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쇼펜하우어의 참된 행복
쇼펜하우어 / 오늘의책 / 1998.11.30

‘모든 행복과 만족은 부정적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욕망이 없어지고 고통이 종식된 것에 불과하다.’라고 깨우치며 참된 행복에 대해 논한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명언을 비롯해 파스칼, 세네카, 보나르, 도스토예프스키, 니체 등의 명언을 실었다.
○ 목차
1부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ouer
2부 파스칼 Blaise Pascal
3부 세네카 Lucius Annaeus Seneca
4부 보나르 Pierre Bonnard
5부 도스토예프스키 Fyodor Dostoyevsky
6부 니체 Friedrich Nietzsche
7부 헤르만 헤세 Herman Hesse
8부 크리슈나무르티 Jicidu Krishnamurti
○ 저자소개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상가. 유럽의 항구 도시인 단치히에서 상인이었던 아버지 하인리히 쇼펜하우어와 소설가인 어머니 요한나 쇼펜하우어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실존 철학은 물론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19세기 서양 철학계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흔히 염세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인간 삶의 비극적 면면을 탐구한 사상가이며, 그의 철학은 근대 철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788년 단치히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793년 함부르크로 이주해 성장했고,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한동안 상인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1805년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계기로, 자신이 그토록 꿈꾸던 학자가 되기 위해 김나지움에 입학했다.
1811년 베를린대학교에 들어가 리히텐슈타인, 피셔, 피히테 등 여러 학자의 강의를 들었고, 1813년 베를린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충분근거율의 네 가지 뿌리에 대하여」를 집필, 우여곡절 끝에 예나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819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출간한 후 1820년부터 베를린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1839년 현상 논문 「인간 의지의 자유에 대하여」로 왕립 노르웨이 학회로부터 상을 받았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으며, 1860년 9월 21일 자주 가던 단골 식당에서 식사 중 폐렴으로 숨진 후 프랑크푸르트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주요 저서로는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 『충족이 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어떤 불행에 처하거나 어떤 고통 속에 있더라도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는 자기 자신보다 더 비참한 상태에 있는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깃이다.
모든 행복과 만족은 부정적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욕망이 없어지고 고통이 종식된 것에 불과하다.
우리 인생의 온갖 장면은 거친 모자이크와 같은 것이다. 가까이에 있으면 아무런 인상도 주지 않는다. 따라서 아름다움을 알려면 떨어져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대망의 것을 드디어 손에 넣어 보면 허망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도 우리는 끊임없이 더 좋은 것을 기대하면서 살고 있다.
모든 사물의 덧없음 허무함, 꿈과 같은 성질을 의식하면 의식할수록 그만큼 더 확실하게 사람은 자기 자신의 내적 본질의 영원성을 자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 본질과 대비하는 것에 의해서만 시물의 성질이 인식되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타고 있는 배의 속도는 우리가 배 그 자체에 눈을 돌려서는 알 수 없고 움직이지 않는 해안을 보고서야 비로소 아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인생은 무(無)라는 행복한 고요를 쓸데없이 교환하는 에피소드이다.
인생은 노고를 다해야 하는 일종의 부역이다.
시간이야말로 모든 것으로 하여금 시시각각 우리의 손 아래서 무(無)로 돌아가 버리게 하고 그것이 본래 가지고 있는 진정한 가치를 상실하게 하는 것이다.
현재의 삶 속에서 자기 자신이 완전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만약 있다면 술에 취해 있을 것이 것이다.
아무리 많이 끌어모아도 스스로 사색해 낸 지식이 아니면 그 가치는 의심스러우며 양으로는 보잘것없어도 몇 번이고 골똘히 사색해 낸 지식이라면 그 가치는 매우 크다.
인생은 일종의 환멸, 꿈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옳은 해석일 것이다. 모든 것은 명백히 환멸로 향하고 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 자신의 운명을 쉽게 한탄하지 않는다.

부정한 행위나 사악한 행위는 이것을 행하는 사람 쪽에서는 그 사람의 살려는 의지의 강한 긍정적 표시인 것이다. 따라서 의지의 부정이라는 진실의 구제, 즉 이 세상으로부터의 구제가 아직 이 사람에게는 먼 거리에 있다는 표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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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용수철에 무거운 짐을 매달아 두면 그 탄력성이 없어지듯이 무턱대고 아무것이나 닥치는 대로 읽는 것은 자기 자신만의 사상을 갖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인간의 장점은 단점과 유사하다. 다시 말하면 모든 단점은 장점과 유사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람들에게 흔히 저지르는 과오는 그 사람과 사귀기 시작할 때에 그의 결점을 장점으로 잘못 생각하는 데 기인하는 것이며 그 반대의 경우도 일어난다. 그래서 신중한 사람이 겁쟁이로, 검소한 사람은 인색한 것으로 보이기 쉬우며, 반대로 낭비하는 사람은 자유스러운 것처럼 보이며, 버릇없는 사람이 솔직하고 정직한 듯이 보이며, 뻔뻔한 사람이 자신을 가진 듯이 보인다.
본래 자기의 근본 사상에만 진리와 생명이 깃든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오직 그것만을 진정한 의미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좋지 않은 것은 책을 읽는 데에 정신이 팔려 현실 세계를 직시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재산을 경솔하게 낭비해 버리는 사람이 그의 손에 무엇인가 쥐어져 있을 때에 남의 재산을 건드리지 않고 남겨 두리라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욕망은 필요와 결핍과 가난과 괴로움에서 일어난다.
질투는 자연스런 인간의 속성이다. 그렇지만 질투는 죄악인 동시에 불행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질투를 우리들의 행복의 적이나 악마로 보고 이것을 없애도록 노력해야 한다.
계획은 실천에 옮기기 전에 충분히 재고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한번 결심이 서서 일에 착수한 이상 만사가 성취되는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으므로 이미 실천에 옮긴 일을 자꾸만 다시 생각한다든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위험을 염려하여 근심하지 않는 것이 좋다.
시인은 인간의 거울이다.
우리 인생은 현미경으로 겨우 볼 수 있는 아주 작은 것으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미소한 하나의 점이다.
자기가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대개는 자기 자신에게 구차 한 변명을 한다든가 대단한 잘못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려 하 지만 그러한 태도를 취하느니 차라리 깨끗이 그 잘못을 인정 하고 차후로는 그러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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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화된 사람들 사이에 올바른 통찰력을 가진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모든 교회의 탑시계가 전부 틀린 시간을 가리키고 있는 마을에 바른 시계를 가진 사람이 한 명 있는 것과 같다. 그 사람만은 비론 시간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세상 사람들이 모두 틀린 시간을 가리키는 마을의 시계에 맞추어 생활을 하고 있는데…. 심지어는 그 한 사람의 시계만이 바른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틀린 시간을 가리키는 마을의 시계에 맞추어 생활하고 있는 것을.
무엇이든지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보면 그것이 자기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곧잘 생각하기 마련인데 이 때문에 부족감이 생기는 것이다. 이보다는 차라리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며 이것이 나의 것이 아니라면 어떨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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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각기 도처에서 적을 발견하고 끊임없는 싸움 속에서 생활하고 무기를 쥔 채 죽어간다.
노력은 상상력이 그려내는 영상이 아니라 명철한 사고를 지닌 개념을 그 궁극적인 목표로 삼아야 한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의혹을 느꼈을 때는 그것을 믿는 척하라. 그러면 상대방은 대담해져서 점점 더 거짓말을 하여 결국 가면을 벗게 된다.
개도 너무 다정하게 굴면 좀체로 얌전하게 있지 않는다.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야 말할 것도 없다.
자신을 교정하려면 거울이 필요하다. 그 거울을 찾아야 한다.
속아서 잃은 돈만큼 적절하게 시용한 돈은 없다. 그 돈 때문에 한 가지 지혜를 얻게 된 셈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갑자기 너무 기뻐하거나 슬퍼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물은 변화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행해진 일이라 할지라도 언제 어느 때에 변화되지 않는다고 단 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우리들의 판단은 믿을 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의 작용과 사물의 변하기 쉬움을 늘 염두에 두고서 현재의 일을 볼 때 즉시 그 반대를 상상하는 것이 좋다.
반복은 연구의 어머니이다.
진정한 용기는 행복한 삶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다.
책을 산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읽을 시간도 같이 살 수 있다면 더욱더 좋은 일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우리들은 책을 산다는 것과 그 내용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것을 혼동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얼마만큼 행복한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어떠한 일을 즐기고 있는가를 묻기보다는 어떤 일을 슬퍼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사소한 일에 민감해지려면 만사가 잘 되어 나가고 있다는 것이 전제 조건이 된다. 따라서 불행한 상태에 처했다면 사소한 일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러므로 슬퍼하고 있는 일이 그 자체로서 아주 사소한 일일수록 그만큼 인간은 더 행복한 것이다.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은 고독으로 두 가지 이익을 얻는다. 하나는 자기 자신을 상대로 하고 있다는 이익이며,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을 상대로 하지 않는다는 이익이다.
지금까지 있었던 것은 이미 현재가 아니다. 현재 있는 것은 다음 순간 과거가 되어 버린다. 결국 아무리 무의미한 현재라 해도 가장 값졌던 과거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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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건강 상태에 따라 좌우된다. 건강하면 모든 사물이 기쁨과 즐거움의 계기가 되고 건강하지 못하면 즐거울 수도 없으며 더불어 뛰어난 지적 수준까지도 그것으로 사실상 능력이 감소된다. 우리가 보통 인사할 때나 헤어질 때 건강 상태를 묻고 또 건강하기를 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재물, 지식, 명성, 쾌락, 그 밖의 무엇이건 건강 이외의 것을 위해 건강을 해치는 것은 매우 바보스러운 짓이며, 오히려 건강을 위해 그 모든 것을 나중으로 미루는 것이 현명하다.
자기 자신의 분노와 증오를 말과 얼굴에 나타내는 것은 부질없고 속되고 우스꽝스런 일이다. 분노나 증오는 행동을 통해서만 나타내야 한다.
정신의 안정이란 상당한 정도의 고독이 없으면 지속될 수 없는 것이다.
재물이란 단지 생활의 일차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 고작이다. 결국 재물이 참된 행복에 주는 영향은 보잘것없으므로 너무 많은 재물을 소유하는 것은 그것 때문에 일어나는 많은 걱정으로 인해 오히려 인간의 진정한 내면적 행복을 깎는다.
적어도 무엇을 배운다는 것은 인간의 행복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 힘으로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은 이미 내게 있는 ‘인격’을 잘 이용하는 것이다. 즉 자신의 본성에 맞는 지위나 직업과 생활을 택하는 것이다.
자신이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있다는 것만큼 삶에 활기를 주는 것도 드물다. 그것은 그들로부터 협조를 기대할 수 있으며 자기 혼자만의 힘보다 많은 수의 힘이 인생의 고비를 넘기기에도 훨씬 더 큰 의지가 되기 때문이다.
밖에서 얻으려다가 안에서 잃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즉 영락과 지위와 명예를 위해 마음의 안정, 시간의 여유, 독립된 생활을 희생한다는 것은 잘못이다.
세계적인 유전병 세 가지가 있는데, 즉 명예욕, 허영심, 자부심이다. 자부심은 자신에 대한 확고한 힘이며, 허영심은 자신에게 제3자가 이런 신념을 갖게끔 하려는 것으로 이에 성공 하면 자신도 그 신념에 도취된다. 즉 자부심은 자기에게서 비롯되며 직접적인 자기 존중이다. 허영심은 이런 것들을 외부로부터 간접적으로 손에 넣으려는 것이다.
허영심은 인간을 다변가로 만들고 자부심은 침묵가가 되게 한다.
명예란 객관적인 측면에서는 우리의 값어치에 대한 제3자의 견해이며, 주관적인 측면에서는 제3자의 견해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이다.
대체로 우리가 범하기 쉬운 가장 큰 잘못의 하나는 한 평생에 너무 많은 설계를 한다는 점이다.
명예는 소극적이고 명성은 적극적이다. 명예는 일반적이고 명성은 특수한 것을 말한다. 명예는 갖으려고 애써야 손에 넣을 수 있고 명성은 뛰어난 일인자로서 손에 넣는 것이다. 명예가 없다는 것은 하나의 수치로써 적극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명성이 없다는 것은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다는 소극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명예는 능동적인 것으로 자기 자신의 모든 행동에 기인하며, 님의 행동이나 외부의 사정에 의해 얻을 수 없는 일종의 내재적인 특성이다. 그리고 명예에 대한 외부의 유일한 침해는 중상모략이며, 이에 대한 방책은 공공연히 상대방의 거짓을 끌어내고 철저히 반박하는 것에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