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박사의 또박또박 준비하고 가는 유학과 해외체험(55)
앞으로 여러 회에 나뉘어 나가는 이 연재는 옆 이름의 책(도서출판 엠-에드, 2006)에서 저자의 양해를 얻어 발췌한 것입니다.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편집자 주
제9장 동과 서, 어떻게 다른가? – 문화충격
9. 캐주얼 옷은 실용주의
불평등제도의 유지를 위해서는 격식이 필요하다. 권위주의 사회에서 비생산적인 격식이 중요시되는 이유다. 군대는 가장 좋은 예이다. 군대는 상급자가 하급자를 권위로 지배하는 사회이며, 그런 위계질서를 효과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계급장, 훈장, 제복, 예식, 사열 등의 의식과 격식이 필요하다.
권위주의의 반대 개념은 자유민주의인데, 그런 사회에서는 개인의 권리와 사생활은 존중되며 남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 한, 개인에게 편한 것은 선(善)으로 받아진다. 바로 실용주의 철학이다.
격식은 대개 지배층 외 아무에게도 실익이 없는 체면과 의전을 위하여 전체 사회에는 큰 비용 부담을, 서민에게는 비용과 함께 생활의 불편을 가져다준다. 그간 한국에서 많이 줄어든 대부분의 허례허식이 그러했다.
서양문화와 생활양식은 동양의 그것보다 실용주의에 더 입각하고 있다. 모든 제품이 그런 필요에 맞게 고안되고 개발되었는데, 한국도 물질문화분야는 그런 쪽으로 빨리 바뀌고 있다. 영미사회가 일반적으로 격식을 덜 차리지만 호주는 특히 그러하다. 여름에는 짧은 바지에 슬리퍼를 신은 채 강의를 하는 교수도 있고 맨발로 나다니는 학생도 있다.
한국은 발전이라며 서방의 것은 무엇이든 도입해와 옷 만해도 웬만한 모임에는 정장 대신 [편한 옷/casual]을 입고 나가는 사람이 뚜렷하게 늘어났으나 많은 다른 실질적 분야에서는 아니다. 해외에서도 결혼식장이나 교회 모임에 대부분 1세들은 넥타이를 매고 나가는 게 보통이지만, 그야 큰 돈 드는 것도 아니어서 아무래도 괜찮을 것 같다. 한국의 혼수는 이와 다르다.
유학생과 조기 유학생 학부형들의 경우는 한국식 체면 의식 때문에 해외생활을 비싸게 보내고, 현지인들과의 관계에서는 어색하게 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겠다. 아래 몇 가지 실례를 든다.
너무 푸짐한 음식 대접
부부 유학생이나 조기유학 학부모는 외국인 교사, 교수, 친구, 이웃 등을 집으로 저녁 초청을 할 일이 생긴다. 이때 우리는 손님에 대한 음식을 잘 차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개 큰 부담을 안게 된다. 이점 외국인들은 우리와 크게 다르다. 외교관이나 CEO들의 교제가 아닌 서민들의 경우라면 한두 가지 간단한 음식과 음료로 편하게 치른다.
먹지 못하는 거창한 음식보다 비용은 덜 드리는 대신 유쾌한 대화 분위기를 살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주 만날 수 있는 편이 서로 더 친근해질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이 된다.
한국인이 외국인과 갖는 외식에서 자유스럽게 못하는 습관 하나가 각자가 자기 몫을 지불하는 이른바 [더치페이/Dutch pay/go Dutch]이다. 한국에서도 젊은이들 간에는 각자 지불 방식이 늘어나고 있지만, 식당에 가보면 누군가 한사람이 자진해서 내고 있거나 서로 내겠다고 실랑이가 벌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외국에서는 대개 동료 학생이나 직장인들 간의 경우, 누군가가 주말에 저녁을 같이 나가서 먹자고 할 때 그가 한턱내는 것으로 착각하면 안된다. 같이 내고 먹자는 뜻인 경우가 많다. 이런 문화에 빨리 익숙해지지 않으면 매번 어색하게 된다.
한국의 학부모들은 학교 교직원이나 교사들에게 특별한 이유 없이 음식 말고도 비싼 선물 등으로 호의를 베푸는 것으로 이름나 있다. 외국으로 옮겨온 [치맛 바람]이다. 대접 받기 싫어할 사람은 없겠지만, 이들은 왜 그렇게 푼푼해야하는가 의아해 한다.
순박한 한국 농촌 사람들의 대접을 잘 받은 크레인씨도 책에서 너무 후하게 대접해주는 한국인들은 대부분 나중에 청탁을 해온다고 썼다. 주고 손해 보는 사례다. 결코 넉넉한 형편일 수 없는 유학생의 경우, 우리식 미덕도 좋지만 서양식의 실용적인 생활양식에 빨리 적응하는 것이 건전한 생활과 학업의 성공을 위해서도 좋다. 50-60년대에 병풍박사 (지도교수에게 의례 병풍을 선물했다는 박사과정 한국 학생들을 지칭)라는 우수개가 생겼다는데, 영미사회에서 물질로 교수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면 바보짓이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필자가 공부한 미국과 호주 마찬가지인데, 학장과 교수 등 사전 약속을 하고 찾아 가면 [Hello, sit down] 정도 짧게 말을 건넨 후 곧 바로 [뭘 도와드릴까요?/What can I do for you?, 또는 How can I help you?]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일이 흔하다. 심지어 [Why we are meeting for?/왜 우리가 만나지요?/왜 오셨지요?]라고 할 때도 있다. 의사의 경우는 [Why you are here today?]도 있다.
이들이 꼭 불친절하거나 냉담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용건이 있을 테니 중요한 것부터 먼저 하자는 선의로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인은 당황하게 된다. 보통 한국에서라면 이 경우 한참 잡담을 하다가 용건을 꺼내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답을 할 것인지. 방문이나 면접에 앞서 생각해 둘 필요가 있다. 서양인들은 비즈니스를 할 때 용건부터 말한다. [비즈니스가 먼저/businesslike]다. 우리는 처음 의례적인 인사와 얘기를 하다가 나중에 용건을 내놓거나, 눈치를 봐 상대방이 알아서 꺼내주기를 기다리는 방식을 택한다. [비즈니스 먼저]로 하다가는 역효과가 나기 쉽다. 영미사회에서도 세일즈맨들은 우리와 비슷한 전략을 쓰지만, 우리보다는 실제적이다. 그렇게 해서 손해 보지 않는다.
한국인의 비실제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다른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연설이나 좌담회에서 하는 발언의 전반부는 알맹이 없는 의례적인 말로 채운다. 토론을 위한 발언 때도 [먼저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주최자에게 감사를 드리며] 등의 인사말을 건네는 그것이다. 국회의 청문회장이나 기자회견장에서 나오는 질문도 진짜 내용보다는 서론이 더 긴 것이 특징이다.
한국인들은 타인과의 분쟁을 중간인을 통해서 해결하는 간접적인 방법을 선호한다. 남의 일에 잘 끼어들지 않는 영미인들과의 관계에서는 이게 어렵다.
전화로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권위주의 사회에서 자란 한국 유학생들은 해외에 나와 학교, 교수, 민원 관계에서 여기 민주주의와 실용주의 사회의 이점을 활용 못함으로써 비능률적이 되기 쉽다.
영미사회에서는 대학원생 정도라면 학장과 학생처장에게 전화했을 때, 본인이 부재중일 경우 비서가 전화번호를 남겨 놓으라고 하는 게 보통이다. 본인이 돌아오면 회답을 해주겠다는 뜻이다. 이것이 우리들에게는 좀 신기하다. 우리 문화에서는 저쪽에서 전화번호를 남기라고 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학생은 [알겠습니다. 나중에 찾아뵙겠습니다], [나중에 전화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게 상식이다.
한국사회에서 고위직자와 단체장이 민원과 관련하여 일반인이 남긴 메시지에 회답을 해 주는 일은 드물다. 장이 자리에 있더라도 전화를 직접 바꿔 달라고 하기는 어렵다. 비서에게 용건을 말하거나 나중에 찾아가는 게 예의다. 이메일이 일반화된 요즘에도 메일로만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잘 되지 않는다. 영미국가에서는 일반적으로 될 일은, 찾아가든 전화로하든 이메일로하든 잘 된다. 안될 일은 어차피 안된다. 유학생이 이런 차이를 극복하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영미사회에서 관청이나 학교, 그 밖의 단체는 거의 모두 자세한 [안내서/brochure/leaflet]를 구비하고 있는데, 민원을 내기에 앞서 먼저 읽어 봐야 한다. 전화를 해서 안내서를 보내 달라고 하면 우편으로 보내온다. 거의 예외가 없다.<다음호에 계속>
김삼오 박사(커뮤니케이션학 박사)
고려대학교 정외과 졸업 (BA)
컬럼비아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MS)
매콰리대학교 박사과정 졸업 (PhD)
전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서울특파원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E-mail: karckim@optusnet.com.au
Blog: blog.daum.net/samokim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