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박사의 또박또박 준비하고 가는 유학과 해외체험(28)
앞으로 여러 회에 나뉘어 나가는 이 연재는 옆 이름의 책(도서출판 엠-에드, 2006)에서 저자의 양해를 얻어 발췌한 것입니다.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편집자 주
제5장 해외유학 공부, 어떻게 할 것인가? 공부충격
5. [언어의 경제성]을 살려라
훌륭한 에세이는 내용과 함께 [글의 질/quality of writing]도 좋아야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학위논문의 심사기준에는 이것이 명시되어 있다. 글은 내용을 담는 그릇과 같다. 그릇이 빈약하면 내용도 빈약하게 보인다. 또 군말이 많고 짜임새 있게 쓰이지 못한 글은 빠르고 쉽게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소리가 노래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고저와 장단에 맞게 작곡되어야 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쓰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내용에 있어 체계가 있어야 하고, 글에 기교가 있어야 한다. 전자는 앞에서 이미 다룬 대로 논리적 일관성의 문제다.
후자는 물론 좋은 글을 위한 [글쓰기의 기교, 기술(技術)/writing skill]의 문제다. 그 기술로서 필자가 가장 중요시하는 원칙 하나가 [언어의 경제성/economy of words]이다. 좋은 글은 표현이 [간결하고/concise, succinct]하고 [명료/clear]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같은 내용을 최소한의 말을 써서 나타내야 하고, 용어와 개념간의 관계를 역시 최소한의 말로 [정확하게/precisely] 밝히는 자구의 선택이 필요하다.
50자로 담을 수 있는 지식과 정보를 100자를 써서 했다면 언어의 경제성을 어긴 셈이다. 가장 정확한 [단어와 표현/words and expressions]을 고르되, 그것마저도 [극히 아껴서/sparingly, economically, parsimoniously]써야 그게 가능하다. 글을 아껴서 쓰자니 꼭 필요한 것이 아닌 말, 특히 수식어는 될수록 적게 써야 한다. [되풀이 되는 표현/repetition, overlap]은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이런 원칙을 지키지 않은 글은 [군말이 많아/redundancies] 너절한 작품이 된다.
이것을 도식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설명할 길은 없다. 직접 체험해 보고 잘 쓴 다른 사람의 작품을 읽고, 또 가능하다면 이들의 경험을 듣는 과정을 거쳐서 스스로 요령을 터득하는 수밖에 없다. 글쓰기에 대한 많은 책이 많이 나와 있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문학작품이 아닌 학술논문이나 일반 보고서의 경우라면, 문장의 목적은 사실과 사상의 정확하고 효과적인 전달에 있으므로 이런 원칙이 예외 없이 지켜진다. 해외 영어학교의 고급영어 과정인 [학술문장 영어/academic written English]는 알고 보면 이런 기교를 가르치는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누구나 원고를 여러 차례 다듬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편집/editing]이다. 마치 나무 가지를 단정하게 치거나 군살을 빼는 일 같기 때문에 영어로는 [trimming], 한발 더나가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서 [polish/닦아서 빛낸다]와 같은 말을 쓴다. 우리 문학에서는 추고(追稿)라는 말이 있다. 모두 언어의 경제성을 높이는 작업이다. 물론 이 때 단어를 줄이는 작업이 전체 의미나 담고 있는 정보를 회생시키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 된다. 또 영어로 쓰는 에세이인 경우, 잘 쓰이는 [관용어/English usages]와 재치 있는 표현을 적절히 섞어 쓰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문장의 단조로움을 피할 수 있다.
사회과학분야 보고서와 논문은 대부분 미사여구 없이 언어의 경제 원칙을 최대한 활용하여 쓰게 되는데 이런 글을 영어로 [technical writing]이라고 부른다. 기계적이라는 뜻이다. 과학기술분야의 글은 거의 예외 없이 이런 기계적 문체로 쓰여 진다. 과학은 기계적인 점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간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technical writing]을 과학적 글이라고 불러도 된다고 생각한다.
사회과학 [학술지에 실리는 논문/journal articles]도 대체로 이런 문체를 따른다. 이런 논문에서는 단어뿐 아니라 인용해야 할 중요한 개념, 사상까지도 따로 설명하지 않고 그 출처가 되는 문헌만 밝혀둠으로써 지면을 아끼는 관례가 잘 지켜지고 있다. 이것 또한 경제성을 위한 고안이다.
6. 강의와 노트 필기
한국 대학 강의가 [교사 중심/teacher-centered]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과거에는 정말 그랬다.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1950년대에는 교수들이 책이 없다는 구실로 90분 수업 거의 전부를 불러주는 노트 필기로 채우는 일이 보통이었다. 책도 별로 없었지만 그나마 다른 사람이 쓴 것은 학생들에게 잘 권하지 않았다. 저서 한 권 내지 못한 교수가 더 그러했다. 또 그때 나온 책 가운데 법학, 경제학 분야 서적은 대개 일본책의 번역판이었고, 그 밖에 인문분야 서적은 미국 것을 성의 없이 직역한 것이어서 읽어도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이 많았다. 그러니 학생들은 읽을 책이 적었을 뿐만 아니라 읽고도 얻는 게 없었다.
명 강의로 이름난 교수들의 강의는 말할 것 없고, 어떤 강의든 학생들은 수동적으로 듣기만 해야 하는 전달식이 주로이고, 질문이나 토론을 통한 참여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강의실을 가득 메운 80~100명의 학생들이 쥐 죽은 듯이 강의를 듣는데, 질문을 하려면 여간한 용기와 뱃장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학생들에게 강의는 고역이었다. 강의가 끝나면 학생들이 해방된 듯 환호성을 올리고, 방학이 가까워지면 빨리 종강을 하자고 조르던 일이 생각난다. 시험은 논문보다 학기말에 보는 용지 한 장에 짧은 답안 쓰기가 거의 전부였다. 그래서 많은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강의를 기계적으로 잘 노트해 두었다가 답안지에 그대로 옮기는 것이 A학점을 많이 받는 지름길이었다.
개인 이야기지만, 공부에 관한 한 자신도 모르게 서구식이었던 필자는 강의는 소홀이 하고 학점과 관계없이 취미 위주의 강의와 독서에 더 열을 올린 결과 학교 성적이 좋지 않았다. 만약 지금의 영미식으로 폭 넓게 과목을 선택하고 과제 중심으로 공부할 수 있었으면 결과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은 한국의 대학도 영미식으로 많이 바뀌고 있다. 외국에서 공부한 교수들이 많아져서 영미식 공부방법이 도입되었다. 그럼에도 한국의 대학 강의는 교수 중심, 지식 전달 중심이라는 점에서 과거와 비슷하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서울의 교수들이 쓴 글에 따르면 실컷 놀거나 딴 돈벌이에 시간을 보내는 ‘철밥그릇’ 교수도 많고, “교수님 휴강해요”하고 조르는 학생도 많다.
영미대학의 강의는 보다 학생 중심이다. 많은 학생을 상대로 대강당에서 하는 강의가 아니라면, 교수는 학생들로 하여금 발표 또는 토론형식으로 강의에 참여케 한다. 교수와 학생간에 대화가 많다. 학생은 강의 도중이라도 의문이 있으면 즉시 질문을 해도 된다. 교수와 학생간 대화가 용이한 요즘의 원형 극장식 소형 강의실이라면 더욱 그렇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게, 호주, 뉴질랜드와 일부 영국 대학에 있는 [튜토리얼/tutorial] 코스다. 본 강의 후에 학생들을 작은 그룹으로 나눠 [주임 담당교수/course chairman]에 소속된 몇몇 조교 밑에서 하게 된다.
튜토리얼의 기능 하나는 [보충수업/remedial course]이다. 이 클라스는 본 강의를 듣고도 학생들이 잘 따라가지 못했거나 충분히 참여하지 못한 부분을 말 그대로 보충하기 위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응용이다. 수학, 통계학의 경우 본 강의에서는 이론, 튜토리얼에서는 실제 문제를 풀어 보는 것은 좋은 예이다. 보통 10여명의 소그룹 모임으로 평소 강의 시간에 질문 한번 못해보는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이를 십분 활용하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다음호에 계속>
김삼오 박사(커뮤니케이션학 박사)
고려대학교 정외과 졸업 (BA)
컬럼비아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MS)
매콰리대학교 박사과정 졸업 (PhD)
전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서울특파원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E-mail: karckim@optusnet.com.au
Blog: blog.daum.net/samokim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