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 칼럼
욥을 아십니까? (1)

욥기는 구약 성경의 시가서 중 한 권으로 의인에게 왜 고난이 있는가에 대한 고난의 신비를 다룬 책이다. 욥기는 전체가 42장으로 되어 있다. 서론장인 1,2장과 결론장인 42장을 제외하고는 모든 장이 시의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등장인물 간의 대화와 해설이 곁들여 있다. 1-2장은 사탄의 참소로 재산, 자녀, 건강을 잃고 고난 당하는 하나님의 사람 욥에 대한 이야기이다. 3-31장에서 에리바스 소발, 발닷은 죄로 인한 고난을 말하며 회개를 촉구하나, 욥은 자신의 무죄와 의로움을 변론한다. 32-37장은 친구들과 욥의 대화를 듣던 엘리후가 의인에게도 고난이 있으며 하나님은 그럴 만한 이유를 갖고 계신다고 말했다. 38-42장은 하나님께서는 욥의 질문에 되질문으로 대답하였다.
1. 동방의 의인 욥 (1-2)
우스라는 곳에 욥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흠이 없고 정직하였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었다.(욥1:1) 사탄은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1:9) 말하며, 욥이 순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이유는 하나님이 물질적인 축복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만약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거두신다면 욥은 하나님을 욕할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했고, 욥은 시험을 받아 일순간에 사랑하는 자녀와 모든 재산을 잃어버렸지만 “주신 자도 여호와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 받으실지니라”(1:21) 고백하자, 2차 시험으로 욥의 몸을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하였다. 욥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재 가운데서 기왓장으로 몸을 긁었다. 아내마저도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했다.
2. 욥의 세 친구 (3-31)

‘그들이 멀리서 욥을 보았으나, 그가 욥인 줄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한참 뒤에야 그가 바로 욥인 줄을 알고, 슬픔을 못 이겨 소리 내어 울면서 겉옷을 찢고, 또 공중에 티끌을 날려서 머리에 뒤집어썼다’(욥2:12) 욥은 세 친구와 세 번의 논쟁을 한다. 에리바스 소발, 발닷은 욥의 죄로 인한 당하는 고난이니 회개하라고 비난하고, 욥은 자신의 무죄와 의로움을 변론한다. 인생의 대부분의 문제는 ‘인과응보의 법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인과응보’란 선한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뒤따르고, 악한 일을 하면 나쁜 결과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실은 의인이 고난을 받고, 악인이 번성함이 비일비재하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욥기는 ‘왜, 의인이 고난을 받는가?’에 대한 질문과 답이다.
3. 어린 엘리후 (32-37)
욥이 자신을 의인으로 여기므로 그 세 사람이 말을 그치니라 람 종족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화를 내니 그가 욥에게 화를 냄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요 또 세 친구에게 화를 냄은 그들이 능히 대답하지 못하면서도 욥을 정죄함이라(욥 32:1-3) 엘리후가 등장하여서 새로운 국면이 시작된다. 엘리후는 욥과 욥의 세 친구들보다 연소한 사람이다. 욥은 세 친구보다는 영적으로 더욱 성숙하지만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세 친구들은 욥의 말을 무시하고 자기들의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며, 욥을 이해하고 사랑하기 보다는 욥을 판단하고 정죄하였다. 의미 없는 고난은 없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만 있다면, 고난은 위장된 축복이 될 것이다. (시119:71) 고난의 의미를 찾지 못하면 고난은 고생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 생고생이 된다.
고난에는 두 가지 속성이 있다. 하나는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단련하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모르지만 고난을 당하면 그때야 옥석이 가려진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이다. 자신의 신앙도 예외는 아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후13:5) 고난은 우리를 성숙하게 한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 고난은 성장통과 같다. 베드로는 이를 ‘믿음의 시련’이라고 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 1:7)
욥을 아십니까?(2)
성경에 시가서 5편 중에 ‘잠언, 전도서, 욥기’는 지혜서이다. 잠언과 전도서는 지혜자와 우매자를 비교하면서 지혜가 왜 중요한지를 강조하였다. 그림으로 말하면 대조적인 색깔을 사용하여서, 밝은 색은 더 밝게 하고 어두운 색은 더 어둡게 하는 효과이다. 잠언은 성공적인 삶을 사는 지혜이고, 전도서는 그 삶이 전부가 아님을 아는 지혜이다. 잠언이 해 아래의 지혜이면, 전도서는 해 위의 지혜이다. 그러나 둘의 결론은 같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9:10),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12:13)
욥기는 고난 뒤에 축복받는 비결을 알려주는 지혜서이다. 고난에는 두 가지 속성이 있다. 하나는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단련하는 것이다. 고난 당할 때 옥석이 가려진다. 평상시에는 누가 진짜이고 누가 가짜인지 모른다. 고난 당할 때 친구가 진짜 친구이다. 고난은 또한 자기의 신앙을 확증할 수 있는 계기도 된다.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고후13:5) 고난은 우리를 단련하기도 한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 베드로는 이를 ‘믿음의 시련’이라고 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 1:7) 고난의 의미를 찾지 못하면 고난은 고생이 되고. 시간이 지나면 ‘생고생’이 된다. 생고생이란 하지 않아도 좋을 공연한 고생이다.
1. 질문하시는 하나님 (38:1-3)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38:1-3) 욥은 자기의 고난에만 집중하였다. “왜 내가 고난을 받아야 하는가?” 자신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하나님의 그 크신 뜻과 섭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나님은 38장부터 41장까지 하나님은 약 60개의 질문을 던졌지만, 욥은 단 하나도 대답하지 못했다. 욥은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어리석으며 한계적인 존재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2. 회개하는 욥 (42:5-6)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42:5-6)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있다. ‘백번 듣는 것보다 실제로 한번 보는 것이 훨씬 낫다’라는 뜻이다. 욥의 신앙은 ‘듣는 믿음’에서 ‘보는 믿음’으로 바뀌었다. 신앙은 삼인칭으로 시작되지만 일인칭으로 고백되어야 한다. 욥은 회개했다. 회개란 헬라어 ‘메타노이아’로 ‘생각을 바꾸다, 방향을 바꾸다, 관점을 바꾸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욥은 자기중심에서 하나님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신앙이란 구원받을 자격과 조건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자격이나 조건이 없음을 인정하고 주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다.
3. 축복받는 욥 (42: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42:10) 욥기는 고난 뒤에 축복받는 비결을 가르쳐주는 지혜서이다. 욥은 2배의 축복을 받는 시기는 자기를 비난하던 친구들을 용서하고 기도하여 준 후에 받았다. 원수를 용서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아니 정말 어렵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할 때는 그 상처는 더 깊다. 주님은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실 것을 주라고 한다. 그러면 그의 머리 위에다가 숯불을 쌌는 것과 같다고 했다. 원수가 용서받을 자격이 있어서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해서 용서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세족식을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서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만드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산상수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4)고 말씀하셨다. 욥은 자기를 비난하던 친구들을 용서하고, 위하여 기도할 때 갑절의 축복을 받았다.
오늘은 현찰, 어제는 부도수표 !
우리는 영원한 오늘에 살고 있다. 어제는 지나간 오늘이고, 내일은 다가올 오늘이다. 오늘의 실패와 성공이, 어제와 내일의 실패와 성공을 결정한다. 오늘 행복한 사람은 ‘어제의 상처’까지 아름답게 재구성한다. 오늘 불행한 사람은 ‘어제의 영광’까지 비참하게 이야기한다. 오늘 성공한 사람은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고, 오늘 실패한 사람은 부정적으로 본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오늘에 집중해야 한다.
톨스토이의 ‘세가지 질문’이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어떤 왕이 학자들에게 ‘세가지 질문’을 했다. 학자마다 제각기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왕은 만족하지 못하고 직접 숲 속의 현자를 찾아가 물었다.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현자의 답이다. “가장 중요한 시간은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는 사람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선행하는 일이다.”
1.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어느 주유소에 팻말이 붙어 있었다. “내일은 공짜” 지나가던 차량이 팻말을 보고 다음 날 와서 주유하고 가려고 하자, 주인이 돈을 달라고 한다. 기사는 팻말을 가리키며 “내일은 공짜라고 하지 않았냐”며 따지자, 주인이 대답했다. “그래요 분명히 내일은 공짜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돈을 내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내일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갖고 오늘을 산다. 하지만 그런 내일은 우리에게 없다. 내일은 오늘을 통해서만 설명이 가능하다. 하버드 대학 도서관에 이런 말이 써있다고 한다.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렇게 갈망하던 내일이다.”
오래 전 한국 가는 비행기 안에서 ‘쿵푸 팬더’ 영화를 보았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명대사가 있다. 스승인 거북이가 팬더에게 한 말이다.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But Today is a gift. That’s why it’s called the present.” (어제는 역사이다. 내일은 미스터리다. 그러나 오늘은 선물이다. 그래서 오늘을 ‘Present’라고 한다) ‘Present’란 ‘선물과 현재’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오늘이란 선물은 반드시 오늘 사용해야 한다. 이런 말이 있다. “어제는 부도수표, 오늘은 현찰, 내일은 약속어음” 오늘 ‘현찰’을 사용하지 않으면, 내일은 ‘부도수표’가 된다.
2.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가복음 10장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있다.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율법사가 질문했다.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율법에는 무엇이라고 써있냐”고 되물었다. 율법사가 “마음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답하자, “네 대답이 옳도다. 그렇게 하면 영생을 얻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다시 묻자, 예수님께서 비유로 대답하셨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던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 거반 죽게 되었다. 제사장은 그냥 지나쳤고, 율법사도 방관 했으나, 사마리아인은 그를 주막까지 옮겨 치료해 주었다. 다음날 주인에게 치료를 부탁하고, 만약 돈이 더 들면 돌아 올 때 갚겠다고 약속하고 길을 떠났다.” 말씀을 마치신 예수님은 “이 세 사람 중에서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물었다.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라고 답하자, “가서 너도 이와 같이하라”고 하셨다. 오늘 강도 만난 사람은 누구이며, 그의 이웃은 누구인가?
3. 가장 중요한 일은?
‘테레사 효과’(Mother Teresa Effect)란 말이 있다. 선행을 할 때 일어나는 정신적, 육체적, 영적 변화를 뜻한다. 하버드 의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돈을 받고 남을 돕는 사람과 자원봉사로 남을 돕는 사람 사이에도 ‘면역력과 행복감’의 차이가 있음이 밝혀졌고, 심지어 남을 돕는 것만 보아도 면역력이 강화됨을 알게 되었다. 1998년, 하버드 의대에서는 이를 ‘테레사 효과’라고 명명했다.
그녀는 인도의 캘커타에서 헌신적인 빈민 구제 활동했고, 1979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저는 우리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청빈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배고프고, 벌거벗고, 집이 없으며, 신체에 장애가 있고, 눈이 멀고, 질병에 걸려서, 사회로부터 돌봄을 받지 못하고 거부당하며 사랑 받지 못하며 사회에 짐이 되고 모든 이들이 외면하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이 상을 기쁘게 받습니다.” 그녀는 타임지 선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금도 그녀는 ‘선행의 아이콘’으로 모든 이들의 마음에 기억되고 있다. 남을 도울 수 있고 섬길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축복이다. 예수님께서도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복이 있다”(행20:35)고 말씀하셨다.











사진 = 김환기 사관
김환기 사관 (구세군라이드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