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잡기장

나의 이민목회 이야기 (6)
<내 목회의 두번째 실패>
둘째로 나는 사랑에 실패한 목사다. 앞에서 고백한 대로 나는 목회의 목표를 세우는데 있어서도 이미 실패했지만 목회의 실제적 실천과정에 있어서도 실패한 사람이다. 목회란 기술이 아니라 목회자의 진심이 담긴 삶 그 자체이다. 불행하게도 나는 오랫동안 목회란 책에서 배우고 교실에서 익혀야 할 지식인 줄로 알았다. 그래서 대학도 졸업하고 학위도 받고 시험도 치룬 후에 정식으로 안수를 받아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목회란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실천적 행동이다. 목회란 사랑 이상도 아니고 사랑 이하도 아니다. 목회란 사랑의 예술이다. 목회는 사랑의 훈련이며 사랑의 실천이며 사랑의 확대재생산이다. 목사라는 사람은 평생토록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며 그 사랑을 자신의 몸으로 보여 주어야 할 사람이다. 그는 죽기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실천하도록 운명지어진 사람이다. 그게 싫거나 그걸 못하겠으면 목사를 그만 두어야 한다. 사랑의 기쁨과 사랑의 아픔을 모르는 사람은 목사가 되어서는 않된다. 목사에게는 사랑을 주어야 할 의무만 있지 사랑을 받을 권리는 전혀 없다. 타인의 아픔과 고통, 다른 사람의 비극과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일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여기지 않는 사람은 목회자가 되어서는 않된다. 억울하게 죽으리라 각오한 사람만이 가는 길이 목회자의 길이다. 목회자의 스승이요 모델인 예수 그리스도가 그리하셨기 때문이다.
성경은 사랑에 관한 이론서가 아니라 사랑의 실천서이다. 오래 목회를 하다 보니 성경은 아주 쉽고 간단한 말씀들로 이루어져 있는 책인데 그에 대한 주석과 해설, 신학과 교리들은 그 쉬운 말씀들을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경은 사랑의 책이요, 사랑의 교과서이다. 성경은 끝없이 인간을 사랑한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펼쳐진 책이다. 성경은 우리에게도 그 사랑 본받아 그냥 사랑하면서 살면 된다고 말씀하신다. 성경은 사랑에 대한 지적 이해를 넓혀주는 책이 아니라 죽을 때 까지 사랑하면서, 사랑 때문에 살다가, 사랑 때문에 아름답고 행복하게 죽을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가이드북이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도 사랑하면 보인다. 예수 믿는 것 복잡하게 말 할 것 없다. 예수님 처럼 사랑하라는 것이다. 없는 이에게는 나누어 주고, 아픈 사람은 고쳐 주고, 억울한 사람은 위로해 주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예수를 제대로 믿는 길이다. 사람을 수단으로 삼지 말고 끝까지 목적으로 대하면서 살면 된다. 기독교란 사랑의 종교이고, 교회란 그 사랑을 배우고 익히고 훈련하며 실천해 나가는 공동체다. 교회 다니는 이유는 사랑을 배우고 좀 더 잘 실천하기 위한 능력을 얻기 위해서이다. 목회란 이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며 사랑의 본을 보이는 일이다. 그런면에서 보면 나는 정말 실패한 목사다. 나는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오신 예수님”을 따라간다고 말은 하면서도 섬김을 받는데만 익숙했던 사람이다.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남을 시키는 데는 능숙한 사람이다. 목사에게는 죄의 기준이 달리 적용된다. 목사에게는 도둑질이나 간음만이 죄가 아니라 남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지 못한 것도 커다란 죄다. 사랑에 성공한 사람은 인생에 성공한 사람이고 사랑에 실패한 사람은 인생에 실패한 사람이다. 성공한 목사란 어떤 사람인가? 공부 많이 하고, 설교 잘하고, 책도 쓰고, 방송도 하고, 집회도 많이 인도하고, 교회를 크게 만들어서 후배들이 “목사님, 목사님은 목회에 성공하셨습니다. 존경합니다”하는 소리를 들으면 그럼 그는 성공한 목사인가? 아니다. 사랑에 성공한 목사가 진짜 성공한 목사다. 제아무리 이름을 날리고 성공한 것 처럼 보여도 사랑에 실패한 목사는 실패한 목사이다. 나는 어떤가? 나는 확실히 실패한 목사다. 목사된 사람이 그의 인생과 목회의 종국적 목표를 <영원히 사람을 사랑하는 일>로 확정하지 않았다면 그는 인간으로서도 그리고 목사로서도 이미 실패한 사람이다.
오늘날 우리는 왜 자본주의와 자본권력, 정치권력과 종교권력들을 향하여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는가? 그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게 만드는 악한 구조들이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를 경쟁과 대립, 갈등과 싸움으로 유도하는 체제, 조직, 구조를 확실하게 고쳐두지 않으면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제대로 사랑 할 수가 없다. 지난날 나의 목회는 고객관리라고 하는 차원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사랑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의무와 책임으로 한 일은 결코 옳바른 목회가 아니다. 이 지구상에 단 한 사람의 가난하고, 아파하며, 억을해 하는 사람이 남아 있다면 그것까지도 목사의 책임이다. 목사는 사랑에 대하여 무한책임을 진 사람의 다른 이름이다.
공동묘지에 무덤의 숫자가 늘어났다고 해서 그것도 성장이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사랑이 죽어버린 교인들은 숫자에 포함되어서는 않된다. 오늘날 기독교는 머릿수는 그득한데 진심으로 예수님이 가신 발자취를 따라가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좋은 예수님을 나쁜 예수님으로 만든 것은 예수교 신자들이다. 계속해서 교회를 다니자니 찜찜하고 안 다니자니 딱히 다른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이들이 많다.
사육신 중 한 사람인 성삼문이 집현전에서 일직을 서다가 그만 잠이 든 적이 있었다. 한밤중에 세종대왕이 집현전에 들렸는데 성삼문이 자고 있는 것을 보았다. ‘깨울까? 혼을 낼까? 집현전에서 쫓아내고 좌천을 시킬까?’ 잠시 생각하던 세종은 조용히 자신이 입고있던 곤룡포를 벗어서 곤히 잠든 성삼문을 덮어주고 나왔다. 새벽에 눈을 뜬 성삼문은 임금의 곤룡포가 자기 어깨 위에 놓인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난 이젠 꼼짝없이 세종을 위해서 죽을 수 밖에 없구나!”
세종대왕을 위대하게 만든 것은 한글을 만든 것이 아니다. 너그러움과 관용, 은혜와 사랑이 그를성군으로 만들었고 그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충신을 만들었다. 나는 그걸 못한 사람이다. 세례도 많이 베풀고, 주례도 많이 섰고, 숫자상 교인들도 많이 늘었지만 진정으로 사람을 얻지 못했고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만들지는 못했다. 사랑으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곤룡포를 벗어 주지 못한 사람이다. 그때 그 교우와 그 장로와 그 목사에게 “김 선생님, 이 장로님, 박 목사님, 내가 다 잘못했어요. 용서하세요” 그리 말했더라면 됐을 것을!
톰 왓슨은 전 미국 PGA 투어에서 39승을 했고 메이저 대회에서만도 8차례나 우승한 골프계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한 신문기자가 인터뷰를 하던 중 프로 골퍼로서 평생을 두고 잊혀지지 않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때 왓슨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PGA 투어에서 첫 우승을 한 날이었습니다. 게임이 끝난 후 환호하는 갤러리들을 등에 두고 락커룸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어떤 초등학생이 종이와 펜을 들고 서서 사인을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 나는 너무 더웠고 땀으로 번벅이 되었고 또 흥분된 상태여서 그냥 못 본 척하고 락커룸으로 들어서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그리고 그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봐요, 왓슨씨! 이제 보니 당신 참 형편없는 사람이군요. 내 아들이 당신을 얼마나 좋아하고 사랑하는 줄 모르는 사람이군요!’ 바로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산산조각이 되었습니다. 그때 나는 아무리 골프를 잘 치고 PGA에서 수십 번 우승을 한다고 해도 어린아이 하나가 사인 좀 해 달라고 내민 손길을 무시하고 지극히 작은 사람 하나에게도 친절과 호의를 베풀 줄 모른다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배웠습니다”
톰 왓슨도 일찍히 배웠던 그 진리를 나는 이 나이가 되어서야 겨우 깨우치고 있다. 나는 사랑과 섬김, 너그러움과 베품에 있어서 실패한 목사이다. 앞에서 고백한 대로 나는 “신학적으로 실패한 목사”이며 또 “인간적 실패”도 맛 본 사람이다. 목회를 비롯하여 인생이란 모두 사랑의 성패로 결정이 된다. 내 남은 인생이 얼마일지는 모르나 이제 와서 돌이키기는 그리 쉬워 보이질 않는다. 그러나 뒤 따라오는 후배들에게는 제발 나처럼 실패하지 말라는 말은 꼭 남기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저는 실패한 목사입니다. 제발 저 처럼 하지 마십시요. 인생과 목회의 성공이란 사랑, 사랑, 사랑의 성공입니다!> (끝)
<이 글은 홍길복 지음 “호주 디아스포라 목회와 신학” 한국장로교출판사, 2014년 판, 94-98쪽에서 옮겨와 약간 다듬은 것입니다>
*홍길복(2025. 11. 24) 나의 이민목회 이야기(6)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