적으로 치우쳐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이 책의 출간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성령을 사모하는 사람, 성령을 꺼리는 사람 모두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 김영봉 (와싱톤사귐의교회 담임목사)
스탠리 하우어워스와 윌리엄 윌리몬의 만남은 언제나 큰 배움의 기회와 기쁨을 선사한다. 『성령』에서 이들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듯이, 성령께서 교회 공동체와 제자도의 삶을 통해 일상에 현존하고 계심을 설득력 있고 아름답게 보여준다. 두 사람 사이의 오랜 협력과 깊은 신뢰와 기품 있는 배려는 이 책을 탄생시킨 원동력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고립과 불신과 경쟁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우정을 다져 주는 성령”을 생생히 증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 김진혁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조교수)
하나님을 아는 것이 구원의 핵심이다. 하지만 인간의 지적 능력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그분을 오해하고 왜곡하며, 이것은 곧 교회의 훼손과 성도의 일탈로 이어진다. 이런 신학적, 신앙적 장애의 중심에 ‘성령’이 있다. ‘성령의 세기’라고 칭할 만한 오늘날, 성령에 대한 신학적 관심과 대중적 열정이 대단하고 그 결과도 경이롭지만, 동시에 부정적 결과도 만만치 않다. 이 시대 거장인 스탠리 하우어워스와 윌리엄 윌리몬은 성령을 삼위일체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또 성령의 임재 속에서만 교회가 존재한다고, 그리고 오직 성령 안에서만 구별된 성도로서 종말의 희망을 살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성령론의?핵심을 이토록 정교하고 감동적이며 탁월하게 서술한 역량에 탄복하며, 성령을 사모하는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 배덕만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연구원)
교회가 길을 잃고 세상과 타협하여, 혼란에 빠진 이 시대만큼 신실한 가르침이 필요한 때도 없다. 신뢰할 수 있는 두 분의 스승이 성령에 관해 쓴 이 책은 교회에게 성령에 관한 가르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새롭게 배우고 뉘우치며, 선교적인 동력을 회복하라고 요청한다. – 월터 브루그만 (『예언자적 상상력』 저자)
참으로 오랜 세월 동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을 무시해 왔으며, 심지어는 거리끼는 존재로 여겨 왔다. 하우어워스와 윌리몬은 그런 사람들에게 위로자이신 보혜사를 새롭게 발견하라고, 그래서 그리스도의 교회와 세상을 새롭게 하는 길로 나아가라고 외친다. 이 책은 성령을 잃어버린 현대 그리스도인들을 치유하는 데 꼭 필요하고도 유익한 책이다. – 로저 올슨 (『오두막에서 만난 하나님』 저자)
이제껏 성령은 삼위일체 안에서 하찮은 위치에 있는 것으로 대접받아 왔다. 신실하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두 사람이 지은 이 책은 하나님의 영에 대한 전통적인 가르침이 얼마나 중요하고 강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 깨닫게 해준다는 점에서 참 소중하다. – 토니 존스 (『하나님이 예수를 죽였는가?』 저자)
성령론을 흥미롭고 이해하기 쉽게 개괄하는 이 책에서 두 저자는 힘을 합쳐 풍성한 논의를 펼친다. 이들은 광범위하고 핵심적인 교리적 지식 (두 개의 역사적인 신조에서부터 웨슬리 유산, 현대 오순절 운동에 이르기까지)을 하나로 모아 다듬는다. 한편으로는 통찰력을 발휘하여 예전 (禮典)에 적용하기도 하고 새롭게 성경을 주해하며, 기억할 만한 증거들을 살피고 목회의 측면도 열정적으로 강조한다. 이 모든 논의를 이끌어 가는 힘은 두 저자가 함께 드리는 “오소서, 성령이시여”라는 기도다. – 리키 D. 무어 (리 대학교 종교학부 부학장)
○ 독자의 평
스탠리 하우어워스 (Stanly Hauerwas)는 오늘날 뛰어난 윤리학자이다. 그의 성령이라는 책이 신간으로 번역되어 나왔다길래 아낌없이 책을 구입하였다.
짧은 두께의 책이라 부담도 없을 것 같아 집어 읽기 시작했지만, 역시 성령이라는 쉽지 않은 주제로 인해 간단하게 읽을 만한 책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성령에 대한 책은 둘중 하나였던 것 같다.
성령의 충만함에 대한 다분히 영적이거나 또는 조직신학적으로 적용점을 윤리적으로 풀어낸 그런 책말이다.
그래서 저자가 어떤 교단출신이며 어떤 학교 출신인가에 따라 성령에 대한 개념부터가 완전히 달랐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성령에 대한 다분히 영적이며 교리적인 것에 치중하기보다, 공동체적이며 현실적이다.
하우어워스는 지금까지 성령에 대해서 우리가 너무 관심이 없었음을 신경의 역사를 통해서 고찰하고있다.
말하자면 기독론에 치중한 나머지 성령께서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너무 등한시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역사를 통해서 성령은 다분히 어떤 영적 존재나 힘으로 이해해왔고, 목회적으로는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의 전유물이거나 영적계시의 무질서한 존재로 전락시켜왔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삼위일체는 과연 성령에 대해서 어떤 것을 말하고 있는가?
저자는 성령을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알려주며 예수의 몸위에 임하시는 분으로 소개한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은 성령이 그 몸위에 강림함으로 인해 우리가 삼위일체의 삶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고 밝힌다.
그러므로 성령은 교회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보여주며, 하나님을 계시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삼위의 하나님은 성령안에서 교제를 통해서 하나되신다.
“성령은 우리가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분 곧 절대적으로 관계적 실체인 우리 구주를 역
사속에 실재하게 해주는 삼위일체의 위격이다.”(46)
철저히 하나님은 관계적이시며 그 사랑의 관계안에서 삼위일체는 존재한다.
그리고 그 사랑의 최고의 절정은 십자가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저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타난 삼위일체 하나님의 현현을 이렇게 표현한다.
“성령은 십자가 위에 계신 예수를 가리켜 보이며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몸위로 임한다.
예수를 향한 아버지와 성령의사랑과 아버지와 성령을 향한 예수의 사랑은 십자가에서 예수를 구해 내길 포기한 사랑이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품었던 그 사랑이 그분을 십자가로 몰아갔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대문에 우리는 서로 사랑할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삼위일체의 사랑은 경이로운가 하면, 혹독하고 두렵기도한 사랑이요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에서 드러났듯이) 고난당하는 사랑이며 깨뜨릴수 없는 사랑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한가운데서 하나님이신 사랑에 참여하는 엄청난 축복을 누린다.” (54-5)
두 번째 장에서 저자는 성령과 교회는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살핀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의 능력을 통해 우리에게 현존하신다. 성령께서는 예수의 몸위에 머물러계셨는데 그 몸이 교회로 드러난다. 성령께서는 예수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명을 갖으며 서로 화해를 이룰수 있도록 한다. 성령께서 임하시는 교회는 그자체로 거룩하다. 우리의 현실을 품어주시며 치유하신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령을 힘입어 분열과 갈등 상처로 가득한 세상을 하나되게 하고 화해하게하는 역할을 감당한다.
세 번째 장에서는 거룩함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다.
성령께서는 거룩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저자는 독특한 표현을 썼다.
성령께서는 ‘다른 세상’에서 오신다는 것이다.(99) 하지만 그 다른 세상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임하신다.
그러므로 저자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는 다른 세상 즉 삼위일체로 거하시는 하나님의 생명에 넘치는 세상에 참여하게 된다고 말한다.
성령께서 우리의 세상에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거룩함에 참여하는 하나님의 백성도니 그리스도인의 삶은 거룩함 그자체이다.
저자는 웨슬리 형제의 ‘완전 또는 완전 성화’를 소개한다. 그리스도인들의 성화의 완전함이 가능할까.
이들이 말하는 성화는 우리의 마음과 삶을 다스리는 충만하고 순전한 사랑을 말한다. 그래서 어둠이 밀려나가고 죄가 밀려나가며 거룩함을 향한 열망이 바로 완전 이라고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거룩함의 열망 내지는 거룩함은 개인이 성취하는 없적이 아님을 말하며 공동체가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하심을 비추는 것이라고 한다. 거룩하다는 것을 공동체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성령을 힘입어 거룩하게 된다는 ㄱ서은 폭력과 거짓으로 가득한 세상안에서 우정을 나누게 해주는 진리의 공동체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거룩하다는 것은 우리가 서로 잘아는 사람들을 의지해, 함께 삶을 가꿔가는 공동체의 일부가 된다는 것이다.(113)”
저자의 거룩함에 대한 의미에 동의한다.
교회 공동체에 임하신 성령의 임재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해진다.
그리고 그 공동체는 세상의 모든 분열과 시기와 다툼을 화해하게 하며, 거짓과 폭력으로 가득한 세상을 사랑을 나눈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그자체로 거룩하다. 그들이 쓰는 언어는 세상과 ‘다른’언어이며 이들이 하는 행동은 세상과 ‘다른’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