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역사학의 아버지’ 헤로도토스 (Herodotus, BC 484년경 ~ BC 425년경)
할리카르나소스의 헤로도토스 (Herodotus, 고그: Ἡρόδοτος ὁ Ἁλικαρνασσεύς, 그: Ηρόδοτος ο Αλικαρνασσεύς, 라: Hērŏdŏtus Hălĭcarnassensis 헤로도투스 할리카르넨시스, 대략 기원전 484년경 ~ 기원전 425년경)는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이다. 서양 문화에서 그는 “역사학의 아버지”로 여겨진다.

– 헤로도토스 (Herodotus)
.출생: 기원전 484년경 (소아시아 카리아의 할리카르나소스)
.사망: 기원전 425년경 (마케도니아의 펠라 또는 칼라브리아의 투리이)
.국적: 그리스 (Greek)
.직업: 역사가
.부모: Lyxes, Dryo
그는 체계적으로 사료를 수집하고 어느 정도 사료의 정확성을 검증하였으며 잘 짜여지면서도 생생한 줄거리에 따라 사료를 배치한 최초의 역사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자신의 저작 ‘역사’를 통해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기원전 490년에서 480~479년까지 이어진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기원에 대한 자신의 ‘탐구’ (ἱστορίαι, 이 낱말은 라틴어 historia로 차용되어 오늘날 여러 유럽어에서 ‘역사’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를 기록한 것으로, 특히 다른 문헌이 거의 없는 이 시기의 이야기 자료를 기록하였으며 그 밖에 자신이 지중해와 흑해 주변의 여러 지역을 널리 여행하면서 접한 여러 장소와 사람들에 대한 긴 여담을 많이 썼다.
그의 말에 의하면 본인의 기록은 완전히 정확하지 않다고 하며 그는 자신이 여행하면서 들은 것만 기록했다고 한다.

○ 생애 및 활동
헤로도토스의 생애에 관해서는 페르시아 전쟁을 기록한 그의 ‘역사’에 간간히 언급된 기록 이외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고향은 도리아 인에 의해 건설된 소아시아 지방의 할리카르나소스 (현재 터키의 남서쪽 해안 도시인 보드룸)이며 그의 선조는 아마 카리아 지방 (현재 터키의 남서쪽 내륙 지방)에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할리카르나소스의 지배 가문을 축출하려는 시도에 연루되어 할리카르나소스에서 추방되어 사모스 섬으로 이주하였다.
약 30세를 전후로 헤로도토스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페니키아 그리고 스키타이 지역 (현재 우크라이나 지방)을 두루 여행한 것으로 추측되며, 이 여행을 통해 수집한 많은 자료가 페르시아 전쟁을 주제로 한 그의 ‘역사’에 들여지게 된다.
특히 제2권에서 보게되는 고대 이집트 문명에 관한 기록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서 이집트학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헤로도토스의 사망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역사’ (6.91)에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동기와 초기 상황에 관한 암시를 한 것을 미루어 볼 때, 기원전 420년대에 헤로도토스는 아직 생존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 ‘역사’ 기술
“할리카르나소스 태생 헤로도토스는 인류의 업적이 후세에 잊혀지지 않도록 그리고 그리스인 및 그 밖의 민족들의 훌륭한 발자취가 길이 남겨지도록 하기 위하여 여기에 자신의 탐구 기록을 펴낸다. 특히 여기서 무슨 이유로 이들이 서로 전쟁을 하게 되었는지 들어 깨닫게 될 것이다.” — 역사 1.1
헤로도토스가 기원전 440년경에 쓴 ‘역사’는 서양 최초의 역사책으로 여겨진다. 전 9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아시아와 유럽 사이의 항쟁 유래로부터 페르시아 전쟁의 종결에 이르기까지 저술되어 있는데, 제 9권은 미완성이다. 키케로는 헤로도토스를 ‘역사의 아버지’라 불렀다. 좁게는 그리스 도시 국가들과 페르시아 제국 사이의 전쟁을 다루었지만 헤로도토스가 여행한 여러 지역의 문화, 풍습, 역사도 폭넓게 다루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자들의 여러 증언을 토대로 하였는데 확인할 수 없는 증언은 적으면서 사실인지에 대한 자신의 의견도 썼다. 그러나 그의 역사 기술이 사실과 다르고 내용에 편향적인 시각이 들어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일례로 2세기의 작가 루키아노스는 풍자적인 요소가 강한 그의 작품 ‘실화’에서 헤로도토스를 거짓말쟁이로 비난하고 있다. 근대의 학자들 여러 명은 헤로도토스가 자신의 여행한 범위를 과장했고 정보 출처를 지어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고고학적, 문헌학적 발견으로 잘못이라 생각되었던 헤로도토스의 기술이 사실이었다는 것이 여러 차례 드러나면서 ‘역사’의 정확성에 대한 신뢰는 20세기 중반 이후 더 높아졌다. 이제 헤로도토스는 역사뿐만이 아니라 민족지, 인류학의 아버지로도 평가된다.
헤로도토스가 전하는 내용에는 나일 강이 매년 범람하는 것이 남쪽 멀리 눈이 녹아서라는 증언이 있는데 헤로도토스는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더운 곳에 눈이 있을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적고 있다. 또 이집트에서 만난 페니키아 뱃사람들은 아프리카를 돌아 항해하면서 서쪽으로 항해할 때 태양이 오른쪽에 떠있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했다고 적고 있다. 이렇게 헤로도토스는 자신이 믿지 않은 증언들도 전달하면서 당시 지리학에 관한 정보를 우리에게 남겨주고 있다.
과거의 위업을 후세의 기억 속에 남긴다는 지극히 서사시적 발상하에 지리, 풍속, 역사, 삽화, 종교 등 너무나도 다양한 사항이 수록되어 있어 이것이 때때로 주제에서 이탈함으로써 보기에 따라 전체의 통일성이 결여된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사항을 동서간의 항쟁이라는 일관된 역사적 전체 속에 집어넣고 페르시아 전쟁도 그 한 부분으로서 파악한 데에 ‘역사’의 구성상 통일이 있고 그의 역사적 달관이 담겨 있다. ‘역사’의 문체가 지니는 매력은 다양성과 유연성에 있다. 직설적인 묘사와 과학적 산문이라고 할 건조한 문체, 그리고 극적인 긴장감을 주는 표현 등 변화가 풍부하다. 또한 줄거리의 교묘함, 서사시적 웅대함, 줄거움을 주면서 가르치는 수완, 낭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점 등이 헤로도토스가 ‘산문의 호메로스’로 불리는 이유이다.

○ 헤로도토스의 저작 ‘역사’에 대하여
‘역사'(Historiae, 고대 그리스어: ἱστορίαι, 라틴어: lahistoríai 히스토리아이)는 헤로도토스 작의 역사서이다.
헤로도토스는 이 책을 저술함으로써 ‘역사의 아버지’로 불렸다.
기원전 5세기의 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네스 왕조와 고대 그리스 여러 폴리스 간의 전쟁(페르시아 전쟁)을 중심 주제로 페르시아의 건물과 확장, 오리엔트 세계의 역사, 풍속과 전설을 장식한 지리지이기도 하다.
기원전 443년, 아테네를 따르 남부 이탈리아(마그나 그라이키아)의 토우리오이 시의 식민지 개척에 헤로도토스도 참여하여 이 땅에서 글을 썼다. 이오니아 방언으로 묘사되어 있다.
헤로도토스는 고대 세계를 여행하고 각지의 이야기를 모아 놓고 수록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의심스러운 이야기도 많이 있다.)
10세기 후반에 동로마 제국에서 편찬된 ‘수다사전’에 의하면, 헤로도토스는 통치자에 대항한 쿠데타에 참가했기 때문에 할리카르낫소스에서 추방되었다고 한다.
여행은 이 기회에 이루어 졌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분쟁 원인으로 헤로도토스는 절대 권력을 가진 페르시아 왕과 민주적 행정부를 가진 그리스의 이데올로기의 차이가 원인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유명한 마라톤 전투는 제6권에 포함되어 있다.
– 개요
아시아와 유럽 사이의 항쟁, 유래로부터 페르시아 전쟁의 종결에 이르기까지 저술되어 있는데 제9권은 미완성이다. 과거의 위업을 후세의 기억 속에 남긴다는 지극히 서사시적 발상 하에 지리·풍속·역사·삽화·종교 등 너무나도 다양한 사항이 수록되어 있다. 이것이 때때로 주제에서 이탈함으로써 보기에 따라 전체의 통일성이 결여된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사항을 동서간의 항쟁이라는 일관된 역사적 전체 속에 집어넣고 페르시아 전쟁도 그 한 부분으로서 파악한 데에 ‘역사’의 구성상 통일이 있고 그의 역사적 달관이 담겨 있다.
‘역사’의 문체가 지니는 매력은 다양성과 유연성에 있다. 직설적인 묘사와 과학적 산문이라고 할 건조한 문체, 또한 줄거리의 교묘함, 서사시적 웅대함, 즐거움을 주면서 가르치는 수완, 낭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점 등이 헤로도토스가 ‘산문의 호메로스’로 불리는 이유이다.
– 정확성
놀라운 것은 오늘날에 이르러서 고대 동방 모든 지역의 사정이 해명됨에 따라 헤로도토스가 전하고 있던 사실들이 의외일 정도로 정확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헤로도토스의 탐사는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답사’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헤로도토스는 우선 여행하는 지역의 비문 자료들을 참고했으며, 신관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심지어 이집트에서 올라탄 배에서 노잡이에게 질문하기도 하고, 각 지역을 찾아 지겹도록 질문했다고 한다.
고대 페니키아인들이 배를 타고 아프리카 대륙을 일주한 이야기 등을 전하면서 남쪽에 가면 해가 북쪽에 떠 있다는데, 당시 말이 되냐고 비판했으나, 오늘날의 상식으로 보면 매우 과학적인 사실이다.
에트루리아의 기원도 고고학적인 연구를 통해 헤로도토스가 언급한 소아시아 기원설에 신빙성이 실리고 있다.
나일 강 삼각주가 토사가 쌓여 바다를 밀어낸 것이란 것도 알아냈다. 그리고 나일 강의 범람에 대한 설명들을 소개하면서 나일 강이 눈이 녹아 생긴 것이란 주장을 무시했으나 나일강은 실제로 만년설로 덮여있는 루웬조리 산맥에서 발원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헤로도토스는 메소포티타미아 문명의 끄트머리에 실제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도시들을 직접 방문하고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역대 왕계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는데 현대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굴된 점토판들에서 언급되는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고 심지어 점토판의 훼손, 고의적 누락 등으로 불분명한 시기의 역사를 헤로도토스가 서술하고 있기까지 하다.
최초로 중국을 소개했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흑해를 지나가는 초원의 부족들을 설명하면서 세레스를 언급하는데 이 세레스가 중국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헤로도토스는 가장 가까운 쪽에서부터 먼 쪽 기준으로, 남쪽에서 북쪽 기준으로 설명하는데 세레스는 가장 마지막에 설명된다. 세레스는 지금까지 소개된 가운데 가장 북쪽이고, 그래서 너무나도 춥기 때문에 그 이북으로는 사람이 살지 못한다고 한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고대 초원길 가장 동쪽에 연결된 중국이라고 생각한다. 헤로도토스는 물론 당대 그 어느 누구도 경도와 위도를 제대로 계산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방위를 올바르게 계산할 수 없어서 대강 북쪽으로 생각했지만 사실은 동쪽이었다. 중국이 아니라 카슈미르였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어쨌든 이후 세레스라는 나라는 중국의 주요 수출품인 비단과 동일시되면서, 비단을 만드는 나라인 세레스가 곧 중국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리디아가 최초로 금화와 은화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기록을 남겼는데 2017년 기준으로 현재까지 가장 오래된 금화가 바로 리디아 금화다.
하지만 정확성이 높다고 해서 기술한 내용들이 모두 정확한 것은 아니고, 종종 역사왜곡을 저지른 흔적도 있다.
피라미드(정확히는 쿠푸 왕의 대피라미드)의 건축에 대해 헤로도토스는 쿠푸 왕이 노예 20만 명을 동원해 자신의 무덤을 만들도록 채찍 아래 노예 노동을 강제한 잔학무도한 왕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각종 유물과 유적의 발굴로 헤로도토스의 주장은 현대 학계에서 완벽하게 논파되었다.
– 서술 방식
‘역사’는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 대전쟁이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된다. 그렇지만 실제 전쟁 이야기는 뒷부분에 가서야 나오고 앞부분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기까지의 기나긴 경과들이 서술된다.
이러다 보니 양이 방대해지고, 지리나 풍습에 대한 서술이 상당한 양을 차지한다.
많은 에피소드들에서 신탁이나 신의 섭리 같은 것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 비과학적이라고 비판받긴 하지만, 당시의 신탁이라는 게 정치 상황에 따라 내려지기도 하고 사후에 해석되기도 하는 것이니 실제 역사와도 관련성이 높다고 할 것이다.

○ Translations
Several English translations of Herodotus’s Histories are available in multiple editions, including:
Henry Cary, translation 1849: text Internet Archive
George Rawlinson, translation 1858–1860. Public domain; many editions available, although Everyman’s Library and Wordsworth Classics editions are the most common ones still in print. (revised in 1935 by A. W. Lawrence)
George Campbell Macaulay, translation 1890, published in two volumes. London: Macmillan and Co.
A. D. Godley 1920; revised 1926. Reprinted 1931, 1946, 1960, 1966, 1975, 1981, 1990, 1996, 1999, 2004. Available in four volumes from Loeb Classical Library, Harvard University Press. Printed with Greek on the left and English on the right:
.A. D. Godley Herodotus : The Persian Wars : Volume I : Books 1–2 (Cambridge, Massachusetts 1920)
.A. D. Godley Herodotus : The Persian Wars : Volume II : Books 3–4 (Cambridge, Massachusetts 1921)
.A. D. Godley Herodotus : The Persian Wars : Volume III : Books 5–7 (Cambridge, Massachusetts 1922)
.A. D. Godley Herodotus : The Persian Wars : Volume IV : Books 8–9 (Cambridge, Massachusetts 1925)
Aubrey de Sélincourt, originally 1954; revised by John Marincola in 1996. Several editions from Penguin Books available.
David Grene,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5.
Robin Waterfield, with an Introduction and Notes by Carolyn Dewald, Oxford World Classics, 1997.
Andrea L. Purvis, The Landmark Herodotus, edited by Robert B. Strassler. Pantheon, 2007. with adequate ancillary information.
Walter Blanco, Herodotus: The Histories: The Complete Translation, Backgrounds, Commentaries. Edited by Jennifer Tolbert Roberts. New York: W. W. Norton, 2013.
Tom Holland, The Histories, Herodotus. Introduction and notes by Paul Cartledge. New York, Penguin, 2013.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