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예수를 좇는 무리(2)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3-14)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단 한 번도 전쟁을 일으키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모으시되 칼을 들고 모이라고 하지 않으셨으며, 재물을 들고 모이라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공동체는 세상적으로 판단할 때는 나약한 공동체였지만, 기독교역사의 기초가 된 공동체였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을 좇았던 무리들로 형성된 공동체도 칼과 방패, 투구와 갑옷으로 무장하지 않았으며, 그저 유랑하는 가난한 공동체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은 어린이들을 사랑하셨으며, 억압받는 자, 죄인들과 병들고 약한 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세상을 향하여 큰 목소리를 내지 않으셨으며 오히려 로마에 내는 세금을 내시는 온유함을 보이시며, 묵묵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순종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시고, 만드셨던 기독공동체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도 훈련을 내 보내실 때 아래와 같은 당부를 하셨습니다.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것도 가지지 말며
9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막 6:8-9; 참조 마 10:9-10; 눅 10:4)
우리들의 생각과는 매우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대체적으로 선교하면 물질적 지원부터 생각하곤 하는데, 예수님의 말씀으로 보면, 선교의 기본부터 다른 것 같습니다. 즉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세상의 재물을 이용하여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는 것이고, 심지어 성경은 복음을 전하는데 물질적인 것에 의존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는 불법이라고 까지 말씀하십니다. 이를 증거하는 말씀이 눅 22: 35-37에 나오는데,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가로되 없었나이다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찌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바 저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 감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신성모독의 불법자로 오인되어 해 당하실 것을 예언하신 말씀인데, 이 말씀 속에 불법자에 대한 정의가 표현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보면 자금과 물자, 무기를 모으는 일은 불법자들이나 하는 행위라는 말씀이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무력적인 것, 물질적인 것에 의존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일임을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잡으러 군병들이 왔을 때 베드로가 검을 빼서 ‘말고’라 하는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그 오른편 귀를 자른 사건이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라고 말리십니다. 그 말씀으로 예수님께서는 무력사용, 즉 물리적인 힘의 행사는 절대로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천명하셨던 것입니다.
여러 성도님들은 예수님의 이 가르치심(물질적인 것, 무력적인 것을 배제하는 것)에 따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특히 현대 경제사회에 익숙한 우리들로서는 좀처럼 납득하기도 힘들뿐더러 실천에 옮기는 것은 더욱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세상을 복음화 하되 세상의 물질과 물리적인 힘에 의지하지 말라는 말씀인데, 그것은 성도가 받게 될 육신적 또는 심적인 고통, 즉 핍박을 의미하며, 오래 참아야 함도 예고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2. 예수님을 좇는 현실적인 길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길, 즉 예수님을 좇는 길은 좁고 어려운 길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과연 이 세상에 사는 사람으로서 재물을 갖지 않고 살아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우리들 자신을 돌아보아도 우리들은 매일의 일상이 재물을 위한, 돈을 벌기 위한 일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재물과 하나님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것과 우리의 현실을 대조해 보면,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어떤 길인지는 우리 자신이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겉모습은 그렇고, 우리의 내면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에 양심을 사용하여 반응하고 있는지? 그리고 영생을 우리 인생의 최고 목표로 작정하고 살고 있는지? 우리자신에게 반문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좇는 열정은 우리가 부활과 영생을 믿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며, 그것은 구원과 직결되어 있는 중대한 일인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 것이 예수님을 좇는 열정이 되며, 구원으로 인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예수님을 좇아 구원에 이르는 길은 좁고 협착 하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위에서 알아본 바와 같이 그 길은 이 세상의 무력적인 것과 재물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우리들 모두가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다면, 그곳이 천국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 불행하다는 사건과 각종 끔찍한 사건의 배경에는 모두 돈을 사랑하는 탐심이 원인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사실을 현실을 통하여 분명히 알면서도 우리들은 여전히 상대적인 물질적 부요함을 위하여 끊임없이 욕심을 내며 살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상대적 부요함이란 다른 사람과의 비교 우위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현재보다 더 부요함을 향한 끝없는 욕망에 더 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성경은 우리가 재물을 추구하는 것은 잘 못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세상에 쌓은 재물은 전혀 우리 것이 될 수 없으며, 세상을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준 재물이 실제로 우리의 소유권이 보장되는 재물로 하늘에 저축이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will not be exhausted)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눅 12:33)
하늘에 보물은 하나님께서 보관하고 계시는데, 그것은 변질되지도 않으며, 줄지도 않는 보물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그 보물은 다름이 아닌 우리의 새 생명입니다. 이 새 생명은 영생하는 생명입니다. 이 영생의 보물을 소유하기를 원하신다면, 이 세상에 권세를 잡은 악한 세력의 시험에 지지 않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만연한 돈 중심의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노력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뜻 그리고 마음이 물질을 대표하는 돈을 추구하는 탐심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회개를 의미하며, 편해 보이는 멸망의 길에서 돌아서서 어려워 보이지만 생명을 보장하는 길로 들어서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세상의 악을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이 세 가지로 정의하고 있습니다(요일 2:16). 그리고 이 악들은 하나님으로부터가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사람들에게 육신적인 쾌락과 보는 즐거움, 그리고 세상에 자랑하고자 하는 인간의 허영심, 교만함을 자극하는 방법으로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있습니다. 그 모든 타락의 저변에는 돈을 미끼로 하는 사탄의 계략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집을 위하여 은행의 은행대출 상환금이든, 또는 임대료 또는 자기소유의 집이라도 재산세, 토지세, 전기세, 수도세, 전화/인터넷 사용료 등 무슨 명목이든 돈을 누군가에게 내야 한다는 것을 우리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돈을 계속 벌어서 누군가에게 바쳐야 잘 곳이 제공된다고 표현하면 받으시는 느낌이 무척 다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이 잘 인식하지 못하는 동안에 누군가에게 돈을 벌어 바쳐야 하는 신세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조금씩 노동의 수준이 다를 뿐, 노예와 다를 바 없는 것이고, 실제적으로 돈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돈을 지배하는 악한 세력의 노예가 되어 있다고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들은 이미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소유에 대한 개념에서 벗어남으로 말미암아 아주 많이 세상의 노예로 전락하여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좇아야 할 예수님의 길에서 벗어나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좇고 있지는 않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자청년에게, 그가 가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고 했을 때, 부자청년은 곤란해 하며 돌아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로부터 2천여 년이 지난 지금 이 시대에는 자신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는 말조차가 비현실적인 말로 여겨지게 된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들이 좇고 있는 길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길로부터 얼마나 많이 벗어나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일은 세상일대로, 천국 가는 일은 천국 가는 일로 따로따로 구분하며 좇으려 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비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목적지로 가는 노선의 기차를 타고 가야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지, 북쪽으로 가던 노선을 탔다가 중간에서 갈아타고 남쪽으로 가는 노선을 타고 한참 가다가 또 갈아타서 다른 방향으로 가고 한다면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으로 비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일과 하나님의 일을 구분하여 사는 것이 과연 예수님을 좇는 길일까요? 성경은 무슨 일을 하든 주께 하듯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무엇이든지 모두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구원사역의 일부라는 생각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 까요? 심각히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인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세상과 하나님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신 내용이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마 6:25)라는 말씀입니다.
3. 우리의 현실
우리의 목숨은 부활할 생명으로 이어져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목숨에 대하여 근심하여 이 세상의 재물을 좇으며 세상일에 집착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을 욕되게 하는 일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행위입니다. 이미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믿는 우리들은 이미 예수님과 같이 부활하고 영생하게 될 것이 보증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자신이 이 세상의 물질적 유혹과 위협으로 다가오는 마귀의 시험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그 보증된 영생을 포기하게 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영생을 보증하는 하나님께서 싸인을 하신 보증서를 찢는 것으로 비유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했던 마귀는 세상의 부귀영화와 먹을 것을 동원하여 자기를 섬기라고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그 마귀의 시험은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무력한 것입니다. 그가 먹는 것으로 예수님을 시험하였을 때, 예수님은 말씀으로 그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후에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여주심으로 마귀의 시험이 별것 아님을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높은 곳에서 떨어지게 하려는 시험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이겨내시고, 후에 물위를 걸으심으로 중력의 법칙도 하나님의 권세 앞에서는 무력한 것임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세상의 권력, 부귀영화로 유혹하였을 때,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이겨내셨고, 후에 이 땅과 공중의 권세 뿐 아니라, 만유를 다스리시는 권세가 있음을 여러 가지 이적을 통하여 증명하셨습니다. 이처럼 마귀의 시험은 우리가 좇는 예수님의 권세 앞에서는 또한 예수님 안에 있는 성도에게는 무력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마귀는 지금도 우리들에게 세상 물질을 동원하여 똑같은 시험을 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신갑주를 입지 않은 사람들은 이 시험을 이기지 못하여 그에게 속박되어 죄를 용서받은 신분,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나서, 제자들을 중심으로 개인적인 무소유, 공동소유의 공동체가 생겼었습니다. 그것이 초대교회이자 예수님의 가르침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실제로 실천하려던 사람들이 모여 만든 공동체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공동체는 곧 무너졌습니다. 세상의 시험을 이겨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 개인재산을 모두 공동체에 내놓고 공동생활을 하자고 결단하고 초대교회가 출범하였지만,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자신들의 소유를 판 돈 중에 얼마를 감추었습니다. 그것은 그 당시 공동체 참여자의 내면에 잠재한 인간이 지닌 개인 소유의 욕구들을 대변하는 사건이었고, 그 재물에 대한 소유욕은 세상의 부축임 속에 되살아나고 성장하여 초대 기독공동체의 모습은 사라지고, 점점 사유재산에 대한 욕심이 팽배되어 지금과 같은 세상이 되어 왔던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 묻혀 사는 우리들은 교회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우주적 하나님의 교회에서 예수님의 지체들로 살고 있는 것일까요? 과연 우리들은 재물이 아니라 예수님을 잘 좇고 있는 것일까요? 현실적으로 예수님을 좇는 길은 좁아서 들어서기가 힘들고 협착하여 목자 예수님의 음성을 잘 듣지 않고서는 길을 잃거나 사고를 당해 낙오할 수도 있는 길인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은 어두움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그 어두움의 자녀들이 아직도 활개 치는 것처럼 보이고, 가끔은 더 복을 누리는 것같이 보이기도 하는 이유는 성도들이 예수님의 길을 제대로 좇지 못하고 넓고 쉬운 멸망의 길을 그들과 동행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 멸망의 길에는 어두움의 자녀들과 동행하는 길이기 때문에 불법과 악이 성행하고 타락한 모습과 거짓이 만연한 길인 것입니다. 그리고 사탄과 그의 꼭두각시들이 휘두르는 돈이라는 채찍에 맞으며 가는 고단한 길인 것입니다.
4. 성도의 결단(회개)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좁고 어려운 길을 바로 찾아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좇는 첫 걸음은 우선 이 세상에 만연한 돈에 대한 탐심을 버리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얼굴에 땀을 내며 일구고,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햇빛과 비에 의지하며 삶을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이 어려워 보일 지라도 그렇게 철저히 하나님께 의지하는 길을 선택하여 갈 때에 우리가 지고 가던 무거운 짐을 어느새 내려놓게 될 것이며, 세상에서 우리에게 지운 멍에는 꺾이게 될 것입니다.
구원과 영생을 원하신다면 세상에서 돌아서시기 바랍니다. 돈을 좇는 탐심에서 돌아서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일러주신 좁고 협착한 길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 길은 돈 때문에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길이며 돈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지 않는 길입니다. 또한 돈 때문에 이웃을 미워하지 않는 길입니다. 바로 그 길이 예수님을 좇는 길이며, 그 길이 진리요 생명의 길인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저와 여러분은 세상의 길에서 돌아서서 핍박과 조롱이 예상되지만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생명의 길을 따라 영생의 소망을 품고 예수님을 끝까지 좇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손창건 전도자(시드니 가정공동체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