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거룩한 싸움을 하라(1) 딤전 6:11-12
고인이 되신 박완서님의 작품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라는 에세이에 아주 재미있는 글이 있습니다. 박완서씨가 70년대 초 자신의 남편이 옥에 갇혀 있을 때에 옥바라지를 하면서 교도소를 중심으로 “조그만 체험기”라는 글을 기고했다고 합니다. 그 내용에는 남편을 연행 할 때에 뇌물을 쓰지 않아 그 지경까지 갔다고 우리를 끝까지 괴롭힌 형사이야기가 나와 있고 또 수위에게 주민등록증 밑에 500원권을 접어주었다는 이야기도 썼다. 이 내용에서 앞의 내용은 사실이고 수위에게 500원을 주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에세이가 파문이 되어 검찰의 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검찰에서 발표한 결과는 사실 즉 뇌물을 주지 않는다고 연행을 한 이야기는 거꾸로 남편이 뇌물을 주려 했으나 안 받은 걸로 되어 있었고, 더구나 놀라운 사실은 자신이 수위에게 500원을 주었다고 하는 것은 픽션이며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수사결과는 수위가 500원을 받은 것으로 되어 해고되었다고 하는 기사가 나온 것입니다.
박완서씨는 검찰의 불의한 엄청난 체험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기껏 최말단의 수위나 고발한 체험밖에 쓰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박완서씨는 김수영씨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라는 시로 자신의 마음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
왜 나는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 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당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3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
이렇게 옹졸하게 반대한다.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1원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
박완서씨의 에세이 제목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사람들이 내 앞에서 새치기를 했다고 분노는 하면서도 정치인들이 수십억의 리베이트를 받고 부정을 저지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내 아이가 선생님으로부터 야단을 맞은 것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도 아이들이 선생님을 모욕하고 구탁했다는 뉴스에는 반응하지 않습니다.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예수그리스도를 말하지만 막상 사소한 것에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도, 예수님도 뒷전입니다. 오직 내가 손해 보지 않기 위하여, 내가 조금이라도 피해보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삶에 대하여,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고민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계속해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어야 한다”라고 선포합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자기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자기 성격대로, 자기 욕심대로, 자기 생각대로 소리치고 주장을 합니다. 여기에 하나님도, 그리스도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유심히 살펴보면 정말 사소한 문제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가지고 고집을 피우고,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삐지고,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상처주고 상처를 받습니다. 가끔씩은 이게 교회인가라고 생각하며 절망을 느낄 때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들 침묵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희생해야 하기 때문이고 내가 손해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싸우는가? 왜 갈등하는가?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정욕”입니다. 욕심입니다 야고보서 4장 1절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정욕 때문에 싸운다는 것입니다. 정욕이라는 말이 조금은 어려운 말이라고 한다면 아주 쉽게 표현하면 “욕심”때문에 싸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싸우는 것을 유심히 보면 얼마나 유치한 줄 모릅니다. 대개 싸움은 작은 욕심으로부터 싸움이 시작되어 집니다. 내가 하나 더 먹으려고, 내가 하나 더 가지려고, 내가 하나 더 높임 받으려고 싸웁니다. 그런데 내가 내려놓으면 싸움이 멈추고, 내가 양보하면 싸움이 멈춥니다. 그런데 왜 싸우는가? 양보를 한두번 하다가 화가 나는 것입니다. 왜 내가 꼭 양보만 해야 하는가하고 마음먹고 덤비면서 싸움이 되는 것입니다.<다음호에 계속>
송상구 목사(시드니예일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