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희 칼럼
세상을 보는 또 다른 시선
경건에 이르는 길
간혹 마음이 우울하거나 기분 전환이 필요하면 액세서리 숍을 구경하곤 한다. 값비싼 보석은 경제적 능력이 뒷받침되지 못해 구입하기 어렵지만 거의 1년 365일 세일을 하는 액세서리 숍에서 3개에 5$하는 머리핀이나 팔찌 목거리 같은 액세서리는 마음 내키면 한두 번은 구입을 하기도 하고 즐겨 착용하기도 한다. 그렇게 다소 반짝거리는 액세서리를 몸에 걸친 나를 보고 몇 사람은 그러한 말을 하곤 한다. 전혀 전도사님 같지 않다고……^^*그럼 필자는 되묻곤 한다 “전도사님 같은 모습은 어떤 모습인데요??” 그분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씀을 하시곤 한다. 경건한 모습이요 생머리에 단정한 옷차림 액세서리 없이 단정한 모습이요……딱 봐도 태가 나시잖아요 그리스도의 경건한 향기가 나시구요……”
오래 전 인간의 양심과 악이 재판을 하는 내용의 연극을 한적이 있다. 연극에서 증인으로 나오는 한 캐릭터의 이름은 허영이었다. 그녀는 무대에 올라 주렁 주렁 십자가 목거리를 매달고 십자가로 온몸을 장식하며 대사를 한다. “ 경건한 십자가를 걸쳐야지 사람들이 보고 우와 하고 감탄을 할만한 것으로…… 우아해 보이고 멋진 것으로 걸쳐야지 “
신앙생활을 하면서 경건에 대해 참 많은 시간 이야기를 하곤 한다. 경건한 삶을 강조하기도 하고 경건에 이르도록 훈련해야 한다는 설교 또한 자주 접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진정한 경건에 대해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일까? 경건을 몸에 걸치는 그리스도표 십자가 목걸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야고보서 1장은 참 믿음 생활에 대해 담백하게 몇 가지를 조언을 해주고 있다. 첫째는 참 믿음은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인내하는 가운데 그 성품이 온전하여 진다는 것으로 고난 가운데 기뻐할 수 있어야 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참 믿음은 가치관의 변화를 동반한다는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 성경이 말하는 회개는 자신이 주인이 되어 세상의 것들을 추구하며 살던 삶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그분의 나라를 목표를 하여 사는 삶을 살도록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회개 이후 참 믿음은 언제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부활의 능력으로 사는 삶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세 번째 야고보서 1장의 믿음에 관한 설명은 유혹을 이겨내는 삶에 관한 것이며 네 번째는 복음을 들음으로 순종에 이르러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다섯 번째는 오늘 필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경건에 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야고보서 1:26-27
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먼저 26절에서 말하는 헛된 경건 또는 거짓 경건의 특징은 스스로 경건하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경건이라는 단어는 (쓰레이스 케이아)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형식적이며 종교적인 경건 즉 외적인 경건을 말한다. 내면의 세계가 변화된 온전한 경건에 대하여는 (유세베이아)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다. 즉 부연하면 헛된 경건은 겉만 경건한 사람을 말한다 마음속은 변화되지 않았는데 겉으로만 종교적으로 경건한 척하는 사람 그는 거짓 경건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거짓 경건은 말이 앞선다. 말만 종교적인 상투적 냄새를 풍기고 자신의 헛된 의로움과 거짓된 경건성을 자랑하고 내세우고 싶어서 자신의 혀를 재갈 먹이지 못한다. 야고보 사도는 말은 그럴 듯한데 행위가 따라오지 않고 스스로 삶을 속이는 자가 되는 것을 경계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의 변화와 삶의 변화 즉 행위가 따라오는 것이 없이 말만 앞서는 경건은 죽은 경건이며 거짓 경건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어린 시절에는 전도하시는 많은 분들이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서 전도를 하며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곤 하였다. 그 당시만 해도 이러한 방식의 전도가 효과적이었지만 사실 필자는 현재 이러한 방식의 전도에는 회의적이다. 이제는 말로 외치는 전도가 아닌 생활과 삶으로 보여주고 이끄는 전도가 되어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말과 기도가 유창하고 말끝마다 주여를 외치고 경건을 강조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노출이 되는 마음이 삶이 온전하지 못하면 결코 하나님의 세계를 전하기는 쉽지 않고 온전한 전도가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성경은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만으로 경건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성경은 참된 경건이 되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그리고 참여적인 경건을 요구한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참된 경건의 첫 번째의 요소로서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는 요소”가 삽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고 연약한 이들을 돌보고 보다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행위가 따르는 것 그러한 삶으로 모범이 되어 전도가 되는 것 이것이 온전한 경건이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것이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다. 스스로의 경건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의 경건은 어떠한 모습인가? 온전한 경건에 이르도록, 우리는 바른 걸음을 걷고 있는 것인가?
김은희(시인, 미술심리치료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