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잡초학(1) 바랭이 풀 이야기
잡초학 강병화 교수
잡초하면 논이고 밭이고 정원이고 간에 퇴치해야할 대상으로 간주 (看做)하여 왔으나 이에 반기 (反旗)를 들은 학자들이 각광 (脚光)을 받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강병화 고려대 환경생태 공학부 명예 교수다.강병화 교수의 행적 (行跡)에서 그가 전하는 메시지가 있다. 고려대 환경생태 공학부 강병화 교수는 17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야생 들풀을 채집했다고 한다. 그 결과 그는 4,500여 종의 씨앗을 모을 수 있었고 혼자의 노력으로 종자 은행을 세우는 일을 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해서 많은 언론으로 부터 주목을 받았다. “17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그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이 세상에 ‘잡초’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밀밭에 벼가 나면 그게 바로 잡초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그 역시 잡초가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잡초”라는 것은 없다
산삼이라 할지라도 엉뚱한 곳에 나면 잡초가 되는데 잡초란 단지 뿌리를 내린 곳이 다를 뿐이다. 들에서 자라는 모든 풀은 다 이름이 있고 생명이 있다. 세상에 잡초 같은 사람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혹시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단지 자신이 뿌리를 내려야 할 자리를 찾지 못했을 뿐이다. 이 땅을 살다 간 사람들 가운데 잡초와 같은 모습으로 인생을 마감했던 사람들도 적지 않으리라.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들 나름대로 남들이 갖지 못한 개성과 자질을 가진 사람들도 많이 있다. 주변에 보면 아름다운 자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잡초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의 행적을 일일이 열거 할 수 없다. 강병화 교수가 모은 4500여종의 들풀 중에서 한국인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들풀이 호주에도 부지기수 (不知其數)다.
바랭이풀

그중에 잡초중에 잡초 취급받는 바랭이 풀을 살펴보려고 한다. 어제만 해도 앞 뜰에 제초 작업을 한일이 있는데 한 짐이나 됨직하게 잡초를 뽑았는데 대부분이 바랭이 풀이다. 기장과에 속하는 일년생 들풀이다. 학명은 Digitaria-ciliaris다. 바랭이 풀이 웬수 (원수 – 怨讐) 취급을 받고 있지만 1만년 전 즈음에 인류의 농업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바랭이도 자기 영역에서 생태계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역할이 있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사육하는 소에게 풀을 뜯기는 일을 종종 하였다. 논뚝길이나 산기슭에서 풀을 뜯기면서 소가 좋아하는 습성을 알게 된다. 소는 부드러원 풀을 좋아 하였는데 그중에 바랭이 풀은 아주 좋아하는 풀이었다. 그래서 바랭이 풀이 어우러진 뚝방길에 들어서면 마치 호구나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그러나 바랭이 풀은 농부들을 가장 귀찮게 하는 풀이다. 어쩌면 농부의 한 해는 ‘바랭이 풀과의 한 판 승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제초제를 뿌려 바랭이 풀의 씨를 말리려고 하지만 제초제를 뒤집어 쓰고 누렇게 죽어가다가도 나보란 듯이 금세 다시 살아나는 풀이 바랭이 풀이다.
바랭이 풀은 한국이 원산지
바랭이 풀은 한국이 원산지로 열대 지방과 온대 지방에서 자라는 벼과의 한해살이 풀이다. 땅 위를 기면서 줄기 밑 부분의 마디에서 새 뿌리가 나와 아주 빠르게 퍼져 나간다. 줄기의 윗 부분은 곧게 서는데 키는 30~70cm 정도이다. 줄기 아래에 나는 잎은 길이 8~20cm, 너비 5~15mm 정도이며 털이 있다. 꽃 차례의 길이는 4~8mm 정도로 아주 가늘고 곧은데 줄기에서 3~8개의 가지로 갈라진다.
꽃 차례는 불그스레하거나 자줏빛을 띤다. 작은 이삭은 연녹색으로 흰털이 있고, 10월에 익어 엄청난 양의 열매를 땅 속에 묻어 놓는다. 이듬해 봄이면 순차적으로 발아를 한다. 1진이 뽑히고 나면 2진이 발아를 한다. 한번 번식하고 나면 다른 풀은 접근을 불허한다. 봄에 호박과 같은 덩굴 식물을 심으면 호박이 바랭이 풀보다 키가 더 클 때까지 바랭이 풀을 제거해주어야 한다. 그대로 두면 힘도 못써보고 바랭이 풀 숲 사이에서 일찌감치 생을 마감한다.
독하고 질긴 삶
옛날 우리 어머님들 허리 휘도록 밭을 매게 한 잡초가 바로 이 바랭이 풀이다. 줄기를 옆으로 뻗으면서 뿌리도 함께 내리니 미리 뽑지 못하면 결국 뽑는 것을 포기하게 만든다. 바랭이 풀이 독하고 질기지만 우리 어머니들은 이보다 더 독하고 질긴 삶을 살았다. 독하고 억센 생명력과는 달리 바랭이는 단맛이 나는 풀이다. 그래서 소나 염소 등 초식 동물들이 각별히 좋아한다. 소를 매어둘 때에도 바랭이 풀이 가장 많이 번진 곳에다 매어둔다. 우선, 바랭이라는 잡초는 왕바랭이, 민바랭이 등의 종류가 있으나 특징은 비슷한 한 해살이 풀이다. 4~5월 경에 발아를 하고 마치 땅 바닥을 기는 듯이 하면서 가지를 뻗어 나가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키가 40~70Cm까지 자란다. 7~9월에 가지 끝에서 3~8개의 꽃떨기가 우산처럼 펴지면서 꽃이 피며 9월~10월이면 열매를 맺어 내년의 번식 준비를 완료한다.
최고의 생본 경쟁력
바랭이를 잘 관찰해 보면 나름대로의 강력한 생존 경쟁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월경이면 밭이나 논둑에 작은 바랭이들이 땅 속을 뚫고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때는 줄기도 하나라 여느 잡초들이 다 그렇듯이 손으로 뽑으면 아무런 저항 없이 잘 뽑힌다. 그러나 개체수가 많기 때문에 다 제거를 하지 못하고 몇 포기의 개체를 본의 아니게 남겨 놓게 되는 데, 이 때부터 재앙으로 빠져 들게 된다. 제거되지 못하고 남겨진 바랭이들은 엄청난 속도로 뿌리 수를 확장시키고, 그 뿌리들은 땅 속 깊이 파고들어서 곧 사람이 맨손으로는 절대로 뽑을 수가 없을 정도로 뿌리를 넓고 깊게 박고 있는 상황을 만들어 버린다. 이것이 바랭이의 첫 번째 생존 경쟁력이다.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이 성질을 역으로 이용하여, 논둑이나 밭둑에 있는 바랭이는 제초제를 사용하여 죽이지 않고, 예초기로 윗부분만 잘라 주어서 일부러 바랭이 뿌리를 살려 놓는다. 강력한 뿌리들이 밭이나 논둑을 무너지지 않게 튼실하게 잡아 주기 때문이다. 바랭이는 뿌리 수가 확장 되면서 줄기의 수도 많아지고 키도 무성하게 자라게 된다. 바랭이 줄기의 속은 텅 비어서 바람에 대한 저항력이 없기 때문에 바랭이 줄기가 어느 정도 크기로 자라게 되면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땅바닥에 눕혀지게 된다. 이렇게 한번 눕혀지게 되면 바랭이의 각각의 마디마다 새로운 뿌리가 생겨서 각각의 마디가 완전하게 새로운 개체처럼 자라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처음 보고는 나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일반적으로 번식은 씨앗으로 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이 바랭이는 성장하면서 동시에 번식까지 하는 셈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바랭이 한 포기를 가을까지 방치해 두게 되면 그 주변은 완전히 바랭이 천지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관찰한 바랭이의 놀라운 두 번째 생존 경쟁력이다. 만약에, 바랭이 줄기의 속이 텅 빈 것이, 바랭이 줄기가 바람이나 외력에 의하여 쉽게 쓰러지게 만들고, 그래서 마디가 땅에 닿게 만들고, 그 마디에서 새로운 뿌리를 만들어서 개체 수를 늘리기 위한 것이라면…. 바랭이가 손자병법에 버금가는 전략과 전술을 이미 구사하고 있지는 않은가? 기업들이 치열한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시시각각으로 전략과 전술을 가다듬지만, 그래도 기업들의 평균 수명이 30년이라 하는데, 수 천년, 수 만년을 살았을 지도 모를 바랭이의 생존 경쟁력이야 말로 실로 대단하지 않은가? 그 나름의 경쟁력들을 갖고 있는 풀 한 포기도 우습게 봐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이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다.

박광하 (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북랩)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