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작은 것이 아름답다 : 인간 중심의 경제를 위하여
E. F. 슈마허 / 문예출판사 / 2013.6.24
실천적 경제학자이자 환경운동가로 유명한 슈마허의 역작으로, 혁명적인 방법으로 서구 세계의 경제 구조를 바라보는 책. 성장지상주의를 맹목적인 수용의 대상이 아니라 성찰과 반성의 대상이라고 지적하며, 이러한 경제 구조를 진정으로 인간을 위하는 모습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방안으로 ‘작은 것’을 제시한다.
저자는 ‘작은 것’의 실천적 방법으로 지역 노동과 자원을 이용한 소규모 작업장을 만들자고 제안하며 더 작은 소유, 더 작은 노동 단위에 기초를 둔 중간 기술 구조만이 세계 경제의 진정한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 목차

1부 근대 세계
제1장 생산 문제
제2장 평화와 영속성
제3장 경제학의 역할
제4장 불교 경제학
제5장 규모 문제
2부 자원
제6장 최대의 자원-교육
제7장 적절한 토지 이용
제8장 산업자원
제9장 원자력-구원인가, 저주인가?
제10장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
3부 제3세계
제11장 발전
제12장 중간 기술 개발을 요구하는 사회경제적 문제
제13장 2백만 촌락
제14장 인도의 실업 문제
○ 저자소개 : E. F. 슈마허 (Ernst Friedrich Schumacher)
E. F. 슈마허 (Ernst Friedrich Schumacher 1911 ~ 1977)는 독일에서 태어나 1930년 로드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영국 옥스퍼드 뉴칼리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으며, 스물두 살 때부터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경제학을 강의했다.
거대기술과 물질주의에 근원적 도전을 던지며, 인류의 ‘생각의 대전환’을 이루어낸 극소수의 창조적 인물. E. F. 슈마허는 1911년 독일 본에서 태어나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겪으며 궁핍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스물 두 살의 나이에 미국 콜롬비아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미래가 보장된 교수직을 버리고 전운이 감돌던 독일로 귀국했다.
1934년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피신했지만 적국 국민이라는 이유로 수감되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영국 정부의 요청으로 복지정책의 기초를 닦았으며, 세계 평화를 위해 제안한 금융제도는 그 유명한 ‘케인즈 플랜’에 반영되었다.
1950년부터 20여 년간 영국 국립석탄위원회 자문을 맡으며 재생 불가능한 자원에 기반한 서구문명의 종언을 예고했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1955년 경제 자문관으로 버마를 방문하면서 ‘불교경제학’이라는 새로운 경제철학을 제시했다. 인도에서 처참한 빈곤을 목격하면서는 지역 규모에 알맞으며 사용하기 쉽고 생태적인 ‘중간기술’ 개념을 창조했다. 이는 기계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나아가게 하는 실질적 대안으로 받아들여졌다. 1965년 ‘중간기술개발그룹’을 발족해 전 세계에 중간기술을 보급하고, 제3세계를 돌며 자급경제를 지원했다. 1973년 첫 저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출간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단 한 문장은 한 시대의 상징이 되어 퍼져나갔다.
실제 경험이 없는 이론화에 불만을 느낀 그는 여러 분야에 진출하여 기업가, 언론인, 경제학자로 알려졌으며 전쟁 중에는 옥스퍼드에서 잠시 학업을 재개했다. 독일의 영국 점령 지역 통제위원회 경제 자문관, 영국 석탄공사 경제 자문관, 영국 토양협회 의장, 스코드 바더 사 이사를 역임했으며, 개발도상국을 위해 중간 기술 개념을 창안하고 중간기술개발집단을 설립하여 의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농촌 개발에 대한 그의 권고안은 수많은 개발도상국 정부에서 주목받았으며 1974년에는 대영제국 지도자 훈장(CBE)을 받았다.
현대 환경 운동사에서 최초의 전체주의적 사상가로 평가받는 슈마허는 매우 다양한 관심사를 하나의 틀 속에 버무릴 줄 아는 위대한 경제학자였다. 주요 저서에 『작은 것이 아름답다』, 『혼돈으로부터의 도피』, 『좋은 작업』, 『경제 성장의 근원』 등이 있다. 말년에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나무의 잠재력을 연구했으나 1977년 강연 순회 도중 사망하면서 그 사상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그가 생의 마지막에 우러러본 것은 한 그루의 나무였다.
– 역자 : 이상호
○ 책 속으로
“현대 사회는 몇 가지 아주 치명적인 오류를 안고 있는데, ‘생산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신념 (belief)은 그 중 하나이다.”

경제 성장이라는 게경제학, 물리학, 화학, 기술 따위의 관점에서 보면 뚜렷한 한계가없지만 환경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필연적으로 결정적인 장애 요인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오로지 부를 추구하는 데서만 삶의충만함을 찾는 생활 태도 간단히 말해서 물질주의는 이 세계에 적합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 세계는 주변 환경이 엄격히 유한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제한하는 원리를 내부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 첫 문장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흔히 거대 조직이 피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좀더 살펴보면, 거대 조직이 생겨나자마자 그 내부에서는 곧바로 작운 조직을 만들려는 노력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제너럴 모터스 사에서 슬론(1923년에 이 회사의 사장이 된 인물)이 이룩한 업적은 이 거대한 기업을 상당히 작은 규모의 회사 연합체로 구조조정한 일이다. 서유럽 최대 기업 중의 하나인 영국 석탄공사도 로벤스 경에 총재이던 시절에 이와 비슷한 시도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거대 조직의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수많은 준기업의 연합체라는 분위기나 느낌을 낳는 구조로 전환시키려는 것이었다. 거대한 단일체가 활발하면서도 반자율적인 단위들의 조화로운 통합체로 변모했으며, 각 단위는 독자적인 추동력과 성취감을 갖게 되었다. 실생활과 그리 가깝지 않은 이론가들은 대부분 아직도 대규모라는 우상숭배에 빠져 있지만, 현실 세계의 실무자들은, 가능하다면 소규모 조직의 민첩성, 인간미, 유연성을 이용해서 이익을 얻고자 갈망하고 노력한다. 이 역시 누구나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움직임이다.
이제 우리의 주제를 또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면서 실제로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자. 사람의 일에는 항시 적어도 두 가지 요인이, 그것도 외관상으로는 양립 불가능하고 서로를 배제하는 것 같은 요인이 동시에 필요한 듯 보인다. 우리에게는 항시 자유와 질서가 필요하다. 소규모 자율적인 단위의 자유가 필요하지만, 이와 동시에 대규모 조직 – 가능하다면 전세계적인 – 의 통일성과 조화라는 질서도 필요하다. — p.85
다시 말해서 이동을 촉진하는 방안을 찾는 것 대신에, 농촌문화를 재건하고,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람 있는 일터 그 자리가상근직 (full-time)이든 비상근직 (part-time)이든 – 로서 토지를개방하며, 토지 위에서 인간의 모든 행위가 건강, 아름다움, 영속성이라는 세 가지 이상을 지향할 수 있는 정책을 모색해야 한다. — p.147
이것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일을 선택해서 돈을 쓸 것이냐의 문제이다. 메타경제적 가치를 넓은 마음으로 수용하는 쪽으로돌아갈 수 있다면, 풍광이 다시금 건강하고 아름다워질 것이며,
인간의 존엄성도 회복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동물보다 높은 존재임을 알면서도 높은 신분에는 도덕적 의무가 따른다는 원칙을 결코 잊지 않게 될 것이다. — p.150
○ 출판사 서평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실천적 경제학자이자 환경운동가로 유명한 슈마허의 역작으로 혁명적인 방법으로 서구 세계의 경제 구조를 바라본다. 슈마허는 경제 성장이 물질적인 풍요를 약속한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환경 파괴와 인간성 파괴라는 결과를 낳는다면, 성장지상주의는 맹목적인 수용의 대상이 아니라 성찰과 반성의 대상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이러한 경제 구조를 진정으로 인간을 위하는 모습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방안으로 ‘작은 것’을 강조한다. 인간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 규모를 유지할 때 비로소 쾌적한 자연 환경과 인간의 행복이 공존하는 경제 구조가 확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역 노동과 자원을 이용한 소규모 작업장을 만들자고 제안하며 더 작은 소유, 더 작은 노동 단위에 기초를 둔 중간 기술 구조만이 세계 경제의 진정한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중간 기술이란 인간을 생산 과정에 복귀시켜 생존수단의 부재로 빈곤에 시달려온 많은 이들을 구제할 방법으로, 대량 생산 대신 대중에 의한 생산을 이루어줄 유일한 대안이다.
– 현 경제의 당면 과제는 성장이 아니다 :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을 통한 환경과 인간성의 회복이다
현대인들은 생산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믿으며, 부국의 중요 임무는 여가 교육이고, 빈국의 임무는 과학 기술의 전수라고 말한다. 정치가들은 세계 평화를 위해서는 경제 성장이 전제해야 된다며 성장제일주의로 자신들의 체제를 수호하려 한다. 그러나 2000년대를 눈앞에 둔 오늘날, 우리들의 상황을 돌아보면 인류 평화의 전망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불안하다. 문제의 핵심은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려 하는 데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자연을 밑천으로 살아왔으나 이제 그 한계에 다달했다는 징후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한 예로 화석연료의 고갈을 들 수 있다. 부유해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료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로 인한 공해 문제와 자연의 불균형은 이미 위험 수치를 넘어섰다.
– 거대 조직화와 전문화를 진척시키는 개발 논리가 경제적 비능률과 환경오염, 그리고 비인간적인 작업 조건을 낳았다
오늘날 사용되는 비난의 어휘 중 비경제적이란 말처럼 결정적인 것이 없는데, 우리는 경제적이라는 말을 질은 무시한 채 주로 양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것에 길들여져 왔다. 따라서 크고 많은 것이 좋다는 거대주의가 전세계적으로 퍼져, 정치·경제·사회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규모의 문제가 1차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러나 부국에서도 빈국에서도 거대주의가 낳은 비극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은 급격한 산업화 중에 도시와 농촌의 균형 있는 개발에 실패한다면 국가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현대 경제계산에는 인간이 빠져 있다. 그래서 기계화를 서두르고 더욱더 큰 단위만을 추구하게 되는데, 이때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노동으로부터 소외된다. 거대주의와 기계화의 경제학이 인간을 자본의 노예로 전락시키기고 있는 것이다.
– 현대 경제의 테두리에는 ‘인간’이 빠져 있다
성장을 위한 경제 체계보다 인간을 위한 경제 체계가 더 절실히 필요하다는 증거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원자력은 이미 수십 년 전 그 위력과 비극을 입증했고, 핵 원자로가 만들어내는 대량의 방사능 폐기물로부터 안전한 곳은 지구상에 없다. 또 지난 사반세기 동안의 고도 성장이 실제로 모든 인류의 생활을 편안하게 해주었는가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세계 인구의 5.6%를 차지하는 미국인은 전세계 1차 자원의 40%를 소비한다. 단 5.6%가 40%의 1차 자원을 사용하는 현 공업 체제가 과연 올바른 것인가).
– 정교한 손과 창조적인 두뇌를 가진 인간을 생산 과정에 참여시켜라 : 진정한 경제 발전은 대중에 의한 생산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지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후진국이 선진국의 생산소비 패턴에 종속되어 생기는 의존 상태다. 서구의 경제 구조가 원조와 협력의 이름으로 이식되어 벗을 수 없는 종속의 올가미를 씌우는 것이다. 이것 역시 거대주의에 대한 우상숭배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작은 것이 합당한 곳에서는 작은 것의 미덕을 강조해야 한다. 모든 나라가 미국이나 독일이 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제3세계는 그들에게 알맞은 인간성을 가진 기술, 즉 중간 기술을 통해 새로운 기술 진보를 이루어야 한다. 이 중간 기술이란 대량 생산 대신 대중 생산을 목적으로 하며 정교한 손과 창조적인 머리를 가진 인간을 다시 생산 전과정에 복귀시킨다. 이 중간 기술은 모든 생산 목표를 다수의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방향으로 이끌며, 소규모적이고 분산적이며 또한 노동력을 많이 요구함으로써 기본적인 생존수단을 갖지 못해 빈곤에 시달려온 많은 이들을 구제할 수 있다.
– 지역 노동과 자원을 이용한 소규모 작업장을 형성하라 : 공공소유, 작은 노동 단위에 기초한 구조만이 진정한 경제 발전을 가져온다
물론 주류 경제학자들은 이런 주장을 시대에 뒤떨어진 퇴행성 이론이라 논박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대량 학살, 몰락, 오염, 고갈, 기아 등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자본은 인간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근본적 출발점에 다시 설 필요가 있다. 즉 인간 중심의 경제가 절실히 요구된다. 인간은 우주의 한 작은 기능이며, 따라서 작은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거대함만을 추구하는 것은 자기 파괴로 치닫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인간 생활의 본질적 선결 조건이 되는 공기, 물, 토양 같은 천연자원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이에 따른 인간과 자연과의 조화, 중간 기술의 개발, 그리고 각 국각의 노력인 것이다. 지금 경제학의 당면 과제는 성장이 아니다. 경제이론, 경제사상, 경제정책이 지향해야 할 것은 인간성의 회복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