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물과 원시림 사이
알베르트 슈바이처 / 문예출판사 / 1999.11.10
’20세기의 성자’로 불리는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아프리카 체험기. 1913년 가난과 질병의 대륙 아프리카로 건너간 슈바이처는 병원건물이 없어 닭장 속에서 진료를 하는 등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흑인들을 위해 살았다. 그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고통과 불행을 덜어줄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말한다. — 경향신문
한평생을 아프리카 오지에서 바친 슈바이처가 의학을 배워 처음 아프리카로 건너가 겪은 흑인과 자연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책은 슈바이처가 맨처음 아프리카로 건너간 1913년부터 1917년까지 펼친 의료활동에 대한 체험을 기록하고 있다.
병원건물이 없어 닭장 속에서 진료를 하고, 하마떼를 헤치며 카누를 타고 강을 건너는 풍경, 전봇대를 즐겨 부수는 코끼리 이야기 등 인류의 봉사자가 원시림속에서 보고 느낀 일상을 화보사진을 곁들여 생생하제 전해준다.
○ 목차
1. 내가 원시림 속의 의사가 된 이유
2. 여행
3. 첫 인상과 체험
4. 1913년 7월에서 1914년 1월까지
5. 1914년 1월에서 6월까지
6. 원시림의 벌목자와 뗏목꾼
7. 1914년의 크리스마스
8. 1915년의 크리스마스
9. 선교에 대하여
10. 에필로그
11. 슈바이처 박사의 생애
○ 저자소개 : 알베르트 슈바이처
독일계의 프랑스 사상가ㆍ신학자ㆍ음악가ㆍ의사로 루터교 목사다. 알사스의 카이제베르크에서 출생했으며, 슈트라부스크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졸업후에는 목사와 대학강사로, 그리고 오르간 연주가로 활약하였다.
30세 되던 해에 봉사활동의 완벽한 실현을 위해 새롭게 의학 공부를 시작하여 1913년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 오고웨 강변의 람바레네에 자력으로 병원을 개설하였으며, 이 후 평생을 아프리카 흑인들의 의료 활동에 헌신하였다. 1952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자 상금으로 나환자촌을 설립하였다.
의사로서 유명하지만 본업은 신학박사로서 강단에 선 학자였고 동시에 프로 음악가이자 파이프오르간 전문가였다. 각각의 분야에 책을 냈다.
“아프리카 봉사에 한정한” 대표 저서로는 ‘나의 생애와 사상'(판본에 따라 노벨상 수상때의 연설문이 번역돼 있다),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람바레네 통신’ 등이 있다. 성장기와 병원 운영과 수술 이야기만 있지는 않고 다양한 주제로 쓴 단편이 때로는 몇 쪽, 때로는 한 챕터를 할애해 들어 있다. 책에 따라 신학적인 주제, 음악적인 주제를 다루기도 하고, 현지에 와서 다양한 백인과 흑인을 만나며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적어 놓았다. 적도 아프리카에서 지성인으로서 살아남기, 이상적인 선교 사업, 재정 문제, 아프리카 의료의 현실, 열강의 식민지 정부 운영 문제, 식민지의 수출과 수입, 목재 산업, 강제 노동, 흑인 사회 비평, 아프리카의 자연, 병원 반경 약 2백 km 지역에 사는 부족들과 그들의 관계 등.. 약 100년 전 서아프리카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들이다. 그 외 사후 서한집이 국문으로 출판됐고, 철학서로는 “문화와 윤리”도 번역된 적 있다.
– 역자 : 송영택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강사로 재직했으며, 시인으로 활동하면서 한국문인협회 사무국장과 이사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시집 《너와 나의 목숨을 위하여》가 있고, 번역서로는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괴테 시집》, 릴케 《말테의 수기》, 《어느 시인의 고백》, 《릴케시집》, 《릴케 후기 시집》, 《사랑하는 하느님 이야기》, 헤세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시집》, 힐티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레마르크 《개선문》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1. 의사로서 적도 아프리카에 가기 위하여 나는 스트라스부르 대학의 교직과 오르간과 문필을 버렸다. (7면)
2. 부자와 가난한 나사로의 비유는 마치 우리들을 두고 이야기된 것같이 생각되었다. (7면)
3. 그가 가난한 자의 입장이 되어보지 못하고, 또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8면)
4. “선을 행하고자 결심했다면 다른 사람이 자기를 위해서 길 위에 있는 돌을 치워줄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9면)
5. 그러나 사업 자체는 종파를 초월한 국제적인 것이었다. 세계의 인도적 문제는 특정 나라나 종파의 지도자로서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인간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의 나의 확신이었고, 또 지금의 믿음이기도 하다. (10면)
6. 병이나 약갑이 얼마만큼의 가치를 가졌나 하는 것은 원시림 속에서 투약을 위한 포장을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51면)
7. 친밀감과 권위를 결합시킨다는 것, 이것이 토인과의 올바른 교제의 큰 비결이다. (174면)
8. 이 정적 속에서 나는 1900년 이후로 나의 마음을 동하게 하고 있는 사상을 형성하고, 문화의 재건에 이바지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원시림의 고요함이여, 내가 네게 가지고 있었던 의미에 언제 어떻게 감사할 수 있을까! … 점심시간과 병원 일을 다시 시작할 때까지의 시간을 음악에 바쳤다. 일요일 오후도 음악의 시간이다. 음악에 관해서도 나는 세상에서 떠나 연구할 수 있다는 데 고마움을 느낀다. 바흐의 많은 오르간 곡을 나는 이전보다도 단순하게 내면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배우고 있다. (199면)
9. 우리와 우리의 문화는 죄과의 짐을 지고 있다. 우리가 유색 인종에게 하는 선행은 자선이 아니라 속죄이다. (229면, 231면)
10. 이 4년 반 동안의 경험은 내게 무엇을 주었는가? 모든 점에서 나는 학문과 예술로부터 나를 원시림으로 몰아친 그 결정이 옳았다는 확증을 얻었다. (230면)
11. 진리에는 시간이 없다. 진리의 시기는 언제나 와 있으며, 그것이 바로 시기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바로 그때이다. (236면)
의사로서 적도 아프리카로 가기 위하여, 나는 스트라스부르 대학의 교직과 오르간과 문필을 버렸다.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원시림 속 토인들의 비참한 생활을 나는 책에서 읽었고, 선교사들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들을 생각할수록 그렇게 커다란 인도적인 문제에 대해서 우리 유럽인들이 아주 무관심하다는 것이 점점 더 이상하게 여겨졌다. 마치 부자와 가난한 나사로의 비유는 우리를 두고 이야기된 것 같았다. — 본문 중에서
○ 출판사 서평
지난 76년 문고판으로 나온뒤 묻혔던 슈바이처 박사의 에세이를 재출간한 책.
1913∼1917년 슈바이처 박사가 아프리카 랑바레네에서 의료활동 체험을 기록한 에세이이다.
장황한 일대기보다 진솔한 에세이 한편이 슈바이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책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 독자의 평 1
이 책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는 1919년부터 1923년 사이에 쓴 책이다.
알베트 슈바이처 : 그가 의사인줄로만 알았는데 그와 동시에 음악, 철학, 신학박사이기도 했다는 건 몰랐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그가 행한 것이 인류에 대한 에정에서 비롯되었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 이야기는 슈바이처 박사가 1913년 프랑스령인 오고우에 지방에서 의료사업을 펼치면서
그 안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적은 것들이다. 1916년 7월까지의 내용이 마지막이었다.
이 책을 통해 느낌 점 내지 새롭게 알게 된 점
1) 슈바이처 박사 혼자만의 힘으로 큰일을 이룩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
(그를 후원했던 사람들도 많았고, 그의 아내의 내조가 없었다면 힘들지 않았을까)
2) 아프리카인들의 생활을 조금 더 알게 되었다. – 감독을 안 하면 일을 안 한다는 것들.
— 그래서 슈바이처 박사가 의료행위를 하면서 감독을 하느라 힘들었다는 내용도 눈에 들어 왔다.
아프리카인들이 브랜디를 좋아했고, 왕성한(조금 심한) 소비활동으로 돈을 펑펑 쓴다는 점들도 알게 되었다. – 그들은 돈이 필요 없는 줄 알았는데…
3) 사진을 통해서 박사의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4) 개미들이 무서운 벌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닭장 안에 닭들을 피신하는 이야기를 듣고서… 피신을 안 시키면 개미들이 행렬이 끝나고 가보면 흰 뼈밖에 없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5) 마취하는 것에 대한 토인들의 생각이 “엉뚱하단”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의료 혜택을 받지 못했던 그들로서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백인과 흑인에 대해서 이야기한 부분에 대해서는 나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흑인은 어린아이이다. 아이들에게는 권위가 없어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 – p. 174 참조
이 말은 이렇게 들린다. “나는 백인이다. 그리고 너희는 흑인이다. 흑인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백인이 흑인의 위에서 권위를 내세워 그들을 돌보아주어야 한다.”
이것은 자칫 백인 우월주의로 오해할 소지가 있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식이 있었기에 아프리카를 식민지화 한 것은 아닐까.
박사가 이런 백인 우월주의를 앞세워 그곳에서 의료행위를 하며 그들을 병으로부터 구원했으리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미국의 영화를 보면 백인농장에서 일하는 흑인들의 삶을 볼 때가 있다. 그 영화에서 흑인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곤 한다. – 이건 백인 우월주의에서 나온 그들의 행동양식이 아닌가?
유럽인이 적당한 시기에 간섭하지 않았더라면 아프리카인은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 단지 슈바이처 박사의 생명에의 존중에 눈을 떠 아프리카 오지에서 토인들(아프리카인)들을 위한 구원에 평생을 바쳤다는 것은 누가 봐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죽음도 그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평생을 바쳐 이룩해놓은 랑바레네의 병실에서 눈을 감았으니 말이다. – p. 251 참조
이제 앞에서 던진 질문인이 책을 읽는 동안 그가 행한 것이 인류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되었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에 대해 결론을 내려야겠다.
오 강가 슈바이처의 물과 원시림 사이에는 그의 인류에 대한 애정이 들어 있지 않을까 싶다.
아! 오강가 라는 말은 책에 설명이 잘 되어 있었다. – 재미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독자의 평 2
내 생애 처음에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삼았던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 그에 대한 전기문은 그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책은 오로지 방문판매로만 구입할 수만 있는 줄 알았던 어린 시절 길가에 버려져 있던 “슈바이처의 동물친구들(지금은 “슈바이처와 동물친구들”이라는 제목으로 판매되고 있다”)이라는 헌책을 주워들고 탐독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20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그의 저서들을 한 권씩 읽기로 했다. 그 첫번째는 “열정을 기억하라”는 그의 말이나 저술들을 모아놓은 책이었고, 두번째가 바로 이 책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담을 그리고 생각들을 일기와 편지형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아름답지만 고통이 함께 있는 곳 아프리카와 그 곳에 백인들이 진 빚(전염병과 브랜디(술) 중독)을 다른 백인들이 갚아야 한다는 생각. 어떤 단체로부터도 지원받지 않고, 또한 월급도 받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받는 지원과 인세와 공연료로 그는 사역을 이어갔다. 이 시대에 그의 신학은 많은 부분 비판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의 “삶에의 외경”은 그 누구도 감히 비판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부분들이 마음 깊이 감동을 주었지만 그중 최고는 번역자가 덧붙인것인지 아니면 본래 책을 편집한 자가 덧붙인것인지는 모르지만 마지막 그의 생애에 대해 다루고 있는 부분 중에 있다.
248p
「병원 일이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쁜 외에 슈바이처 자신이 다리에 궤양이 생겨 환자가 되어버렸다.
“만인의 의사가 되기 위해 여기까지 오다니 이게 무슨 바보 같은 짓이었든가”라고 어느 날 그는 탄식했다. 그를 돕던 조수 요제프는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선생님 당신은 지상에서는 큰 바보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누가 뭐라고 비판하던지 그의 삶은 예수를 닮아있었다.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내려와야 했던 예수의 삶을…
마지막으로 그는 천재였다. 30세까지 철학, 신학, 음악, 의학에 이르는 모든 부분을 섭렵했고, 어느 하나 탁월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하니.. 그의 삶과 열정이 그립다.
○ 독자의 평 3
살아가는 일상에 가끔은 회의를 느끼면서도 문명에 익숙해져 생각하기를 뒤로 할 때가 있다. 그런 때에 이 책을 읽었다. 많은 것을 가지고 명성과 안일함으로 자신의 삶을 빛내며서 살아갈 수 있었을 한 사람이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험한 밀림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자신과의 약속과 신념을 위해 늦게 의학을 공부하고 모험과 희생의 길을 들어선 것이다. 학벌과 재력과 눈에 보이는 많은 것들로 사람을 평가하는 요즘의 세상에도 어딘가에 이런 사람들이 빛을 발하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람을 사랑하고 다른 이들의 아픔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야겠다는 작은 다짐을 해 보았다. 여전히 아프리카는 질병과 가난과 무지 속에서 악순환을 계속하고 있다. 식민지로서 많은 것을 잃었고 돌보는 이웃이 아닌 자신의 실속만을 챙기기에 급급했던 이웃들에 의해 더욱 살기 힘든 곳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들의 책임이 있겠지만 우리의 문제가 아니면 함께 살아가는 일에 너무 무심한 현재의 사는 모습이 슈바이처의 바램을 읽으면서 더욱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다. 작은 것도 나눌 수 있는 마음으로 조금씩 세상을 바꾸어 가는 우리 마음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인상깊은 구절]
불안과 육체적 고통이 어떠한가를 경험한 사람들은 전세계를 통하여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한 가닥의 신비한 줄이 그들을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을 지배할 수 있는 무서운 힘을 알고, 또 그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동경을 안다. 고통에서 구제된 자는 이제 자기는 다시 자유롭게 되었으므로 전의 인생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고통과 불안에 대하여 알게 되었으므로 다소나마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는 고통과 불안을 막아내는 데, 그리고 자기가 구제되었듯이 남을 구제하는 데 조력해야 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