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경제윤리 연재기획5 : 노동/고용에 관한 기독교경제윤리
노동문제,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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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는 토지/주택(부동산)문제만큼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인 노동문제에 관한 성경 말씀과 기독교경제윤리를 살펴보자. 그전에 먼저 우리나라의 노동/고용 문제의 현실을 짚어 보자.
현재 우리나라는 실업률은 높아지고 취업률은 낮아지는 실업 문제가 많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막상 취업을 해도 일자리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양극화되어 있어서 비정규직에 대한 비인간적인 대우와 노동 착취가 발생하고 있다. 똑같은 일을 하는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이 2배나 차이가 나는 임금 불평등이 벌어지고 있다.
아울러 양질의 고소득 일자리는 줄어드는 반면 대부분 비정규직이나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같은 불안한 저소득 일자리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정규직으로 취업해 임금을 제대로 받아도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과거에 비해 실질 임금은 계속 떨어지고 파업과 노사 갈등이 만연하고 있다. 아울러 이주민 노동자에 대한 노동 착취와 인권 침해도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 임금 소득 불평등은 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권이라고 한다.
노동의 기원, 하나님의 노동과 인간의 노동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노동은 원래 이런 모습일까? 그렇지 않다. 원래 노동은 선하고 거룩하고 즐겁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노동(일)은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나오며 창조와 함께 시작한다. 하나님은 노동(일)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도 일하셨고 지금도 세상을 통치하시며 일하고 계신다.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인간에게 창조 세계를 맡기면서 노동하라고 말씀하신다. 세계에 대한 인간의 다스림은 노동을 통해 수행된다. 인간은 노동하시는 거룩한 하나님을 따라 마땅히 거룩한 노동을 해야 한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을 대리하여 일하는 하나님의 대리자이자 창조 세계를 맡아서 관리하고 다스리는 청지기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노동하시는 하나님처럼 인간도 노동하도록 지음 받은 존재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노동해야할 책임과 의무, 권리가 있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하나님의 모습과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 인간이 노동한다는 사실은 인간이 노동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존엄한 존재라는 것을 나타낸다.
노동은 하나님의 창조 명령이자 문화 명령
인간의 노동은 원래 하나님의 창조 계획에 속하는 것이다. 노동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창조 명령이자 문화 명령이다. 노동은 원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이다. 인간의 노동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창조의 본래 목적이다.
하나님의 노동과 관련한 성경 말씀을 살펴보자. 성경은 첫 장부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고 말씀한다. 또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시 8:3)”,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으니(시 8:6)”,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 19:1)”며 하나님이 손으로 노동하시어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묘사한다.
또 성경은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6~28)”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문화(文化) 명령이다. 문화 명령은 곧 노동하라는 명령이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한 노동의 목적 변질
노동은 원래 거룩하고 선한 것이었지만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반역과 타락으로 인해 노동의 목적이 변질된다. 인간의 죄와 타락으로 인해 노동의 목적이 변질되기는 했지만 노동 자체가 저주를 받거나 본질이 변한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노동이 저주를 받아 땀 흘려 노동해도 이 세상에는 늘 빈곤과 굶주림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했어도 땀 흘려 노동하면 먹을 것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성경은 인간의 타락과 노동에 대해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 3:17~19)”고 말씀한다.
인간이 다스릴 대상인 땅이 저주를 받아 노동이 수고로움이 되었지만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한 이후에도 계속 땀 흘려 노동하여 살아가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하신 창조의 원래 의도는 인간이 노동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즐거움과 만족을 얻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타락 이후 피조물을 섬기면서 자연의 물질로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우상을 만들어 섬기면서 어리석은 우상숭배(물신숭배)를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노동의 본질은 여전히 거룩함
인간의 타락 이후 땅이 저주를 받아 노동이 수고로움이 되고 인간의 우상숭배(물신숭배)로 인해 노동의 목적이 변질되기는 했지만 노동 그 자체가 타락하거나 바뀐 것은 아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뜻에 맞는 모든 노동은 다 거룩하고 선한 것이다. 교회와 관련된 일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명하신 세상의 모든 노동은 다 거룩한 섬김과 봉사의 일이다.
노동은 지금도 거룩한 것이며 다른 사람과 모든 창조물에 대한 섬김과 봉사다. 성 베네딕트가 말한 것처럼 노동이 예배(기도)요 예배(기도)가 노동이다. 예배(기도)와 노동을 분리하는 것은 성속을 둘로 나누는 이원론적인 오류다.
예배와 기도는 거룩하고 노동은 비천한 것이라는 중세 가톨릭의 수도원적인 성속 이원론을 깬 사람들이 바로 종교개혁자들이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세상의 모든 노동이 다 거룩하다는 것이 종교개혁의 알맹이다. 즉 자신의 소명과 직업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이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까지는 몸소 목수로서 노동하셨고, 어부였던 베드로, 천막을 만들면서 사도의 역할을 한 바울도 모두 노동을 한 사람들이었다. 몸으로 노동한 이 분들이 바로 교회의 머리와 대들보가 되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고 말씀하신다.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눅 10:7)”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유명한 마태복음 20장의 포도원 품꾼 비유 말씀에서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마 20:14)”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일을 하고 싶어도 아무도 일을 시켜 주지 않아서 일할 수 없는 마지막 남은 사람에게도 동일한 노동권과 생존권이 있음을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이 창조하신 노동의 목적에 맞게 다른 사람과 창조 세계, 교회를 위해 섬기고 봉사하면서 자신의 생계를 위해 일한 대가를 받아 사는 것은 거룩한 일이다. 물론 돈이 목적이 되면 잘못된 것이지만 다른 사람과 창조 세계, 교회를 위해 노동하고 일한 대가를 받아 사는 것은 거룩한 일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열심히 노동해서 만들어 낸 것 혹은 이루어 낸 것은 모두 선하고 좋은 일이다. 그것이 목회든 선교든 다른 노동이든 다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인간이 노동해서 만들어 낸 것으로 살아가도록 인간을 만드셨다. 이렇듯 다른 사람과 창조 세계의 생명을 살리고 섬기는 세상의 모든 노동은 다 거룩하다.
노동과 안식, 하나님의 안식과 인간의 안식
하나님께서는 몸소 노동하여 천지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는 안식하신다. 성경은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 2:1~3)”고 말씀한다.
안식은 창세기 말씀뿐만 아니라 대표적으로 십계명의 제4계명에도 나온다. 성경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8~11)”고 말씀한다.
십계명의 제4계명은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 즉 노동을 할 것과 함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즉 안식할 것을 함께 말씀한다. 안식은 노동처럼 원래 창조로부터 나오는 하나님의 축복이자 선물이다.
예수님도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 2:27~28)”고 말씀하신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다. 성경은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고 말씀한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셨고 안식일도 창조하셨다. 따라서 천지의 주인이 예수님이듯 안식일의 주인도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일하기를 싫어하여 불로소득으로 살려는 것은 잘못
안식일에는 노동을 멈추고 쉬면서 하나님을 예배한다. 엿새 동안 힘써 네 모든 일을 하라는 말씀은 노동하지 않고 사는 것을 금한다. 즉 땀 흘려 노동하여 살아가라는 것이다. 자신은 노동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노동한 것으로만 살아가려는 것은 잘못이라는 말이다. 자신은 노동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노동하여 만든 결과를 부동산 불로소득으로 취하려는 부동산 투기나 여러 불로소득으로 얻으려는 마음은 성경이 금하는 잘못이다.
사도 바울도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살후 3:10)”고 말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서 노동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노동하지 않고 부동산 투기나 여러 불로소득을 통해 다른 사람이 만든 노동의 열매를 취하여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일하기를 싫어하여 다른 사람의 노동의 열매로만 살아가려는 잘못된 사람이다. 불로소득으로 살아가려는 사람은 노동하여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창조 명령과 문화 명령을 어기는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고영근 / 희년함께 사무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