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파리는 날마다 축제
원제 : A Moveable Feast
어니스트 헤밍웨이 / 이숲 / 2012.1.20
– 헤밍웨이의 행복했던 젊은 시절로 떠나는 파리 체류기!
헤밍웨이의 젊은 시절 파리 체류기로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죽기 얼마 전인 1957년 가을부터 1960년 봄 사이에 젊은 시절 파리에서 거주하던 이야기를 기록한 회고록이다.
글쓰기에 대한 치열한 열정, 파리에 거주했던 예술가들과의 인연, 첫 부인 해들리와 아들 존과의 일상, 아름다운 파리의 풍경과 단골 카페에서 일어난 일화들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1920년대 헤밍웨이가 파리에서 살던 집과 지인들의 집, 드나들던 카페와 산책하던 구역, 자주 찾던 서점과 오가던 거리의 사진들을 풍부하게 담았으며, 책의 끝부분에는 헤밍웨이의 일생을 정리한 연대기와 함께 50쪽에 달하는 사진 자료가 수록되어 있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작가의 일생을 실감하게 만나볼 수 있다.

○ 목차
1부_ 움직이는 축제
1. 생 미셸 광장의 기분 좋은 카페
2. 스타인 여사의 가르침
3. ‘셰익스피어 & 컴퍼니’ 서점
4. 센 강변 사람들
5. 덧없는 봄
6. 경마에 대한 집착의 끝
7. “잃어버린 세대”
8. 배고픔은 훌륭한 교훈이다
9. 포드 매독스 포드와 악마의 제자
10. 파생과 카페 돔에서
11. 에즈라 파운드와 자벌레
12. 정말 이상한 결별
13. 죽음과 맞선 흔적이 있는 남자
14. 릴라에 온 에반 쉬프맨
15. 악의 대리인
16. 쉬룬스의 겨울
17. 스콧 피츠제럴드
18. 매는 나누지 않는다
19. 젤다의 불만
역주
2부_ 파리 스케치
1. 새로운 유파의 탄생
2. 에즈라 파운드와 그의 ‘벨 에스프리’
3. 일인칭 글쓰기에 관하여
4. 은밀한 즐거움
5. 이상한 파이트 클럽
6. 매캐한 거짓말 냄새
7. 범비 군의 교육
8. 스콧과 그의 프랑스인 운전기사
9. 파일럿 피시와 부자들
10. 나다 이 뿌에스 나다
역주
어니스트 헤밍웨이 연대기
사진으로 보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옮긴이의 말

○ 저자소개 :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 (Ernest Miller Hemingway, 1899년 7월 21일 ~ 1961년 7월 2일)
1899년 7월 21일 미국 시카고 교외의 오크파크에서 출생하였다. 고교시절에는 풋볼 선수였으나, 시와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고교 졸업 후에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캔자스시티의 『스타 : Star』지 (紙) 기자가 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때인 1918년 의용병으로 적십자 야전병원 수송차 운전병이 되어 이탈리아 전선에 종군 중 다리에 중상을 입고 밀라노 육군병원에 입원, 휴전이 되어 1919년 귀국하였다. 전후 캐나다 『토론토 스타』지의 특파원이 되어 다시 유럽에 건너가 각지를 여행하였고, 그리스-터키 전쟁을 보도하기도 했다. 파리에서 G.스타인, E.파운드 등과 친교를 맺으며 작가로서 성장해간다.
1923년 『3편의 단편과 10편의 시 (詩) : Three Stories and Ten Poems』를 출판한 것을 시작으로 1924년 단편집 『우리들의 시대에 : In Our Time』, 1926년 『봄의 분류 (奔流) : The Torrents of Spring』, 밝은 남국의 햇빛 아래 전쟁에서 상처입은 사람들의 메마른 허무감을 그린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 : The Sun Also Rises』를 발표한다. 1929년 전쟁의 허무와 비련을 테마로 한 전쟁문학의 걸작이라 평가 받는 『무기여 잘 있거라 : A Farewell to Arms』를 완성하면서 많은 관심을 받게 된다.
일생 동안 헤밍웨이가 몰두했던 주제는 전쟁이나 야생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의 삶과 죽음의 문제, 인간의 선천적인 존재 조건의 비극과, 그 운명에 맞닥뜨린 개인의 승리와 패배 등이었다. 본인의 삶 또한 그러한 상황에 역동적으로 참여하는 드라마틱한 일생이었다. 당시 스무 살의 나이에 경험한 세계 1차대전을 비롯하여 그는 스페인 내전과 터키 내전에도 참전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쿠바 북부 해안 경계 근무에 자원했다. 이런 그의 경험은 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했는데 이탈리아 밀라노 병원에서 한 간호사와 나눈 사랑은 『무기여 잘 있거라 : A Farewell to Arms』의 소재가 되었으며, 1936년 에스파냐내란 발발과 함께 그는 공화정부군에 가담하여 활약, 그 체험에서 스파이 활동을 다룬 희곡 『제5열 (第五列) : The Fifth Column』 (1938)이 탄생되었고, 다시 1940년에 에스파냐 내란을 배경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For Whom the Bell Tolls』를 썼다.
이처럼 전쟁을 소재로 한 헤밍웨이의 소설들은 모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양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통과 단절된 젊은 세대들을 일컫는 ‘잃어버린 세대 (the lost generation)’를 대변하는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작품들은 헤밍웨이를 20세기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올려놓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10년간의 침묵을 깨고 발표한 『강을 건너 숲 속으로 : Across the River and into the Trees』 (1950)는 예전의 소설의 재판 (再版)이라 해서 좋지 못한 평을 얻었지만, 다음 작품 『노인과 바다 : The Old Man and the Sea』 (1952)는 대어 (大魚)를 낚으려고 분투하는 늙은 어부의 불굴의 정신과 고상한 모습을 간결하고 힘찬 문체로 묘사한 단편이다.
심볼리즘과 운율을 유감없이 구사하여 그린 용기있는 한 남성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다. ‘생전에 쓰기를 벼르다가 끝내 쓰고야 만 작품’이라고 작가 자신이 말한 니힐리즘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 작품으로 헤밍웨이는 1953년 퓰리처상과, 1954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단편집으로는 『우리들의 시대에』 외에 『남자들만의 세계 : Men Without Women』 (1927) 『승자 (勝者)는 허무하다 : Winner Take Nothing』 (1932)가 있다. 하드보일드 (hardboiled)풍의 걸작 『살인청부업자 : The Killers』 (1927), 『킬리만자로의 눈 : The Snow of Kilimanjaro』 (1936) 등이 있다.
– 역자 : 주순애
서울대학교 문과대학 영어영문학과 졸업하고 「Korea Economic Weekly」, 「코리아 헤럴드」에서 기자로 일했다. KPMG 산동, 새빛 회계법인, E&Y 영화, 한영 회계법인에서 영문 번역 일을 했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 『아즈텍의 비밀』, 『파리는 날마다 축제』, 『웜우드: 어둠의 책』, 『존 스미스 이야기』, 『지구별 사랑 이야기』, 『두려움 없는 죽음, 죽음 이후의 삶』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파리는 내게 언제나 영원한 도시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변하든, 나는 평생 파리를 사랑했습니다. 파리의 겨울이 혹독하면서도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은 가난마저도 추억이 될 만큼 낭만적인 도시 분위기 덕분이 아닐까요. 아직도 파리에 다녀오지 않은 분이 있다면 이렇게 조언하고 싶군요. 만약 당신에게 충분한 행운이 따라주어서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보낼 수 있다면, 파리는 마치 ‘움직이는 축제’처럼 남은 일생에 당신이 어딜 가든 늘 당신 곁에 머무를 거라고. 바로 내게 그랬던 것처럼.” — 헤밍웨이의 인터뷰, 옮긴이의 말 「어니스트의 화양연화」 중에서
한 여인이 카페로 들어와 창가의 테이블에 홀로 앉았다.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다. 빗물에 씻긴 듯 해맑은 피부에 얼굴은 방금 찍어낸 동전처럼 산뜻했고, 단정하게 자른 머리카락이 새까만 까마귀 날개처럼 뺨을 비스듬히 덮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존재는 내 집중력을 흩어놓고 마음을 설레게 했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글에, 혹은 다른 글에라도 그녀를 등장시키고 싶었지만, 거리와 카페 입구가 잘 보이는 방향으로 앉아 있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나는 다시 글쓰기를 계속했다. 연필이 저절로 종이 위에 글을 써나가고 있었고, 나는 그 흐름을 따라잡느라 애를 먹었다. 럼주를 한 잔 더 주문하고 이따금 고개를 들 때마다, 혹은 받침 접시에 대고 연필을 깎을 때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여인이여, 그대는 내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당신이 누구를 기다리고 있든, 그리고 내가 당신을 다시는 보지 못한다 해도,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나의 것입니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당신은 내 것이고, 파리도 내 것이고, 나는 이 공책과 이 연필의 것입니다…. — 1-1. 〈생 미셸 광장의 기분 좋은 카페〉 중에서
그러나 때로 새로 시작한 글이 전혀 진척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벽난로 앞에 앉아 귤 껍질을 손가락으로 눌러 짜서 그 즙을 벌건 불덩이에 떨어뜨리며 타닥타닥 튀는 파란 불꽃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그렇지 않으면 창가에서 파리의 지붕들을 내려다보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넌 전에도 늘 잘 썼으니, 이번에도 잘 쓸 수 있을 거야. 네가 할 일은 진실한 문장을 딱 한 줄만 쓰는 거야. 네가 알고 있는 가장 진실한 문장 한 줄을 써봐.’ 그렇게 한 줄의 진실한 문장을 찾으면,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계속 글을 써나갈 수 있었다. — 1-2. 〈스타인 여사의 가르침〉 중에서
그래도 당시 우리는 스스로 가난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스스로 자부했으며, 부자들을 경멸하고 불신했다.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속옷 대신 스웨터를 입는 것이 내게는 전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런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부자들뿐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값싼 음식으로 잘 먹고, 값싼 술로 잘 마셨으며, 둘이서 따뜻하게 잘 잤고,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1-5. 〈덧없는 봄〉 중에서
밤새 우리는 각자 두 차례나 잠에서 깨었지만, 이제 아내는 달빛을 받으며 평온하게 단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이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려고 애썼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덧없는 봄이 찾아왔음을 발견하고, 염소 몰이꾼의 피리 소리를 듣고, 경마신문을 사려고 밖으로 나갈 때만 해도 인생은 더없이 단순한 것 같았는데…. 그러나 파리는 아주 오래된 도시였고 우리는 너무 젊었으며 이 세상에 그 무엇도 단순한 것은 없었다. 가난도, 갑자기 생긴 돈도, 달빛도, 옳고 그름도, 달빛을 받으며 곁에 잠들어 있는 한 사람의 고른 숨소리마저도….— 1-5. 〈덧없는 봄〉 중에서
그러나 나는 소설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 올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절대로 생계의 수단으로 소설을 써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을 때 나는 소설을 쓸 것이다. 따라서 나는 더 많은 압박이 쌓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동안은 우선 내가 잘 아는 주제에 대해 긴 글을 써봐야 할 것이다.— 1-8. 〈배고픔은 훌륭한 교훈이다〉 중에서
기차가 쉬룬스의 역 안에 쌓아둔 통나무 더미를 지나면서 선로 옆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아내를 보았을 때 나는 그녀가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하기 전에 죽어 버렸기를 바랐다. 아내는 웃고 있었고, 햇볕과 눈에 그을린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과 겨우내 자란 그녀의 적갈색 머리카락이 햇살 속에서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보였다. 그녀의 옆에는 겨울 날씨에 통통한 뺨이 발갛게 터서 포알베르크 시골 마을의 개구쟁이처럼 보이는 금발의 범비 군이 서 있었다. (…)
한 사람과 함께 있을 때에는 그 사람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은 내게서 멀어졌다. 다른 사람과 있을 때에는 그 사람을 사랑하고 또 한 사람은 내게서 멀어졌다. 두 사람과 함께 있을 때면 두 사람을 모두 사랑했다. 끔찍했던 것은 그럼에도 내가 행복하다는 사실이었다. — 2-9. 〈파일럿 피시와 부자들〉 중에서
“헴, 글 쓰는 것, 잊지 않을 거지?”
“물론이지.” 내가 대답했다. “내가 글 쓰는 걸 잊을 리가 있나.”
나는 전화를 걸려고 밖으로 나갔다. 물론이지, 하고 생각했다. 글 쓰는 걸 절대로 잊지 않을 거야. 나는 글을 쓰려고 세상에 태어났고, 여태까지 글을 써왔으며, 앞으로도 다시 글을 쓸 거야. — 2-10. 〈나다 이 뿌에스 나다〉 중에서

○ 출판사 서평
– 헤밍웨이의 젊은 시절 파리 체류기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젊은 시절 (1921 ~ 1926)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면서 경험한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회고록. 글쓰기에 대한 치열한 열정, 파리에 거주하던 예술가들과의 인연, 첫 부인 해들리와 아들 존과의 일상, 아름다운 파리의 풍경과 단골 카페에서 일어난 일화들이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저자가 스스로 고백하듯이 한 위대한 작가의 젊은 날,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자의 이동 경로를 따라 파리의 인상적인 지역을 돌아보는 재미가 유별나다.
– 저자 사후에 내용이 보완된 증보판
이 책은 헤밍웨이가 죽기 얼마 전인 1957년 가을부터 1960년 봄 사이에 젊은 시절 파리에서 거주하던 시기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다. 이 회고록은 그의 사후 3년 되던 해인 1964년에 《움직이는 축제일 (A Moveable Feast)》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간되었고, 2010년에는 1964년도 판에 저자의 미완성 원고를 추가한 ‘복원본’이 같은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다시 말해 이 책의 2부 「파리 스케치」에는 1964년 판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일화가 수록되어 있다.
헤밍웨이의 네 번째 부인인 메리 웰시가 편집한 1964년도 판에 미발표 원고를 보완하여 2010년 이 책을 출간한 사람은 헤밍웨이의 두 번째 부인 폴린 파이퍼의 손자 숀 헤밍웨이다. 그가 발굴하여 새롭게 추가한 원고를 보면 저자가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대목이 그대로 드러나 집필 당시 저자의 생각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글을 쓰다가 결말을 이렇게 혹은 저렇게 쓴 대목도 있고, 초고를 썼다가 삭제한 부분도 있다. 그리고 특히 이 추가분 원고에는 말년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쇠진해진 헤밍웨이가 자살하기 얼마 전 행복했던 젊은 날을 돌아보는 회한과 성찰이 생생하게 드러나 읽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 인간 헤밍웨이를 소개한 감각적이고 충실한 자료
이 책에는 1920년대 헤밍웨이가 파리에서 살던 집과 지인들의 집, 드나들던 카페와 산책하던 구역, 자주 찾던 서점과 오가던 거리를 촬영한 매력적인 사진이 풍부하게 삽입되어 있다. 프랑스 여행을 계획하는 독자라면 젊은 날 헤밍웨이의 자취를 따라 파리의 여러 곳을 돌아보면서 이 책을 특색 있는 가이드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 책의 끝 부분에는 헤밍웨이의 일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연대기와 함께 무려 50여 쪽에 달하는 사진 자료가 수록되어 있어 감동적인 이미지와 흥미로운 설명을 통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작가의 일생을 더욱 실감 나게 들여다볼 수 있다.

○ 독자의 평
배가 고파도 즐거웠던 시절, 가슴이 예술혼으로 벅차오르던 시절. 스콧 피츠제럴드와 카페에서 술을 마시고, 에즈라 파운드와 복싱 연습을 하는 헤밍웨이. 근사하게 꾸민 아파트에서 예술을 논하던 거트루드 스타인, 가족들과 식당에 앉아 식사를 하는 제임스 조이스, 창업 초기 셰익스피어 & 컴퍼니 서점의 주인 실비아 비치. 늦은 오후가 되면 헤밍웨이는 종종 그림을 보고 대화를 나누기 위해 거트루드 스타인의 아파트에 방문하곤 했다. 그는 스타인의 환대를 받으며 사람, 장소, 물건, 음식 등 그녀가 꺼내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생제르맹 대로를 걷던 헤밍웨이는 조이스와 우연히 마주치기도 한다. 시력이 나빠서 배우들이 표정을 보지도 못하지만, 목소리만이라도 듣고 싶어 연극을 보러 온 조이스. “그가 내게 술 한 잔 하자고 청해서 우리는 카페 되마고에 들어갔다.”(p126) 젊은 헤밍웨이의 체험이 <파리는 날마다 축제>(주순애 역, 이숲)에 남아 있다. 그의 기억을 통해서 20세기 초반의 파리로 여행을 떠난다.
겨울철 파리는 예나 지금이나 스산하다.
헤밍웨이의 글은 어느 겨울날 풍경으로 시작된다. 찬바람이 불면 외투를 여미고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는 사람들. 가난한 작가에게 추위는 더욱 쓸쓸하게 다가온다. 비라도 떨어지면 도시의 온갖 서글픔이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관광객들이 구경하는 도시가 아니라, 작가가 살아가는 도시의 모습이다.
“가을이 저물어 가던 어느 날, 어김없이 고약한 날씨가 찾아왔다. 밤이면 언제 비가 들이칠지 몰라 창문을 꼭 닫고 자야 했다. 찬바람은 콩트르 에스카르프 광장(Pl. de Contre Escarpe)의 가로수 잎들을 세차게 날려 버렸다. 잎들이 비에 흠뻑 젖어 바닥에 뒹굴고, 빗줄기가 바람에 날려 버스 종점에 서 있는 커다란 녹색 버스를 후려쳤다. 그럴 때면 카페 데자마퇴르(des Amateurs)는 사람들로 붐볐고, 유리창은 실내의 후끈한 열기와 담배 연기로 김이 뿌옇게 서렸다. 동네 술꾼들이 모여드는 이 지저분하고 허름한 카페는 잘 씻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냄새와 시큼한 술 냄새에 절어 있었다. 나는 이 술집 단골은 아니었지만, 이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보면 남자든 여자든 늘 취해 있었다. 아니, 그들은 이 카페에서는 일 리터 혹은 반 리터짜리 싸구려 와인을 마실 수 있었기에 늘 취했을 것이다.”(p9)
“날씨는 맑고, 차고, 감미로웠다. 그리고 도시는 이미 겨울에 익숙해져 있었다…….. 거리에는 겨울 불빛이 화려했다.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그림처럼 보이는 벌거벗은 나무들의 모습에 익숙해진 파리 시민은 살을 에는 듯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뤽상부르 공원(Parc de Luxembourg)의 깨끗하게 씻긴 자갈길을 산책했다. 잎이 다 떨어진 나무들은 겨울 풍경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눈이 애처롭도록 아름다워 보였고, 겨울바람은 연못의 수면을 쓸고 지나갔으며, 분수대에서 뿜어 나오는 물줄기는 반짝이는 불빛 속에서 이리저리 흩날렸다.”(p17)
헤밍웨이는 항상 허기가 졌다. 배가 고프고, 독서욕에 시달렸다.
음식을 여유롭게 사 먹거나 책을 살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혈기왕성한 젊은 작가에게 빵 냄새를 맡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파리에서는 충분히 먹지 못하면 몹시 허기가 진다. 빵집 진열대에는 먹음직스러운 빵들이 그득하고 거리에는 테라스에 차려진 식탁에서 식사하는 사람이 많아서 늘 먹을 것이 눈에 보이고 음식 냄새가 코를 자극하기 때문이다.”(p78)
독서를 하고 싶어도 영어로 된 책이 많지 않았다. 센 강변의 부키니스트들을 뒤지다가 싼값에 우연히 책을 구하는 날은 행복했다. “생 루이 섬 맞은편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과 시테 섬을 마주 보며 강을 따라서 가는 길도 있다. 강변의 노점 책방에서는 최근 미국에서 간행된 책들을 가끔 터무니없이 싼 값으로 구할 수 있었다.”(p39) 그러던 어느 날 셰익스피어 & 컴퍼니가 문을 열었다. “무척 가난했던 나는 오데옹 거리 12번지에 있는 실비아 비치의 대여점 셰익스피어 & 컴퍼니에서 책을 빌리곤 했다. 겨울이 되면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쌀쌀한 거리에 있는 그 서점에서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해 입구에 커다란 난로를 피워 놓았다. 따뜻하고, 쾌적하고, 멋진 곳이었다.”(p32)

파리지앵들에게 카페는 일상이었다. 삶이었다. 헤밍웨이도 커피 한 잔, 맥주 한 컵을 시켜놓고 혼자 앉아서 글을 쓰곤 했다. “글 쓰는 사람은 대부분 그 구역에 단골 카페를 정해놓고 그곳에서는 절대로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혼자 앉아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었고, 그 카페 주소로 우편물을 받기도 했다. …. 사람들이 식사하러 가는 중립 지대의 비싸지 않고 편안한 단골 식당도 많이 있었다. 그 근방에는 몽파르나스 구역의 카페 돔, 카페 로통드, 카페 셀렉트가 있었지만, 초기의 파리에 관한 책에 자주 등장하는 레스토랑 쿠폴이나 딩고 바 같은 번듯한 업소는 없었다.”(p268)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 카페 셀렉트가 나오는 것은 헤밍웨이의 생활이 반영된 탓이다.
“집에서 가장 가깝고 괜찮은 카페는 라라클로즈리 데릴라였다. 사실, 그곳은 파리에서 가장 좋은 카페 중 하나였다. 겨울에는 실내가 따뜻하고 봄가을에는 공원과 네 원수 동상 쪽 나무 그늘에 테이블을 내놓은 테라스가 무척 쾌적했다. 테이블들은 큰 길을 따라 쳐놓은 커다란 차양 아래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 카페 돔이나 카페 로통드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절대로 릴라에 오지 않았다. …. 한때 라라클로즈리 데릴라는 시인들이 크고 작은 모임을 하는 카페였고, 그런 모임을 주재한 마지막 시인은 폴 포르였다.”(p90)
차가운 겨울이 지나가고 따사로운 봄이 찾아온다.
헤밍웨이는 “뤽상부르 공원을 통과하여 옵세르바투아르 광장 쪽으로 내려갔다. 길에는 마로니에꽃이 만발했고, 유모들이 벤치에 앉아 지켜보는 가운데 자갈이 깔린 산책로에서 뛰어노는 어린아이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나무 사이로 산비둘기들이 보였고, 눈에 보이지 않을 때에도 새소리는 여전히 귓전에 들려왔다.”(p115)
가난해도 파리에서의 삶은 행복했다. 소박한 풍경들이 펼쳐진다. “우리가 살던 카르디날 르무안 거리에서 센 강으로 내려가는 길은 여러 갈래였다. 그중 가장 가까운 길은 경사가 좀 가파르지만, 직선거리였는데 그리로 내려가다 보면 평지가 나오고, 이어서 사람들로 붐비는 생제르맹 대로를 가로지르면 오른쪽에 포도주 시장이 있었다. 바람이 스산한 강둑에 있는 이 포도주 시장은 파리의 다른 시장들과는 전혀 달랐다. 그곳은 면세 포도주를 쌓아 놓은 일종의 보세창고로, 밖에서 보면 마치 무기고나 포로수용소처럼 칙칙했다.”
센 강은 한적했다. 퐁뇌프 다리 위에 선다. 강물은 흘러가고, 가까이 퐁데자르가 보인다. “앙리 4세 동상이 있는 다리 퐁뇌프 아래 시테 섬 끝자락이 뾰족한 뱃머리 모양으로 끝나는 지점 강변에는 커다랗고 아름다운 마로니에 나무들이 서 있는 작은 공원이 있다. 그 옆에서 급류를 이루거나 역류를 만들며 유유히 흐르는 센 강변에는 낚시하기 좋은 장소가 여럿 있었다. 사람들은 계단을 통해 내려가서 낚시꾼들이 그곳이나 다리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아 낚시질하는 모습을 구경하곤 했다.”(p42~43)
“물가에서 온종일 시간을 보내는 낚시꾼들, 강을 오가는 아름다운 바지선들, 화통으로 연기를 길게 뿜으며 그 바지선을 끌고 다리 밑을 지나가는 예인선들, 돌로 쌓은 제방에 죽 늘어선 키 큰 플라타너스와 느릅나무들, 그리고 군데군데 서 있는 미루나무들을 쳐다보며 센 강을 따라 산책하노라면 나는 결코 혼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토록 많은 나무가 있는 파리에서 우리는 하루하루 가까워지는 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며, 어느 날 밤 따뜻하 바람이 불더니 다음 날 아침 봄이 갑자기 눈앞에 와 있음을 실감하곤 했다.”(p44)
언제나 예술이 곁에 있어서 삶은 아름다웠다.
“배가 몹시 고플수록 벽에 걸린 그림들이 더욱 맑고, 또렷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나는 배가 텅 비었을 때 세잔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그가 어떻게 풍경화를 그렸는지를 진정으로 꿰뚫어볼 수 있음을 깨달았다.”(p78) 헤밍웨이는 세잔의 그림을 보면서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회화든 소설이든 창작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은 똑같기 때문이다. “세잔의 그림들은 내가 원하는 수준의 작품을 쓰려면 간결하고 진솔한 문장을 구사하는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세잔의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지만,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잘 설명하기에는 내 표현력이 부족했다.”(p19)
젊은 날 파리에서의 경험이 헤밍웨이로 하여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노인과 바다> 같은 걸작들을 남기게 만들었다. 파리 생활이 전부는 아닐지라도 감수성 예민한 젊은 작가의 세계관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파리는 날마다 축제>를 통해서 ‘젊은 헤밍웨이의 파리’로 돌아간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