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곤주 목사의 원문중심 성경강해 시리즈
빌립보서 1:3-5 강해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장 3-4절에서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너희를 위하여 기쁨으로 간구한다’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고 5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첫날부터”란 말은 빌립보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던 때이고 “이제까지”란 말은 그 후 약 10년이 지나서 로마의 감옥에 갇혀서 이 편지를 쓰던 시기를 말합니다. 다시말해서,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복음 사역을 위해서 교회의 개척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복음을 위해서 헌신해 왔다는 말입니다.
조금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도 바울이 빌립보 지역을 떠나서 복음전파 사역을 계속했고 그 결과 지금 로마의 감옥에 있을 때에도 빌립보 교인들은 변함없이 사도 바울이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는 사랑의 교제를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복음 전파를 위해 봉사와 헌신과 사랑의 교제를 실천해온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했고 그들을 위해서 기쁨으로 기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특별한 점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개역 개정성경을 사용하기 전에 우리가 사용했던 개역 성경을 보면 1장 5절 말씀에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 이란 말을 바꾸어서 지금의 개역 개정 성경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함”이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참고로, 새번역 성경을 보면, “여러분이 첫 날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또 NIV 영어성경을 한글 번역과 비교해 보면, “partnership in the gospel” 즉 “복음안에서 협력하는 것” 이라는 말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KJV영어 성경을 보면, “fellowship in the gospel” 즉 “복음안에 있는 교제”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번역성경들이 그 의미를 조금씩 다르게 번역한 것은 본문에 나오는 “코이노니아” (κοινωνίᾳ)라는 헬라어 단어의 의미를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코이노니아”라는 이 헬라어 단어는 ‘친교, 교제, 봉사, 나눔, 헌금’ 등의 다양한 뜻으로 쓰여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상황속에서 그 의미를 생각해 볼때 “코이노니아” 는 기본적으로 ‘물질적인 헌신을 기초로 복음을 위한 사랑의 교제와 나눔’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이해할수 있습니다. 이 사실은 빌립보서 편지의 내용을 마치는 4장 18절의 말씀을 통하여 알수 있습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빌 4:18).
뿐만아니라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에 보낸 로마서의 내용을 보면, “코이노니아”를 ‘연보’ 즉 헌금의 의미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롬 15: 26).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도 바울의 관심은 단지 ‘물질적인 나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전파에 있습입니다.
이러한 ‘나눔과 친교의 교제’를 의미하는 ‘코이노니아’는 먼저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시작되어서 복음 사역을 위한 성도들간의 교제로 발전해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코이노니아’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속에 나타나는 복음을 위한 나눔과 친교와 협력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나누는 친교와 교제가 성경아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코이노니아’(교제)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코이노니아’ 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물질적인 나눔과 교제가 되어야하고 어려움과 아픔이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아픔과 슬픔을 함께 하는 마음의 나눔과 교제가 되어야 합니다. 또 ‘코이노니아’는 말씀과 성령안에서 성도들 끼리 누리는 영적인 나눔과 기쁨을 포함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이러한 진정한 코이노니아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사도행전 2장 44-47절을 보면, 그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코이노니아”)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또 믿는 사람이 자신의 재산과 소유를 팔아서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온 백성들에게 칭찬을 받았고 그 결과 구원 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더하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2장 44절에 나오는 ‘서로 교제하는 것’이 “코이노니아”이지만 사실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 그리고 성도들끼리 서로 실제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삶, 그리고 함께 기도하고 예배하는 삶 이 모든 것이 바로 코이노니아입니다.이러한 ‘코이노니아’ 교제를 통하여 세상 사람들을 교회를 칭찬하고 구원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의 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은 코이노니아 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들이 먼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또 복음 안에서 어려운 형제 자매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실제적인 나눔의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위해서 기꺼이 물질과 마음과 기도의 후원을 할수 있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코이노니아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