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편
말·조선 초의 문신이자 유학자·혁명가 삼봉 (三峯) 정도전 (鄭道傳, 1342 ~ 1398)의 ‘자조’ (自嘲)
절명시 (絶命詩)는 호 (號)가 삼봉 (三峯)이고, 별칭이 ‘해동장량 (海東張良)’인 정도전 (鄭道傳)의 작품이다.

그의 본관은 경상북도 ‘봉화 (奉化)’이다.
안국동과 경복궁 사이에 있던 솔재 (松峴) 부근에서 정도전은 여러 중신들과 정국을 논하며 조촐한 주연을 가지던 중 난입한 이방원의 사병 약 30명에게 사로 잡혔다. 1398년 10월 6일 (음력 8월 26일) 한밤중의 일이다. 태조실록에는 애걸하며 목숨을 구걸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죽음을 각오한 정도전은 이 시를 읊으며 조용히 목을 내놓았다는 것이 정설로 전해온다.
정도전과 정몽주가 생각했던 성현의 뜻은 무엇이 달랐을까? 같은 책 ‘맹자’에서 정도전은 잘못된 왕은 백성이 갈아 치울 수 있다는 역성혁명론 (易姓革命論)을, 정몽주는 충 (忠)을 따랐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했다.
《삼봉집》에는 그가 이방원의 칼에 맞기 직전 자신의 삶의 최후를 정리하는 ‘자조(自嘲)’라는 시를 남겨 영웅호걸다운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자조 (自嘲)
操存省察兩加功 / 조존과 성찰 두 곳에 온통 공을 들여서
不負聖賢黃卷中 / 책 속에 담긴 성현의 말씀 저버리지 않았다네.
三十年來勤苦業 / 삼십 년 긴 세월 고난 속에 쌓아 놓은 사업
松亭一醉竟成空 / 송현방 정자 술 한 잔에 그만 허사가 되었구나.
— 정도전, ‘자조’ (自嘲)

정도전의 절명시 (絶命詩)는 1,398년 8월 제1차 왕자 (王子)의 난 (亂) 때, 이방원의 수하 (手下)에게 죽기 직전에 남긴 7언율시 (七言律詩) 스스로 자신을 조롱하는 내용의 ‘자조 (自嘲)’이다.
‘해동장량 (海東張良)’으로 불리었던 정도전 (鄭道傳)은 실질적인 조선 건국의 주인공으로 조선왕조의 개창 (開創)과 개국의 일등 공신 (功臣)으로, 최고의 권력자 (權力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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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