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오늘
1969년 1월 11일, ‘관계학으로서 사회학’을 주창한 독일의 사회학자 ‘레오폴트 폰 비제’ (Leopold von Wiese, 1876 ∼ 1969) 별세
레오폴트 폰 비제 (Leopold von Wiese, 1876년 12월 2일 ∼ 1969년 1월 11일)은 독일의 사회학자로, 슐레지엔 출생이다.
베를린대학을 졸업하고, 모교의 강사를 거쳐 1919년 이후 쾰른 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G.지멜의 형식사회학을 계승하였으나, 그 형식의 개념이 모호한 데서 이를 더욱 발전 · 체계화하여 관계학으로서 사회학을 주창하였다. 지멜이 사회의 본질을 심적 상호작용이라고 본 것을 사회의 상호관계로 고쳐 파악하고, 결합과 분리라는 2개의 큰 요소와 이에 따르는 사회과정 · 사회적 거리 · 사회적 공간 · 사회형상이라는 4개의 기초범주를 내세워 사회를 설명하였다. 사회학을 개별과학으로 수립한 공적이 매우 크다.

– 레오폴트 폰 비제 (Leopold von Wiese)
.출생: 1876년 12월 2일, Klodzko, Poland
.사망: 1969년 1월 11일, Cologne, Germany
.국적: 독일
.학력: Humboldt University of Berlin
.지도 교수: 구스타프 슈몰러
.주요저서: Ethik in der Schauweise der Wissenschaften vom Menschen und von der Gesellschaft
.자녀: Ursula Von Wiese
레오폴트 폰 비제 (Leopold von Wiese) 1876년 12월 2일, 슐레지엔 출생으로 베를린대학을 졸업하고, 모교의 강사를 거쳐 1919년 이후 쾰른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G.지멜의 형식사회학을 계승하였으나, 그 형식의 개념이 모호한 데서 이를 더욱 발전 ·체계화하여 관계학 (關係學: Beziehungslehre)으로서의 사회학을 주창하였다.
지멜이 사회의 본질을 심적 (心的) 상호작용이라고 본 것을 사회의 상호관계로 고쳐 파악하고, 결합과 분리라는 2개의 큰 요소와 이에 따르는 사회과정 · 사회적 거리 · 사회적 공간 · 사회형상 (社會形象: 군중 · 집단 · 추상적 집합체)이라는 4개의 기초범주를 내세워 사회를 설명하였다.
사회학을 개별과학으로 수립한 공적이 매우 크다.
비제는 문학 학자 벤노 폰 비제(Benno von Wiese)와 여배우 겸 작가 우르술라 폰 비제(Ursula von Wiese)의 아버지이다.

○ 생애 및 활동
레오폴트 폰 비제는 요절한 프로이센 장교의 외아들로 1876년 12월 2일 출생, 발슈타트 (Wahlstatt)와 리히터펠데 (Lichterfelde)의 사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베를린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여 1902년 박사 학위 (Ph.D.)를 취득했다.
이후 프랑크푸르트의 “공공선을 위한 연구소”에서 과학 연구원으로 일했다.
1905년 베를린 대학교 경제학 부교수, 1906년 포젠 왕립 아카데미 정치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1908년에는 한노버 공과대학교에서 경제학 및 경영학 교수로 재직했다.
1912년 뒤셀도르프 지방자치 아카데미 연구소장을 역임했고, 1915년에는 쾰른 대학원 교수가 되었다.
1919년, 비제는 쾰른 대학교(1919년 재건)에서 경제학 및 정치학(사회학) 교수로 임명되어 독일 최초의 사회학 교수직을 맡게 되었다.
그는 시장 아데나워의 주도로 설립된 “사회 연구소” 사회학과의 소장이기도 했다.
1921년에는 쾰른 사회학 및 사회심리학 저널을 공동 창립했다.
1933년까지 비제는 독일 사회학회 (DGS)의 사무총장이었다.

1934년 한스 프라이어(Hans Freyer)에 의해 DGS가 강제 폐쇄되고 나치에 의해 사회과학 연구소가 폐쇄되자 비제는 1년 동안 미국 (United States)으로 갔다.
그의 후임은 빌리 기어리히스 (Willy Gierlichs)였다. 귀국 후 비제는 제한된 청중에게 경제학을 강의했다.
1946년 그는 부활한 DGS의 회장이 되어 1955년까지 회장으로서 개혁을 이끌었다.
1954년에는 국제 사회학회 (International Sociological Association) 부회장이 되었다.
레오폴트 폰 비제는 1969년 1월 11일 사망했다.
– 사회적 거리두기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란 용어 사용이 당연한 현대, 하지만 사회관계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독일 사회학자 레오폴트 폰 비제 (Leopold von Wiese)는 ‘사회학’ 대신 ‘관계학’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 사회관계를 친화정도에 따른 통합관계와 경쟁, 대립, 투쟁의 분리관계로 구분했다.
사회적 관계에 대한 연구는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 사이에 생기는 인간감정의 친소정도를 나타내는 ‘사회적 거리 (social distance)’라는 개념으로 발전한다.

○ 학문적 업적 및 영향
레오폴트 폰 비제는 역사, 심리학, 철학과 분리된 독립적인 사회과학으로서 사회학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를 “사회 과정”으로, 사회 구조의 중요성을 “사회적 구성물”로 파악했다. 게오르크 지멜과 함께 형식 사회학의 창시자로 여겨진다.
비록 그의 관계 이론인 ‘Beziehungslehre’는 현대 대학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지 못하지만, 그의 형식 사회학적 접근은 여전히 중요한 유산으로 남아있다.
그의 제자로는 독일 노년학 및 의학 사회학의 공동 창시자이자 에를랑겐-뉘른베르크 대학교 경제 및 사회과학 학부 사회학 교수였던 칼 구스타프 슈페흐트가 있다. 비제의 손녀 중에는 이리나 폰 비제가 있다.
○ 주요 저서
주요 저서로 ‘사회학’ (1926), ‘일반사회학 체계’ (1933) 등이 있다.
Zur Grundlegung der Gesellschaftslehre, 1906
Soziologie. Geschichte und Hauptprobleme, 1926
일반사회학 체계 (Allgemeine Soziologie als Lehre von den Beziehungsbedingungen der Menschen), 1933
Gesellschaftliche Stände und Klassen, 1950
Der Mitmensch und der Gegenmensch im sozialen Leben der nächsten Zukunft, 1967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