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글
현대인은 배고파 죽지 않고 마음이 고파서 죽는다.
하늘은 푸르고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은 산들 산들 마치 한국의 가을 같은 느낌이랄까.
9년전 겨울 시드니에 왔을 때 겨울이 이렇게 따뜻해도 되나 하고 감탄했었던 적이 있었다.
공원에는 동백꽃이랑 이름 모를 꽃들이 만발하고 길거리에 민 소매를 입은 사람 두터운 털 외투를 입은 사람들이 뒤섞여 있고 어그 부추와 조리가 공존하는 좀 신기하고 자유로운 도시 세계 많은 도시를 여행했지만 시드니만의 독특한 매력을 가진 도시도 참 드문 것 같다.
그런데 근 십 년간 이곳을 드나들다 보니 이젠 도시도 정이 들었지만 이곳에 사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또한 정이 듬쁙 들었다. 같이 어울려 공부하고 같이 먹고 같이 울고 웃는 세월 동안 서로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또 서로를 아까워하게 되는 것 같다. 순수하게 미술치료라는 학문을 통해서 만난 우리 연구원들이 이렇게 가족 같은 마음이 된 것은 참 신기한 일이기도 하다.
미술치료는 미술이라는 영역과 상담 심리학, 미술 치료학, 정신병리학을 버무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상처와 아픔들을 서로 나누며 치료하는 학문이다. 미국에서는 일찍이 정신분석학과 더불어 발전하여 사회에 커다란 기여를 하면서 정착되었고 한국에서도 요즘은 미술 치료사를 필요로 하는 기관들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미술치료를 통해 위로 받고 치료받을까? 호주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본능적으로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말이 생기고 글이 생겨나고… 그런데 글자 중에 그림을 그려서 마음을 표현하는 상형문자도 있다. 또 고대 동굴 벽화나 고대 무덤 속에는 무수한 그림들이 발견되어 그때의 시대상이나 사람들의 소망을 엿볼 수 있다. 왜 그분들이 그래야만 했을까? 그 사람들의 무의식적 소망이 그것들을 통해서 제사의식이나 독특한 예술적 표현으로 표면화되어 들어난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 마음속의 소원과 고통 좌절과 기쁨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이야기하는 동물’ 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면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이해해주는 누군가가 있을 때 그 사람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깨닫게 되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고 살아야 되는 이유를 가지게 된다. 한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삶의 스토리를 노인 한 사람이 돌아가시면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고 누군가가 말했던가!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을 혹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이가 없으면 그 사람은 가슴에 차곡차곡 이야기를 쌓아놓고 마음이 병들고 지쳐 살아갈 힘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세계에서 유일한 병 한국인만 앓는 병이 ‘화병’이라고 했다. 사람이 절대 고독 앞에 섰을 때 단 한 사람이라도 의미있는 타인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삶의 끈을 놓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현대인은 배고파 죽지 않고 마음이 고파서 죽는다고 했다. 이런 현실이 한국의 미술이라는 그리고 만들고 찢고 붙이고 칠하는 여러 가지 작업을 통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인 울분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그래서 언제까지나 마음속에서 맴돌고 매도는 이야기들을 풀어헤쳐놓는 일을 통해서 마음이 시원해지고 부드러워지고 즐거워지고 행복해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참 신기하게도 어린아이도 어른도 노인도 말로는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미술로는 할 수 있게 되는 ‘미술치료’는 그래서 “마술치료”라고도 한다. 나 자신도 미술치료를 통해서 어두웠던 마음을 청소하고 지금의 행복한 나를 나로 다시 태어났지만 한국에도 많은 제자들이 이 학문을 통해 자기를 치료하고 또 다른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으니 나는 참 이 학문을 만난 것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또 시드니에도 같이 공부하는 제자들이 많이 있어 이제는 방학이면 괴나리 봇짐 싸 들고 와서 반가운 얼굴들과 만나고 같이하는 시간이 인생에서 큰 낙이 된 것 같다. 연구원들의 마음도 많이 변화되었지만 나 또한 그 동안 많이 크고 자란 것을 느낀다. 이 모든 걸음걸음이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있을진대 이 걸음을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고 앞으로의 계획하심은 어떤 것일지 가끔 가슴 두근거리며 기대해 본다.
은옥주 교수(한국 공감미술치료센터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