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 칼럼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란?
오늘 본문 (마 16:13-24)의 배경은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질문을 했다. “세상의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질문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질문이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다” 라로 고백했다. 베드로의 고백을 듣고 예수님은 베드로를 칭찬한 후, 처음으로 자신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내가 예루살렘에 가서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서기관에게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 날 것이라”(21절), 베드로는 ‘주여 그리 마옵소서’ 재빨리 대답했다. 주님은 그를 ‘사탄’이라 부르며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23절)라고 말씀 하시고,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24절)라고 했다.
‘자기부인’과 ‘자기십자가’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용어이다. 너무 익숙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막연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군가 ”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가 무슨 뜻입니까?”라고 물으면 구체적으로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오늘 본문에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하나님의 생각’을 하지 않고 ‘사람의 생각’을 한다고 책망하셨다. 그렇다면 ‘자기부인과 자기 십자가’는 ‘사람의 생각’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기 부인 (Self Denial)
자기부인은 ‘자기 생각과 뜻’의 부인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을 핏방울 같이 흘리시며 기도하셨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이어서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마 26:39) 우리가 주를 따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생각과 뜻’을 포기해야 한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인데 선택의 기준은 내가 아닌 주님이다. 한번은 예수님의 제자 시몬 베드로가 밤새도록 바다에서 그 물질을 했으나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명하시기를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다. 베드로는 자기를 부인하는 고백을 한다. “선생님, 우리가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눅 5장) 베드로는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사 55:8-9) 자기 부인을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1) 육의 사람을 부인하고 영의 사람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 8:5-6) 육의 사람은 삶의 목적과 동기가 세상이 되어, 세상적인 방법으로 세상의 것을 위해서는 사는 사람이다. 영의 사람은 하늘의 것을 위하여 하늘의 방법대로 사는 사람을 말한다.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자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 6:8)
2) 겉사람을 부인하고 속사람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고후 4:16) 겉사람이란 죽어 흙으로 살아질 수밖에 없는 육의 사람을 말하고, 속사람이란 예수를 믿음으로 중생한 영의 사람을 말한다. 보이는 겉사람은 계속 낡아지나 보이지 않은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
3) 옛사람을 부인하고 새사람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22-24) 바울은 우리의 거듭난 상태를 의복과 비유를 하여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고 했다. 냄새 나는 옛 옷을 입은 상태에서 새 옷을 입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 십자가 (Self Cross)
자기 십자가는 자기 부인으로 인한 십자가이다. ‘No Cross, No Crown’이라는 말이 있다. 십자가 없이는 부활의 영광도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부활의 영광만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십자가의 고난을 간과할 때가 많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다. 부활이란 다시 사는 것인데, 다시 살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죽지 않고 살려니까 그것이 문제이다. 또한 자기 잘못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나 어려움을 ‘자기 십자가’라고 해서는 안 된다. 믿음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나 어려움이 바로 자기 십자가 이다. 베드로는 이를 ‘믿음의 시련’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벧전 1:6-7) 영국의 신학자 사무엘 루터포드 (Samuel Rutherford)는 “새에게서 그 날개는 무거운 것이나 그것 때문에 날아가고, 배는 그 돛이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간다.” 했다. 유태인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유태인을 지키는 것고 한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요,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고전 1:18) 자기 십자가를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1) 고난 (Passion)의 십자가
십자가는 고난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습관적으로 십자가와 연관 짓는다. 자식이 사고를 치면 ‘자기 십자가’,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자기 십자가’, 사업이 망해도 ‘자기 십자가’, 시험이 떨어져도 ‘자기 십자가’라고 한다. 자신의 잘못이나 무지로 인한 고난을 ‘자기 십자가’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십자가는 믿음과 연관된 고난이다. 자신의 죄 때문에 받는 고난은 ‘회개’해야 할 일이지, ‘자기 십자가’라고 합리화해서는 안된다. “‘너희 믿음의 시련은 불로 연단하여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벧전 1:7) 믿음의 시련이란? 믿음대로 살다가 받는 고난이고, 믿음을 지키려다 받는 고난이며, 믿음을 전파하다 받는 고난이 ‘자기 십자가’이다.
2) 사랑 (Love)의 십자가
십자가는 사랑을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고난의 십자가’를 ‘사랑의 십자가’로 승화시켰다. 구약에는 613가지의 계명이 있다. 하지 말라는 것 365개, 하라는 것 248개이다. 하지 말라는 것을 하면 ‘적극적인 죄’ (Commission)이고, 하라는 것을 하지 않으면 ‘소극적인 죄’ (Omission)이다. 이것을 요약한 것이 10계명이고, 10계명의 요약은 마태복음 22:36-40절의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다. 위로는 ‘하나님 사랑’, 옆으로는 ‘이웃 사람’이다. ‘사랑’이 ‘지상최대의 계명’ (The Great Commandment)이다. 사랑의 척도는 희생에 있다. 사랑에는 4 종류가 있다. 남녀의 사랑인 에로스, 친구의 사랑인 펠레오, 부모의 사랑인 스톨케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페가 있다. 아가페 사랑은 절대적이며 무조건적인 자기희생의 사랑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
3) 사명 (Mission)의 십자가
십자가는 사명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이제 다 이루었다’ (It is finished)라고 하셨다. 아버지께서 주신 사명을 다 이루신 것이다. 예수께서 3일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 부탁하신 말씀이 마태복음 28장 18-20절이다. 이를 ‘지상최대의 위임’ (The Great Commission)이라고 한다. 보통 ‘The Great Commission’을 ‘지상최대의 명령’이라고 번역하지만, 정확한 뜻은 ‘위임이고 위탁’이다. Com+mission은 ‘함께'(Com)와 ‘사명’ (Mission)의 합성어이다. ‘Mission’에는 ‘사명과 선교’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곧 선교이다. 주께서 우리에게 사명을 맡기시면서,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니라’ (마 28:20) 이것이 ‘Commission’의 진정한 의미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선교의 사명을 위임 받았다. 따라서 교회는 ‘선교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교회가 선교적이 아니면, 선교의 적이 될 수 있다.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다. 자기 부인에 대해서 3가지를 말씀 드렸고, 자기 십자가에 대해서 3가지를 말씀 드렸다. 오늘의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사는 것이 그리스도’ (빌 1:21)라고 했다.
지금은 교회력으로 사순절 기간을 지나고 있다. 사순절 (Lent)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자기 자신이 죽는 것을 배우는 절기이다. ‘사순’ (四旬)이란 40일을 뜻하는 말로 근신과 금식으로 자기 절제를 하는 기간이다.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에 시작하여 부활절까지 주일을 뺀 40일간이다. 재의 수요일 전날을 불어로 ‘마디그라’ (Mardi Gras)라 부르며, 이는 ‘뚱뚱한 화요일’ (Fat Tuesday)이란 뜻으로 ‘영양보충’하는 날이다. 안타깝게도 호주에서는 ‘마디그라’가 ‘퀴어 (Queer) 축제’로 의미가 변질되었다. 사순절 기간에 철저한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영성으로 충만하여 영광스러운 부활의 아침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영혼의 닻과 돛
히브리서는 히브리인들, 즉 유대인에게 보낸 서신이다. 신약성경 중에 유일하게 저자가 누구인지 모른다. 저자에 대하여 여러 사람이 언급되고 있지만 정확한 근거가 없다. 당시 기독교는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박해를 받았고, 종교적으로는 유대교의 박해를 받고 있었다. 히브리서는 박해를 받고 있는 유대인인 신자들에게 인내하며 믿음을 지킬 것을 권면하고 있다. 히브리서 내용은 초대교회 당시 기독교 유대인들을 향한 복음의 메시지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옛 언약의 모형들을 열거하면서 새 언약의 주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완성한 분이시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의미를 가장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성경에 종종 ‘반차 (班次)’란 용어가 등장한다. 아론의 반차, 멜기세덱의 반차가 그것이다. 개역개정판에는 반차라는 단어는 히브리서에만 5번 등장한다. (히 5:6,10, 6:20, 7:11,17) 사전을 찾아보면 반차 (班次)의 동의어는 계열 (系列)이다. 멜기세덱은 창세기 14장에 처음 등장한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가족들을 구하기 위하여 318명의 군사를 이끌고 가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주고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다. 히브리 기자는 멜기세덱이 ‘하나님의 아들을 닮아 항상 제사장으로 있고’ (히 7:3),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른 제사장 (히 5:6, 7:17)’이라고 기록했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는 ‘멜기세섹의 반차’의 의미는 육신의 혈통이 아닌 영적 혈통이란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십자가의 제단 위에, 제물이 되시고, 제사장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주셨다.
로댕은 단테의 신곡을 읽고 감동을 받아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었다. 원래는 지옥의 문 윗부분에서 지옥문을 통과하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고뇌하는 작은 형상이었다. 그것을 1888년에 독립된 작품으로 크게 만들어, 1904년 살롱에 출품하고부터 유명해졌다. 전신 근육의 긴장에 의하여 격렬하게 고뇌하는 마음의 움직임을 응결시켰다. 단테의 신곡에 지옥문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다. “여기에 들어오는 자, 일체의 희망을 버려라”. 지옥이란 더 이상의 희망을 품을 수 없는 곳이다.
시편 107편에는 인생을 항해로 비유하는 구절이 나온다. 세상의 바다는 순풍에 돛단 것 같이 순조롭지가 않다. 높은 파도, 강한 바람, 예측할 수 없는 날씨 등으로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목적지가 없는 배는 표류하지만, 목적지가 있는 배는 항해한다. 우리의 배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시인은 그곳을 ‘소원의 항구’ (시 107:30)라고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소원의 항구’를 향하여 낮에는 돛을 높이 올려 전진하고, 밤에는 닻을 깊이 내려 휴식한다. 닻과 돛은 항해의 필수품이다.
나는 1979년 4월 17일에 입대했다. 군 생활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때쯤 큰형님에게서 편지가 왔다. 그는 해병대 장교 출신이다. 자신의 군 생활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어느 추운 겨울에 출항하기 위해 닻을 올리던 중 줄이 풀리면서 닻이 바다 속으로 떨어졌다. 모두가 난감해 하고 있을 때, 부대원 중 한명이 차가운 겨울 바다로 뛰어 들어 줄을 연결한 후, 닻을 올리고 출항할 수 있었다.
히브리서 기자는 소망을 ‘영혼의 닻’이라고 했다. 닻의 기능은 배를 정박하게 한다. 파도가 치고 물결이 출렁일 때, 닻을 깊이 내린 배는 흔들릴 수는 있지만 파도에 쓸려가지 않는다. 쉼 없는 거센 물결과 바람 앞에서 단단히 뿌리내리는 균형과 절제와 안정의 추이다. 항구에 돛을 내린 배는 안전하지만, 배는 정박하기 위해서 만들지 않았다. 배는 돛을 올리고 출항해야 한다. 순풍에 돛을 올리면 빠르게 앞으로 나갈 수 있지만, 역풍에도 삼각돛은 전후의 압력 차이로 전진할 수 있다. 밤이 되면 닻을 내려 정박해야 하고, 낮이 되면 돛을 올려 항해해야 한다. 세상의 바다에서 소망이 ‘영혼의 닻’이 되고, 소망이 ‘영혼의 돛’이 되어, ‘소망의 항구’를 향하여 오늘도 믿음으로 항해하자.
종교개혁과 3명의 사람
종교개혁 당시 독일에 루터가 있었다면, 스위스에는 ‘츠빙글리’가 있었다. 츠빙글리는 루터의 95개 조문과 비슷한 67개 개혁안을 내놓고, 취리히 시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여 개혁이 시작되었다. 그는 루터보다 더 근본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연합을 위해 두 사람이 독일에서 만난 적이 있다. 대부분의 의견은 일치하였으나, 성찬에 관한 이견(異見)으로 서로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된다. 가톨릭의 화체설 (Transubstantiation)애 반대는 했지만 루터는 ‘공재설’ (Consubstantiation)을 주장하고, 츠빙글리는 ‘기념설’ (Memorialism)를 주장했다. 연합을 상징하는 성찬식이 개신교 최초의 분열의 원인이 되었다. 개혁의 2세대인 칼빈은 두 사람의 의견을 절충하여 ‘영적 임재설’ (Spiritual Presence)을 내놓았다.
첫째, 마르틴 루터 (Martin Luther, 1483~1546)
루터는 독일 아이스레벤에서 태어났다. 그는 법률가가 되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1505년 5월부터 법학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약 2달 뒤, 고향인 만스펠트에서 에르푸르트로 돌아오는 길에 그의 옆으로 천둥번개가 떨어졌다. 루터는 번개가 떨어지자 큰 두려움에 떨며 “성 안나여, 나를 살려주소서. 내가 수도사가 되겠나이다”라고 서원했다. 이후 아버지와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어거스틴 수도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게 된다.
훗날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교의 교수로서 종교개혁을 일으킨 역사적인 인물이 되었다. 루터는 로마 가톨릭교회에 부패와 잘못된 교황의 권위에 항거하여,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리를 논박하고, 성서가 지니고 있는 기독교 신앙에서의 최고의 권위와 그리스도에 대한 오직 믿음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통한 구원을 강조하였다.
루터는 16살 아래인 카타리나 폰 보라와 결혼했다. 루터가 개혁이 너무 힘들어 절망하고 있을 때이다. 카타리나가 소복을 입고 루터에게 갔다. 누가 죽었냐고 물으니 하나님이 죽었다고 했다. “어떻게 하나님이 죽을 수 있냐”고 화를 내자, “당신이 풀 죽어 있는 모습을 보니 분명 하나님은 죽으신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이후 루터는 ‘살아계신 하나님’ (living God)이란 표현을 의도적으로 많이 사용했다.
둘째, 울리히 츠빙글리 (Ulrich Zwingli, 1484~1531)
츠빙글리는 스위스의 종교개혁자이다. 그는 루터와 더불어서 종교 개혁의 양대산맥이다. 츠빙글리의 신학의 핵심은 성경이다. 그 권위는 어떠한 종교회의나 교부들의 주장보다도 더 높다고 했다. 1506년 로마 가톨릭교회의 사제로 서품을 받았으며, 글라루스의 성직자가 되어 부임하였다. 10년 동안 사목 활동을 하면서 헬라어를 공부, 희랍과 고대 로마의 철학자, 시인, 웅변가, 저술가에 대해 배웠다. 이 기간에 인문학자이자 성직자인 에라스무스와 서신을 교환하며 우정을 쌓았으며,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1519년, 츠빙글리는 취리히에 있는 그로스뮌스터 교회로 사역지를 옮겼다. 그로스뮌스터 교회에서 목회사역을 하던 츠빙글리는 어거스틴과 바울 신학을 독학했고, 종교개혁의 길을 걸어갔다. 1522년, 츠빙글리는 그의 사상이 함축적으로 요약된 ‘67개 신조’를 작성했고, 다음해인 1523년 1월 29일 취리히에서 공개토론을 개최하여 ‘67개 신조’를 중심으로 로마 교회의 부정과 부패를 비판했다. 그는 두 차례나 군종 사제로 이탈리아에 갔다. 전쟁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체험을 바탕으로 용병제도를 반대했다.
츠빙글리는 성서주의 영향 때문에 그가 주도했던 종교개혁은 보다 급진적인 것이었다. 루터가 개인의 신앙 양심에 근거했다면, 츠빙글리는 사회제도의 개혁을 추진하였다. 특별히 그는 용병제도를 반대하였다. 스위스 용병은 용감하기로 정평이 났었다. 아직도 바티칸 근위병은 스위스에서 책임을 지고 있다. 그는 인문주의자요, 성서학자이며, 프로테스탄트요, 진보주의자였으며, 애국자였다. 츠빙글리는 인생의 황금기인 47세에 전사하고 개혁의 바통을 다음세대에게 넘겼다.
셋째, 존 칼빈 (Jean Calvin, 1509~1564)
칼빈은 프랑스 ‘피카르디’에서 태어났다. 칼빈의 호칭을 ‘존 칼빈’ 혹은 ‘장 칼뱅’ 등으로 부른다. 영어로 ‘존 칼빈’이고 불어로 ‘장 칼뱅’이다. 루터나 츠빙글리보다는 한 세대 후배이다. 그의 아버지는 칼뱅이 로마 가톨릭 교회 신부가 되기를 원했으나, 로마 가톨릭 교회와의 갈등 속에서 아들에게 법학으로 진로를 바꾸길 권했다. 그는 파리에서 문학과 고전을 공부했고 신학공부도 마쳤다. 1532년에는 부르주에서 법학 박사 학위도 받았다.
그가 쓴 ‘기독교 강요’는 종교 개혁에 큰 사상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개신교의 영원한 고전으로 남아 있다. ‘기독교 강요’는 1535년에 완성됐고, 칼빈은 프랑스의 국왕 프랑수아 1세에게 헌정했다. 이 작품으로 인해 칼빈은 종교개혁의 주도적인 신학자가 됐다. 기독교 강요는 단순히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요약하고 교리화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그의 저작 동기 속에서는 사람들이 성경을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었다.
그는 프랑스를 떠나 제네바에 머물게 된다. 파렐은 칼빈에게 제네바의 종교개혁에 동참하자고 부탁했다. 칼빈은 조용히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지만 ‘파렐’은 칼빈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도망치면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결국 칼빈은 제네바에 남아 종교개혁을 돕게 된다. 칼빈은 프랑스 출신이지만 스위스 제네바의 종교개혁자가 되었다.
사진 = 김환기 사관
김환기 사관 (구세군라이드한인교회)