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생명의 은인
나의 고난을 보시고 나를 건지소서 내가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시 119: 153)
우리나라 전래 동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노인 어부가 고기를 잡는데, 그물에 커다란 잉어가 걸려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이 잉어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 노인 어부는 이 잉어를 물에 놓아 주었는데, 이 잉어는 다름이 아니라 용왕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용왕의 아들은 이 노인을 용궁으로 모셔 가서 며칠을 극진히 대접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갈 때, 용왕이 무슨 선물을 원하는가하고 물어보면, 금빛구슬을 달라고 하라고 귀띔을 해 주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자 용왕이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아들을 살려주어 고마운데 무엇을 선물로 받고 싶으신가요?”
그러자 노인은 용왕의 아들이 가르쳐준 대로 금빛구슬을 선물로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 금빛구슬은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신비한 구슬로 용왕이 가장 아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이 용왕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이 금빛구슬을 노인에게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인은 이 금빛구슬을 집에 가져와서, 소원을 말하는 대로 들어주는 이 금빛구슬 덕분에 큰 부자가 되어 할머니와 백년해로 하였다는 줄거리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용왕의 아들은 생명의 은인인 노인에게 은혜를 잊지않고 보답하였다는 이야기가 이 이야기의 골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전래동화는 용궁과 용왕 그리고 용왕의 아들인 잉어등이 상상의 세계에서나 나오는 배경과 등장인물들이지만, 우리들의 실제 생활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때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때는 독일의 히틀러가 유태인들을 대학살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유태청년이 독일의 나치스당원에게 쫓기고 있었습니다. 그 유태청년은 도망을 가다가 한 비행장으로 숨어들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때 한 비행사가 비행기 옆에서 비행기를 정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유태청년은 이 비행사에게 좀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 비행사는 이 유태청년을 불쌍히 여겨서 그 청년을 태우고 이웃나라 오스트리아의 한 비행장에 내려놓아 살려주었습니다. 그 후에 이 유태청년을 살린 비행사는 독일의 나치스주의에 반대하여 영국으로 도망하여 살다가 영국군의 조정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전투에서 그는 머리를 크게 다쳐서 의식을 잃은 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극진한 간호와 치료를 받은 이 비행사는 결국 의식을 회복하게 되었는데, 그를 간호하고 치료했던 영국군 군의관이 바로 그가 살려주었던 유태청년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생명의 은인이 선한 일을 한 보응을 받게 된다는 사실은 우리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는 세상의 원리인 것입니다. 그리고 동화와 같이 상상 속에 나오는 이야기도 그렇고, 위에서 예를 든 실제 일어난 사건에서도 그렇고 우리들이 생각해 보아도 생명의 은인에게 보답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을 건진 당사자는 그 생명의 은인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고, 그 생명의 은인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수도 있다는데 공감하실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이렇게 생명의 은인이 도움을 받은 당사자로부터 보상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고, 그런 사실은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생애를 통하여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생명의 은인 라합과 가문의 영광
이스라엘 민족이 여리고 성을 공격할 때, 기생 라합이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을 살려주고, 이스라엘이 여리고성을 함락할 때, 그녀 자신은 물론, 그녀의 가족 그리고 가족에 딸린 식솔들의 생명까지 구했다는 이야기가 그런 이야기입니다. 기생 라합의 이야기가 동화나 세상의 이야기와 다른 점은 그 기생 라합이 이스라엘 정탐꾼들을 살려주고 본인과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건졌다는 것이 이야기의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건이 있은 후에 기생 라합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여 다윗왕의 조상이 되었으며, 그 다윗의 28대손으로 예수가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즉 정탐꾼들을 살려주고 그 보답으로 많은 사람의 생명을 건졌다는 라합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난 것이 아니라, 전 인류를 구원하게 되는 역사의 연속선상에 있었던 것입니다.
기생 라합은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결단을 함으로써 그녀의 새로운 생애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기생 라합이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을 좇아 새로운 인생을 선택했던 역사적인 결단력의 원천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 있었음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듣자(출애굽과 요단동편의 땅을 정복한 사실)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므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여 나의 부모와 남녀 형제와 무릇 그들에게 있는 모든 자를 살려주어 우리 생명을 죽는 데서 건져내기를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표를 내라’ (수 2:11-14)
라합은 이스라엘민족이 애굽을 탈출할 때 홍해가 갈라졌다는 이야기와 그들이 요단 저편에서 치른 전쟁에서 강력한 왕들을 제압하고 승리한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배후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도우셨다는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이스라엘민족에게 대항한다는 것은 사실상 무모하다는 것을 간파하였습니다. 그녀는 인류역사가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음을 굳게 믿었던 선각자적인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런 역사관을 가져야 합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 하에 섭리되고,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믿고 명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에게 닥친 일이 하나님의 일과 관련된 일이라면, 그 일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던 간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결단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지 않고 세상적인 기준으로 판단하고 행한다면, 그만한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은 라합은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에게도 자신과 그녀의 가족들 그리고 식솔들까지 모두 보호해 줄 것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게 함으로써, 그녀가 여호와를 경외하였다는 것을 재삼 확인하게 됩니다. 그것이 라합이 지녔던 믿음입니다. 그녀는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그녀가 원하는 모든 사람들을 구하고 자신도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족보에 다윗의 선조 할머니로 그리고 예수님의 조상으로 당당히 성경에 기록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누리게 되는 복입니다. 그 복은 세상의 환란에서 구원받게 되는 복이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이루고자 하시는 역사에도 영광스럽게 쓰임 받게 되는 복입니다. 이스라엘의 공격을 하나님의 역사로 인식한 라합은 두 정탐꾼들에게는 생명의 은인이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한 라합의 생명을 구해주신 것은 물론, 다윗의 조상이 되게 하셨으며, 전 인류의 생명의 은인이신 예수님을 그 후손에서 태어나게 하심으로 영광스러운 가문으로 세워 주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을 믿고 헌신하여 하나님의 사역에 쓰임 받게 되면 세상에서의 복과 함께 그 헌신의 노력은 세세토록 기억되는 가문의 영광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라합의 이야기를 통하여 깨닫게 됩니다.
거듭난 삶
라합의 이야기는 실제적인 사건 속에서 거듭난 삶에 대한 예를 보여준 이야기입니다. 즉 그녀가 여리고성에서 기생으로 살고 있었을 때와 그 성의 패망이후의 그녀의 삶은 완전히 다른 삶이었습니다. 그녀가 달라진 삶을 살게 된 이유는 환란이 닥쳤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고 좇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회개를 뜻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을 건지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나는 새 생명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회개를 경험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환란이 닥쳤을 때를 경험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만일 그런 일이 닥치면, 라합과 같이 회개하여 새 생명을 얻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우리 생명의 은인이신 예수님께로 돌아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의 기회를 주지 않으시면서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에 우리를 내버려두지는 않으십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혀 예수님 앞에 끌려왔던 그 여인은 당장 돌에 맞아 죽을 긴박한 상황에 처해졌다가, 예수님의 개입으로 죽음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이 여인은 그 자리를 피해 도망하지 않고, 끝까지 생명의 은인이신 예수님의 은혜를 기다리며 부끄러움과 두려움 속에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것은 회개와 인내였습니다. 그리고 그 회개와 인내로 인하여 예수님으로부터 용서받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일생을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마련인데,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식은땀이 날 정도로 절대 절명의 순간이 왔을 때는 그 사건에 하나님의 섭리가 강하게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예수님께로 향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인내할 때 우리 생명의 은인이신 예수님의 은혜로 환란에서 벗어나 거듭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그가 당한 고난에 대하여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 119:67)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 119:71)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윗도 그가 당한 고난의 순간에 여호와 하나님께 회개하여 부르짖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고난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지키게 되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고난을 체험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어, 거듭난 삶을 살게 되었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위에 이야기들처럼 생명의 은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생명의 은인 덕분에 제2의 인생을 살게 되는 경우를 위에 예화들에서 보았는데,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기생 라합이 제2의 인생을, 그리고 다윗이 고난 후에 회개함으로 제2의 인생을 살았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욥기서에서는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하심과 고난의 원인에 대하여 분명히 전하고 있습니다. 즉 고난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고난은 하나님의 허락하심으로 사탄의 역사가 우리들에게 나타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정금같이 귀한 자로 만드시기 위하여, 그리고 성도의 승리와 사탄의 실패를 증명하시기 위하여 때로는 사탄의 도전을 받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자에게 품으신 신뢰가 성도들에게 고난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욥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어떠한 고난이라도 견딜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고난 중에 그리고 고난의 끝에는 그 고난 전보다 하나님께 한층 더 가까워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더 각별히 보호 인도하시는 제2의 인생, 거듭난 삶이 기다리고 있음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은인이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위에서도 보신 바와 같이 사람들의 거듭난 삶에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한 대속제물이 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예수님 덕분에 우리는 제2의 인생, 거듭난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특정한 동물(양, 염소, 황소, 암송아지 등)의 피로 죄를 지은 육체를 정결케 하는 의식을 행하도록 하나님께서 지시하셨습니다. 즉 그런 속죄 제사를 지내고 나서는 다시 죄를 짓지 않겠노라고 결심하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제사로는 사람들의 죄를 단번에 씻지는 못했고, 매년 자신이 지은 죄를 위해서 다시 제사를 드리곤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매년 다시 죄를 짓는 인생을 거듭난 삶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시기 전인 구약시대에 드렸던 제사로는 진정한 제2의 인생, 거듭난 삶을 이룰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오직 단번에 모든 죄를 없게 하시기 위하여 드려진 예수님의 속죄제사만이 하나님께서 보증하시는 진정한 제2의 인생, 거듭난 삶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우리 생명의 은인이신 것입니다.
성도의 결단, 소망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저와 여러분은 우리 인생에 닥칠, 아니면 현재 겪고 있는 고난이 치명적이고 견디기 힘들수록 그 고난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을 지킬 것이라고 신뢰하시며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생명의 은인이신 예수님께 의지하여 고난을 견디고 통과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부르짖음도 중단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부르짖음은 하나님께 꼭 상달될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회개와 믿음을 보시고 그 고난에서 건져내 주심은 물론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이 세상에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성도들은 고난이 닥쳤을 때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구원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제2의 하나님의 음성이라고도 불리는 고난이 닥쳤을 때 오늘 말씀을 기억하셔서 하나님께 회개하고 더욱 충성하는 굳은 믿음을 보임으로 생명의 은인이신 예수님의 은혜로 거듭난 삶을 받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 가정공동체교회 창립 3주년 감사예배
일시: 2014년 3월 9일, 12:30 장소: 4 Mark Place Cherrybrook, NSW 2126 |
손창건 전도자(시드니 가정공동체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