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거룩한 싸움을 하라(4) 딤전 6:11-12
거룩한 싸움의 기본은 이웃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과 싸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내 안에 싸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인가? 내 안에 주님이 들어와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를 믿기 이전에는 영적인 싸움이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나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내 안에 침입자가 들어와 있습니다. 누구인가요?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이 내안에 들어오면서 싸움이 시작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여러분 안에 싸움이 시작되어졌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기뻐하셔야 됩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존재하고 있고 역사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초신자나 불신자들에게는 내안에 싸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살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바이러스와 내 자아의 바이러스가 충돌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한 싸움입니다.
<거룩한 싸움을 위한 세 가지>
거룩한 싸움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는 내가 죽어야 하는 싸움입니다.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잘 사는 사람을 보면 배가 아프고, 주변에 잘되는 사람을 보면 너무 부럽고 질투가 납니다. 누가 이런 이야기를 썼습니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맞는 이야기인가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이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인정받으면 부럽습니다. 부럽다고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부러우면 나도 칭찬 받기 위해서 그렇게 하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교회에서나 직장에서 보면 정말 친절하고 일도 열심히 잘 해서 주변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칭찬 받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습니다. 남들이 멋지게 살고 신앙생활 잘하고 잘 섬기는 것~ 그리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을 보면 부러워해야 합니다. 부러워하는 것이 무슨 죄가 있는가요? 그러나 그것에 대하여 질투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질투를 하는 순간에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 하나님과 내 안에 치열한 전쟁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한 싸움입니다. 아무리 거룩한 성자라도 매 순간 내가 죽어 있지는 못합니다. 어느 한 순간에 내가 또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사람들을 만날 때에 완벽한 사람을 기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완벽한 사람은 내가 죽어있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목회자인 저도 하나님 앞에 매 순간 내려놓기를 기도하고 또 내려놓다가도 또 욱하거나, 아니면 또 혈기를 부릴 때가 많습니다. 우리 목사님은 절대로 화도 안내고 모든 것이 다 성자처럼 살 것이라고 스스로 판단해서 상처받지 마세요. 또 역시 여러분들이 존경하는 목회자나 장로님들을 보면서 스스로 이럴꺼야라고 판단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동일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내 육적인 자아를 죽이려고 치열하게 싸움을 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그 분들을 존경하십시오. 그러나 이 정도면 되었지라고 생각하는 분들을 롤 모델로 삼지 말고 매 순간 조금씩 변화되어지고 조금씩 내 자아를 죽이려고 하는 분들을 존경하십시오. 그러면 틀림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나이가 들어 어쩔 수 없이 변화되어지는 것은 비참한 것이고 불쌍한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선택해서 내 자아를 죽이고 이웃을 배려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은 멋진 것입니다.
신앙의 성숙함은 무엇인가? 내 안에 나의 자리가 점점 사라져가고 하나님과 상대방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다. 둘째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게 하는 싸움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
한 스승이 세 명의 제자들에게 졸업문제를 냈습니다. “너희들에게 엽전 한 닢씩을 줄 테니 무엇을 사서든지 이 방을 가득 채워보도록 하여라.”
첫 번째 제자는 깃털을 사서 방을 채웠으나 부족했습니다. 두 번째 제자는 짚으로 채웠지만 역시 많이 부족했습니다. 세 번째 제자는 달랑 양초 하나만을 샀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자 양초를 켰습니다. 작은 양초는 환하게 빛나며 방안 전체를 밝음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거룩한 싸움의 승패는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을 내 주인으로 모시면 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주님을 내 안에 모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 가지고 안 됩니다.
첫 번째 질문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무엇이라고 대답을 할 것인가요? 예라고 대답을 하면 교만할 것 같고 아니라고 하면 조금 이상하고… 앞의 질문 구원을 받았습니까?라는 질문에는 자신 있게 대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질문에 대답을 못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착각하지 마세요! 구원받으면 천국에 갑니다. 그것은 내가 착해서, 내가 옳아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천국 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두 번째 질문 “성령을 받았습니까?”라는 질문에 다들 고개를 숙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을 받았다고 한다면 갑자기 뜨거운 체험을 하거나, 아니면 방언을 하거나 아니면 기도원에 가서 불로불로를 체험해야 한다고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면 우리 안에 성령님이 들어와 계십니다. 즉 성령을 받았습니다. 단지 우리는 성령충만의 경험을 하지 못했을 뿐이지 성령이 여러분 안에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미 성령이 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지 성령님이 내 안에 주인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몸에 암세포가 없다고 생각하는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몸에 변이된 세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암환자라고 말하지 않는가 하면 암세포가 내 안에 주도적이지 않고 나를 지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암세포가 나를 주도하면 암환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를 지배하는 것이 누구냐? 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기도하고, 신앙생활하고, 큐티하고 기도회에 나오는 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여러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과 여러분의 자아가 거룩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믿음으로 살려고 싸우는 싸움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악착같이 싸워야 할 것은 조금 더 많이, 조금 더 높이 올라가려고 하는 싸움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더 좋은 집에 살려고 싸우지 말고, 더 높이 올라가려고 싸우지 말고 믿음으로 살려고 자신과 치열하게 싸움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망하는가? 내 자아가 원하는 대로 살기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사울왕이 자신의 고집대로 제사를 지내려다가 버림받았습니다, 왜 모세가 가나안땅에 못 들어갔는가? 자신의 혈기를 부리고 반석을 사정없이 쳐서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엘리사의 뒤를 따르던 하나님의 사람 게하시가 왜 문둥병이 되었는가? 좋은 옷과 은을 탐하다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심판받고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는가? 조금 더 잘 살아보려고 가나안의 풍요의 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의 안에 있는 아말렉 즉 자아를 진멸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물어보아야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인가를 물어보아야 합니다.
내 생각 말고, 하나님 생각. 내 욕심 말고 하나님 생각. 내 주장 말고 하나님 생각하면서 한 순간 치열한 내적인 싸움을 통하여 승리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송상구 목사(시드니예일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