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박사의 또박또박 준비하고 가는 유학과 해외체험(48)
앞으로 여러 회에 나뉘어 나가는 이 연재는 옆 이름의 책(도서출판 엠-에드, 2006)에서 저자의 양해를 얻어 발췌한 것입니다.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편집자 주
제8장 유학을 슬프게 만드는 것 – 인종충격
3. 인종감정은 언론에 나타난다
영미사회에 살면서 문득 [나는 여기에 속한 사람이 아니로구나]하고 서글퍼질 때가 있다. 밤에 달리는 차 속에서 걸어가는 동양인을 향해 소리치거나 야유를 하는 백인 젊은이들을 볼 때다. 대개 불량 청소년이거나 이민을 반대하는 일부 극우파 단체에 속한 사람들의 소행으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막상 당하고 나면 여간 불쾌한 게 아니다.
주로 밤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현지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얼굴을 마주 대하고는 못하지만, 마음속에 강한 인종적 편견이 있다는 확실한 증거다.
영미인들은 황인종이면 모두 중국인으로 동일시하는 버릇이 있어, 미국에서는 아이들이 [칭크/chink], 호주에서는 [칭총/chinchong] 등으로 부르는 일이 많다. 반아시아인 감정이 심했던 1900년대초 노동자로 온 중국인들을 멸시해서 붙인 별명인 것 같다.
이들 나라 주류언론의 보도는 인종문제에 대한 현지인들의 마음을 알 수 있는 하나의 바로미터가 된다. 전화로 시청자들을 연결시켜 대화를 하도록 하는 래디오 [토크 쇼/talk show] 프로그램의 흔한 주제 중 하나가 이민이다. 이 프로를 들어보면, 이민과 이민자에 대한 현지인들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다.
많은 노인층이 동양인을 싫어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양인 이민을 너무 많이 받는다] [동양인은 실업문제를 악화시킨다] [들어오자마자 실업자 수당으로 산다] [병을 옮겨온다] 같은 불평이 나온다. 그 토크 쇼에 전화를 거는 참여자는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그래서 더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는다. 영미국가들은 다른 나라에 자선을 베풀려고 이민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서다. 그러나 대다수 일반 국민은 그런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뉴욕, 토론토, 밴쿠버, 시드니 중심가나 근교에는 중국과 베트남 촌들이 형성되어 있다. 이 지역들이 자주 주류매체의 관심과 보도 대상이 되는데, 마약이나 갱, 범죄 등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는 사례가 많다.
이민을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단체와 인사들도 있다. 재향군인회, 노동조합 지도자, 일부 튀는 대학 교수, 정치인들 가운데 가끔 그런 움직임이 나타난다. 그러면 예외 없이 주류매체의 집중 조명을 받는다. 소리 없는 주류의 취향에 들어맞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는 반면, 주류의 여론에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되어 있다.
시드니에서 한 한국인이 아파트에 세 들어 살다가 아이들 문제로 아랫집과 자주 마찰을 빚었다. 이 한국인은 정부가 무료로 운영하는 [법률자문관실/legal service]을 찾아가 의논했다. 그러나 변호사는 베트남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 어떠냐고 자문했다고 한다. 이 변호사의 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왜 백인들이 주로 사는 곳에 끼어들어 말썽이냐는 뜻도 된다.
반면 이 나라 사회가 [그만하면 괜찮다]든가 [한국인보다 더 친절하다]고 느끼게 하는 사례도 많다. 특히 한국에서 늘 겪는 빈부와 지위에 따른 차별대우를 생각하면, 호주 사람들은 양반이라고 말하는 교포도 많다. 해외 한인들이 과거 한국의 화교를 예로 잘 든다. 한국사회가 이들에게 했던 것에 비한다면 백인들은 훨씬 덜 인종주의적이라는 것이다.
영미국가의 백인들이 모여 살던 인기 지역에 홍콩인, 중국인, 한국인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뉴욕의 맨하탄에서 강 건너 멀지 않은 뉴저지 주 고급지역에는 과거 백인만이 주로 살았다. 백인들이 흑인에게 집을 팔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들었다. 이런 백인의 태도가 많이 바뀐 것일까? 지금은 뉴욕도 그렇고 LA의 베벌리힐에서도 주택을 동양인들에게 팔 수 없다고 고집하는 백인은 드물다.
처음 들어오는 한국 유학생들은 동양인이기 때문에 집을 얻기가 어렵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것은 기우이다. 여기 복덕방은 고객의 인종을 따져 집을 팔거나 세를 주지 않는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먼저 온 사람 순서대로 거래해 준다. 다른 조건이란 임대료를 잘 낼 수 있을 것인가, 아이들이 많은가, 집을 깨끗이 쓸 것인가 등이지 인종을 가리는 일은 드물다. 특히 부동산 경기가 침체된 요즘은 부동산업자나 소유주 모두 사람을 빨리 들이고 집을 팔려고 노력하므로 그렇다.
이민자의 자녀들도 현지인과 똑같은 조건으로 대학에 들어간다. 동양계라고 해서 차별을 받는 일은 없다. 사립대학제도를 위주로 하는 미국에서는 타민족의 비율을 규제하기 위한 내부 쿼터가 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다른 영미국가에 그런 제도는 없다. 호주의 경우, 대학 입학은 각 주 주관으로 실시하는 국가고시를 치러서 받은 점수와 지원한 대학과 학과의 순위에 따른 커트라인에 따라 일률적으로 결정된다. 아직까지 동양계라고 해서 입학에 손해를 보았다는 사례는 없다.
지역에 따라 다르나, 어느 영미국가에서든 시골 쪽으로 갈수록 사람들이 더 친절한 점은 같다. 여행자가 길을 물으면 인종에 관계없이 도와주려고 애쓰는 현지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자신이 잘 모르면 [지도/street map]까지 가져와 보여주면서 가르쳐 준다. 필자는 한국의 친구로부터 부탁받은 호주의 도서 전시전 관련 정보를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묻기 위하여 한 서점에 들러 점원에게 말을 걸어본 적이 있다. 그는 인터넷을 열어 여러 가지 정보를 찾아 가르쳐주었다. 한국에서는 있기 어려운 일이다.
좋은 동네에서는 밤에 자동차가 고장나 서있으면 도와 줄 것이 없느냐고 물어 오는 사람도 있다. 물건을 살 때나 다른 서비스를 받을 때도 상냥하게 대해 주는 호주인들을 보면 인종차별이란 듣던 것처럼 심각하지 않다고 느끼게 된다.
4. 돈 있으면 외국도 편하다
생활수준이 낮은 이민자 출신이 많이 모인 지역에서 살기 때문에 더 많은 차별을 받게 된다면 그 차별은 위에서 지적한대로 인종차별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이유로 당하는 차별이다. 이와 같이 얼른 봐 원인은 같지만 실제는 아닌 것을 사회과학 용어를 빌어 말한다면 [제3 또는 숨은 변수/the third, hidden variable]가 된다.
영미사회에서도 학교군이 좋고 집값이 비싼 주택가가 있다. 이런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대개 정치인, 의사, 변호사, 기업가, 회사 중역 등 전문인들로 대개 잘 살며 예의와 교양이 있다. 이들은 비슷한 사회경제적 처지의 이웃 유색인종에게도 친류감을 갖게 되어 있다.
외국에서도 역시 돈이 좋다라고 느끼게 하는 일이 많다. 고급 주택과 자동차, 그 밖에 비싼 물건을 살 수 있으면 귀빈 대접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본국의 지원을 받아 외국에서도 비교적 어려움 없이 지내다 온 외교관, 주재 상사 직원, 교환교수와 가족들의 인종차별 감각은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인권을 존중한다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라지만, 이민자가 주로 모여 일하는 공장에 가면 그게 아니다. 일부 백인들이 영어가 서툴러서 자기 주장을 못하고 굴종하는 이민자들을 대하면서 나쁜 습성이 갖게 된 것이다.
영미국가에서는 계장급 공무원, 은행 대리와 기업 작업장 매니저 등 슈퍼바이저 가운데는 중고등학교 출신이 많다. 이런 사람 가운데는 좋은 사람도 있지만 힘없는 이민자들을 멋대로 부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간호원, 그 외 기능공으로 이민을 와서 일하는 한국인 가운데 불평등으로 보이는 대우(임금, 진급, 작업량 등)와 직장에서의 불편을 견디지 못해 자영업을 시작하거나 그것도 힘들어서 한국으로 돌아간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틀림없이 이런 나라들이 대단한 인종차별적이라고 주장한다.
원래 [게토/ghetto]라는 단어는 미국에서 사회·경제적으로 낮은 생활을 하는 흑인들이 모여 사는 도시 빈민가를 의미했다. 지금은 비슷한 처지의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지역을 포함해서 쓰이고 있다. 이런 지역 거주자로 전락되면 잘 사는 주류에 대한 소외감은 크기 마련이며 그게 인종차별 의식으로 바뀐다. 1992년의 로스앤젤스 인종폭동 때와 2005년 뉴올리언즈 허리케인 피해를 당한 흑인들의 불만 표시는 그런 예라고 봐야 한다.
5. 인종차별은 주관적일 수도
인종차별은 실제가 아니라 주관적 심리 상태 일 수 있다. 동양인은 백인과 크게 다른 외모에 민감하다. 이 때문에 백인에 대하여 불필요한 거리감이나 이질감을 느낄 수 있다.
영미사회에 처음 온 한인들은 백인만이 탄 버스에 올라타면서, 또는 백인들만의 모임에 들어설 때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심히 의식하게 된다. 그러나 몇 년을 살다 보면 아무렇지 않게 되는 것을 보면 이질감은 자기 맘속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약 40-50년 전에 미국정부 초청으로 그곳 중소도시를 다녀온 친구들의 말이 기억난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더라면서, 그런 데서 살 수 없을 것 같았다는 이야기였다. 목욕탕에 들어가 거울을 보니 자신이 얼마나 다르고 왜소한가를 새삼스럽게 실감했었다는 여행담도 흔하다.
여기에 언어장벽이 가세한다. 상대방이 어떤 말을 걸어왔을 때 말로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는 불안감이 이질감을 더하는 것이다. 이는 인종차별과는 무관한 거리감의 문제다.
미국 가정에 하숙생으로 묵고 있었던 한 한인 유학생의 경험담이다. 하루는 주인이 친구들을 초청해서 파티를 여는데 참석하지 않겠느냐고 물어 왔다. 겸양을 보이는 우리식으로 그는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 하숙집 주인은 학생이 원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였는지 더 권하지 않았다. 그날 밤 손님들이 저녁을 먹으며 즐기는데, 그는 혼자 방에 틀어박혀 심한 인종적 소외감을 견뎌야 했다.
이민 온 한국 부모들이 처음 어린 자녀를 교실에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가슴 아파한다. 백인 아이들 속에 철모르는 까막머리 아이 하나를 남겨 놓고 온데 대한 죄책감이다.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므로 이 또한 주관적 인종차별 감정이 아닐까.
영미지역 거리에 지나다 보면 뭐라고 장난기 섞인 어조로 말을 걸어오는 아이나 청소년을 더러 만나게 된다. 이럴 때 인종적으로 놀리는 것이 아닌가 당황하게 된다. 그럴 수가 있으나 아닌 때가 더 많다. 몇 마디 친근한 말로 대응해보면, 오히려 악의가 아니고 호기심으로 그렇게 한 것임을 알게 된다.
유학생과 교포 학생 모두가 교수로부터 동양인이기 때문에 소홀한 대접을 받았다고 느끼는 사례가 종종 있다. 교수를 만나려해도 시간을 잘 내주지 않거나 만나도 별로 성의가 없다면 인종적인 차원으로 느낄 수 가 있다. 시드니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한 교포학생은 이렇게 말한다. “일부 교수들 가운데는 호주학생들에게 주로 신경 쓰고 동양학생은 약간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요.”
영미 대학에서는 학기말에 학생들로 하여금 담당교수의 강의 방법, 강의 내용에 대한 평을 종이에 써서 내게 한다. 이런 공식적인 평가가 아니더라도 교수의 인기는 학급을 좌지우지하는 현지 백인 학생들의 태도에 따라 정해질 것이므로, 교수들은 조용한 동양학생들을 소홀히 하고 이들에게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이점은 한국에서도 같다.
학비를 걱정해야 하는 많은 유학생이 일을 찾아 나서야 한다. 이때 일자리를 찾아다니면서, 또는 인터뷰를 하고나서도 몇 번이고 거절을 당하게 되면 인조차별의 사례라고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나 직업 잡기는 과거나 현재, 어디를 가든 어렵다. 그리고 유학생, 현지인 할 것 없이 마찬가지다.
이민자들에게 이종차별이 어느 정도냐고 물어 보면, 그 사람의 성격에 따라 서로 다른 대답이 나온다. 인종차별이 주관적일 수 있는 또 다른 증거다. 대개 성격이 외향적이며 언어에 어려움이 없어 외국인과 잘 어울리며 주류사회에 진출한 이민자들은 인종차별은 없고 오히려 우리 쪽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한 개인이나 집단이 다른 개인과 집단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상대적이다. 한쪽이 강하면 다른 쪽도 조심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인간관계이다. 인종관계도 마찬가지다. 영미인들은 역사적으로 유색인종에 대해 차별을 해 온 민족이지만, 개인으로만 보면 우리보다 합리적이다. 특히 상대방이 정당한 이론을 가지고 사리를 따지면 듣는다. 대부분의 동양인들이 언어와 태도 면에서 그런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게 문제다.<다음호에 계속>
김삼오 박사(커뮤니케이션학 박사)
고려대학교 정외과 졸업 (BA)
컬럼비아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MS)
매콰리대학교 박사과정 졸업 (PhD)
전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서울특파원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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