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박사의 또박또박 준비하고 가는 유학과 해외체험(24)
앞으로 여러 회에 나누어 연재될 이 글은 ‘김삼오 박사의 또박또박 준비하고가는 유학과 해외체험’에서 저자의 양해를 얻어 일부 업데이트하고 전재한 것입니다.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편집자 주
제4장 주거와 문화체험
문화차이가 생각보다 크다.
(사례5) 고등학교 2학년의 C 여학생. 그가 6개월간 호주에서 지낸 다음 한 영어학교의 알선으로 들어가게 된 홈스테이 가정은 전형적인 영국계 호주 중류층 원어민 가족이다.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켜 시드니 중심가에서 전철로 30분 거리 근교인 Bardwell Park에 있는 2층의 큰 저택 베드룸 6개 가운데 네개가 비어 있다. 그래서 홈스테이를 받는 것이다. 60대 초반의 남편은 오랜 공직생활 후 은퇴했고 50대 후반의 부인은 대학의 행정직에서 일하고 있다. 출퇴근 후를 이용, 여러 명의 외국 학생을 집에 둔다면 그는 여간 빠르고 치밀한 여성이 아닐 수 없다. 아닌게 아니라 학생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부지런하고 경우가 바르나 그 대신 지나치게 깐깐한 잔소리꾼이다. 학생의 부모들의 만류도 있고 해서 6개월을 견디고 지내다가 새로 입학이 된 고등학교 기숙사로 옮겼다. 홈스테이 동안 주인 식구들과 대화도 많이 해서 영어가 크게 늘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들과 말하기 싫어 될 수 있는 대로 대화를 피했었다고 대답했다.
이렇게 되면 홈스테이의 의미는 적어진다. 그리고 유학생과 홈스테이 주인과의 불편한 관계는 문화차이와 그에 따른 상대에 대한 서로의 기대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한국과 서양사회 간 문화적 차이가 크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심각한가는 현지 사회에서 실제 그들과 가까이 지내보지 않고는 잘 모른다. 대부분의 홈스테이를 해보는 한국 유학생들은 그 점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지난 10여년동안 많은 한국 학생을 호주 학교에 알선한 E유학원의 L씨에 따르면 해외생활을 처음 하는 학생이 곧 바로 홈스테이를 택하면 꼭 문제가 생기는데, 대개 언어장벽과 문화장벽이 겹쳐 오해가 증폭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유학생의 생활을 돕기 위한 안내 자료들을 읽어 보면 어떤 일들이 그런 애로의 원인이 되는가를 쉽게 깨닫게 된다. 여러 가지 충고 가운데 한 구절을 소개하면,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들었으면 솔직하게 말해야지, 알아들은 것처럼 대답하거나 행동하지 말라. 오해를 증폭 시킨다”가 있다. 홈스테이 주인이 간곡히 부탁하거나 주의를 준 것을 학생은 알아들은 것처럼 대답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흔하다. 알아듣고도 실천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들은 대단히 불쾌해 한다. 이것은 비단 유학생만 아니라 대부분 한국인들이 서양인들과의 관계에서 범하는 실수이다.
‘10분 이상 샤워하지 말라’
학교나 가정이 정한 홈스테이 룰은 사립학교 기숙사 생활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면 된다. 친구들을 집에 초청할 때는 주인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저녁을 밖에서 먹고 올 때는 사전에 연락을 해야 한다, 샤워장에는 한번에 10분 이상 더 있지 말며, 사용 후에는 깨끗이 치우고 나와야 한다 등이다. 그런데 그에 대하여 주인이 주의를 할 때 ‘예스’라고 해놓고 어기면 어떻게 될까. E씨는 한국 여학생들이 샤워 후 머리카락을 샤워장에 그대로 남긴 채 나오는 일이 흔하다고 말한다.
‘10분 이상 샤워를 쓰지 말라’는 이유는 대개 호주 가정의 물탱크 보일러 용량이 적고, 또 다음 사람의 이용을 위해서다. 대부분 서양인들이 그런 것처럼 호주인들은 비용에 민감하다. 홈스테이 학생은 낮과 취침 시간, 그리고 외출 시에는 전등과 방에 있는 히터 등을 꺼야 한다고 되어 있다. 시드니 서부에 위치한 커버데일고등학교는 한국 유학생을 많이 받고 그들의 홈스테이도 관장한다. 이 학교의 제프 클라크 교장은 홈스테이 가정이 하는 큰 불평도 바로 이런 문제라고 지적했다.
홈스테이 주인들은 전화사용과 요금 지불 방법 등도 규칙으로 정해 놓는다. 이런 규칙들을 우리 식으로 지키지 않고 어물쩡 넘어가면 말썽이 꼭 생긴다. 서양의 교육 받은 중류층 중년 주부나 노년층인 할머니들은 우리가 생각하기보다 대부분 보수적이며 젊은이들에게 까다롭다. 말을 해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금방 잔소리꾼으로 바뀐다.
한국인끼리 어울리기 일쑤
모든 한국 부모들은 동포가 적은 지역과 학교로 자녀들을 보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데 현재 영미의 주요 도시에 한국인 없는 곳이 드물지만, 한국인 없는 곳에 갔다고 바라는 대로 외국 사람과 섞여 지낼 수 있느냐하면 그렇지가 않다. 대부분 한국 학생들이 해외로 나와서는 자진해서 한국인 친구를 찾고 한국에서처럼 이들과 밀착되어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이 또한 현지에 나와서야 깨닫게 되는 허상과 실상의 괴리인데, 왜 그렇게 되는가를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영미인들은 친한 친구들끼리도 우리네처럼 늘 붙어 다니지 않는다. 이 또한 서로 다른 성장과정에 따른 문화적 차이인데, 그들의 생활양식은 개인주의(집단주의의 반대) 가치관을 더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생김새와 언어가 달라 교류가 편치 않은 동양인을 특별한 볼 일 없이 깊은 관계를 갖지 않는다.
이쪽에서 가만히 있는데, 저쪽에서 접근해오는 일은 드물다. 그게 영미인의 프라이버시 개념이다. 인간관계는 대개 쌍방행위가 아닌가. ‘탱고를 혼자서 출 수 없다’라는 영어 표현대로, 한쪽만의 노력으로 친구를 사귈 수는 없다. 이 점 한국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외국인이 별로 외롭지 않게 지낼 수 있는 것과 크게 다르다. 그러니 한국인이 없는 곳에 유학생이 가 있게 되면 방과 후나 주말에 완전히 고립되기 십상이다. 그럴 때 그들이 잘 찾아가는 곳은 한인사회가 있는 도시라면 한인교회다. 그리하여 교회, 학교, 또는 유학생 모임 등에서 쉽게 친해지는 다른 한인 학생들과 어울려 고독을 달래는 길을 모색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한인사회가 있는 곳에는 어디나 이런 한인 유학생들의 필요에 맞게 가라오케, 카페, 당구장, 비디오 숍, 술을 파는 레스토랑 등 유락시설이 잘 발달되어 있다.
일단 한 유학생이 이런 또래집단의 놀이문화에 빠지면, 공부는 말할 것도 없고, 홈스테이 가정에서 지켜야할 현지 생활양식과 정면충돌하게 된다. 홈스테이의 일반적 규율에 따르면 학생들은 밤 10시 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는 전화를 써서는 안되며, 밤 8시 30분 이후는 소음을 내지 말아야 한다. 한국인 친구들과 붙어다니다 보면 이런 규칙을 쉽게 어기게 된다.
대부분 한국 유학생들은 해외에서도 한국에서처럼 핸드폰(호주에서는 모바일 폰이라고 부른다)을 가지고 다니는데, 홈스테이 가정에 밤 늦게 돌아와 큰 소리를 내면서 친구들에게 우리말 전화 통화를 해 주인이 신경을 쓰게 하는 일은 흔하다. 우리 학생들이 친구들과 얼마나 밀착되어 지내는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이다.
대부분 호주 사람들은 저녁에 우리보다 일찍이 잠자리에 드는 편이다. 예외가 있다면 주말이다. 한국인들은 저녁에 더 움직이고 노는 습성이 있다. 시드니 서부 지역 전철 교통의 중심지인 스트라스필드에는 한인 가계가 밀집되어 있고 한인 유학생들이 평소 많이 모이는 곳이다. 역 앞 넓은 광장은 일종의 놀이터처럼 되어 있는데 밤 늦게 거기에서 서성대는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한인 학생들이다.
이렇게 외국에 와서도 한국인이 되어 버리면 아무리 좋은 홈스테이 가정을 만나도 홈스테이의 의미를 살릴 수 없다. 시드니 중심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남태평양 바닷가인 고스포드에 있는 영어학교에도 한국 유학생들이 그동안 많이 다녀갔다. 비교적 조용하고 한국인이 많지 않아 영어를 위한 홈스테이로서는 이상적인 곳이다. 여러 얘기를 들어 보면, 홈스테이 가정들이 주말에는 야외로 나가 바비큐 파티를 열고 유학생과 함께 지내려고 해도 다른 한국 친구들을 만나러 시드니로 가버린다는 것이다.<다음호에 계속>
김삼오 박사(커뮤니케이션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