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초대석
34년간 40일 금식기도 10회 하며 기도운동에 힘쓰는 윤병이 목사
윤병이 목사(한국 부산반여제일교회 담임, 한국기독교기도원 총연합회 대표회장)는 기도의 사람이다. 그의 저서 ‘하나님과 통하는 기도’ 책 머리에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며 하나님과의 거룩한 관계를 지속시켜주는 능력인 동시에, 하나님과의 교통수단이다. 기도는 성도의 생명이며 삶이요 영적 재산이므로 한국교회가 새로운 부흥을 바란다면 더 늦기 전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그것만이 한국교회를 새로운 부흥으로 이끌 수 있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라고 역설하며 이 시대 기도운동의 회복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집회차 시드니를 방문한 윤병이 목사를 만나 걸어온 삶과 사역의 근황을 나눠본다.
저는 1961년 호주 선교사 변조은(Rev John Brown) 목사님의 전도로 예수님을 영접했어요. 변목사님께서 “예수믿으라”는 외침에 회개하고 예수믿기로 작정 후 1963년에는 마산문창교회에서 진행하는 신학코스에 입학해 신학공부도 시작했죠. 신학공부하다 해병대에 입대(150기)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고향의 한 선배가 해병 헌병대에 근무했는데 그 영향으로 해병대에 입대하게 된거죠.
해병대 입대후 하사관으로 장기복무하면서 1967년도에는 월남전에 파병 근무했습니다. 해병대 생활은 적성에 맞는 듯 했어요. 그런데 파병근무 15개월 즈음 좌측 팔과 다리를 총알이 관통하는 중상을 입고 본국 진해 해군병원으로 후송되어 1년 정도 병원생활 후 제대했습니다. 제대후에는 몸과 마음이 망가져 세상을 탓하며 방황했는데 지금의 아내를 만나 1970년 1월 3일 결혼해 부산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죠.
월남파병 근무중 부상당해 후송, 방황중 다시 예수께로
가정을 꾸리며 아내의 지극적인 헌신과 신앙생활에 대한 회복은 저를 당시 부산 남부민중앙교회로 이끌었는데 당시 아내의 기도는 오로지 “내 남편 사람 좀 되게 해 달라”는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주셔서 5년 만에 주님 품으로 온전히 돌아와 경성대학 신학과에 입학하게 됩니다.
당시 월남 참전으로 받은 훈장과 이력으로 대한상이군경회 부산지회 지도계장을 거쳐, 과장으로 재직하며 엄하게 직원들을 심하게 혼내주곤 했는데 신학대학 입학 후 보훈청에 등록금 면제신청을 하러 갔더니 부산 보훈청 공무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윤 선생님, 그 길로 잘 가셨습니다”라고 인사하는 겁니다. 저는 그때 그분들이 축하해서 하는 말이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저가 신학교에 들어가 목회자가 될 것이니 자기들의 괴로움이 좀 줄어들었다는 의미였던 것 같았습니다. 과거에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제가 바보처럼 변했다고 했어요. 세상사람에서 예수쟁이로 변하니 그러는 겁니다.
교회개척하고 회개하며 40일 금식기도 시작해 10회 실시
저는 처음 주님 앞으로 돌아와 사명이 있음을 깨달았을 때 정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내가 목회자가 된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어요. 사실 저는 주님께 붙들리기 전에는 목회자를 귀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지난 기억을 들추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보통 걱정이 되는게 아니었어요. 내가 어떻게 해서 이 사명을 감당하나 생각하니 잠이 오질 않았죠.
34살에 개척교회를 시작했는데 얼마나 회개가 되고 스스로가 부족하단 자각이 들던지 죄인된 마음에 40일 금식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첫 40일 금식기도 중에 4일과 18일 그리고 30일째가 많이 힘들었습니다.
이런 계기로 1976년부터 격년별로 10회에 걸쳐 40일 금식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기도보다 더 좋은 기술이 없다고 생각하여 기도에 많은 투자를 합니다. 그래서 체력과 시간을 투자하여 금식도 했고, 물을 전혀 마시지 않고 추운 겨울 눈 속에서 11일 동안 견뎌 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하루 3시간 이상은 기도하는데 시간을 냅니다. 바쁘면 바쁠수록 기도에 더 많은 시간을 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1981년 5월부터는 부산반여제일교회를 개척해 목회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개척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제 개척하면 벌떼처럼, 구름떼처럼 모여들어 금방 부흥될 것이라고 했어요. 제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당시 개척을 위해 40일 금식기도를 두 번하고 또 눈이 하얗게 쌓인 높은 산, 물이 없는 곳에서 텐트를 치고 물 한 방울 안마시고 단식기도 하다 취위에 몸이 얼어 감각이 없도록 기도하다 시체처럼 집에 옮겨져 20일 동안 몸을 쓰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회복후 다시 응답을 받기 위해 김해 무척산, 광주 무등산 등 높은 곳을 찾아다니며 부르짖었으나 응답을 받지 못하고 결국 양산에 있는 호렵산 엘리야 굴에서 응답을 받고 교회를 개척했어요. 그런데 개척 1년이 다 되어가도록 등록한 교인은 두 명뿐이었어요. 너무 안타까워 다시 40일 금식기도를 위해 후배사역자에게 교회를 맡겨놓고 금식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니 20여명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기도 자체가 노동이며 생산임을 깨달았습니다. 지금도 무슨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려고 뛰어다니고 보다는 먼저 기도합니다. 기도가 일을 해결하는 노동이요 생산활동이라고 간증합니다.
기도중에 불신자 형제자매에게도 전도해 목회자와 직분자로 결실
저는 형님 세 분, 누님 두 분이 있는 6남매 중 막내입니다. 그리고 우리 집은 장손이어서 제사도 많아요. 그런데 저 혼자 예수를 영접하고 거기다 목사가 되었으니 핍박도 많았죠. 제가 신학교를 다닐 때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셨어요. 형님들을 모시고 장례 의논을 하면서 “장례식을 기독교식으로 하자” 하였더니 “안된다”고 해요. 당연한 반응이죠. 그래서 저는 아버님 장례를 보지 않고 부산으로 와버렸어요. 그리고 그 뒤에 만날 때 마다 형님들과 누님들에게 “예수 믿자”라고 전도했어요. 저보다 아내가 더 열심이었어요. 그러다가 많이 싸우기도 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그분과 그들의 자녀들을 위해서 하루도 빼지 않고 기도했어요. 결국 세 분의 형님과 형수님, 두 분의 누님과 자형들 모두 다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수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그분들 자녀들 중에는 목사, 장로, 권사, 안수집사 등의 직분을 받기도 했습니다. 기도는 이렇게 힘이 있습니다.
한국과 세계의 교회들, 다시 기도운동의 회복이 있기를
오늘날과 같은 한국교회의 부흥은 기도운동을 통하여 이루어진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도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는 IT와 지식정보산업시대로 명명될 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어 영성을 점점 고갈되어 인간성을 잃어가고 있는지 오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복잡하고 타락한 현대사회에 거룩한 영향을 끼치는 것도 기도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산기슭마다 울려 퍼지던 기도의 메아리가 멈추게 되면서 목회현장은 은혜보다 지식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기도의 함성이 적어진 교회는 문제를 해결한 능력을 잃어가고, 모임에 참석하는 인원도 점점 줄어들어가고 있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며 하나님과의 거룩한 관계를 지속시켜주는 능력인 동시에, 하나님과의 교통수단입니다. 기도는 성도의 생명이며 삶이요 영적 재산이므로 한국교회가 새로운 부흥을 바란다면 더 늦기 전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한국교회를 새로운 부흥으로 이끌 수 있는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날 한국교회는 밤마다 바위에 앉아 기도하던 사람들로 인해 닳은 바위가 달빛으로 반사되었던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끼가 끼여 그냥은 앉을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고 하니 이것이 현대 한국교회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혹시 인간의 기준에 맞춘 어리석은 생각과 생활 속에 살아가지 않습니까? 자신의 자유의지를 꺾어 하나님의 의지 앞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인정하시길 바랍니다. 그게 바로 행복의 지름길입니다. 권력과 돈이 우리의 불행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 앞에 닥친 불행을 무엇으로 막으며 진정한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그것은 주님을 인정하고 우리의 부족과 연약함을 인정하며 그 해결을 위해 주님께 아뢰어 기도하며 해결을 구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사방이 막혔을 때 아버지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는 유일하게 뚫린 통로입니다. 기도는 인간이 할 수 없는 태산 같은 고난과 시련의 길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힘입니다. 앞을 가로막는 태산보다 강한 믿음으로 기도하여 산을 옮기고 형통한 인생길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인터뷰어 : 임운규 목사(호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