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콜롬바(St, Columba)의 생애와 영성(11)
성 콜롬바와 아이오나 공동체의 영성
아이오나 공동체의 설립과정: 조지 맥도널드(George MacDonald)
서부 섬사람들의 켈트적문화의 영성은 해체되고, 제도종교의 신학은, 하나님의 형상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전적으로 인간에게서 지워지게 되었다는 확신과 함께하는 칼빈주의의 극단적 형태로 표현되어 왔다. 한인이민교회도 서구 그리스도교 주류의 전통안에서 모든 사람의 마음에 본질적선이 있음을 부인한 칼빈적, 아우구스티누스적인 영성의 흐름에 영향을 받았다. 19세기 스코틀랜드에서 극단적인 칼빈주의에도 불구하고 켈트영성의 새로운 표현 형태를 찾았다. 카마이클이 서부 섬들에서 점차적으로 살아지는 전통속의 기도들을 수집했던 것 같이 거의 같은 시기에 조지 맥도날드(George MacDonald, 1824-1905)는 이러한 고대영성의 흐름을 짧은 이야기와 소설의 형태로 들어냈다.
그는 오래된 켈트 이야기들과 서부의 전설들을 정립하였고, 그의 창작작업을 통해 표현하였던 영성을 구체화 하였다. 그의 많은 이야기들은 특별히 젊은층들이 많이 읽었다. 상상력으로 꾸며진 그의 작품들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와 모든 창조 안에서 보일 수 있는 내적 통찰력을 다시 찾기 위한 노력, 맥도날드는 영성의 많은 부분을 그의 스승인 존 스코트(John Scott)의 영향을 받았다. 스코트는 9세기의 위대한 철학자였으며 모든 생명의 마음가운데 있는 빛은 하나님이라고 가르친 에리우게나의 영향을 받았다. 스코트는 주장하기를 “어디에서나 하늘과 땅,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사다리가 발견 될 수 있고 영원한 빛의 천사들은 그 사다리 위를 오르 내리락한다.” 맥도날드의 가장 잘 알려진 소설 가운데 하나는 ‘공주와 마귀’(1872)이다. 켈트 영성의 주된 특성의 하나인 창조의 본질적 선함에 대한 믿음은 그의 작업안에서 두드러진다. 하나님의 생명은 생명의 중심부에 있는 심장의 박동과 같이 그 안에서 고동치며 모든 것을 유지하기 때문에 맥도날드의 공주는 창조의 영혼을 깨닫고 보게 된다.
형태와 색채, 냄새와 소리를 통하여 아기가 엄마를 알아보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우주를 통해서 알게 된다. 맥도날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위해 성서와 교회를 바라볼 뿐 아니라 우리의 종교 유산과 마찬가지로 창조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했다. 켈트영성에서 창조의 선함에 대하여 강조할 때 악의 세력에 대하여 낭만적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다. 켈트영성에서 되풀이 되는 희망은 어두움이 하나님의 본질적 빛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이므로 맥도날드는 마지막에서 심지어 사탄까지도 회개하여 천사의 역할을 회복할 것을 믿도록 한 것이다. 켈트영성 안에서 어머니의 가슴은 하나님의 가슴으로 형상화 하거나 혹은 하나님의 사랑은 아버지의 사랑으로 받아 들여 지고 있다. 맥도날드의 이야기는 할머니를 신적인 것으로 다시금 나타내기 위하여 여성적 아름다움과 지혜의 이미지로 사용한다.
맥도날드의 경우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모두 하나님의 이미지를 반영한다는 깨달음은 문자적이고 신학적인 표현에서와 마찬가지로 실천적인 측면에서도 발전되었다. 그의 스승인 스코트는 영국에서 여성고등 교육기관인 벨포트 단기대학 창시자중 하나였다. 맥도날드는 개교회 사역에서 쫓겨났고 비판받고 오해를 받았다. 그는 여생을 전통교회 주변부에서 살았다. 그러나 그의 소설들은 영국과 스코틀랜드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그의 책들은 몇 년 안에 평신도와 성직자들 모두에게 받아 들여 졌고 이로써 켈트영성이 교회로 다시 들어오게 되었다.
563년, 콜롬바가 아이오나섬에 도착하여 스코틀랜드를 복음화 시키기 위한 전진 기지로 삼고 사역을 감당한 이래, 스코틀랜드, 그라스고의 한 교구목사 조지 멕라우드(George Macleod)는 그리스도교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목적으로 1938년에 그라스고우(Glasgow)에 아이오나 공동체를 세웠다. 그는 7명의 동료들과 섬에서 생활하면서 좋지 못한 환경은 1300년전 콜롬바와 그의 동료 12명으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려고 고향 아일랜드를 떠나게 했던 영적인 힘을 보여 줄 수 있는 기회라고 믿었다. 그는 현실적인 생활과 이론적인 종교 사이의 넒은 간격을 좁혀야 한다고 믿었으며, 콜롬바의 고대 켈트교회에서처럼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한데 어우러지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스코틀랜드교회 총회의 승인을 받고 1951년에 폐허가 된 아이오나섬에서 복구사업을 시작하여 1959년에 복도, 예배실, 성물보관소를 완전히 복구한 다음해 수도원을 봉헌했다. 아이오나 공동체 회원들은 1년의 대부분을 스코틀랜드 본토, 특히 공장지대의 교구에서 일하며, 나머지 부분에는 외국에 나가 일한다. 이 공동체의 중요한 가입 조건은 여름기간의 일부를 아이오나에서 지내야하고, 공동체 예배에 참석해야 되며, 복구사업에 육체노동으로 봉사해야 한다. 회원들은 특정 의식보다는 기도와 성서 연구에 관한 공동체의 규율을 더 충실히 준수한다. 그리스도 교회 단체들은 교파를 초월해서 연령에 관계없이 몸과 마음과 영혼의 회복을 위해 세계 각처에서 방문하고 있다. 아이오나 섬에는 크고 작은 숙박시설, 식당, 편의점, 서점 등이 있어 한번에 3000명 정도의 방문객 수용이 가능하다. 아이오나 공동체의 역사적 설립과정을 연구하려면 콜롬바 영성의 뿌리가 되는 수도원 영성과 죠지 맥레오드의 영성에 대해서 재검토 연구하여 하나님과 그분의 세계에 대한 지식을 확장해야 한다. 아이오나 공동체 수칙(Life at Iona)는 “삶의 순결성(purity of life), 하나님을 사랑하기(love of God), 공동체 수칙에 대한 신실성(faithfullness to the monastic rule)”으로 표기한다.
아이오나 공동체의 특징중의 하나는 수도원정신에 입각한 영성이었다. 켈틱교회가 부흥하기 시작한 6세기부터 수도원의 발전도 병행되었는데, 영국성지순례의 멕카인 아이오나(Iona), 그렌도로우(Glendalough), 린디스판(Lindisfarne), 성데비스(St. Davis), 위트혼(Whithorn) 등의 유명한 성지는 모두 수도원이 있었던 곳이다.
노정언 장로
한남·촬스슈터트대학 신학석사논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