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소리
역경과 소망
(신 7:2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점점 쫓아내시리니 너는 그들을 급히 멸하지 말라. 두렵건대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를 해할까 하노라.
이 말씀 속에 스며있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면, 이스라엘민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나안을 점령해 들어갈 것인데, 그 때 주변 국가를 바로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을 예고하신 내용입니다. 즉 그들을 다 멸망시키는 것이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이스라엘민족이 정착하여 살게 될 가나안 땅의 주변이 황폐하여지거나, 야생동물이 번성하여 해가 되는 것을 막아 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가 어디 낯선 숲속에 가서 살게 되었는데, 이웃이 없고, 황량한 곳에 우리가족만 살고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어두운 밤이 오면 늑대의 울음소리가 매일 밤 들리고, 수시로 그 늑대들이 집에서 기르는 가축들을 공격하곤 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그 일로 불안하고 근심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낯설지만 이웃이라도 이웃이라도 있으면, 덜 불안할 것입니다. 바로 그런 상황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주변에 이스라엘의 국가들을 남겨둔 이유 중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있음으로 해서, 들짐승이 더 먼 곳으로 물러가게 되고, 게다가 그 나라들 외곽에 있는 이름도 모르는 이방 민족과의 접촉을 막아 주는 역할도 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
실제적인 예로 이스라엘을 가까이에서 항상 위협하는 앗수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그 나라는 후에 북 이스라엘을 정복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 앗수르도 요나 당시 북방의 신흥국가 아라랏과의 전쟁으로 북이스라엘을 쳐들어올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즉 앗수르라는 나라와 아라랏이라는 나라가 전쟁을 하는 동안 북이스라엘(여로보암2세 재위기간)은 앗수르의 위협을 벗어나 다윗이후 제 2의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즉 요 몇 주에 걸쳐서 들은 니느웨의 회개사건에서도 이스라엘을 간접적으로 보호하시려는 얼듯 알아차리기 힘든 하나님의 경륜을 우리는 엿볼 수 있습니다. 요나의 경고로 회개한 니느웨 성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살아남게 됩니다. 이렇게 결과적으로 살아남은 니느웨성으로 말미암아 앗수르라는 나라는 건재할 수 있었고, 북쪽에 신흥국가 아라랏이라는 나라를 계속 견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나는 적국이라고 할 수 있는 앗수르라는 나라의 니느웨 성을 우호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니느웨 성이 멸망당하지 않음으로 해서 앗수르라는 나라는 국력을 유지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신흥국가인 아라랏이라는 나라와 전쟁을 함으로써 이스라엘은 평안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섭리하심은 우리들 뿐 아니라, 선지자 요나로서도 절대로 생각할 수 없었던 하나님의 경륜 중 일부분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바로 이런 점에 대하여, 우리에게도 교훈하고 계신 것을 깨닫게 됩니다. 즉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성급하게 행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점점 쫓아내시리니 너는 그들을 급히 멸하지 말라. 두렵건대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를 해할까 하노라.’ (신 7:22)
하나님의 예정하심
오늘 본문의 말씀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를 밝히시는 내용입니다. 가나안 침공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전쟁마다 승리하게 될 것을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이 그 여세를 몰아 그 주변 국가들을 철저히 진멸하려 할 것을 우려하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주변 국가를 다 멸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도 아니지만, 이스라엘에게 결국은 득이 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들짐승으로부터의 보호가 첫째 득이 되는 일이지만, 다른 이유는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을 잊고 타락할 때에 그 주변 국가들을 사용하여 이스라엘백성들을 벌을 주고 회개시켜야 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주변 국가들을 살려두는 것이 훗날 화근이 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판단이지만, 하나님의 경륜으로는 이스라엘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품어야 하기 때문에, 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다른 길, 즉 우상들을 섬김으로써 멸망의 길로 가려고 할 때, 그 이스라엘을 돌이켜야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돌이키게 할 때, 사용할 사랑의 매로 그 주변 국가들을 남겨 두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매를 맞지 않아도 잘 할 것 같은데,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히 12:5-6 중에서 잠언 3:12절을 인용한 부분)
실제로 그런 일들이 이스라엘의 역사에 여러 차례 일어나는데, 그런 사실을 성경은 아래와 같이 전합니다.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
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 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삿 2:16)
이와 같이 우리들의 인생에서 겪게 되는 문제들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문제를 만나면 그 문제 속에서 나로 하여금 깨닫고 회개시키려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지혜로운 성도의 자세인 것입니다.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 (잠 13:1)
그리고 그것이 믿음을 지닌 성도가 일상에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기쁨과 위안 속에 평안을 누리게 되는 이유입니다.
당장에 어려움 즉 멸시, 조롱, 핍박에 실망하거나 악으로 보복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그 역경너머에 준비된 승리의 면류관과 풍성한 상급에 대한 소망으로 끝까지 순종함으로 선한 길로 행하며,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역경과 순종
예수님께서 붙잡히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보여주신 것이 바로 환란중 소망을 가지고 순종하는 모습이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때까지만 해도 예수님께서 붙잡히시지 않을 거야, 또는 붙잡히시더라도 커다란 기적을 행하시며 이 불의한 자들을 멸하실 거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정작 돌아가시자, 제자들은 실망한 마음을 안고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지만, 자신의 눈앞에 계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도 믿지 않는 제자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다윗과 같이 그 당시 그들을 속박하고 있던 로마인을 물리치는 것이 그들이 기대했던 메시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곳저곳을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시는 선생이나 선지자의 모습이셨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로마군의 채찍을 맞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창에 옆구리를 찔린 채 돌아가셨습니다. 그때도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이렇게 2천년이 넘게 온 인류의 역사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것입니다. 엄청나게 피를 많이 흘리게 하면서 이룩한 강력한 다윗의 통일 이스라엘왕국도 100년이 안되어 분열되었고, 그 분열된 국가가 모두 망하는 데는 3-4백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그 원래 영토를 회복하지 못하고, 현재는 아주 작은 영토만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와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무력한 모습으로 자신의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지만, 그 예수 그리스도가 세운 그리스도 왕국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며, 영원할 것입니다.
우리들의 인생문제도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우리들이 역경에 처했을 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소망 중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들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이며, 영원히 해결 받는 단 한가지 방법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저지른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시험하고 연단하시는 것이고, 결국은 가장 좋은 방법으로 우리들을 구원으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으로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가 겪는 인생의 고난들을 근시안 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신실하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신실 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연단을 통해서라도 우리들이 거듭 태어나 구원에 합류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저와 여러분은, 세상으로부터 받는 핍박이나, 또는 우리들의 죄로 인하여 받게 되는 징계로 시험, 환란을 당하시드라도 절대로 실망하거나 그 인생의 역경을 겁내하지 말고, 믿음으로 소망을 가지고 극복하여 믿음의 결국인 구원에 이르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손창건 전도자(가정공동체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