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112)
도로시 나이트 (1939. 1. 16)
한국명: 나명애 선생, 부산 1968-73; 전주 1973-79; 대전 1979-82

도로시는 아들레산(Ardlethan)에서 성장하였고, 고울번(Goulburn) 장로회여학교(PLC)에서 교육 받은 후, 시드니에 있는 맨리 디스트릭트 병원(Manley District Hospital)에서 간호사로 훈련받았다.
그녀는 릴리안 매튜스를 대신하여 일신병원에 임명되었고, 올 세인트 선교훈련 칼리지에서 사전 훈련을 마치고 1968년 8월 20일 한국에 도착했다. 그녀는 처음 2년은 언어공부를 했으나, 방학 중이나 졸업 후에는 병원간호부에서 일을 했고 건물유지 직원들에 대한 감독과 선교사 숙소건축에 대해 감독했다.
1972년 도로시는 전주 예수병원으로 이전하여 시골에서 공중위생 활동을 했다. 그 후 6년 동안 그녀는 전주 의료센터의 후원 아래 전라북도 영진면에서 공동체 건강프로그램의 발전을 지도했다.

그 프로그램은 어린이 건강, 임산부 문제, 가족계획, 결핵통제, 환경위생과 건강교육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일은 프로그램을 수행하도록 마을 일꾼들을 훈련시키는 것이 필요했다. 도로시는 열심히 일했고,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내었다.
1978년에 도로시는 한국인 동료들과 함께 필리핀, 말레이시아, 타일랜드 그리고 홍콩에서 진행되는 다른 교회가 지원하는 공동체 건강프로그램들을 둘러보았다. 관계성이 어색했던 이 방문에서 돌아온 후, 의료센터는 공동체 건강 프로그램의 경영을 재조직했다.
도로시는 마을 교육에 대해 병원의 자문 역할을 했다.
그해, 도로시는 한국보건진흥원(KHDI)으로부터 공동체 건강에 대한 시청각 및 동기부여 자료들을 개발하는데 참여하고, 마을 건강요원 훈련 및 동기부여 회의에 참여하도록 부탁을 받았다. 그녀는 한국건강개발원과 함께 경상북도 군위군에서 6개월 동안 공동체 건강교육에 참여했다.
1979년 4월 도로시는 한국인 공동체 안에 있는 한국인 집에서 살면서, 대전의 평신도훈련센터에서 공동체 건강에 대한 강의를 시작했다. 그녀는 1982년 3월 한국선교사 직을 사임할 때까지 이 역할을 지속했다. 그리고 파푸아뉴기니에 있는 병원에서 자원자로 섬겼다.
도로시는 자기 일에 엄청난 에너지와 추진력, 그리고 열정을 쏟아 붓는 개인주의자였다. 그는 공동체 건강교육에 큰 공헌을 하였다.

정병준 교수
(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