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잡기장 – 인문학적 올림픽 개막식

밀라노 / 코르티나 동계 올림픽 – 인문학 잔치
지난 주 금요일 (2월 6일)저녁,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밀라노 (Milano)와 코르티나 (Cortina)에서는 제25회 Winter Olympic이 개막되었다. 92개국이 참가한 이번 동계올림픽은 이탈리아 제 2의 도시이며 경제와 패션, 문화와 예술을 비롯하여 음악, 미술, 건축 등 온갖 예술의 총집결지라 할 수 있는 밀라노와 이미 1956년에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적이 있었던 <알프스의 진주>로 불리우는 돌로미트 산맥에 자리한 코르티나 단페초 (Cortina d’Ampezzo)가 공동으로 주관한다.
밀라노란 지명을 들을 때 나에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밀라노 칙령, Edictum Mediolanense>이다. 초대 그리스도교회가 3백여년이나 받아오던 박해의 시대를 마감하고 AD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마침내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에 자유를 선포했던 문서가 바로 이곳 밀라노의 이름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밀라노에는 방문할 곳이 많다. 그 유명한 <밀라노 두오모, Duomo di Milano> 성당을 비롯하여 이탈리아에서 땅값이 제일 비싼 상가들이 모여있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는 물론이고, 1778년에 개관되어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오페라 극장인 <테아트로 알라 스칼라, Teatro alla Scala – 그냥 줄여서 La Scala라고 부른다>도 꼭 가보아야 할 곳이다. 여기에서는 ‘나부코’ ‘오테로’ ‘나비부인’ ‘투란도트’ 같은 오페라가 처음으로 연주 되었으며 특히 내년 2027년 부터는 한국이 낳은 자랑스런 지휘자 정명훈이 <라 스칼라>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할 예정이어서 더더욱 찾아보아야 할 곳이다. 이제까지 나는 밀라노를 두번 방문했었는데 그때 마다의 목표는 오직 하나, <산타 마리아 델라 그라치에, Santa Maria delle Grazie> 성당에 딸린 식당 벽에 그려져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참 슬프게도 나는 그 작품을 직접 내 눈으로 보지 못했다. 앞으로 그런 기회가 다시 올지는모르겠다. 이것은 나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인데 말이다.

이번 올림픽의 주제는 <아르모니아, Armonia>이다. 영어로는 Harmony이고 우리 말로는 <조화, 調和>다. 물론 이 <아르모니아>라는 주제는 전통과 현대, 과거와 오늘, 동과 서, 인간과 자연 등 여러가지로 서로 대치되는 것들을 피차 균형있고 조화롭게 만들어 가자는 뜻에서 선택한 것이다. 거듭되고 있는 국가들 사이의 갈등과 전쟁, 자국 제일주의로 치닫고 있는 세계경제 등 오늘날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통과 아픔을 이번 올림픽을 통해서 치유해 보자는 의도가 담겨져 있다고 보겠다. 밀라노는 지난날 인간들이 만들어낸 다양한 문명들이 비교적 잘 조화되고 균형을 이루어 온 <아르마니아적> 도시다. 코르티나도 산맥과 골짜기, 높은 봉우리와 파란 호수, 자연과 도시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아르마니아적> 마을이다. 이탈리아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후 과학과 예술을 적절하게 조화시키고 균형을 이루어 오면서 창조적 아름다움과 인문학적 사고를 함께 넓혀왔다. 그들은 오래전 부터 미술, 음악, 건축을 포함한 예술과 인문학적 가치인 평화와 인권, 그리고 타인에 대한 존중을 동시에 추구해 왔다.
시차로 인하여 생방송은 보지 못하고 토요일 오후 <다시보기>를 통하여 찬찬히 돌아본 개막식에서도 그런 장면들은 아주 잘 들어났다. 베르디, 푸치니, 로시니로 분장하고 나온 무용수들을 비롯하여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중 <네순 도르마, Nessun dorma– 아무도 잠들지 말라>를 부르는 안드레아 보첼리의 독창은 진정 운동경기장에서 울려퍼지는 영혼의 음성으로 들려졌다. 그외에도 세계적 팝스타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 중국출신의 피아니스트 랑랑의 연주 또한 그러했다. 오륜기를 손에 들고 입장하는 평화와 인권과 타자에 대한 존중을 깊이 있게 드러내는 10명의 인사들 중에는 케냐 출신의 엘리우드 켑초게, 보트 피플로 올림픽에서 메달을 땃던 신디 응감바, 아동의 인권을 위해 일생을 받쳐온 니콜로 고보니, 핵무기를 폐기하고 지구의 평화를 호소하는 전 히로시마 시장 아키바 타다토시 등이 크게 돋보였다. 이에 걸맞게 밀라노 올림픽의 성화대에는 <평화의 아치, Arco della Pace, 아르코 델라 파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마지막 성화를 점화 할 때 울려 퍼진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는 희망과 기쁨 속에서도 나를 많이 숙연하게 민들어 주었다. 선수단과 심판들을 대표로 한 선서문의 마지막 귀절에서 그들은 분명하게 선언했다. <우리는 이 올림픽경기를 통하여 선수들 사이에서의 경쟁이나 보다 나은 기록갱신을 이루려는데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을 보다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 나가는 데 공헌하기를 소망합니다>
지난해 새롭게 IOC 위원장으로 선출된 커티스 코번트리 (Kirsty Coventry)는 IOC 역사상 처음으로 비서구권인 짐바브웨 출신의 수영선수로 IOC 위원장이 되었다. 그녀는 IOC역사상 첫 여성 위원장인데다가 42살에 지나지 않는 최연소 위원장으로 개막 연설 중 이런 말을 했다. <올림픽은 단순한 운동경기가 아닙니다. 올림픽은 우리가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고, 더 나아가 우리들이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아가도록 우리 사회를 화해시키고, 그 희망의 가능성을 전하는 것을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그녀의 음성이 이렇게 들려졌다. <코번트리는 단순한 운동선수가 아니다! 그녀는 단순히 IOC 위원장이라는 세계적 체육행정가가 아니다! 그녀는 진실로 우리 시대 또 하나의 위대한 인문학자다! 올림픽을 어느 누가 체육행사라고 했느냐? 아니다! 올림픽은 세계적 인문학 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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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인문학교실> 에서는 지난 2019년 10월, 26명의 인문학 친구들이 함께 첫 <인문학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스와 터키를 거쳐 한국에서는 강진과 안동을 방문했습니다. 그리스에서는 아테네를 비롯하여 크레타, 코린토스, 올림피아, 델포이, 마테오라, 테살로니키, 빌립보, 그리고 네압볼리 등 여러 지역을 돌아보았습니다.
4일째 되던 날 우리 일행은 크레테에서 돌아와 아테네를 출발, 코린토스를 거쳐 서남쪽으로 약 300km쯤 되는 곳에 자리하고 있는 올림피아라는 고대의 작은 유적지를 찾아갔습니다. 그곳은 기원전 776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올림픽이 시작된 도시국가였는데 지금도 올림픽 성화는 그곳에서 채취합니다. 2800년전 처음 올림픽 경기에서는 단 한가지 종목, <달리기>만 했다고 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이 처음 올림픽을 시작했을 때, 그들에게는 두 가지 목표가 있었다고 전해 집니다. 첫째는 당시 도시국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그들이 공동으로 섬기고 있던 제우스와 헤라 신을 다같이 찬양하고 섬기며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래서 초기 올림픽 경기는 반드시 제우스신과 헤라신전 앞에서 열곤 했습니다. 그러니 올림픽의 출발은 종교적 제의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둘째는 400여개나 되는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하나로 뭉치고 단합하여 서로 싸우지 말고 화합과 일치를 이루자는 생각에서 이런 운동경기를 생각해 냈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올림픽의 목표는 평화였습니다. 올림픽은 육체적 운동경기가 아니라 영적이며 정신적인 <평화의 축제>였습니다.
나는 여행때 마다 늘 일기를 씁니다. 다음은 그날 썼던 여행일기 중 일부분입니다.

<2019년 10월 26일 (토) – 방문한 모든 지역이 다 맑고 상쾌한 날씨다>
<가장 인간적인 것이 가장 신적이고, 가장 신적인 것이 또한 가장 인간적인 것이다. 그리스 신화는 나에게 그걸 생각해 보도록 가르쳐 준다> ……. 토요일 오후 우리 버스는 코린토스를 거쳐 펠레폰네소스 반도의 남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 중 유명한 올림피아로 달려갔다. 헤라신전과 제우스신전 등 몇몇 유적지를 돌아본 후 우리는 고대 그리스올림픽의 주경기장에 들어섰다. 거기에서 나는 김 클라라, 천 마리아, 임현명 등 10여명의 친구들과 같이 달리기 시합을 했다. 주경기장은 그 길이는 193미터로 왕복 해야 모두 400미터가 채 않되는 짧은 경기장이다. 그런데도 나는 한 10분이나 걸렸다. 달린 것이 아니라 걸어서 온 것이다. 당연히 꼴찌였다. 그래도 76살이 된 나에게 모두들 박수를 쳐 주었다. 나는 오래전 부터 이 인류 최초의 올림픽 경기장에 오면 뛰던지 걷던지 간에 한번은 꼭 달려보리라 마음을 먹고 왔다. 그것은 나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다….. 거이 2800년 전, 400여개나 되는 도시국가에서 모여온 달리기 선수들, 관중석에서 소리치며 응원하던 4만여 명의 그리스 도시국가의 시민들, 그리고 좀 떨어져 있는 저 쪽 산언덕에서 그들 선수들과 관중들을 함께 내려다 보며 깊이 사색하던 철학자들을 상상해 보았다. 선수들, 시민들, 철학자들 – 그들에게는 모두 하나의 공통된 꿈이 있었다. 일치, 관용 그리고 평화다! 오늘 우리가 이 먼 올림피아까지 찾아온 것도 평화가 그립고 평화를 사랑하고 평화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간절함 때문이다. 우리 인문학 친구들은 오늘도 미움과 갈등, 전쟁과 죽음으로 얼룩진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그래도 우린 평화, 사랑, 자유, 관용을 위하여 읽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사랑을 나누며 “고민하면서도 희망을 공유하는 사람들”이어서 참 감사하다. (끝) *홍길복 (2026.2.10)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