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나의 생애와 사상 :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알베르트 슈바이처 / 홍신문화사 / 1991.9.1
20세기의 성자, 슈바이처의 『나의 생애와 사상』. 저자가 1929년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철학자가 말하는 현대철학]에 발표한 자전적 에세이로, 그의 생애와 사상은 물론, 학문적 연구 성립과 내용도 담고 있다. 세계적인 불러 공감을 일으킨 자전적 에세이다.

독일계 프랑스인으로서 철학자, 신학자, 음악가로 활동하던 저자는, 30살이 되던 해에 의사가 되어 아프리카로 건너가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195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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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애와 사상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역자의 말
○ 저자소개 : 알베르트 슈바이처 (Albert Schweitzer, 1875-1965)
스트라스부르 대학 신학과의 젊은 교수,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1905년 30살의 나이에 교수직을 그만두고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이때 그는 벌써 세 권의 저술을 가진 작가였으며, 음악(음악가-시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1905), 종교(예수 생애 연구사 1906), 철학 방면에서 뚜렷한 학문적 성취를 거둔 학자였다. 또한 바흐의 오르간 곡 연주에 관한 한 세계적 권위자로 명망이 높았고, 교회 부목사(스트라스부르 성 니콜라이 교회, 1910)로, 신학교의 책임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1913년 슈바이처와 그의 아내 헬레네 브레슬라우는 당시 프랑스령 적도아프리카, 현재는 가봉 공화국인 된 그곳 랑바레네에 병원을 열기에 이른다.

1920년에 그는 이곳에서 활동한 사연을 모아 이 유명한 책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를 집필하였다. 당시 아프리카는 거의 미지의 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아프리카에서 겪은 체험들과 오고우에 강 유역에 병원을 지은 이야기, 그리고 원주민을 더욱 존중하게 된 이야기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는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슈바이처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으로 오늘날까지 널리 사랑을 받는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독일 국적을 가진 두 사람은 의료 활동을 중단해야 했고, 급기야 아프리카를 떠나 프랑스의 포로수용소에 구금당한다. 1924년에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와서 이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연설과 모금 활동을 위해 유럽을 다녀오는 일을 제외하고는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1928년에 괴테상을, 1952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1965년 90세에 병원 일을 돌보는 와중에 죽음을 맞이하였고, 랑바레네의 병원 주변에 아내와 함께 묻혔다.
의사로서 유명하지만 본업은 신학박사로서 강단에 선 학자였고 동시에 프로 음악가이자 파이프오르간 전문가였다. 각각의 분야에 책을 냈다.
“아프리카 봉사에 한정한” 대표 저서로는 ‘나의 생애와 사상'(판본에 따라 노벨상 수상때의 연설문이 번역돼 있다),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람바레네 통신’ 등이 있다. 성장기와 병원 운영과 수술 이야기만 있지는 않고 다양한 주제로 쓴 단편이 때로는 몇 쪽, 때로는 한 챕터를 할애해 들어 있다. 책에 따라 신학적인 주제, 음악적인 주제를 다루기도 하고, 현지에 와서 다양한 백인과 흑인을 만나며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적어 놓았다. 적도 아프리카에서 지성인으로서 살아남기, 이상적인 선교 사업, 재정 문제, 아프리카 의료의 현실, 열강의 식민지 정부 운영 문제, 식민지의 수출과 수입, 목재 산업, 강제 노동, 흑인 사회 비평, 아프리카의 자연, 병원 반경 약 2백 km 지역에 사는 부족들과 그들의 관계 등.. 약 100년 전 서아프리카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들이다. 그 외 사후 서한집이 국문으로 출판됐고, 철학서로는 “문화와 윤리”도 번역된 적 있다.
○ 독자의 평
이 책의 구성은 두 부분으로 되어있는데, 전반부는 이 책의 주제목인 「나의 생애와 사상」으로 주로 슈바이처 자신의 생애와 상을 기록한 부분이다. 이 전반부에서 슈바이처는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의 성장기를 비롯하여 이 책을 쓸 당시까지의 일대기를 기록해놓았으며, 무엇보다도 자신의 전문분야였던 신학, 철학, 파이프오르간 연주와 악기론, 음악에 관한 사상을 자신의 저서를 인용함으로써 중간중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인간 슈바이처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 전반부를 1독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판단된다. 이 책의 후반부는 책의 부제로 달려있듯이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인데, 이 부분은 그의 일대기 가운데 특히 아프리카에서의 의사생활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부분으로 이를 통해 의사로서의 슈바이처를 만나볼 수 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제1, 2차 세계대전을 포함한 20세기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아프리카에서 자신의 일생을 바쳐가며 원주민 환자들을 치료한 인도주의 의사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슈바이처는 비단 의학 뿐만아니라 신학, 음악, 철학에서도 당시 유럽에서 유명세를 떨쳤을 정도로 두각을 나타낸 신학자이자 파이프오르가니스트, 음악가, 철학자였다. 그는 자신의 전문분야인 해당 분야들에 대해서 고갈될 줄 모르는 에너지로 활발한 저술활동을 해왔는데, 심지어 아프리카 원시림에서 열악한 환경에 맞서가며 원주민 환자들을 돌보았던 치열한 상황 속에서도 저술활동과 오르간 연주 연마를 병행해나갔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위 서적의 전반부는 「나의 생애와 사상」 에서 그는 자신의 성장기와 30세까지의 학자생활, 그리고 아프리카에서의 의사생활을 기록하면서 중간 중간 자신의 사상적 발전과 학문에 대한 열정들을 기록해두고 있다. 자신의 사상을 설명하는 부분에선 자신의 저서 일부를 발췌하여 기록해놓았다. 이 발췌들은 각각 신학, 음악, 철학 분야에서의 전문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어서 이해하기 다소 어려울지 모른다. 따라서 그의 생애만을 중점적으로 알고 싶은 독자들은 위 발췌부분들을 건너뛰는 것도 한층 수월하게 독서하는 방법이 된다. 하지만 슈바이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 발췌부분들도 같이 읽어낼 것을 권유하는 바이다.
전반부에서 묘사된 그의 생애는 성장기, 학자로서의 생활(30세까지), 의사 슈바이처로서의 생활로 총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슈바이처는 이미 30세 되던 때에 신학자, 파이프오르간 연주자, 철학자로서 상당한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이에 따라 경제적 여건도 퍽 괜찮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슈바이처는 30세가 되자마자 자신의 교수직을 그만두고 그동안 아무런 지식도 없었던 의학계에 학생의 신분으로 뛰어들었다. 이러한 결정은 당연히 주변으로부터의 극렬한 반대에 부닥치게 되었는데, 그들에게 있어서 슈바이처의 이러한 결단은 한낱 충동적인 결정으로밖에 비춰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슈바이처의 고백에 따르면 이는 꽤 오래전부터 심사숙고해서 내린 계획된 결단이었다. 30세가 되면 의사로서의 길에 투신하여 아프리카로 건너가 수많은 생명을 구원하는데 자신의 생을 바치겠다는 계획을 이미 오래전부터 다져놓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주변의 반대도 결코 슈바이처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숭고한 결단은 그가 내면 속에 품으며 키워왔던 철학으로부터 기인한다. 그것은 <삶에 대한 외경심>으로, 인간이 품어야할 진리이자 근본적인 정신은 바로 생명존중, 즉 삶에 대한 외경심이라고 결론내린 철학적 결과물이었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본서의 챕터 중 하나인 [13. 아프리카에서의 첫번째 활동]에 기록되어 있다). 그는 아프리카 원주민들에 대한 의료적 구명활동을 통해 이 사상을 점차 키워갔으며, 이는 슈바이처의 중심 사상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전쟁터에서 죽어가고 있는 이 때, 나는 타인의 생명을 구해주면서 다가올 평화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일할 수 있는 매일매일을 신의 무한한 은총으로 여겼다.”
“죽음이 이미 승리자로서 체내를 돌아다니고 있는데도 유럽의 많은 나라는 죽음을 방지하기 위한 자금을 기부하는 데는 인색하고, 오히려 유럽 내부에서 죽음에 대한 새로운 희생물이 속출하게 될 무의미한 군비모금에 마음을 쓰고있는 것이다.”
“삶에 대한 외경심의 세계관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데서 유래한다. (중략) 삶에 대한 외경심은 세계 전체에 대한 어떠한 인식과도 전혀 무관한, 세계와의 정신적 관계를 맺도록 우리를 이끌어준다. 이렇듯 삶에 대한 외경심은 체념의 음울한 골짜기를 통과하여 내면적인 필연성으로부터 비롯된 윤리적 세계긍정 및 인생긍정의 밝은 산 위로 우리를 인도한다. (중략) 우리는 삶에 대한 외경심 속에 그 자체에 입각한 인생관을 갖게 되고, 그렇게 됨으로써 우리의 윤리적 세계관은 확고해진다.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 자신과 우리 주위에 있는 생명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이 인생관은 우리의 내부에서 날로 새로워질 것이다.”
특히 전반부의 마지막 챕터에서는 그의 사상을 간결하고도 명확한 문체로 잘 설명하고 있으므로 집중하여 읽어보길 권하는 바이다.
이 책의 후반부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부분은 그가 아프리카에 건너가 의료활동을 펼치면서 경험하고 느꼈던 생생한 에피소드들을 기록하고 있다. 아프리카라는 생소한 환경이 슈바이처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왔는지, 그리고 당시 유럽 열강들이 제국주의적 노선을 취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프리카에 불어닥친 변화의 모습은 어떠했는지를 그의 간결명료한 문체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슈바이처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유명하다. 노벨 평화상은 ‘평화’라는 관념의 추상성으로 인해 항상 논란을 불러일으켜왔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상이었다. 하지만 슈바이처는 이 상을 수상하면서도 이견이 없었던 거의 유일한 수상자였다는 일화가 있다. 이는 당시 인류 최악의 전쟁이었던 제1,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던 당시 슈바이처의 숭고한 사상과 이의 실천이 역사적 비극과 완전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 기인할 것이다. 인류와 문명의 진보가 끔찍한 전쟁과 대학살로 귀결되어버린 20세기의 절망적 분위기 속에서 슈바이처의 평화주의적 사상은 인류에게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의 불씨로 다가왔을 것이다.
오늘날 기술진보와 풍요의 증가 속에서도 점차 극심해지는 빈부격차와 문화간 갈등은 현대인들에게 극복하기 힘든 불안을 안겨주고 있다. 극우세력, 극단적 민족주의, 국수주의 등 과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와 무솔리니로 대표되는 무서운 이데올로기가 다시금 세계 각지에 퍼져가고 있음을 우리는 불안한 시선으로 목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가쁘게 돌아가는 현대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우리는 자신과 가족들의 삶을 지탱하기위한 밥벌이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는 미시적 현실 속에 갇혀있다. 슈바이처가 약 100년 전에 경고했던 ‘무無사고’의 현상들이 오늘날에 와서 극복되기는 커녕 더욱 심화되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슈바이처의 생애와 사상은 더욱 소중한 희망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역사의 비극이 반복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역사로부터 얻어진 쓰라린 교훈들과 더불어 그 시대를 생생하게 살아왔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더욱이 서로 죽고 죽였던 전쟁의 참상 한 가운데에서 오히려 아프리카로 건너가 구명활동에 힘썼던 슈바이처의 사상은 오늘날 우리에게 반드시 검토되어야 할 소중한 지적 유산이다. 단 한 사람의 사상과 활동은 그 자체로는 세상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비관에 젖어 자신의 힘을 등한시한다면, 그리고 그러한 사람이 천만이 되고 1억이 되고 60억이 된다면, 세상은 정말 그런 비극적인 세상이 되어버릴 것이다.
세계에 대한 자신의 힘을 믿고, 다수 속에 함몰된 자신을 구출하여 세상에서 단 한 사람 뿐인 당신 그 자체가 된다면, 당신 한 사람의 힘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와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선행되어야 하지만, 그 인식 앞에서 위축되어서는 안된다. 절망과 비관을 이겨낼 수 있는 건 오직 강한 의지 뿐이다.
“나의 인식은 비관적이지만 나의 의욕과 희망은 낙관적이다.” – 알베르트 슈바이처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