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그리스도인의 미덕
톰 라이트 / 포이에마 / 2010.8.6
– 죽어서 천국 가는 것만이 그리스도인의 지상과제인가? 회심한 후에도 성품은 왜 중요한가?
회심한 뒤 영적 성장과 성품 가꾸기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 책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사후 천국에만 마음을 빼앗겨 ‘지금 여기’에서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현실을 비판한다. 회심은 거쳐야 할 단계이지 목표가 아니다.

이 책은 회심한 그리스도인이 지금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창조와 구속의 목적 안에서 설명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논할 때 빠지기 쉬운 개인의 행복 대 규율이라는 기존 패러다임의 한계를 뛰어넘어 믿음, 소망, 사랑으로 집약되는 기독교 특유의 미덕과 성품 개발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리스도인의 미덕이 제2의 천성처럼 몸에 배어 있는 사람들만이 혼란스럽고 위험한 이 시대가 절실히 요구하는 지혜로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개인은 물론 공동체 전체가 그리스도인다운 성품을 개발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야 할 이유와 목적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 목차
머리말
1장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2장 성품의 변화
3장 제사장과 통치자
4장 다가오는 하나님나라와 준비된 백성
5장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6장 세 가지 미덕, 아홉 가지 열매, 그리고 한 몸
7장 행동하는 미덕 : 왕 같은 제사장
8장 미덕의 순환
추천도서
주석

○ 저자소개 : 톰 라이트 (Nicholas Thomas Wright, N. T. Wright)
시대를 선도하는 신약학자, 초기 기독교 역사에 정통한 역사가, 목회 현장과 성도들의 삶에 깊이 관심하는 사제이다. 1948년 영국에서 태어나 옥스퍼드에서 수학하고(BA, DD) 케임브리지, 맥길,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신약성서학을 가르쳤으며, 웨스트민스터 참사회원 신학자이자 영국 성공회 더럼 주교를 역임했다. 2010년부터 스코틀랜드 소재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교에서 신약학 및 초기 기독교 역사를 가르쳤고, 2019년에 자신이 수학했던 옥스퍼드 위클리프 홀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는 스코틀랜드의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에서 신약학 및 초기 기독교 교수로 있다.
‘기독교의 기원과 하나님의 문제’를 다룬 6부작 시리즈로 학계에 큰 영향을 끼치며 ‘역사적 예수 연구’와 ‘바울 신학’ 분야의 독보적인 학자로 인정받았다. E. P. 샌더스, 제임스 던과 더불어 이른바 ‘새 관점’을 대표하는 이로 알려져 있다. 모든 사람이 성경 읽기를 즐기고 유익을 얻도록 신약성경 각 권을 풀어낸 ‘에브리원 신약 주석 시리즈’를 펴냈다. 가장 대표적인 저서인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 (1992),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1996),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 (2003), ‘바울과 하나님의 신실하심’ (2013, 이상 CH북스 역간)은 기독교의 기원과 하나님에 관한 질문을 다룬 전 6권 시리즈 총서 (SPCK / Fortress Press)중 첫 네 권이다.
그 밖에도 ‘성경과 하나님의 권위’ (2011, 새물결플러스 역간), ‘본래의 예수’ (1996), ‘톰 라이트 바울의 복음을 말하다’ (1997, 에클레시아북스 역간), ‘언약의 절정’ (1992), 에브리원 성서주석시리즈(IVP 역간),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 ‘광장에 선 하나님’, ‘이것이 복음이다’, ‘혁명이 시작된 날’, 그리고 그리스-로마 세계 속에서 초기 기독교의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실체를 재구성한 역작 The New Testament in Its World: An Introduction to the History, Literature, and Theology of the First Christians (비아토르 출간) 등 학문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저작을 왕성하게 내놓고 있다.
– 역자 : 홍병룡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IVP 대표 간사로 일했다. 캐나다 리젠트 칼리지와 기독교학문연구소, 호주국립대학에서 공부했다. 옮긴 책으로 《전도, 그 뜻밖의 모험》, 《세상을 바꾸는 작은 예수들》, 《소명》, 《완전한 진리》, 《기독교 교리를 다시 생각한다》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제임스가 내 집무실 문을 두드린 것은 자기 교회의 교인들과 친구들로부터 만족스러운 대답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답변은 하나님이 사람들을 제각기 독특한 분야로 부르셨다는 것이 전부였다. 예컨대, 사람에 따라 전임 목회자로, 교사로, 의사로, 선교사로, 또는 이 가운데 두어 가지를 겸해서, 그리고 이와 비슷한 다른 일로 부르셨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중에 제임스에게 맞는 일은 없었다. 그는 컴퓨터공학 박사과정을 밟는 중이어서 다양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면 이 모든 지식과 기회는 소위 ‘영적인’ 문제와 무관한 것일까? 그저 몇십 년을 그럭저럭 살다가 죽어서 천국에 가면 그만인가? 물론, 그 어간에 자투리 시간을 내어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길을 가자고 설득하겠지만. 정말 이게 전부일까? 당신이 믿은 뒤에 그리고 마침내 죽어서 천국에 가기 전까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 p.19-20
우리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타고난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는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함이고, 그것은 예배를 통해 그리고 넓은 의미의 선교를 통해 이루어진다. 아울러 그것은 예수를 따르는 것을 통해 이룰 수 있다. 성령의 사역으로 인해 우리 안에 성품의 변화가 일어날 때, 우리는 사실상 ‘규율을 지키게’ 될 것이다. 단, 밖에서 부과한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우리 속에 형성된 성품으로 인해 그렇게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한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하고 진정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단, 평생 열심히 훈련받은 그 항공기 조종사와 같이 내면 깊숙이 형성된 변화된 성품이 작동하면 자발적인 결정과 행동으로 열매를 맺는 삶을 살 것이다. — p.56
만일 예수를 따른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겸손과 박애와 인내와 순결의 모범을 보이지 않는다면, 결코 확신을 품고서 하나님에 관해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미덕들은 특별한 신자들에게만 주어진 선택 사항이 아니라, 모든 왕 같은 제사장이 날마다 마땅히 ‘입어야’ 할 옷과 같다. 만일 왕 같은 제사장의 소명이 하나님을 세상에 반영하고 또 거꾸로 세상을 하나님에게 반영하는 일이라면, 미덕들로 ‘옷 입는’ 일을 진지하게 여길 때에만 그 소명이 유지될 수 있다. — p.408-409

○ 출판사 서평
“지금 여기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와 동시대를 호흡하며 사는 영적 거장들의 저서들 중 묵직한 주제 의식을 보여주는 책만을 선별하여 묶은 ‘우리 시대 거인들의 발자국’ 시리즈 제1권. 죽어서 천국 가는 데에만 마음을 빼앗겨 이 땅에서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현 세태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 톰 라이트의 역작! 행복과 규율의 한계를 뛰어넘어 그리스도인다운 성품을 기르는 진정한 도덕적 삶으로의 초대! 그리스도인의 삶과 성품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공동체 전체가 한 몸을 이루어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존재가 되도록 인도하는 훌륭한 안내서이다.
이 책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요 신학서적과 대중서를 넘나드는 왕성한 집필 활동으로 신학자들과 평신도들에게 지적, 영적 도전을 안겨주는 톰 라이트가 앞서 출간한 《톰 라이트와 함께하는 기독교 여행》,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의 후속편으로 집필한 것이다. 앞의 두 책이 초대 기독교의 기본 원리를 소개하고,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희망이 ‘새 하늘과 새 땅’에 진입하는 것임을 설명했다면, 이 책에서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희망이 그저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고 부활하여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세계, 곧 새 하늘과 새 땅에 진입하는 것이라면, “이 땅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결국 인간의 존재 목적에 관한 물음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톰 라이트는 창조와 구원의 목적 안에서 이 질문에 접근하고 그 답을 찾아간다. 책임과 소명을 동반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 창조되었고 구속받았는가” 하는 창조와 구원의 목적 안에서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가?
회심하고 믿음을 갖게 된 그리스도인을 바로 하나님나라로 옮기기 않으시고 그대로 이 땅에 남겨두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그 이유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는 존재가 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존재가 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필연적으로 그리스도인의 행실이라는 문제를 끄집어내고, 이 문제 앞에서 사람들은 대개 두 진영으로 나뉘어 충돌한다. 한쪽은 규율을 들이밀고, 다른 한쪽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바에 충실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런 기존 패러다임의 한계를 뛰어넘어 미덕과 성품이라는 화두를 꺼내들고 누구든 회심한 후에는 기독교 특유의 미덕을 실천함으로써 그리스도인다운 성품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현명한 도덕적 결정을 내리려면 ‘규율을 아는 것’이나 ‘우리가 진정 누구인지를 깨닫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기독교 특유의 미덕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마치 꾸준한 훈련을 통해 연마한 훌륭한 조종사의 자질이 제2의 천성처럼 몸에 밴 사람만이 위기의 순간 현명한 판단력과 용기와 지혜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변화된 성품이 우리로 하여금 자연스러운 열매를 맺게 한다고 강조한다.
– 성품은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는다
저자는 성품을 맛있는 막대 사탕에 새겨진 글자에 비유한다. 사탕에 새겨진 이름은 사탕 가장 중심에 있어서 어느 쪽을 깨물어 먹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성품도 마찬가지이다. 성품은 누군가의 몸에 완전히 배어 있는 생각과 행동의 패턴이므로, 어느 쪽을 보더라도 한결같은 모습을 보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는 성품의 반대말이 ‘피상성’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막대사탕의 이름이 사탕 중앙에 저절로 새겨지는 것이 아니듯, 성품도 회심만 하면 신자의 인격 안에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으로 주목한 성품상의 자질들은 결코 자동적으로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는 성품을 개발하는 문제를 악기를 배우는 것과 제2의 언어를 습득하는 것에 비유한다. 그냥 피아노 앞에 앉기만 하면 베토벤의 소나타를 즉석에서 연주할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 모스크바행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곧바로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할 수 없는 것처럼,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서구형 문화에 길들여진 평범한 젊은이가 단 한 번의 기도로 마음과 정신과 몸의 순결을 획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진지하게 예수를 따르려는 사람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대변되는 기독교 특유의 미덕이 제2의 천성처럼 자연스럽게 몸에 밸 때까지 부단히 노력하고 연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성품을 개발한다는 뜻이다.
–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라
그렇다면 우리가 성품의 꾺화를 통해 이루어야 할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인간이 창조시에 부여받은 과업을 성취하는 일이고, 이 과업은 바로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인류에게 주어진 창세기 1장의 명령과 신약성경에 나오는 새로운 인류에 대한 약속은 모두 통치자와 제사장이 되라는 이중적인 소명을 내포한다. 저자는 이 소명이 교회의 우선적인 두 가지 과업인 예배와 선교로 구현된다고 주장한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은 우리의 ‘믿음’을 입으로 고백하고, 우리의 ‘소망’을 기뻐하고, 우리의 ‘사랑’을 뚜렷이 표출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예배의 삶 자체가 집합적인 형태의 미덕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예배하는 삶은 기독교의 핵심 미덕인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표현할뿐더러 그것들을 강화시킨다. 예배라는 활동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의 삶과 증언에 필요한 모든 것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이처럼 예배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과 기본을 이루는 동시에, 기독교 특유의 미덕과 습관을 형성시키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예배의 삶은 자연스럽게 선교의 삶으로 이어지며 선교의 삶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저자는 미덕이 가진 내적 역학 중에 하나가 바로 자기 자신에게서 눈을 돌리고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고, 선교를 통해 세상을 내다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배와 선교는 마치 심장을 공유하는 샴쌍둥이처럼 삼위일체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이 창조한 세계, 특히 그분의 형상을 지닌 피조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공유하는 동시에 미덕을 실천하도록 신자들을 훈련시킨다.
저자는 기독교의 도덕이라는 높은 소명도 결국은 예배와 선교라는 더 높은 소명을 이루는 데 필요한 시녀와 같다고 말한다. 따라서 예배와 선교가 그리스도인의 제2의 천성이 되려면, 기독교 특유의 미덕과 성령의 열매, 공동체 전체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려는 열정, 한 몸 안에 있는 다양한 소명을 기뻐하는 일 역시 제2의 천성이 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예배는 겉으로만 드리는 형식적인 몸짓으로 전락하고, 선교는 한낱 이데올로기의 산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회심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며 산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반영하는 삶을 계속 훈련한다는 뜻이라는 저자의 말은 죽어서 천국 가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이 땅에서의 삶에는 무심한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 크나큰 도전을 안겨준다.
○ 추천평
톰 라이트는 이 책에서 공동체 안에서 오랜 훈련과 습관을 통해 성품을 개발하는 ‘덕의 윤리’가 복음서 및 서신서가 가르치는 윤리라고 논증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옛 성품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이고 삶이며 윤리임을 보여준다. 열매 없는 삶과 신앙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괴로움을 당하는 우리 모두와 한국 교회에 커다란 가르침을 줄 것이다. -강영안, 서강대 철학과 교수
믿음은 한순간의 사건이기도 하지만 일평생 지속해야 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믿음은 영혼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몸의 문제이기도 하다. 믿음은 또한 내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삶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을 사건으로만, 영혼의 문제로만, 혹은 내면의 문제로만 생각하는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 이 책을 통해 잃어버린 신앙의 균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영봉, 워싱턴한인교회 담임목사
톰 라이트의 지혜와 박식함이 돋보이는 또 하나의 역작. 이번에는 미덕 이론을 신약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의미와 연결시켜 탐구했다. 이 중요한 책이 신학 전공자나 일반인 모두의 손에 들려지기를 바란다. -스탠리 하우어워스, 듀크 대학교 신학부 교수
톰 라이트는 오늘날에 팽배한 ‘행복’ 대 ‘규율’이라는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진정한 도덕적 삶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예수가 누구인지 또 그분을 좇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바른길로 인도할 훌륭한 안내서이다. – 티머시 조지, 비슨 신학교의 초대 학장

○ 독자의 평 1
1. 요약
책의 영문 원 제목인 ‘After You Believe’가 이 책의 성격을 잘 말해준다. 저자는 예수를 믿은 이후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나타나야 하는 실제적인 변화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저자가 강조하는 부분은 ‘미덕의 계발을 통한 성품의 온전한 변화’로, 이 성품의 변화는 그리스도인들의 원래 목표인 ‘제사장과 통치자’로서의 삶을 살도록 만드는 데도 필수적이라는 것.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이런 미덕들을 계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을 제시해, 실제적인 훈련에의 도전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2. 감상평
제법 두꺼운 책이었지만, 전반부의 내용 – 왜 기독교인들에게 ‘윤리적인 삶’이 필요한가를 설명하는 -이 상당히 길게 설명되고 있어서 정작 중요했던 것 같은 8장의 내용이 상대적으로 짧아 보여 아쉬웠다. 물론 저자가 속한 서구 기독교 전통에서 오랫동안 논쟁거리가 되어 왔던 믿음(혹은 은혜)와 행위 사이의 ‘대립구도’를 해소하는 것이 책의 논지를 전개하는 데 상당히 중요하게 느껴졌을 것이라는 부분은 이해도 되지만, 그래도 좀처럼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해소되지 않는 게 좀 답답하긴 했다.
하지만 그런 기다림 끝에 만나게 된 8장의 내용은 앞선 답답함을 잊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성경과 이야기, 본보기와 공동체의 순환 고리를 통한 미덕 계발, 나아가 성품의 변화라는 저자의 로드맵은 정통적인 신학적 틀을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풍성하고 실천적인 함의들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단지 이런 것이 있다고 소개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의 실제적인 예들을 언급하고 있는 부분도 마음에 들었다.
○ 독자의 평 2
사후에 천국에 가는 것만이 그리스도인의 지상과제인가? 회심한 후에도 성품은 왜 중요한가? – “이제야 고백하건대, 애당초 이 책을 덥석 받아서 읽는 게 아니었다.”
이 책을 알게 된건 작년 7월이었다. 그러니까, 그렇게도 무덥고 길기만 했던 여름날의 한 복판에서 나는 470여 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을 받아보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 길고 긴, 끝날 것 같지 않던 여름을 나는 이 책과 같이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벌써 해가 바뀌어서 5월이다.
책을 읽는 내내 기쁨과 흥분, 설렘 그리고 근심 가운데 있었다.
본래 이 책의 저자와의 인연(?)이 남달리 깊었다. 제일 처음 접했던 예수와 관련된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인물이었고, 저자가 쓴 책에 흥미가 많아지면서 나오는 신간마다 구입해서 읽어보던 즈음이었다. 그런 나에게 어떤 미처럼 다가온 책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미덕” 이었다.
– 읽긴 읽었는데 어떻게 정리하지..?
막상 책을 다 읽고 나니, 머릿속에서 맴도는 말들이 너무 많이 넘치기 시작했다. 저자가 성경 본문을 토대로 진행시켰던 신학적 주장의 흐름이 내가 알고 있던 내용과 오버랩 되기도 했고, 한국교회의 현실과 오버랩 되기도 했다.
전 세계적인 유례가 없을 정도로 단기간에 양적인 성장을 이룬 한국교회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부적으로는 곪아가고만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다. 교회 안에서만 보자면 다들 성인군자인 것처럼 살아가는 거 같은데, 왜 세상에서는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가에 대한 무거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저자가 제시하는 회심 이후의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과 자리는 나에게 커다란 도전을 주었다. 그것은 어려운 미사어구로 치장된 뜬구름 잡는 이야기도 아니었고, 한국교회 강단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비전을 가장한 전형적인 성공 지향적인 메시지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복음을 미련한 것으로 여길 것이라는 사도 바울의 기록처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 받고 미련하게 여겨질 만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 우리의 삶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결국,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다 읽은 지 수개월이 지난 지금도 머릿속에 맴도는 질문은 이것이다.
회심한 이후에, 나는 나에게 주어진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만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중고등부 학생들에게는 명문대에 가야 한다고, 청년들에게는 대기업에 입사해야 한다고, 직장인들에게는 회사의 중요한 위치에 올라가야만 한다고 경쟁 아닌 경쟁을 부추긴다. 아니, 경쟁을 부추기다 못해 온갖 성경적인 용어와 말씀구절을 끌어들이며 그들에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라고 종용한다.
마치, 구약시대에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을 지어서 하나님께서 그 안에 거하시길 바란다고 자신들의 욕심과 욕망을 채우려고 했던, 그리고 꼭 그렇게 하는 것만이 하나님께 영광된 것이라고 생각했던 어리석고 지혜가 없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말이다.
– 현실에 눈 뜬 예수, 현실에 눈 감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지난겨울 구제역이 전국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 가운데 고통 받는 축산농민들의 눈물과 탄식이 있었다. 돈과 추악한 욕심으로 얼룩진 용산재개발 가운데 화염 속에 생명을 잃어갔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가족들이 외친 비명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서울을 포함한 전국의 수많은 지역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지역 토착민들을 내쫓고 있다. 그들은 그 “개발”로 인해 모두가 살기 좋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모두”의 행복인가? “그들”만의 행복은 아닌가? 한국교회를 대표한다고 말하는 대표가 되기 위해 금권선거가 있었고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다. 그보다 먼저는 감리교단의 감독 자리를 놓고 피 터지는 선거공방전이 있었다. 정치판보다 지저분한 금권선거가 교회정치에서 발생하는 현실이다. 이런 현실이 불편한 우리는 모든 것을 덮어놓고 “은혜”라는 말로 애써 자위하고 있지는 않은가?
현 정권의 대통령은 장로교 소속 교단의 “장로” 라고 한다. 또, 상당수의 국회의원도, 정부 요직에 있는 분들도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 책을 읽고, 나는 그분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그리스도교의 가장 큰 미덕인 사랑을 신앙의 선배인 여러분들이 처한 현실에서 치열하게 삶으로 실천하고 계시나요?”
– 잃어버린 미덕을 찾아서
나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중요한 가치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그 가치는 분명 120여 년 전, 이 땅의 1세대 신앙인들이 분명하게 기억하고 실천했던 가치이다. 그것은 예루살렘의 초대교인들이 죽음을 앞에 두고도 실천했던 가치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숫자로 자신들의 우위를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비우고 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닮아가고자 했다.
벌써부터 여름을 떠올리게 되는 5월의 날씨이다.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새 책이 출간되지만 그 중 상당수는 세상에 제대로 소개되지도 못하고 잊혀지고 있다. 기독교 서적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인의 미덕’은 쉽게 읽히는 간증책도 아니고, 우리를 길들여왔던 세속적인 성공을 보장하는 내용의 책도 아니다. 어쩌면, 그리스도인들을 가장 불편하게 하는 책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더 사모할 수 있게 되고, 세속적 성공이 아닌 삶의 변화를 추구하게 된다면 더운 계절을 함께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이하는 책의 차례를 따라 요약해본 내용입니다 –
이 책은 우리에게 큰 도전과제 하나를 던져준다.
바로 “그리스도인의 성품” 이 회심 이후에 부활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말 중요하다는 것인데, 여기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적절하고 유용한 예화 하나가 필요할 것 같다. 감사하게도 책의 초반부에 이런 부분이 언급된다. 본문을 그대로 옮겨보자.
–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나는 2009년 초에 잘 알고 지내던 은행의 임원과 예기를 나누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2008년 여름에 일어난 금융 위기 때 그 중심부에 있었던 사람이다. 우리가 얘기를 나눌 즈음에 그는 사태를 진정시킬 방법을 강구하던 중이었다.
“톰, 그들이 내키는 대로 새로운 규제를 얼마든지 도입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래요, 우리가 제자리를 찾으려면 어느 정도 지침이 필요한 건 사실이에요. 우리가 너무 앞서 나가는 바람에 사람들이 엄청난 돈으로 도박을 하고 무모한 거래를 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러나 은행가나 모기지 브로커는 똑똑한 회계사와 변호사를 고용하여 정부가 요구하는 사항을 모두 점검한 뒤에, 그 시스템 뒤로 숨어들어 자기네가 원하는 것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그런 조치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러면 해결책은 뭔가요?” 하고 내가 물었다.
“성품입니다” 하고 그가 대답했다. “규율을 지키는 일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지난 세대의 진짜 문제는 성품의 중요성을 잊어버렸다는 것이죠. 온전한 인격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신뢰할 만한 때에만 시스템이 건강할 수 있습니다. 규율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믿을 만한 사람이기 때문에 시스템이 건강하게 굴러가는 겁니다.’
성품이 바탕이 되어야 시스템이 건강하게 동작한다라? 꽤 그럴듯하고 매력적인 주장으로 들린다. 게다가 사회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라는 생각도 하게 되는데….
혹시 모를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미리 전제하자면, 이 책이 언급하는 성품은 어떤 윤리적 기준이나 도덕률을 말하지 않는다. 저자는 그런 접근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오히려, 신자가 되는 목적을 죽어서 가는 천국이라고 성경을 좁게 해석한 결과, 신양 성경이 그리는 더 풍성하고 희망에 찬 그림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제 그 그림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 성품의 변화
먼저 저자는 상당한 분량을 들여서 현대 기독교가 오해하고 있는 개념을 설명한 뒤 다음과 같은 신약성경의 비전(?)을 제시한다.
1. 목표는 새 하늘과 새 땅이며 인간들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서 새로운 세계의 통치자와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2. 이 목표는 그 나라를 세우는 예수님과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이루어지며, 우리는 그것을 믿음으로 깨닫고 세례로 동참하며 사랑으로 살아낸다.
3. 현세에서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연습하는 습관을 기르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세상에서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 궁극적인 실재를 바라보며 살아간다.
그리고, 이에 근거한 기독교인의 행위를 미덕의 견지에서 바라보는 입장은 다음의 세가지 역할을 한다고 기술한다.
1. 예수 그리스도를 좇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적인 행위가 어떻게 현재 우리의 사명, 정체성과 우리가 장차 받게 될 완전한 인생 사이에 유기적인 관계가 있는지 이해하도록 돕는다.
2. 이 입장은 예수를 따르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격려를 준다. 분명히 예수님은 마태복음 11장 30절에서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고 하셨다. 이는 현대에 이르러서 멍에가 없고 짐이 없다고 오해되고 있는 부분인데, 그렇지 않다. 멍에도 있고 짐도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새로운 언어의 훈련으로 말미암아 그것들이 이전과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3. 그리스도인의 행위를 미덕으로 바라보는 것은 우리가 단지 윤리적인 차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생 전체에 비추어 조망하는 시야를 가지게 한다.
– 제사장과 통치자
하나님은 창세기를 통해 우리에게 특별한 소명이 주어졌음을 말해준다. 이 특별한 소명은 바로 예배하는 일과 다스리는 일로 말할 수 있다. 이는 성경의 마지막 책에서 특별히 강조되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계 1:56)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 3:21)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계 5:9~10)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계 20:4~6)
그리고 이는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졌던 소명에서부터 이어지는 내용이다(출 19:4~6, 사61:6 참조). 이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현 시점에서 이미 구속 받은 사람들이 바라봐야 할 궁극적인 운명에 대한 비전이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 길을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자기부인의 길이라고 설명한다.(롬8:12~17)
또한, 모든 피조물이 예전의 모태로부터 새로운 피조물의 탄생을 고대하며 해산의 고통으로 신음하는 중이라고도 말한다.(롬8:22)
끝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자. 예수님은 인간에게 주어진 왕의 역할과 제사장의 역할을 온전히 완수하셨다. 저자의 말처럼 그는 이스라엘과 인간과 세계의 위대한 이야기들을 절정으로 끌어올리셨다.
그분이 우리에게 제공한 도전과 초대는 무엇이었던가?
– 다가오는 하나님나라와 준비된 백성
예수님은 산상설교를 통해 팔복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런데, 이 팔복이 인간이 무엇을 지켜야만 어떤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식의 도식으로 해석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나는 여기에 있고,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가 탄생하려고 한다. 일단 너희가 이 점을 인식하면, 이런 습관은 새 세상을 바라보며 지금 여기에서 행해야 할 마음의 습관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즉, 팔복이 말하는 정확한 의미는 새롭게 지켜야 할 규율이나 규칙들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야 할 새롭게 살아야 하는 창조적인 삶, 새 언약의 삶에 대한 내용이다.
여기에 더불어 기독교적인 관점으로 보면 미덕은 이미 시작된 종말과 현재에 속해 있게 된다. 그것은 장차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을 품으면서 현재를 미덕이 이끄는 역동성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통치자와 제사장이 될 것이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새롭게 배워야만 한다.
–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바울을 통해 기술된 서신서에 보면 아래와 같은 부분이 등장한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4,5)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골 3:9,10)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일 2:28)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2,3)
몇 가지 주목할 표현들이 등장한다.
벗는다. 입는다. 거한다.
이는 골로새서 에서도 반복되고 있는데, 저자는 이런 부분들을 통해 우리가 주목할 점은 어느 것도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특별히 신앙생활 초창기인 신도의 경우에는 더욱 더 그러하다. 왜냐하면 회심 이전에 그가 입었던 옷, 거했던 곳이 바로 “죄”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도들이 끊임없이 의식적으로 결정해야 함을 말한다. 구원의 은혜는 한 순간에 임하지만, 그 이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일정 단계를 뛰어넘기 위한 노력이다. 이를 위해 바울은 “오직 마음(지성)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권면한다(롬 12:2)
흥미로운 것은 바울이 제사장적 예배에 대한 요구로 마음의 변화를 명령하고 있다는 것이다.(롬 12:1~2)
그리고, 이 마음의 변화는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전 존재가 새롭게 되는 일의 핵심이 된다. 로마서는 마음이 어둡게 되는 것이 우상숭배와 비인간화와 죄의 문제를 낳는 핵심 요인임을 말한다.(롬1:21~ 23, 28) 이와 더불어 마음의 변화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이끈다고 말한다.(골1:9~13)
이렇게 변화된, 또 변화해가는 사람은 삶의 변화가 일어난다. 바울은 이를 여러 서신서에 기술하고 있다.(고전4:16,17 , 고전10:32~11:1 , 빌2:19~22 , 빌3:17 , 빌4:9 , 살전1:5,6 , 살후3:7~9)
바울은 상당히 많은 분량에 걸쳐서 우리의 순례자적 삶에서 바라볼 것이 하나님의 영광임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 목표에 이르는 길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변은 당시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고전적인 전통에서는 저주로 비추어지는, 그리고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저주로 비추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내용인즉 그리스도인다운 성품을 개발하는 첫 걸음은 바로 고난(환난)이라는 것이다”(약1:2~4)
이제 이 고난이 다음의 내용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보자.
– 세가지 미덕, 아홉 가지 열매, 그리고 한 몸
고린도전서 13장에는 세가지 미덕에 대해 나온다. 우리가 익히 아는바 믿음, 소망, 사랑 의 세가지가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이 세가지를 기술한 바울이 우리에게 배워야 할 언어, 연습해야 할 악기로서 기술했다고 말한다. 즉, 제 2의 천성이 되도록 끊임없이 삶의 현장에서 훈련해야만 하는 영역인 것이다.
특별히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인데 고린도전서 13장의 마지막을 빌리면,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라고 말한다.
더불어,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사랑은 결코 의무가 아니다. 우리가 짊어질 최고의 의무도 아니다. 그것은 운명이다”
사랑이 최고의 가치이고 운명이라고 말하는 영역과 동시에 고려할 부분이 있다. 바로 갈라디아서 5장에 기술된 성령의 열매가 그것이다.(갈5:22,23)
저자는 이 열매들 중에서도 제일 먼저 언급된 것이 사랑임에 주목한다. 또한, 앞에 언급한 세가지 미덕과 아홉 가지 열매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그리스도인 안에서 동시에 진행되어지는 영역으로 바라본다.
미덕 없는 열매도 없고, 열매 없는 미덕도 없다.
또한, 성령의 열매는 9가지가 각각 따로따로 떨어져서 독립적인 모습을 띄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 안에서 상호 영향을 주면서 자라난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설명 중 핵심은 어느 것도 자동적으로 자라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문 용어로 말하자면 , 이런 것들은 주입된 것인 동시에 습득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성령으로 말미암은 행동은 영적으로 미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의지에 관계없이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그들은 육체(죄)를 십자가에 못 박고 마음이 새롭게 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 성령과 성도간의 끊임없는 교제를 통해 성도는 본래 인간이 지니는 의미를 발견하게 되고 이에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제 바울은 우리에게 한 몸이라는 큰 도전과제, 새로운 인간으로 살아야 할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2:1~4)
이 위대한 권면은 에베소서 4:1~16절이 말하는 바와 연결 지어 생각해 볼 때, 우리가 이전과는 다른 삶의 모습으로 살아야 함을 확신하게 한다. 그것은 인간의 죄가 우리의 성숙의 길을 붙잡을 때, 그리스도인의 삶에 합당한 모습에서 멀어질 때, 공동체적 차원에서 함께 개발해야 할 미덕에 대한 도전이다. 이는 분명 과거와는 다른 생활을 의미한다. 이러한 공동체는 “메시아 안에서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하나로 묶는 선교적 공동체임이 틀림없다”.
– 행동하는 미덕 : 왕 같은 제사장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저자는 세가지 질문과 각각의 질문에 두 가지 논지로 진술하고 있다.
1. 현 시대에 왕 같은 제사장으로 행동한다는 것이 무슨 뜻이고, 거기에 기여하는 마음과 생각과 삶의 습관은 어떤 것인가?
2. 이 소명은 인간다운 존재가 되는 새로운 길을 제시함으로써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게 되는가? 그리고 세속적인 미덕 윤리의 고전적인 전통에서 최상의 요소들은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틀로 전통을 변혁시키면서 전통을 앞지를 방법은 무엇인가?
3. 이 소명이 특정한 습관들, 곧 그리스도인다운 행위를 창출하되 이방적인 행태는 피할 수 있게 해주는가? 달리 말하면, 왕 같은 제사장이 되라는 소명을 받들어 예수를 좇는 것이 어떻게 참으로 거룩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해주는가?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예배와 선교를 언급하고 있다. 특별히 이 두 가지가 샴쌍둥이와 같다고 말하는데,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배우며 성숙하면 할 수록 선교의 삶을 더욱 강화시켜주게 된다. 또한, 왕 같은 제사장이 가져야 할 마음, 생각, 삶의 습관은 사도행전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는 주님께서 몸소 보이신 삶을 부지런히 연습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기독교의 가장 큰 미덕은 사랑이다. 공동체는 주변의 상황을 관심 있게 바라보며 자신들의 사랑을 실천할 접점을 찾아간다. 슬퍼하는 자들과 함께 슬퍼하며,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한다. 이제 이방인들과의 접점을 생각해보자.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웃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지 생각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자신들이 속한 현장 가운데 살아가게 된다.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상황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세상의 악함에 대해서는 심판이, 하나님이 창조한 본래의 선함은 회복됨을 믿는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긴장관계 속에 놓여있으며 세상의 방법이 아닌 성령의 이끄심과 훈련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이다. 저자는 미덕 자체를 통해 하나님을 세상에 비추는 선교를 하게 되고 세상을 하나님께 비추는 예배를 드리게 된다고 말한다. 즉, 십자가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구원을 이루어 가는 (빌 2:12),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어 가는 (빌 2:13) 사람들로써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부름 받은 소명을 잊지 않으며 거룩을 삶으로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벧전2:11,12 , 벧전3:15,16 , 엡4:22~24) 저자는 그 다음으로 겸손, 인내, 순결, 절제, 박애, 사랑을 순서대로 설명하며 이것들이 독립적이지 않으면서 함께 상호 작용하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반영하는 삶이라고 말한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진 미덕 이라는 제 2의 천성을 습득하고 온전한 성품을 갖추기 위해서 어떤 단계를 밟아야 하는가?
– 미덕의 순환
저자는 미덕의 순환이라는 연결공리의 중심에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을 전제하며 설명을 이어나간다. 이 연결고리의 출발점에는 “은혜”가, 목표점에 “영광”이 자리한다. 이 순환은 “정의”와 “아름다움”을 주 목적으로 삼는다. 그리고, 이 연결고리는 성경, 이야기, 본보기, 공동체, 실천의 다섯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이 순환고리의 특징은 어느 특정 요소가 출발점은 아니라는 것이다. 출발은 어느 요소든지 될 수 있고, 상호작용을 통해 미덕을 습득하게 된다.
저자는 이에 이어서 각각의 구성요소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며 다음과 같이 글을 맺는다.
“그때에 비로소 누군가 우리에게 ‘예수에 대해 말해주시오’라고 말할 때, 우리는 무슨 말을 할지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 비로소 우리가 하는 말이 합당한 의미를 지니게 되리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