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안나 카레니나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 더클래식 / 2017.8.25
‘전쟁과 평화’의 성공으로 일찍이 대문호란 칭호를 얻고 있던 그가 50세를 몇 해 남기고 마무리한 소설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대중적, 문학적으로 정점에 이른 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1878년 출간된 이후, 영화와 드라마,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 여러 예술 장르로 재탄생하면서 톨스토이의 위대함과 작품의 가치를 증명시켰다. 50세 이후 톨스토이는 작품 활동보다 사상가로서 이전과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이 책의 작품 속에는 작가로서의 그의 결혼관, 종교관, 인생관, 나아가 세계관까지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들이 담겨 있다.
세상사의 거의 모든 드라마를 함축하고 있기에 욕망 덩어리, 이른바 정념의 총체라 부를 정도로 방대한 서사의 집약을 보여준다.
장편소설 안나 카레니나(Анна Каренина)는 1873년부터 집필을 시작했으며, 1875년부터 잡지 “루스키 베스뜨니끄”(Ру́сский ве́стник, 러시아 메신저)에 연재했다. 1877년에 단행본 초판이 발행됐다. “전쟁과 평화”와 함께 톨스토이의 대표작이며,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 목차
1부
2부
3부
4부
5부
6부
7부
8부
작품해설
작가연보
○ 줄거리
주된 무대는 1870년대의 러시아이다.
정부 고관 카레닌의 아내인 미모의 안나는 오빠인 스테판 부부의 다툼을 중재하기 위해서 모스크바에 왔다가 젊은 귀족인 장교 브론스키 백작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지방의 순박한 지주 레빈은 스테판의 부인 돌리의 여동생 키티에게 구혼하지만, 브론스키와의 결혼을 기대하는 키티에게 거절당한다. 실의에 빠진 레빈은 영지로 돌아와, 농지 경영 개선에 열심히 힘쓴다. 그런데 브론스키는 안나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키티는 병이 들어 버린다.
안나는 남편과 어린 외아들이 기다리는 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지만, 브론스키는 안나를 쫓아간다. 두 사람의 관계는 급속히 깊어지지만, 그것을 안 카레이닌은 세간에 대한 체면 때문에 이혼에 응하지 않는다.
안나는 브론스키의 아이를 출산한 후, 사경을 헤매게 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카레이닌은 동정심과 관대한 태도로 안나를 용서한다. 그 관대함에 놀란 브론스키는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하지만 미수에 그친다. 그 후 브론스키는 은퇴하고, 건강을 회복한 안나를 따라 외국으로 떠난다.
귀국한 안나는 브론스키와의 허락되지 않은 사랑 때문에 사교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브론스키의 영지에 머무르게 된다. 안나의 이혼은 카레이닌의 반대와 외아들을 빼앗길것 이라는 안나의 우려 등으로 인해 좀처럼 진행되지 않는다. 자신의 처지에 불만인 안나와 시골에서 농장경영에 열중하면서 소일거리를 찾는 브론스키와는 점차 다투는 횟수가 늘어나고, 안나는 브론스키의 애정이 다른 여성으로 가버린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까지하게 된다. 마침내 절망한 안나는 열차에 몸을 던진다. 사는 목적을 잃은 브론스키는, 사비를 투자해 의용군을 편성하고, 터키와의 전쟁터를 향해 간다.
레빈은 병이 치유된 키티와 결혼해, 영지의 농촌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형의 죽음을 계기로 생기게 된 인생의 의의에 대해서도 끊임 없이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레빈은 키티와 아이도 얻고 행복한 가정을 이끌면서, 사람은 타인이나 신을 위해서 살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 주제와 수법 및 평가
– 주제
불륜이라는 신의 규칙을 깨는 행위에 빠진 안나는 불행한 결말을 맞이했다. 그러나 자신의 기분에 충실하게 산 안나를 같은 죄인인 인간이 재판할 수 없다. 허식으로 가득 찬 도시의 귀족 사회에서 죽음에 쫓기던 안나와 농촌에서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며 신앙에 눈을 떠 행복을 붙잡은 레빈이 대비되고, 사람이 살아야 할 길이 나타나고 있는 작품이다.
– 수법
톨스토이는 리얼리즘의 거장 중 한 명으로 평가되며, 본 작품에서도 예민한 감성으로 등장인물의 육체나 행동 및 환경을 그리는 것을 통해 그 인물의 심리를 표현하는 작가 일류의 리얼리즘의 수법이 구사되고 있다. 그 적합한 묘사력에 더해 심리에 대한 깊은 통찰, 엄밀한 말의 선택 등이 수많은 등장인물의 개성을 선명하게 나누어 묘사한다. 또 수사학을 배제해 어의 그 자체를 분명히 하는 직재적인 문체가 이용되고 있다.
– 평가
잡지에 발표한 당초부터 칭찬의 목소리가 넘쳐났다. 도스토옙스키는 “예술적으로 완벽하고, 현대, 유럽의 문학 중, 무엇 하나 이것에 비견할 수 없을 듯한 작품이다.”, 토마스 만은 “이러한 훌륭한 소설, 조금의 헛됨도 없이 단번에 읽게 만드는 서적, 전체의 구조도 세부의 마무리도 한 점 없는 결점이 어디에도 없는 작품”이라고 평가했으며, 레닌은 책이 닳아 떨어질 때까지 읽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구와바라 다케오는 “이전에 뵌 시가 나오야씨도 근대소설의 교과서라고 해도 좋다고 말씀했다”라고 발언했다.
2002년에는 노르웨이 북 클럽(Norwegian Book Club)이 선정한 ‘세계 문학 최고의 100권'(en:The 100 Best Books of All Time)으로 선택되었으며, 2007년에 간행된 ‘톱 텐: 작가가 선택하는 애독서'(“The Top Ten: Writers Pick Their Favorite Books”)에서는 현대 영미 작가 125명의 투표에 의해 세계 문학 베스트 텐의 1위를 차지했다.
○ 저자소개 : 레프 톨스토이 (Leo Nikolayevich Tolstoy, Lev Nikolaevich Tolstoi)
1828년 9월 9일, 러시아 남부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2살과 9살 때 각각 모친과 부친을 여의고, 이후 고모를 후견인으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교육을 받았고, 16세가 되던 1844년에 까잔 대학교 동양어대학 아랍·터키어과에 입학하였으나 사교계를 출입하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곧 자퇴해 1847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과 농노 계몽을 위해 일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이후 3년간 방탕하게 생활했다. 1851년 맏형이 있는 카프카스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다.
1852년 처녀작인 자전소설 『유년시대』를 발표하여 투르게네프로부터 문학성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1853년에는 『소년시절』을, 1856년에는 『청년시절』을 썼다. 1853년 크림전쟁이 발발하여 전쟁에 참여했다. 당시 전쟁 경험은 훗날 그의 비폭력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크림 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세바스토폴 이야기』(1855~56)를 써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이듬해 잡지 『소브레멘니크』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작품 집필과 함께 농업 경영에 힘을 쏟는 한편, 농민의 열악한 교육 상태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학교를 세우고 1861년 교육 잡지 [야스나야 폴랴나]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문학에 전념해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대작을 집필,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렸다. 1859년에 고향인 야스나야 뽈랴나에 농민 학교를 세우는 등 농촌 계몽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으며 농민학교를 세웠다. 34세가 되던 1862년에 소피야 안드레예브나와 결혼하여 슬하에 모두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볼가 스텝 지역에 있는 영지를 경영하며 농민들을 위한 교육 사업을 계속해 나갔다. 1869년 5년에 걸쳐 집필한 대표작 『전쟁과 평화』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1873년에는 『안나 카레니나』의 집필을 시작해 1877년에 완성했으며, 1880년대는 톨스토이가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시기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크로이체르 소나타』『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등의 작품이 쓰인 시기도 바로 이때이다.
그러나 이 무렵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그리하여 1880년 이후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면서 사유재산 제도와 러시아 정교에 비판을 가하고 『교의신학 비판』, 『고백』 등을 통해 ‘톨스토이즘’이라 불리는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했다. 사십대 후반 정신적 위기를 겪으며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 문제를 천착하면서 작품세계의 분수령이 되는 『참회록』(1879)을 내놓았고, 정치, 사회, 종교, 사상적 문제들에 관해 계속해서 저술하고 활동했다.
또한 술과 담배를 끊고 손수 밭일을 하는 등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하며, 빈민 구제 활동도 했다.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고, 중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과 『크로이처 소나타』(1889)를 통해 깊은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었으며, 말년까지도 『예술이란 무엇인가』(1898)와 『부활』(1899) 등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그 자신은 백작의 지위를 가진 귀족이었으나, 『바보이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등의 집필을 통해 러시아 귀족들이 너무 많은 재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민중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음을 비판하는 문학 활동을 하여, 러시아 귀족들의 압력으로 『참회록』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출판 금지를 당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필사본이나 등사본으로 책을 만들어서 몰래 읽었고, 유럽, 미국, 아시아에 있는 출판사들이 그의 작품을 출판하여 외국에서는 그의 작품이 유명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극단적인 도덕가가 되어 1880년 이후에 낸 일련의 저술에서 국가와 교회를 부정하고, 육체의 나약함과 사유재산을 비난하는 의견을 발표했다. 저작물에서 개인의 이득을 취하는 것이 부도덕하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저작권을 포기하는 선언을 했고(1891),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출간되자마자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번역되었으며, 출판으로 인한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1901년 『부활』에 러시아 정교를 모독하는 표현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종무원(宗務院)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통해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1886), 『크로이처 소나타』(1889), 『예술이란 무엇인가』(1897), 『부활』(1899) 등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시작된 아내와의 불화 등으로 고민하던 중 1910년 집을 떠나 폐렴을 앓다가 현재 톨스토이 역이 되어 있는 아스타포보 역장의 관사에서 82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임종 때 아내를 보기를 거부한 톨스토이의 마지막 말은 “진리를……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 왜 사람들은……”이었다.
귀족의 아들이었으나 왜곡된 사상과 이질적인 현실에 회의를 느껴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을 추구했다. 그는 고귀한 인생 성찰을 통해 러시아 문학과 정치, 종교관에 놀라운 영향을 끼쳤고, 인간 내면과 삶의 참 진리를 담은 수많은 걸작을 남겨 지금까지도 러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대문호로 존경받고 있다. 인간과 진리를 사랑했던 대문호 톨스토이. 그는 세계 문학의 역사를 바꾼 걸작들을 남긴 소설가이자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사상에까지 영향을 준 ‘무소유, 무저항’의 철학을 남긴 사상가였다. 톨스토이의 작품만이 지닌 문체와 서사적 힘은 지금 보아도 여전하다. 특히 소설 속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이야기의 서사성, 섬세한 인물 심리 묘사 등이 돋보이며, 오늘날까지도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호로 인정받고 있다.
○ 책 속으로
쌍두마차 안에 오블론스키와 앉아 있는 사람이 노공작이라고 예상한 것은 레빈의 착각에 불과했다. 그는 쌍두마차에 가까이 다가가고 나서야 오블론스키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은 공작이 아니라 뒤에 리본을 길게 늘어뜨린 스코틀랜드 모자를 쓴, 잘생기고 풍채 좋은 청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쉐르바츠키 가문의 육촌 형제인 바센카 베슬로프스키였다.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사교계의 훌륭한 청년으로 스테판 아르카지치의 설명에 따르면 ‘가장 우수한 남자이면서 열정이 타오르는 사냥꾼’이었다. — 「6부 6장」중에서
“나는 지금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줘요. 불쾌한 단어니까. 나는 질투를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믿고 싶지도 않아……. 내 생각을 말하고 싶지 않소. 하지만 끔찍하기 짝이 없어……. 나는 질투를 하고 있지 않소. 그렇지만 다른 사람이 당신을 감히 그딴 눈빛으로 보려고 하거나 보는 것은 나에게 충분히 모욕적이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야…….” — 「6부 7장」중에서
○ 추천평
『안나 카레니나』는 세계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사회소설이다. – 토마스 만
주인공 안나는 오빠 스테판의 불륜과 그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기 위해 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오게 된다. 안나의 노력으로 부부는 화해를 하게 되지만, 그곳에서 안나는 젊은 백작인 브론스키에게 한눈에 사로잡히고 만다. 한편 브론스키는 스테판의 처제 키티에게 구애하려 했으나 그 역시 안나에게 빠져든다. 키티는 브론스키가 청혼할 것으로 굳게 믿었기 때문에 귀족 레빈의 청혼을 거절해 버린다. 레빈 역시 키티에게 거절당한 후 낙담하여 시골로 돌아가 그곳에 파묻혀 지내면서, 농촌과 농민 문제에 대해 고민하며 살아간다.
한편 안나는 브론스키와의 관계를 남편에게 숨기며 그와 밀회를 계속한다. 그러나 남편은 물론이고 사교계의 모든 사람이 둘의 사이를 눈치챈다. 마침내 안나는 남편에게 사실을 대담하게 고백하고 이혼을 요구한다. 결국 안나는 브론스키의 딸을 낳고, 가족은 물론 사교계에도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다. 반면 키티는 마음의 병으로 휴양을 떠났다가 마음의 변화를 느끼며 돌아온다. 레빈은 그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변치 않았음을 확인하고, 마침내 둘은 결혼하게 된다. 한편 안나와 브론스키는 딸과 함께 외국을 전전하며 살아간다. 안나는 여전히 남편과의 이혼은 요원하고, 첫 아이인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 가자, 점점 더 브론스키에게 집착하게 되는데…….
○ 파생 작품
– 영화
안나 카레니나 (Love): 1927년 제작. 무성 영화. 그레타 가르보, 존 길버트 주연.
안나 카레니나: 1935년 제작. 그레타 가르보, 프레드릭 마치 주연.
안나 카레니나: 1948년 제작. 비비안 리 주연.
안나 카레니나: 1967년 제작. 소련.
안나 카레니나: 1997년 제작. 영국·미국 합작. 소피 마르소, 숀 빈 주연.
안나 카레니나: 2012년 제작. 영국. 키이라 나이틀리, 주드 로, 아론 존슨 주연.
– 발레
볼쇼이 발레단의 3막 발레 작품. 1972년 초연.
M. 플리세츠카야가 안무를 담당하고, 자신이 안나 역을 맡아 춤을 추었다. 음악은 남편인 R. 시체드린. 프리세트카야의 의상은 프랑스의 피에르 가르뎅이 담당했다.
B. 에이프만 제작·안무의 2막 발레 작품. 2005년 8월 초연.
P. 차이코프스키의 악곡을 사용한 신작 발레.
– 연극
다카라즈카 가극단에 의한 연극. 2001년 초연, 2008년 재연. 각본, 연출: 우에다 케이코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