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shiper Story
다섯 번째 이야기
순종함으로 예배하는 예배자 – 아브라함
창세기 12장 1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가 보여 줄 땅르호 가라”는 명령입니다. 부모 형제들이 있고 땅도 있고 집이 있는 하란, 평안히 안일하게 살 수 있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다 버리고 과감하게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목적지를 가르쳐 주면서 떠나라는 것이 아닙니다. 목적지를 알면 순종하기가 쉬울수 있는데 어디로 가라는 말씀도 없이 무조건 다 버리고 떠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전폭적으로 순종하려면 자신의 이유를 따지고, 자신의 이익을 계산해 보고, 자기 뜻에 맞아야만 순종하는 것이 순종이 아닙니다. 아브람의 가족은 하란에 정착하기 전에는 갈대아 우르에 살았습니다.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는 달을 숭배하고 우상 장사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버지 데라가 죽자,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그 죄악된 장소 하란을 박차고 떠나라고 말씀하셨고 아브라함은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부모 형제들과 함께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고, 형제들과 친척들이 붙잡으며 떠나지 말라고 하는데도 용감히 박차버리고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 대하여 큰 계획과 축복을 가지고 명령하셨습니다. 그에 이름을 바꾸시고 환경을 열어주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12장 2절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하신 이런 엄청난 축복을 예비하시고 떠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때론 그 명령이 고난이 될 수도 있고 아픔이 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예비해 주신 축복을 받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진정한 순종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아브라함의 예배를 통해서 3가지 예배자의 모습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로 아브라함은 여호와를 위하여 예배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창세기12장 7절에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8절에서도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예배를 드렸다고 나와 있습니다.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을 위하는데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에서부터 믿음에 여정을 출발했습니다. 믿음으로 출발했지만 끝은 여호와를 위하였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의 자세도 믿으면 구원, 믿으면 축복, 믿으면 뭔가 얻는 것으로 출발하지만 이는 자기유익, 자기 중심, 취하는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진정한 신앙인이 아니요 진정한 예배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요즘 사람들은 예배를 감정의 체험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치유받고, 뜨거움을 체험하고, 만족을 누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자기 만족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벗어나 하나님 중심, 예수님 중심으로 서는 자가 예배를 아는 자입니다. 아브라함도 가나안 땅을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는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 하나님을 얻었습니다. 그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깊이 모셨을 때 그때 진정 예배가 바로 섰습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나의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고자 하는 그 마음이 바로 예배자의 마음입니다. 예배의 대상이 나의 만족이 아닙니다. 예배의 대상이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드리는 예배가 참된 예배입니다.
둘째로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였습니다. 첫째는 예배의 대상이라고 한다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신앙고백의 의미가 있습니다. 내가 만난 예수님,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 누구신가 예배를 통해서 깊이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분 이시지만 하나님의 이름은 무한히 존재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개별적으로 만나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것은 그가 만난 하나님으로 충만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공적인 하나님도 되지만 개별적으로 만날 때 인격적이시고, 구체적이시고 나의 삶을 주관하시는 분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예배는 바로 나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존재하는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만나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고, 그 은혜를 사모하지 않은 예배는 죽은 예배요, 종교행사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아브라함은 단을 쌓고 예배를 드릴 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의 아들이삭도 창세기 26장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고, 야곱도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우리들도 삶의 순간순간 마다 예수님 이름을 부르고, 체험하고 함께 예배하는 하나님나라의 예배자들로 세워져야합니다.
셋째로 아브라함은 단을 쌓고 예배하였습니다. 단을 쌓는 것은 예배의 구체적인 삶의 헌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단을 쌓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단은 아무곳에 쌓지 않기에 구별된 장소가 필요합니다. 또한 밤중에나 졸리는 시간에 하지 않고 가장 좋은 시간 즉 구별된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 제단을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님 보시게 좋은 돌들을 찾아야 합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쌓아가야 합니다. 노력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예배드리는 마음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구별된 마음과 또 형식도 잘 갖추어지게 됩니다. 형식적이라는 말이 좋지 않게 들리지만 형식자체는 참으로 좋은 단어입니다. 왜냐하면 그 형식에 그 마음의 진심과 헌신이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휘황찬란하지는 않더라도 광야에서 단을 쌓고 예배하는 것처럼 우리도 매순간의 삶속에서 예배의 장소와 시간을 구별하고 마음과 정성으로 예배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예배가 될 것입니다. 하루를 구별하여 온전히 드리는 기도의 예배가 사도바울이 말했던 삶이 산제사요, 예배라는 것입니다. 구별하여 드리지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그런 예배자의 마음과 헌신, 그리고 예배를 온전히 받으실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양화영 전도사(시드니동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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