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존재의 축복, 부모(2) 잠언 23:22-25
왜 부모가 나에게 존재의 축복인가? 그것은 부모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나의 존재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요? 하늘에서 뚝 떨어졌는가? 아니면 혼자 스스로 만들어진 존재인가? 나라는 존재는 부모에 의해서 태어난 존재입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부모를 모르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부모가 버려서 버림을 받은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부모들 때문에 나라는 존재가 생겨났습니다.
부모를 알지 못해도, 부모가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어도 나라는 존재가 생긴 것 자체가 바로 부모가 존재의 축복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부모의 존재로 인해서 내가 이 땅에 태어난 것입니다. 만약에 부모가 없었다고 한다면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냥 부모가 있다는 것이 존재의 축복입니다. 그래서 멀리 외국으로 입양을 간 자녀들이 세월이 지나서 다시 부모를 찾기 위하여 고국으로 돌아온 이유가 무엇인가요? 비록 부모가 자신을 버려서 외국으로 입양을 시켰다고 해도 그 부모로 인해서 자신의 존재가 태어난 것에 대한 감사라고 생각을 합니다. 아마 부모를 만나면 자신을 버린 것에 대한 비난보다는 감동과 감사가 더 진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왜 그런가? 존재의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도 부모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부모를 존재의 축복으로 느끼는가요?
먼저 우리는 존재의 축복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부모에 대하여 부끄러운 과거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요? 요즈음 초등학생들은 자신의 부모님이 학교에 올 때에 이쁘게 화장을 하고 오라고 합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생각 할 때에 자신의 엄마가 이쁘지 않거나 미우면 학교에 오지 말라고 한다고 합니다.
시골에 사는 한 어머니가 남편을 여윈 채 홀로 외아들을 정성껏 키웠습니다. 자신은 헐벗어도 아들에게는 좋은 옷을 입히려 했고, 자신은 굶어도 아들에게는 맛있는 음식을 먹이려고 애썼습니다. 아들이 공부하고, 자라면서 점점 아버지를 닮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기쁨이요, 보람이었습니다. 그 아들이 마침내 서울로 유학을 갔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보고 싶어 어머니는 서울로 올라왔으나 하숙집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어머니는 아들이 다니는 대학의 교문 앞에서 한나절이나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많은 학생들 틈에 아들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아들은 여자 친구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교문을 나왔습니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갔는데 아들은 당황하더니 어머니로부터 고개를 돌렸습니다.
“저 사람 누구야!” 여자 친구가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우리집 식모야” 남루하고 초라한 시골 아낙네를 어머니라고 하기가 부끄러웠던 모양입니다.
혹시 이게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요? 나의 부모님을 부끄러워했던 적이 있지는 않았는가요? 부모님의 부족한 모습 때문에 우리는 부모-존재의 축복을 외면한 적은 없었는가요? 그런데 지금 부모의 존재의 축복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반대로 존재의 축복을 깨닫고 살아아야 한다.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딸 하나 데리고 어렵게 사는 어머니가 분식점을 하면서 이 딸을 잘 키우기 위해서 애쓰는데 고등학교에 다니는 이 딸이 미술에 소질이 있다고 해서 미술학원에 보냈습니다. 어느 날 분식점에서 일을 하는데 비가 오더니 장대비가 막 쏟아졌습니다. 어머니는 깜짝 놀라서 딸이 돌아올 때가 된 것을 알고 우산 두개를 가지고 미술학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가서 학원 문 앞에 서서 보니 아차 일하던 모습 그대로 왔습니다. 앞치마를 둘렀고 옷은 말이 아니고 밀가루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습니다. 이런 모양을 하고 학원에 왔으니 이를 어쩌나 아이들이 보면 감수성이 예민한 우리 딸이 부끄럽다고 생각할 텐데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어떨 수 없었습니다. 우산 둘을 들고 처마 밑에 서 있는데 시간이 되어 이층에서 딸이 내려다보아서 엄마가 왔다하고 손을 흔드는데 딸이 나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엄마 꼴이 말이 아니어서 창피하다고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생각을 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너무나 속이 상해서 한 달 동안 말을 안 했는데 한 달 후에 딸이 그림을 잘 그렸다고 미술 발표회에서 상을 받는다고 해서 미술학원에 갔습니다. 딸이 특상을 받았는데 수상작품의 제목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었다. 우산 둘을 들고 서 있는 어머니 앞치마를 두르고 밀가루가 덕지덕지 묻어있는 어머니가 비속에서 딸이 나오기를 바라보고 있는 그 날의 그 어머니 모습을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이 딸은 엄마가 자신에게 얼마나 큰 존재의 축복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의 부모 존재자체가 축복입니다. 부모가 존재한다고 여러분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가? 없다고 여러분들이 불행한가?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가 지금 존재하지 않아도 우리는 부모라고 하는 존재의 축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제 부모를 존재의 축복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다음호에 계속>
송상구 목사(시드니예일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