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희망을 주는 교회(2) 행 8:4-8
희망을 주는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요? 오늘 본문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의 모습입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초대교회는 그 당시에 절망 속에서 희망을 주는 교회였고, 또한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교회였습니다. 대체 초대교회의 모습 즉 희망을 주는 교회의 모습은 어떠하였는가?
첫째로 희망을 주는 교회는 ‘행하는 표적이 있는 교회’입니다. 본문 5절과 6절에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표적이라고 하면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시각장애자가 눈을 뜨는 것만 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표적을 자주 봅니다. 어디에서 보는가? 병원에서 봅니다. 암환자가 치유되어지고, 배가 아픈 환자가 수술을 하여 낫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표적을 재해석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에 병을 낫고 치유하는 것만이 표적이라고 본다면 우리는 표적을 보기 위하여 교회에 올 필요가 없습니다. 병원으로 가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표적을 재해석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표적은 대체 무엇입니까? 당시에 빌립의 말씀을 듣고 따랐더니 표적이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이 표적이 오늘날 어떻게 재해석되어야 하는가? 이 표적은 바로 “사람의 변화”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말씀을 듣고 변화되어진다고 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진짜 표적입니다. 많은 위대한 성자들이 병이 치유되는 표적을 받고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그들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표적이 아닌가요?
사랑하는 여러분들! 여러분들 자신이 세상 사람들에게 기적이 되어야 합니다. “저 사람이 교회 다니더니, 예수 믿더니 완전히 변했어!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바뀔 수가 있지! 그렇게 거칠고 악하던 사람이 저렇게 순한 양처럼 변했어~! 기적이다. 기적이야!” 또 어떤 분은 “내 남편이 교회에 나오고 예배드릴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저 사람은 죽어도 교회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교회에 나와요. 기적이지요, 기적!” 이게 표적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일에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고 나의 삶이 변화되어진다고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짜 표적이 됩니다. 병이 낫는 것이 표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방언을 하는 것 표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업을 회복시켜주는 것 표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진정한 표적은 사람이 변화되는 것입니이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표적은 어떤 표적입니까? “행하는 표적”입니다. 그런데 이 표적이 어떻게 나타났는가요? “빌립의 말씀을 듣고 행할 때에 표적이 나타났다” 이것이 희망이 있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둘째로 희망을 주는 교회는 ‘생명이 살아 자유롭게 꿈틀거리게 하는 교회’입니다. 6절에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 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빌립이 선포한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7절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귀신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이 귀신입니다. 돈에 붙잡혀 살고, 명예에 붙잡혀 살고, 과거에 붙잡혀 살고, 질투에 붙잡혀 살고, 상처에 붙잡혀 살고 있는 모든 것이 다 귀신에 잡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런 것으로부터 자유케 해주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성령이 임하면 이런 역사가 나타난다고 하였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눅 4:18-19) 이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자유함입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교인을 만드느라고 교인들을 구속하고 억압을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교회는 성도들에게 진정한 자유함을 주어야 합니다.
본문에 빌립이 복음을 전파하니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믿으면 변해야 합니다. 돈돈하던 사람이 바뀌어서 지갑을 열고 베풀고 나누는 변화가 있어야 하고, 오직 일일만 하던 사람이 가족을 돌보는 변화가 있어야 하고, 자기 밖에 모르던 사람이 주변을 살피는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돈에 붙잡혀 있었고, 일에 붙잡혀 있었고, 자기에 붙잡혀 있던 사람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유케 되는 역사가 바로 우리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결국 지금까지 귀신에게 붙잡혀 있던 삶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유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깨닫고 나서 무엇이라고 말해야하는가? “내가 귀신에 홀렸어~ 내가 귀신에게 씌였어~”라고 말을 해야 합니다. 이게 자유함의 상태입니다.
또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요? 7절 후반절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입니까? 부족한 사람이고, 온전치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말씀을 통해서, 교회를 통해서 이런 사람들이 살아 꿈틀거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교회에 와서 주눅지마세요 그렇다고 교만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단지 가진 것이 없어도, 배운 것이 없어도 주눅들 필요가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연약함을 하나님께서 담당해주셨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자유해도 됩니다. 희망이 있는 교회는 교회에 와서 자유함을 느끼는 교회입니다. 교회에 와서 구속함을 느끼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경직된 교회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차봉사를 합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한다고 하면 이미 희망이 사라진 교회입니다. 그러나 기쁘게 감사함으로 시작되어진 봉사는 그 속에 희망이 있는 교회입니다.
셋째로 희망을 주는 교회는 ‘지역에 기쁨을 주는 교회’입니다. 8절에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이 본문을 자세히 봐야 합니다. 복음을 들은 사람들에게만 적용되어진 기쁨이 아닙니다.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말씀을 듣고 변화되고 자유함을 받아서 그들만 기쁜 것이 아니라 그 성에 큰 기쁨이 되었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이 예수 믿어 변화되어지면 교회가 행복하고, 여러분들만 행복합니까? 그렇지 안아야 합니다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가족과 주변사람들이 기뻐하고 행복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왜 한국교회가 이렇게 욕을 먹고 있는가요?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신앙생활이 주변사람에게 특히 가족과 친지들에게 기쁨을 주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독선과 이기심 그리고 맹목적인 신앙이 주변사람들에게 기쁨은 커녕 분노를 주었고, 희망보다는 절망을 주었기 때문에 교회에 대하여 비난을 퍼붓는 것입니다.
이제 한국교회가 이민교회가 다시 회복하려면 우리 그리스도인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이 세상의 희망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교회가 상식적이어야 하고, 교회가 이웃을 사랑하고, 교회가 세상을 품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삶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변화되는 것을 보고 우리 가족들이 기뻐해야 합니다. 내가 변화되는 것을 보고 우리 이웃이 감탄해야 합니다. 희망을 주는 교회가 되는 최고의 비결은 저와 여러분이 예수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변화되면 세상에 희망을 주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송상구 목사(시드니예일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