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자본론 세트 : 정치경제학 비판 전 5권
칼 마르크스 / 비봉출판사 / 2005.04.15
– 자본론. 1(상)
칼 마르크스의 고전적 경제학서. 상품의 분석으로 부터 시작해 공황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멸망의 필연성’을 설파했으며, 이후 국제 공산주의운동의 이론적 경전으로 되었다. 이 책에서는 자본주의적 경제관계의 기초적 요인이며 전제이기도한 상품과 화폐에 관하여 설명한 뒤, 자본주의적 생산에 있어서 임금노동자에 의한 잉여가치생산과 자본가에 의한 잉여가치 획득이라는 ‘잉여가치론’을 중심으로 노동자가 받는 임금, 자본의 축적, 자본주의적 관계 창출로서의 본원적 축적, 자본주의적 발전의 역사적 경향 등을 밝혔다.
– 자본론. 1(하)
자본론 1(상)이 상품분석에서 시작하여 화폐가 자본으로 전환, 잉여가치의 생성 등을 다루었다면 자본론 1(하) 편에서는 본격적으로 잉여가치를 다룬다. 즉 잉여가치를 뽑아내는 방법에는 절대적인 방법과 상대적인 방법이 있는데, 전자가 노동시간을 대표한다면 후자는 노동강도, 성과급제 등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하) 편에서 주목해야할 부분은 ‘자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자본의 축적방식’이다. 맑스는 말한다: 자본의 축적방식은 단순한 화폐축장과는 다르다. 노동력이라는 특수상품을 이용하여 끊임없이 자기증식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로 자본의 축적방식이며, 이러한 자본의 성격 탓에 자본가들은 (노동자들 또한) 끊임없는 경쟁 상태에 놓인다. 여기서 맑스는 또 한 가지를 주장하는데, 바로 자본의 최초 축적- 그러니까 처음에 어떻게 화폐를 쌓았나?에 대해서 ‘폭력수단을 통해서’라고 말한다. 토지 수탈-임노동자 고용-노동의 착취-자본의 축적-다시 토지수탈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은, 도시 인구가 농촌 인구를 넘어서고 있는 현대의 경향을 이해하게 해준다.
– 자본론. 2
‘자본론’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운동법칙을 밝힌 필생의 거작이다. 제 1권의 부제는 ‘자본의 생산과정’이고, 제 2권의 부제는 ‘자본의 유통과정’이며, 제 3권의 부제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이라 하여 자본주의 경제를 추진하는 근본적인 힘을 자본가들의 이윤추구로 상정하고 그 이윤을 핵심 개념으로 삼아 자본주의 경제의 구조와 발전을 밝히고 있다. 그중 이 책 자본론 제 2편에서는 생산과정에서 생산되고 창조된 잉여가치가 어떻게 화폐로 전환되는지, 또는 ‘실현되는지’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 자본론. 3(상)
자본론 3권 상. 이 책은 자본주의 경제를 해부 하였으며,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영구불멸하지 않으며 일시적이고 과도기적인 체제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 책의 부재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이다. 이 책에서는 산업자본이 생산과정에서 노동자를 착취해 창조한 잉여가치가 유통과정에서 화폐로 실현된 뒤에 어떻게 유산자계급(예컨데 각종 산업의 자본가들, 상업자본가, 금융자본가, 토지소유자)에게 분배 되는가를 연구한다. 제 1편과 제 2편은 잉여가치가 이윤으로, 그리고 평균이윤으로 전형되는 것과 이에 따라 상품의 가치 대신에 생산가격이라는 개념이 생기는 과정을 추적한다. 제 3편은 이른바 ‘이윤율 저하경햐으이 법칙’을 다루고 있는데, 애덤 스미스와 리카도가 고민한 이윤율의 저하경향을 자본주의적 발전 법칙에 따라 설명한다. 제 4편은 상업자본과 상업이윤에 대해, 제 5편은 이자낳는 자본과 이자에 대해 논한다.
– 자본론. 3(하)
자본론 3권 하. 자본주의경제에 대한 기존의 경제학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펼쳤던 마르크스의 경제사상이 체계적으로 전개되어 있는 ‘자본론’은 자본주의 사회의 조직과 운영 과정,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경제공황, 자본가계급에 의해 억압받는 노동자계급, 자본주의의 방향과 성장 전환, 등을 상세하게 밝혀낸다.
○ 목차

* 자본론. 1(상)
1편 상품과 화폐
1장 상품
1절 상품의 두 요소 : 사용가치와 가치(가치의 실체, 가치의 크기)
2절 상품에 포함되어 있는 노동의 이중성
3절 가치형태 또는 교환가치
4절 상품의 물신적 성격과 그 비밀
2장 교환과정
3장 화폐 또는 상품유통
1절 가치의 척도
2절 유통수단
3절 화폐
2편 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환
4장 자본의 일반공식
5장 자본의 일반공식에서의 모순
6장 노동력의 구매와 판매
3편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7장 노동과정과 가치증식과정
1절 노동과정(또는 사용가치의 생산)
2절 가치증식과정
8장 불변자본과 가변자본
9장 잉여가치율
1절 노동력의 착취도
2절 생산물의 가치를 생산물의 비례분배적 부분들로 표시
3절 시니어의 “최후의 한 시간”
4절 잉여생산물
10장 노동일
1절 노동일의 한계
2절 잉여노동에 대한 갈망, 공장주와 보야르
3절 착취의 법적 제한이 없는 영국의 생산부문
4절 주간노동과 야간노동, 교대제
5절 표준노동일을 위한 투쟁 : 14세기 중엽에서 17세기 말까지 노동일의 연장을 위한 강제법
6절 표준노동일을 위한 투쟁 : 법률에 의한 노동시간의 강제적 제한(1833~1864년의 영국의 공장입법)
7절 표준노동일을 위한 투쟁 : 영국의 공장입법이 타국에 준 영향
11장 잉여가치율과 잉여가치량
4편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12장 상대적 잉여가치의 개념
13장 협업
14장 분업과 매뉴팩쳐
1절 매뉴팩쳐의 두 가지 기원
2절 부분노동자와 그의 도구
3절 매뉴팩쳐의 두 가지 기본형태 : 이질적 매뉴팩쳐와 유기적 매뉴팩쳐
4절 매뉴팩쳐의 분업과 사회의 분업
5절 매뉴팩쳐의 자본주의적 성격
* 자본론. 1(하)
001. <상품과 화폐>
002. 상품
003. 교환과정
004. 화폐 또는 상품유통
005. <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환>
006. 자본의 일반공식
007. 노동력의 구매와 판매
008.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009. 불변자본과 가변자본
010. 잉여가치율
011. 노동일
012. 잉여가치율과 잉여가치량
013. <상대적 잉여가치의 개념>
014. 협업
015. 분업과 메뉴팩쳐
* 자본론. 2
역자 서문
서문(엥겔스)
제 2판 서문(엥겔스)
제 1편 자본의 변태들과 그들의 순환
제 2편 자본의 회전
제 3편 사회적 총자본의 재생산과 유통
[인명해설]
[참고문헌]
[색인]
* 자본론. 3(상)
제 1 개역판 역자 서문
역자 서문
서문(엥겔스)
제 1 편. 잉여가치가 이윤으로 전환하고 잉여가치율이 이윤율로 전환
제1장. 비용가격과 이윤
제2장. 이윤율
제3장. 이윤율과 잉여가치율 사이의 관계
제4장. 회전이 이윤율에 미치는 영향
제5장. 불변자본 사용의 절약
제6장. 가격변동의 영향
제7장. 보충설명
제 2 편. 이윤이 평균이윤으로 전환
제8장. 다른 생산부문의 다른 자본구성와 이로부터 나오는 이윤율의 차이
제9장. 일반적 이윤율(평균이윤율)의 형성과 상품가치가 생산가격으로 전형
제10장. 경쟁에 의한 일반적 이윤율의 균등화, 시장가격과 시장가치, 초과이윤
제11장. 임금의 일반적 변동이 생산가격에 미치는 영향
제12장. 보충설명
제 3 편. 이윤을 저하경향의 법칙
제13장. 법칙 그 자체
제14장. 상쇄요인들
제15장. 법칙의 내적 모순들의 전개
제 4 편. 상품자본과 화폐자본이 상품거래자본과 화폐거래자본으로(상인자본으로) 전환
제16장. 상품거래자본
제17장. 상업이윤
제18장. 상업자본의 회전, 가격
제19장. 화폐거래자본
제20장. 상인장본의 역사적 고찰
제 5 편. 이윤이 이자와 기업가이득으로 분할
제21장. 이자낳는 자본
제22장. 이윤의 분할, 이자율, ‘자연적’ 이자율
제23장. 이자와 기업가이득
제24장 자본관계의 피상적인 형태로서 이자낳는 자본
제25장. 신용과 가공자본
제26장. 화폐자본의 축적, 이자율에 미치는 영향
제27장. 화폐자본의 축적, 이자율에 미치는 영향
제28장.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신용의 역할
제28장. 유통수단과 자본, 투크와 풀라턴의 견해
* 자본론. 3(하)
제 5 편. 이윤이 이자와 기업가이득으로 분할(계속)
제 29 장. 은행자본의 구성부분들
제 30 장. 화폐자본과 실물자본
제 6 편. 초과이윤이 지대로 전환
제 7 편. 수입들과 그들의 원천
[자본론] 제 3 권에 대한 엥게릇의 보충설명
○ 저자소개 : 카를 마르크스 (Karl Heinrich Marx, 1818 ~ 1883)

1818년 5월 5일 독일 트리어에서 태어났다. 김나지움을 마치고 1835년에 본대학에 진학해 법학을 전공했다. 아버지의 압박으로 베를린대학으로 전학해 철학을 공부했다. 이곳에서 헤겔 철학을 연구하며 청년헤겔파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진보적 성향이 덜한 예나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1842년 ‘라인신문’에서 일하기 시작해 편집장이 되었다. 마르크스는 사설을 통해 프로이센 정부와 언론의 검열을 매섭게 비난했다. 그 결과 신문은 이내 폐간됐다. 1843년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정치경제학과 프랑스혁명의 역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때 ‘경제학·철학 초고’ ‘헤겔의 법철학 비판’ 등의 원고를 썼다.
파리에서 프로이센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쓰다가 프랑스에서 추방되어 벨기에 브뤼셀로 이주했다. 이 무렵 ‘철학의 빈곤’ ‘자유무역에 대하여’의 원고를 썼다. 1847년 파리에 거주하는 독일 출신 노동자를 중심으로 생겨난 조직 ‘정의 동맹’의 요청을 받고 강령에 해당되는 글을 작성했다. 바로 ‘공산주의 선언’이다. 프랑스를 시작으로 유럽 전역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파리로 잠시 피신했다가 쾰른으로 돌아갔다. ‘신라인신문’으로 이름을 바꾸고 신문을 재발행하기 시작했다. ‘임금노동과 자본’은 노동자를 일깨우기 위한 글로, 이 신문에 다섯 편으로 나뉘어 실렸다. 정부 탄압을 받던 ‘신라인신문’은 이내 기소당해 마르크스는 추방 명령을 받고 영국 런던으로 망명했다. 이곳에서 어려운 생계를 꾸리며 경제학을 연구했다.
1851년 유럽 특파원으로서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의 사정을 분석하는 기사와 사설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이후 몇 년간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정치경제학 비판’ 등을 집필했다. 49세 되던 해 ‘정치경제학 비평’이라는 부제를 달고 ‘자본론’이 출간됐다. 프랑스 파리에서 최초의 사회주의 자치정부인 파리 코뮌이 수립됐으나, 정부군 진압과 학살로 무너졌다. 마르크스는 파리 코뮌의 기록과 의의를 적은 ‘프랑스 내전’을 썼다. 국제노동자연맹을 이끌며 아나키스트파와 내분을 겪기도 하고, 독일사회주의 노동자당의 강령을 비판하는 등 사회적 활동을 이어 갔다. 1883년 3월, 엥겔스가 잠시 자리를 비운 새 조용히 사망했다.
마르크스의 생애는 그의 사상이기도 하다. 그의 생애만큼 이론과 실천의 변증법적 통일을 증명해 주는 사례도 없을 것이다. 그는 평생 자신이 처해 있는 시대적 상황을 치밀하게 연구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시대적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한 실천에 문자 그대로 혼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에게 이론은 실천을 위한 도구였고 실천은 이론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장(場)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처음부터 과학적 인식이 완벽한 형태로 갖추어져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가 살았던 역사적 상황과 함께 그의 실천 방식이 끊임없이 변화했듯이 그의 사상 또한 부단한 변화를 겪으면서 발전 과정을 거쳤다. 마르크스의 사상적 발전 과정 자체가 마르크스 유물론의 산증인인 셈이다.
* 카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년 5월 5일 ~ 1883년 3월 14일)는 독일의 철학자, 경제학자, 역사학자, 사회학자, 정치이론가, 언론인, 공산주의 혁명가다.
트리어 출신으로대학에서 법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1843년 예니 폰 베스트팔렌과 결혼했다. 정치성 다분한 저술활동으로 인해 마르크스는 무국적자 신세로 수십년 간 영국 런던에서 처자식과 함께 망명생활을 했다. 런던에서 마르크스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합작, 대영박물관 열람실에서 연구하며 주요 저작을 남겼다. 그의 대표작은 1848년 출간된 소책자 ‘공산당 선언’과 3권짜리 ‘자본론’이다. 마르크스의 정치사상과 철학사상은 그 이후의 사상사, 경제사, 정치사에 거대한 영향을 남겼으며, 마르크스주의라는 일대 학파를 이루어 그 이름은 보통명사, 형용사화되었다.
마르크스의 사회경제정치이론을 집합적으로 마르크스주의라 한다.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인간 사회가 계급투쟁을 통해 진보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계급투쟁은 지배계급인 부르주아와 피지배계급인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투쟁으로써 나타난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를 가르는 기준은 생산수단을 통제하는지 여부다. 생산수단은 부르주아에 의해 통제되며, 프롤레타리아는 부르주아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임노동자로 부려먹힌다. 소위 사적유물론이라는 비판이론에 의해 마르크스는 과거의 사회경제체제들이 그러했듯 자본주의 체제 역시 내재된 결함에 의해 내부적 긴장이 발생할 것이며 그 긴장에 의해 자멸하고 사회주의 체제라는 새로운 체제로 대체될 것이라 예측했다. 자본주의 체제는 이런 불안정성과 위기취약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계급적대가 발생하고, 노동자들이 계급의식을 가지게 된다. 의식화된 노동자들은 정치권력을 쟁취하고, 마침내 계급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체로 구성된 공산주의 사회를 이룩할 것이라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의 골자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예측이 현실화되기를 앉아 기다리지 않고, 노동계급이 혁명적 행동으로써 자본주의를 거꾸러뜨리는 사회경제적 해방을 추구해야 한다고 선동하는 저술·출판작업에 평생 매진했다.
마르크스를 긍정하는 입장에서나 부정하는 입장에서나 모두 마르크스가 인류사상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 중 하나임을 전제한다. 그의 경제학 저술은 오늘날의 노동 및 노동과 자본의 관계에 대한 이해 대부분의 기초를 놓았다. 셀 수 없이 많은 학자, 노동조합, 예술가, 정당이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았고, 마르크스의 사상을 각자 재독해, 변형, 변용했다. 일반적으로 마르크스는 근대 사회학의 뼈대를 세운 인물 중 하나로 여겨진다.
– 역자 : 김수행 (Soo haeng Kim, 金秀行)
1942년 10월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과 더불어 귀국해서 고등학교 때까지 대구에서 살았다. 1961년 4월에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해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모교인 대구상고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다녔다. 대학 1학년 때 일본어를 공부하여 일본 책을 읽으면서 마르크스의 사상을 일찍 접할 수 있었다. 석사학위 논문은 [금융자본의 성립에 관한 일 연구]였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서울대 조교 생활을 그만두고 외환은행 조사부에 들어가 런던 지점에 부임하면서 영국 생활을 시작했다.
1972년 2월부터 1975년 5월까지 런던에서 외환은행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영국의 복지사회와 공황을 모두 경험했다. 복지국가도 공황에 빠지는 것은 ‘자본주의체제’이기 때문임을 실감하여 공황을 연구하려고 런던대학교 버크벡 (Birkbeck)대학에 들어가 아내가 주는 돈으로 경제학 석사(1977년)와 박사(1982년) 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 논문의 제목은 원래 [The Marxian Theory of Economic Crises: A Critical Appraisal of Some Japanese and European Reformulations]였지만, 귀국해서 전두환 독재정권의 ‘박해’를 받지 않기 위해 지도교수와 상의하여 주 제목을 [Theories of Economic Crises]로 바꾸었다.
‘반독재투쟁’에 앞장서던 한신대학교의 초청을 받아들여 1982년 10월부터 1987년 1월까지 근무하다가, 1987년 6월 항쟁이 불을 지핀 ‘학문의 자유화’ 운동 덕택으로 1989년 2월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에 부교수로 임용되었다. 금서로 분류되던 『자본론』을 ‘잡아갈 테면 잡아가라’는 배짱으로 제1권을 상, 하 두 권으로 1989년 3월에 번역 출판하고 제2권을 1989년 5월에, 제3권을 상, 하 두 권으로 1990년 11월에 출판했다. 이것이 『자본론』 세 권 전체를 동일인이 한글로 번역 출판한 첫 사례였다. 2008년 2월에 서울대학교를 정년퇴임하고 현재에는 ‘평생교육의 메카’인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로 있다. ‘마르크스경제학을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게 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기 때문에, 이에 관해 알기 쉬운 책을 많이 쓰고 대중강연도 많이 하고 현실과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마음먹고 있다.
『자본론의 현대적 해석』, 『자본주의경제의 위기와 공황』,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 (공저), 『한국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도입과 전개과정』, 『새로운 사회를 위한 경제이야기』 , 『알기 쉬운 정치경제학』 , 『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경제를 말하다』, 『청소년을 위한 자본론』, 『세계대공황: 자본주의의 종말과 새로운 사회의 사이』 등을 집필했고, 『자본론』, 『국부론』, 『고삐 풀린 자본주의』 (공역), 『금융자본론』 등을 번역했다.
○ 독자의 평
– 마르크스와 현대
마르크스처럼 이 지구상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 사람은 드물다. 마르크스의 이론은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서게 된 주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더욱이 마르크스의 이론을 악용한 소련의 정책으로 6 ‧ 25동란까지 벌어졌다. 아직도 휴전선을 경계로 남북이 분단돼 있으며, 북한의 김정은 세력은 권력유지를 위해 핵폭탄을 협박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도 마르크스 이론을 받아들여 공산주의 국가로 태어났다. 지금은 시장개방을 통해 서서히 자본주의 국가로 변해가고 있지만 아직도 근본은 공산(사회)주의 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지구상의 절반에 해당하는 국가가 공산주의 강령을 국가 이념으로 채택하여 반세기동안 체제를 유지했다. 현재는 공산(사회)주의가 유명무실해졌지만 그 정신은 여전히 빈곤층들에 의해 살아있다. 아니 오히려 더 강력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랍의 봄’은 어찌 보면 마르크스가 구현하려고 했던 공산(사회)주의 국가를 실현하기 위한 민초들의 반란이었을지도 모른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태 또한 경제문제로 야기된 국민들의 폭동이 시초가 됐고, 일본의 우경화 세력 역시 경제가 어려워지자 독버섯처럼 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자본론》은 경제학계의 화두가 되고 있으며, 2008년 9월에 폭발한 세계대공황과 그 이후의 상황이해와 대안제시를 위한 배경지식으로 자주 언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자본론’이란
마르크스는 1851년(33세)부터 런던의 대영박물관 도서실에서 경제학 연구를 새롭게 시작했다. 이 연구의 결과가 결국 《자본론 : 정치경제학 비판》으로 귀결되었는데, 《자본론》이 완성될 때까지 흔히 ‘《자본론》 원고’라고 부르는 수많은 연구들을 수행했다. 마르크스가 공장장의 이윤, 상인의 이윤, 은행의 이자, 지주의 지대 등이 ‘어디서 어떻게 생기는가?’를 조사하기 위해, 자기 이전의 경제학자들 199명(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등 인명 색인에 올라 있는 사람의 수)의 저작을 읽고 논평한 것인데, 출판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공부하기 위해 만든 노트라고 하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김수행교수에 의하면, “국정원, 검찰, 경찰이 이야기 하듯이, ‘《자본론》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관한 책이다’라는 판단은 전혀 옳지가 않다. 《자본론》에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유지되고 발전되는가?’에 관한 연구가 전체의 99.5퍼센트를 차지하는 데 반해, ‘자본주의가 무슨 이유로 새로운 사회로 넘어가는가? 새로운 사회의 특징은 무엇인가?’에 대한 언급은 0.5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이렇다고 해서 《자본론》이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을 제시하고 논리적으로 비판하고 있다고 말해야 옳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모든 정치사회 문제 밑바닥에는 경제가 자리 잡고 있다. 한마디로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데, 이 문제를 19세기 한 경제학자가 심오하고 통찰력 있게 제시했다는 점에서 《자본론》은 의미가 대단히 크다.
《자본론》은 내게 자본주의 문제점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돈 문제가 하루 종일 고민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세상. 모든 일이 돈에서 시작해 돈으로 끝나는 세상. 하지만 그 돈을 벌기위한 기회는 극히 적은 세상. 아무리 노력해도 때로는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빡빡한 세상에서 ‘내 역할은 정녕 무엇일까?’ 라고 내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다.
마르크스도 ‘본인의 비참한 삶에서 깨달은 인간의 좌절과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 자본주의를 깊이 연구했으며, 그 연구가 영원히 남을 대작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해봤다.
마르크스가 서문에서 밝힌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운동법칙을 발견하는 것이 이 책의 최종 목적이다.(I:6)”라는 글이《자본론》의 핵심을 가장 잘 나타낸다고 보인다.
마르크스는 ‘사회’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경제’를 철저히 연구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역사상의 구체적 사회들을 단순화시켜, 사회의 본질과 기본구조를 파악하는 방법으로 생산양식이라는 개념을 창조했다. 노예적 생산양식, 봉건적 생산양식,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등이 그것이다.
– 인간 마르크스
마르크스는 1818년 5월 5일에 독일의 트리어에서 중산층 유대계 법률가의 아들로 태어나서, 1883년 3월 14일에 영국 런던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는 1835년에 본 대학 법학부에 입학하고 그 다음해에 베를린 대학의 법학부로 옮겼으며, 여기에서 법률 ‧ 역사 ‧ 철학(특히 헤겔 철학)을 연구했다. 1838년에 부친이 운명을 달리했지만, 1840년에 예나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논문은 그리스철학자인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의 차이점에 관한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군대에 가지 않았기에22세에 박사학위가 가능했다.
1836년에 네 살 연상의 예니 폰 베스트팔렌과 은밀하게 약혼한 뒤, 1843년에 결혼했다. 자녀를 일곱 명이나 낳았지만 네 명은 어린 나이에 죽었고, 성장하여 결혼한 자식은 첫 째 딸 예니, 둘째 딸 로라, 그리고 넷째 딸 엘리너 등 세 명뿐이었다.
마르크스는 박사학위를 받은 뒤 교수가 되기를 원했으나, 그의 혁명적 민주주의 사상을 싫어한 프러시아 왕정이 그에게 교수 자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1842년 쾰른에 있는 《라인신문》의 편집인이 되었는데, 이 신문에는 엥겔스 등 ‘청년헤겔파가’가 자주 기고했다. 그러나 1년이 되지 않아 프러시아 정부가 《라인신문》이 왕정과 자본주의의 타도를 선동한다는 이유로 폐쇄 명령을 내렸으므로, 마르크스는 편집인의 자리를 사임하고 파리로 갔다.
마르크스는 1844년 8월부터 12월까지 파리에 머문 엥겔스와 함께 온갖 이론적 ‧ 현실적 문제들을 논의하면서 서로의 의견이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 만남이 혁명적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향하는 모험에서 두 사람을 묶는 끈이 되어, 평생을 동지로서 함께 저술하고 함께 투쟁하게 된 것이다.
마르크스는 단호하고 직선적인 성격이라고 알려졌다. 그는 “나는 과학적 비판에 근거한 의견이라면 무엇이든 환영한다. 그러나 내가 한 번도 양보한 일이 없는, 이른바 여론이라는 편견에 대해서는 저 위대한 플로렌스 사람(단테)의 다음과 같은 말이 항상 변함없이 나의 좌우명이다. ‘제 갈 길을 가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