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111)
릴리안 에디스 매튜스 (1933. 11. 27~1984. 3. 24)
한국명: 마희연 선생, 부산 1963-67

다섯 딸 중 하나인 릴리안은 스토웰(Stawell)에서 성장하였다. 그녀는 간호사가 되어 선교사를 지원했다. 1962년 12월 19일 그녀는 스토웰의 세인트 매튜 교회에서 선교사로 임직하였고 1963년 1월 1일 호주장로교선교부에 의해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그녀는 1963년 1월 22일 올 세인트 선교훈련 칼리지에서 단기과정을 마치고, 7월 10일 시드니를 출발하여 8월 11일 부산에 도착했다.
릴리안은 1965년 중반까지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공부하였다. 그녀는 방학 중 일신병원 수술실에서 일했고 졸업 후에도 그곳에서 일했다. 그러나 그녀의 주 임무들은 육아상담실(well babies clinic)과 분유공급소(milk station) 안에서 이루어졌다. 분유공급소에서는 젖이 없거나 돈이 없어 아기를 먹이지 못하는 엄마들에게 분유를 공급했고, 엄마가 죽었을 경우 고아 아기를 위해 분유를 공급했다.
릴리안은 부산의 선교사 가정의 어린이들에게 좋은 “이모”가 되었고, 그녀 역시 아이들과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는 건강악화로 1967년 5월 17일 멜번으로 떠나야 했다. 선교부는 11월 20일부터 그녀에게 병가를 주었다.
그러나 3개월 후 릴리안은 다시 회복되어, 1968년 2월 19일 시드니를 떠나 뉴헤브리데스 레나켈(Lenakel)로 갔고, 그 곳 진료소에서 11월까지 있었다. 그녀는 1968년 11월 15일 멜번으로 돌아와서 그 날로 호주장로교선교부의 사역을 마쳤다.
릴리안은 1972년 4월 22일에 글린 캠벨(Glynn Campbell)과 결혼해서 1984년 3월 24일 사망할 때까지 퀸즐랜드에 살았다.

정병준 교수
(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