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곤주 목사의 원문중심 성경강해 시리즈
제22강 존경받는 에바브로디도 (1편) <빌립보서 2:25-27>
25.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26.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27.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오늘 본문을 보면, 에바브로디도는 본래 이방인이었다가 개종한 기독교 신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영어와 헬라어 둘다 ‘에파프로다이터스’ (Ἐπαφρόδιτος:Epaphroditus)라고 발음하는데, 이 말의 뜻은 ‘아프로디테에게 속한자 혹은 아프로디테에게 사랑받는자’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프로디테는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랑과 미의 여신으로서 로마식 이름으로 ‘비너스’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정통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나 율법을 가르쳤던 바리새파 사람이었고, 바울의 제자이면서 동료였던 젊은 목회자 디모데는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혼혈인으로 태어나 신앙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하지만 에바브로디도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가정에서 태어나서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는 사실을 그의 이름을 통해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에바브로디도를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고 본문 2장 25절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에바브로디도를 “나의 형제”라고 소개한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인간관계에서 형제보다 더 가깝고 친밀한 관계는 없을 것입니다. 진정한 형제의 관계는 함께 수고하면서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지 않는 관계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안에서 한 형제 자매된 우리들이 그리스도인들이 이와같이 서로 돕고 서로 사랑을 나누는 관계가 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에바브로디도는 바울과 함께 수고한 동역자요 군사였습니다. 사실 감옥이라는 환경에 처하면 가까은 친구들 마저도 떠나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에바브로디도는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 사도 바울을 만나고자 멀리서 찾아와서 사도 바울과 함께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를 “함께 군사된 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실제로 복음을 전하고 믿음을 지키는 신앙 생활이 곧 영적인 전쟁과도 같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6장 10 -12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마찬가지로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5장 8-9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이처럼 세상의 유혹과 세상의 시련과 고난들을 통해서 마귀는 우리의 믿음을 넘어 뜨리기 위해서 날마다 우리의 영혼을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특별히 뜻하지 않은 큰 슬픔을 당하거나 큰 어려움에 빠져서 마음이 약해질 때 사탄은 그 틈을 타서 우리의 믿음을 공격 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자를 찾는 마귀를 대적하고 승리하기 위해서 늘 깨어 있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오늘 본문에서 ‘함께 군사된 자’라고 한 말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말씀과 같은 맥락에도 이해할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디모데후서2장 3절에서 말씀했습니다. 다시말해서, 어려움과 고난의 환경 속에서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믿음의 용사가 되라는 말입니다. 이와같이 에바브로디도는 복음안에서 바울의 형제가 되었고 복음을 위해서 바울과 함께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가 되어서 함께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흥미로는 것은 성경에는 에바브로디도의 신분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에바브도디도가 빌립보 교회의 목사님이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사실 추측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에바브로디는 그의 역할을 생각해 볼때 지금의 장로님과 같이 교회를 대표하는 일꾼이었거나 아니면 평신도 사역자였을 것으로 추측해 볼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에바브로디도는 여행중에 (혹은 그곳에 머무르면서) 병이 나서 건강이 점점 악화되어 갔고 결국에는 죽을수 밖에 없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본문 26절을 보면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라고 사도 바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에바브로디도가 그리스도의 일을 하다가 병들어 죽게 되어서 사도 바울과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 모두가 큰 걱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디 걱정만 하고 있었겠습니까? ‘하나님, 에바브로디도가 나를 돕겠다고 여기까지와서 죽어 돌아가면 어떻게합니까 에바브로디로를 불쌍히 여겨 주셔서 병을 고쳐주십시오’하고 사도 바울이 간절히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또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 감옥에서 고생하는 사도 바울을 도와 주려고 에바브로디로를 그 먼곳까지 보냈는데 병들어서 죽으면 어떻게 합니까. 사도 바울에게도 큰 짐이 되지 않도록 에바드로디도를 불쌍히 여겨 주셔서 그의 병을 고쳐 주십시오’하고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본문 26-27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과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에바브로디도의 헌신을 보시고 그를 긍휼히 여기셔서 죽을 병에서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줄 만한 사람에게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33:19 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여기서 긍훌이란 말은 영어로 ‘compassion’ 즉 동정심을 말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자비를 베푸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들의 신앙 생활이 하나님께서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 줄만한 신앙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로마의 감옥에 갇혀서 외롭고 힘든 시기를 보냈던 바울 사도에게는 병에서 회복된 에바브로디도가 곁에 있는 것이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에바브로디도이 삶은 사도 바울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빌립보 교인들의 기도의 응답이라고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에바브로디도 자신에게 있어서 이 사건은 하나님의 큰 은혜을 입는 기도 응답을 받기에 합당한 믿음의 삶을 살았던 삶의 결과로 이해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말씀하기를 ‘자기 생명을 돌보지 않고 너희들을 대신하여 나를 섬기는 일에 헌신한 에바브로디도를 귀하게 여기고 존경할 뿐만 아니라 또 이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존경하라’고 본문29-30절에서 말씀합니다.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믿음과 헌신의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존경을 받고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복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