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곤주 칼럼
비판하기와 비판받기
종종 오순절 계통의 신학을 한 사람이나 성령 사역을 한다는 분들을 보면 영(spirit)이라 말을 지나치게 남용하고 경우들이 있다. 즉 비판의 영, 간음의 영, 슬픔의 영, 분노의 영, 중독의 영 등등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나 죄의 항목들을 다 악한 영(spirit)에 의해서 일어나는 일들처럼 해석하는 내용의 글이나 가르침들을 종종 보게 된다.
물론 종종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악한 영의 힘에 그런 일들이 일어날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지나치게 모든 문제들을 악한 영(spirit)때문에 생겨난 일이라고 믿게 되면 인간의 도덕적 책임과 의지를 무시하는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즉 지나차게 그런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결코 건전한 기독교 신앙이 못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올바른 인생관을 가지고 올바른 사회생활을 하려면 건전한 비판능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이런 능력을 습득할 수 있을까? 나는 한국에서 신학공부를 마치고 목사가 되었다. 하지만 호주에서 두 군데 신학 대학원 (몰링 신학교와 무어신학교)에서 5년 넘게 (풀타임+파타임) 공부를 하면서 체득한 한가지 큰 배움이 있다면 그것은 비판하기와 비판받기이다. 사실 같은 학위(MA in Theology)를 두번 졸업하는 것은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미련한 짓이겠지만, 그래도 성경신학은 너무나 배울것이 많기에 선택한 나의 독특한 결정이다.
이 과정은 거의 대 부분 한 과목 수업을 할때마다 내가 연구한 내용을 다른 학생에 의해서 비평을 받고, 나 또한 다른 학생이 연구한 내용을 비평하게 된다. 그리고 비판을 할때는 반드시 장점(칭찬)도 같이 해야 한다는 기본 예의가 있다. 그리고 나면, 발표한 주제에 대해서 전체 토론과 교수님의 평가에 들어간다. 그럴때 내가 비판한 부분이 얼마나 미흡한지 깨달아 알게 된다.
동시에 내가 열심히 연구해서 의기 양양하게 발표한 내용들이 비평의 심판대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그때 나의 자존감과 교만이 함께 무너진다. 처음에는 정말 감당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바른 비판(분석+판단)능력이 길러지고, 동시에 자신의 주장이 잘못된 점에 대해서 겸허하게 받아 들이는 비판받기 능력이 길러지는 것이다. 이것은 학문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훈련이다. 그리고 이러한 훈련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굉장히 큰 도움을 준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객관적 사실에 기초하여 이러한 창조적(건설적)인 비판을 하기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기초하여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비판을 하는 경향이 강하다.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비판을 받을때 그 것을 인정하고 수용하기 보다는 즉시 적대적이고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경우들이 많다. 그래서 비판하는 능력과 비판받는 능력을 기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비판할때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해야하고, 또 비판을 받을때는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며 겸손히 수용할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기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사랑에 근거한 건설적인 비판을 해야 한다. 다시말해서, 긍정적인면을 함께 평가하는 비판이 되지 않으면 그것은 단지 감정적인 비난이 될수 밖에 없다. 이것이 성경에서 비판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적인 비판을 해서는 안될 분명한 이유들이 있다.
첫째로 비판은 객관적 사실에 기초해야 하는데, 우리의 인식은 늘 제한적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비난할때 사실 우리는 그 상황을 잘 알지 못하거나 그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동기를 완전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로 모든 사람의 비판적 판단은 늘 어느정도 주관적이다. 그래서 어떤 사실이나 사건도 각자에 고정관념이나 인생 경험에 따라서 다른 의미로 해석을 하게 된다. 또는 내가 비판하던 사람도 나에게 이익이 되면 하루 아침에 칭찬하는 대상으로 바뀐다. 인간은 그만큼 자기중심적이다.
셋째로 우리 자신은 객관적이지 못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내가 비판하는 상대방에 대해서 내가 확인하기도 전에 주위 사람들이 내린 평가를 기준으로 편견을 가지고 비판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비판하는 상대방을 충분히 이해하고 사랑하고 칭찬했다면 비판할 자격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인간관계 속에는 묘한 감정이 작용하기에 아무리 좋은 뜻으로 그리고 사랑의 마음으로 잘못을 지적해도 그 말을 듣고서 깨닫고 행복해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시말해서, 아무리 사랑이 깔려 있는 비판이라 할찌라도 때로는 오해로 받아들일 확률이 훨씬 높은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상대방을 위한 사랑의 비판이라도 내 마음을 찌르는 칼이 되어 되돌아오기도 한다. 그러니 아무리 옳고 건전한 비판이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중에 아무도 비판하자 하는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이 사실을 안다면, 우리가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때 먼저 예수님이 하신 명령과 사도 바울과 야고보가 하신 교훈들을 다시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랑의 동기에서 비롯된 객관적이고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비판이 되도록!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 마태복음 7:1-2절 –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 로마서 14장10절 –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 야고보서 4장 11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